2016년 1학기 전체여행 - 아, 아이들... 아이들이여!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06-24 18:18
조회
1801
3박4일간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식사당번이나 청소당번을 정하기는 하지만, 모든 당번이 제 일감 앞에 제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몇몇이 모였어도 일을 시작한다.
☆ 다용도로 쓰이는 수영복과 구명조끼. 빨래 하다가 물이 자꾸 튀어서^^
☆ 요리를 할 때는 이런 복장을 갖춰야 합니다. 나의 외관보다 모둠원들을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엿보이기도 하는 복장 착용!
남들보다 역할이 많아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내가 너무 많이 했다느니 왜 나만 자꾸 하냐느니 따지는 아이도 있다. 솔직히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섞여 있으니 손이 여문 아이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주면 좋은데, 동생들이 서툰 것을 너무 타박하거나 똑같이 N분의 1을 주장하는 모양은 아무리 아이라도 너무 별로다.
달래고 어르며 이끌어야 교사의 도리일 텐데, 아이의 성정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나 싶어서 알았다고 하고는 말을 더 안 섞는다. 그나마 눈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내지른 게 미안해 일을 거드는데, 제 욕구에 충실한 아이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나 몰라라 놀기만 한다.
‘요즘’ 우리 학교 아이들의 생활을 보며, 애들이 이래도 될까 우리가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도 될까 싶은 순간과 대목이 있다. 이번 전체여행을 통해 또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너무나 많은 내 욕심을 인정하지만 우리는 더 나은 인간상을 향해 부단히 달려야 하지 않을까. 온화한 교사와 단호한 교사는 결코 상충되는 게 아닌데, 아이들을 너그럽게 이해하면서도 잘잘못을 일깨워줘야 할 사람이 교사인데, 내가 뭘 헷갈리고 있어서 적절한 개입을 못하는 건 아닌가. (여행 떠나기 전 ‘그때 아이들’과 ‘요즘 아이들’을 비교하며 여러 고민을 졸업생 혜민이에게 털어놓았더니, 완곡하게 말했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하라고.)
어쨌든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만 늘어가는 내 모습에 부대끼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는 것도 안 되어 속이 참말로 복잡스러울 때면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나곤 했다. 모두가 불편하고 힘들고 짜증이 날 때, 기꺼이 나서서 더 어린 존재들의 편의를 봐주는 어떤 아이들. 동생들의 필요를 재빨리 간파하고 모둠에서 진행해야 일이 무엇인지 아는, 우리 안의 고운 심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그 아이들. 버스에서 빈자리가 있을 때 동생들을 불러다 앉히고, 물놀이 후 모두가 줄서서 길게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 때 동생들 먼저 씻게 하고, 맛난 음식 내가 더 먹기보다 못 먹은 사람에게 주고,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면 좀더 품을 내고, 자기 덮을 이불마저 내주던 아이들.
그래, 사람을 이렇게 키워야지. 이게 교육이지.
그리고 잠깐 돌아본다. 나 하나 겨우 건사하는 것에만 몰두한 내 태도가 아이들에게도 스민 것은 아니었는지, 주변을 돌보지 못하고 내 일이 바쁘게 지내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 건 아닌지. 그러니까 참 뻔뻔스럽게,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거구나.
내 잔소리를 무진장 듣고 야단을 맞았던 몇몇 아이들. 걔네가 늘 부족했던 게 아니다. 저학년들이 해온 설거지가 내 성에 안 차서 다시 하라고 강하게 부탁하면 대신 씻어왔고, 화장실에 동생 데리고 들어가서 좀 씻기라고 하면 순순히 응했고, 밤에 일기 쓸 때 짝이 모르는 글자 봐달라고 하면 알려주었고, 아직 가방 싸는 게 서투니 옆에서 거들라고 하면 하나하나 알려주고... 사람의 선한 모습, 좋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걸 자주 인정해야지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나.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가 저문다. 생각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더라도, 잠들 무렵이면 바깥도 나도 고요해진다. 여행 때 잠든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종일 바빴던 마음과 그날의 짜증과 피로가 다 사라진다. 이렇게 어여쁜 아이들에게 내가 왜 화를 냈을까 후회하는 마음도 잠깐 스친다. 아...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퉁명스러웠던가. 아이들이 잠들어야 이 거대한 무리의 소음이 잦아들고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에 고요해지는 게 아니다. 잠든 얼굴에 깃든 표정에는, 아이들이 눈 뜨고 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아직까지 잠잘 때만 사랑스러운 아이는 없으니 참 다행이다^^)
1학년 때 함께 생활했던 정아와 하연이. 벌써 5학년이 되었다. 자는 모습이 그때랑 똑같다. 고래꿈을 꾸는지, 거칠 것 없이 팔다리 쭉쭉 뻗는다.
우리방 이불이 좀 모자랐는데 동생들 위해서 기꺼이 양보했을 때 얼마나 고맙던지. 새벽녘에 이불을 더 달라고 하던 아이가 있어서, 두 아이의 건강을 믿고 다른 아이에게 덮어줬는데 둘은 세상모르고 잘 잤다. 아이들의 몸뚱이에 깔려 있던 이불을 쓱 빼낼 때 뭔가 기척을 느꼈던 것 같은데, 굳이 눈을 뜨지 않고 모자란 잠을 마저 잤던 듯하다.
저쪽에는 저학년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잔다. 머리 맞대고 참 사이좋게 잔다. 1학년 은우와 재윤이가 자다가 눈을 잠깐 떴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머리를 더 가까이 대고 잔다. 너네들 서로 좀 좋아하는 거지?
한번쯤은 쓰고 싶었던 침대. 오늘은 3학년 여자애들 차지이다. 자다가 안 떨어질 자신 있다고 굳게 약속하더니만, 점점 몰려 은규 몸통 절반쯤은 침대 끄트머리에 걸쳐 있다.
모든 아이들이 여행을 즐기는 건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더라도, 학교 여행은 좀 별로라고 전하기도 한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88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데 오죽할까.
여행 전부터 긴장하고 두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교사들이 일찍부터 정보를 공유하며 대비한다.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고 힘들면 따로 찾아오라고 하면서. 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자는 건 쉽지 않다. 참고 참다가 밤이 오면 결국 울고야 만다. 교사가 달래고, 한때는 나도 그랬다며 고학년이 달래고, 또래가 달랜다. 울음이 수습되는 가운데, 이런 아이가 있다. 엄마아빠 그립지만 자기 속내 다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 어떻게든 씩씩하게 버텨보려고 애쓰는 아이. 남이 제 눈물을 볼까봐 참고 또 참은 다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흘리는 아이.
이번 여행에서 참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억압하고 표현을 못할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어린 것들이 애쓰는 모습이 고맙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자기 깜냥으로 감당하려고 버티는 게, 안 보려 해도 보이고 눈에 밟혀서 그렇다.
전체여행 덕분에 더 가까워진, 눈이 동그랗고 어여쁜 1학년 여자아이. ‘선생님, 저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이렇게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내가 바빠서 그러니까 기다려 달라고 하면 한참이나 기다리고는 자리에 누워서야 살짝 묻는다. “선생님 옆에서 자도 돼요?”
자다가 몇 번이나 깨서 눈을 맞췄던 그 아이가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는 게 무척이나 신통하여, 여행 끝나고 엄마한테는 속내를 털어놓았는지 아이에게 물으니 엄마에게는 “이번 여행 재미있었다”고 했단다.
☆ 물놀이 후 애벌샤워를 하며 모래를 씻어내는 아이.
☆ 저 물벼락을 맞아야 하다니... 으으으...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수원보다 더 동쪽이라 해가 아주 약간 일찍 뜨는 정동진에서, 동이 트기 전부터 깨어난 아이들. 학교 여행경험에 비춰보면 젊을수록 잠이 없다!
동해에 왔으니 해가 뜨는 걸 꼭 보겠다는 아이들은 남들 안 깨우려고 조심이야 하지만, 들뜬 목소리와 우당탕 발걸음으로 “동네 사람들~ 나 해 보러 나가오!” 하고 온몸으로 광고를 하고 나온다. 그날 첫 번째로 비추는 햇살을 보겠다는 아이들. 그런 일념 품은 아이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하늘이 감복할 법한데 한 번도 해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바닷가에서 해를 기다리지만, 사위만 밝아질 뿐 해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 아쉽고 또 아쉽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사진이나 찍자고 이런저런 자세를 주문하니,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팔딱팔딱 잘도 뛴다. 아직 졸립고 피곤하다면서도 사진기 셔터를 누를 때는 생기발랄이다. 해가 떴으면 너희 실루엣만 나왔을 거야. 해가 없으니 잘 보이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 셔터 타이밍과 뛰는 타이밍이 자꾸만 어긋난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게 이리 어렵다.
☆ 커다란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서 눈만 뜨면 부지런히 주워먹었지요.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따뜻함을 느낄 때가 있다.
시내버스에 우르르 탈 때면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손주도 이만하다, 함께 앉자 그러시며 아이들을 앉힌다. 어떤 분들은 곧 내린다며 아이들 앉게 하고 서 계신다. 도시와 달라 시골 쪽으로 가는 버스일수록, 정류장 간격이 긴 걸 아는데도. 그런 분들 뵐 때마다 참 고맙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기만 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묵호항 어시장을 지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잔치를 열고 있던 상인 중 한 분이 우리를 보고 막 뛰어와서는 음료수 한 상자를 안겨 주셨다. 여러 번 사양하니까 받아도 된다고, 오늘이 잔치니까 나눠야 한다고 그랬다. 아이들 입이 귀에 걸리고 우리는 무척 좋아하며 못 이기는 척 받았다.
캔에 박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상표를 보자마자 재치 넘치는 재서가 계속 웃는다.
“선생님은 석류 안 좋아하죠?”
아, 역시 이재서! 넌 정말 정직한 아이이지.
그런데 어쩜 좋니. 난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야.
그리고 네 질문의 의도도 잘 알고 있단다^^
“재서야 그거 알아? 어떤 명제 p이면 q이다가 참일 때, 반드시 참인 명제가 뭔지.”
학습욕구가 왕성한 이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 나는 속사포처럼 명제의 역과 이와 대우의 참과 거짓에 대한 말을 쏟아내서 재서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까먹게 만든다. 재서는 듣다가 웃다가 그런다. 재서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표정, 입을 반쯤 벌리고선. 중학생이 되면 이렇게 재미난 것도 배운다고, 얼른 중학생 되라고 덧붙인다.
묵호등대 쪽으로 오르는 동안, 정아가 마을길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벽화는 색을 잘 섞어서 썼다, 저 조형물은 흔히 볼 수 있는 걸로 재미있게 만들었다, 저 건물이 너무 도시스럽고 이 마을과 안 어울릴 정도로 생뚱맞다, 저쪽 풍경이 비오는 날이라 아름답다... 우리 학교도 구석구석 이렇게 예쁘게 꾸미면 좋겠다. 정아의 안목과 감상평도 놀라웠는데, 우리가 본 아름다운 걸 학교까지 잇는 마음에 내내 감탄한다.
그리고 날 놀라게 했던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허름하고 낡은 건물에는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살아요. 아파트처럼 좋은 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살아요. 골목길이 복잡하고 오래된 연립빌라 있는 동네에는 무릎도 아픈 할머니들이 많아요. 여기에 젊은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동네 사는 거 안 좋아할 거예요, 불편하니까. 여기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계단 올라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요.
애들이 이렇게 컸구나. 세상이 어떤 모양새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구나. 잠시 울컥한다.
사람마다 길이가 달리 느껴지는 사흘이 지나고, 우리는 수원으로 온다. 터미널에서 엘지빌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모둠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걸고 미션에 도전했는데, 가게에서 고학년 아이들이 동생들에게 그런다.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줄 때는 비싼 걸 고르면 안 된다고. 저쪽 칸에 있는 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고 싼 걸 먹으라고. 선생님 부담된다고. 나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속닥인다. 가게가 좁아서 다 들려버린다.
돈이 모자라는 게 아니어도 아휴, 고마워라! 그런 건 어디에서 배웠을까. 아이들 이런 말과 행동에 여행의 피로가 다 날아가고 꼭 내가 키운 자식들처럼 보람이 있다. 이렇게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염치며 배려며 선한 마음들이 가만가만 스미나보다. 그 후배들은 나중에 선배가 되어 동생들과 또래와 교사들까지 살피겠지. 이번 여행에서 여러 아이들이 그랬듯이.
고마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이번에 더 고마웠던 분들 꼭 짚고 가야겠다.
이슬 선생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듣기 좋은 노래를 나지막하게 불러주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대신 아름다운 음악을 휴대폰으로 틀어주셨다. 그 덕에 여러 아이가 잠을 잘 잤다. 게다가 잠자리에서, 식사 때, 씻을 때... 수시로 손길 넣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또 한편에서는... 나무꾼 선생님이 아이들 먹으라고 불 피워 식수 끓이느라 내내 바빴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모두 바닷가로 놀러갈 때 아픈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고 숙소 지킨단다. 뽐내기대회 상품 준비며 모둠활동을 할 때 불편함이 없는지 여기저기 살피고 다닌다.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하는 누군가 있어서, 이번 여행도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온 게 분명하다!
쓰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을 후기를, 이제 그만 줄여야겠다.
사람이 다 말하고 살려는 것도 욕심이다.
☆ 다용도로 쓰이는 수영복과 구명조끼. 빨래 하다가 물이 자꾸 튀어서^^
☆ 요리를 할 때는 이런 복장을 갖춰야 합니다. 나의 외관보다 모둠원들을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엿보이기도 하는 복장 착용!
남들보다 역할이 많아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내가 너무 많이 했다느니 왜 나만 자꾸 하냐느니 따지는 아이도 있다. 솔직히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섞여 있으니 손이 여문 아이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주면 좋은데, 동생들이 서툰 것을 너무 타박하거나 똑같이 N분의 1을 주장하는 모양은 아무리 아이라도 너무 별로다.
달래고 어르며 이끌어야 교사의 도리일 텐데, 아이의 성정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나 싶어서 알았다고 하고는 말을 더 안 섞는다. 그나마 눈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내지른 게 미안해 일을 거드는데, 제 욕구에 충실한 아이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나 몰라라 놀기만 한다.
‘요즘’ 우리 학교 아이들의 생활을 보며, 애들이 이래도 될까 우리가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도 될까 싶은 순간과 대목이 있다. 이번 전체여행을 통해 또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너무나 많은 내 욕심을 인정하지만 우리는 더 나은 인간상을 향해 부단히 달려야 하지 않을까. 온화한 교사와 단호한 교사는 결코 상충되는 게 아닌데, 아이들을 너그럽게 이해하면서도 잘잘못을 일깨워줘야 할 사람이 교사인데, 내가 뭘 헷갈리고 있어서 적절한 개입을 못하는 건 아닌가. (여행 떠나기 전 ‘그때 아이들’과 ‘요즘 아이들’을 비교하며 여러 고민을 졸업생 혜민이에게 털어놓았더니, 완곡하게 말했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하라고.)
어쨌든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만 늘어가는 내 모습에 부대끼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는 것도 안 되어 속이 참말로 복잡스러울 때면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나곤 했다. 모두가 불편하고 힘들고 짜증이 날 때, 기꺼이 나서서 더 어린 존재들의 편의를 봐주는 어떤 아이들. 동생들의 필요를 재빨리 간파하고 모둠에서 진행해야 일이 무엇인지 아는, 우리 안의 고운 심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그 아이들. 버스에서 빈자리가 있을 때 동생들을 불러다 앉히고, 물놀이 후 모두가 줄서서 길게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 때 동생들 먼저 씻게 하고, 맛난 음식 내가 더 먹기보다 못 먹은 사람에게 주고,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면 좀더 품을 내고, 자기 덮을 이불마저 내주던 아이들.
그래, 사람을 이렇게 키워야지. 이게 교육이지.
그리고 잠깐 돌아본다. 나 하나 겨우 건사하는 것에만 몰두한 내 태도가 아이들에게도 스민 것은 아니었는지, 주변을 돌보지 못하고 내 일이 바쁘게 지내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 건 아닌지. 그러니까 참 뻔뻔스럽게,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거구나.
내 잔소리를 무진장 듣고 야단을 맞았던 몇몇 아이들. 걔네가 늘 부족했던 게 아니다. 저학년들이 해온 설거지가 내 성에 안 차서 다시 하라고 강하게 부탁하면 대신 씻어왔고, 화장실에 동생 데리고 들어가서 좀 씻기라고 하면 순순히 응했고, 밤에 일기 쓸 때 짝이 모르는 글자 봐달라고 하면 알려주었고, 아직 가방 싸는 게 서투니 옆에서 거들라고 하면 하나하나 알려주고... 사람의 선한 모습, 좋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걸 자주 인정해야지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나.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가 저문다. 생각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더라도, 잠들 무렵이면 바깥도 나도 고요해진다. 여행 때 잠든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종일 바빴던 마음과 그날의 짜증과 피로가 다 사라진다. 이렇게 어여쁜 아이들에게 내가 왜 화를 냈을까 후회하는 마음도 잠깐 스친다. 아...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퉁명스러웠던가. 아이들이 잠들어야 이 거대한 무리의 소음이 잦아들고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에 고요해지는 게 아니다. 잠든 얼굴에 깃든 표정에는, 아이들이 눈 뜨고 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아직까지 잠잘 때만 사랑스러운 아이는 없으니 참 다행이다^^)
1학년 때 함께 생활했던 정아와 하연이. 벌써 5학년이 되었다. 자는 모습이 그때랑 똑같다. 고래꿈을 꾸는지, 거칠 것 없이 팔다리 쭉쭉 뻗는다.
우리방 이불이 좀 모자랐는데 동생들 위해서 기꺼이 양보했을 때 얼마나 고맙던지. 새벽녘에 이불을 더 달라고 하던 아이가 있어서, 두 아이의 건강을 믿고 다른 아이에게 덮어줬는데 둘은 세상모르고 잘 잤다. 아이들의 몸뚱이에 깔려 있던 이불을 쓱 빼낼 때 뭔가 기척을 느꼈던 것 같은데, 굳이 눈을 뜨지 않고 모자란 잠을 마저 잤던 듯하다.
저쪽에는 저학년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잔다. 머리 맞대고 참 사이좋게 잔다. 1학년 은우와 재윤이가 자다가 눈을 잠깐 떴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머리를 더 가까이 대고 잔다. 너네들 서로 좀 좋아하는 거지?
한번쯤은 쓰고 싶었던 침대. 오늘은 3학년 여자애들 차지이다. 자다가 안 떨어질 자신 있다고 굳게 약속하더니만, 점점 몰려 은규 몸통 절반쯤은 침대 끄트머리에 걸쳐 있다.
모든 아이들이 여행을 즐기는 건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더라도, 학교 여행은 좀 별로라고 전하기도 한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88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데 오죽할까.
여행 전부터 긴장하고 두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교사들이 일찍부터 정보를 공유하며 대비한다.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고 힘들면 따로 찾아오라고 하면서. 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자는 건 쉽지 않다. 참고 참다가 밤이 오면 결국 울고야 만다. 교사가 달래고, 한때는 나도 그랬다며 고학년이 달래고, 또래가 달랜다. 울음이 수습되는 가운데, 이런 아이가 있다. 엄마아빠 그립지만 자기 속내 다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 어떻게든 씩씩하게 버텨보려고 애쓰는 아이. 남이 제 눈물을 볼까봐 참고 또 참은 다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흘리는 아이.
이번 여행에서 참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억압하고 표현을 못할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어린 것들이 애쓰는 모습이 고맙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자기 깜냥으로 감당하려고 버티는 게, 안 보려 해도 보이고 눈에 밟혀서 그렇다.
전체여행 덕분에 더 가까워진, 눈이 동그랗고 어여쁜 1학년 여자아이. ‘선생님, 저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이렇게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내가 바빠서 그러니까 기다려 달라고 하면 한참이나 기다리고는 자리에 누워서야 살짝 묻는다. “선생님 옆에서 자도 돼요?”
자다가 몇 번이나 깨서 눈을 맞췄던 그 아이가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는 게 무척이나 신통하여, 여행 끝나고 엄마한테는 속내를 털어놓았는지 아이에게 물으니 엄마에게는 “이번 여행 재미있었다”고 했단다.
☆ 물놀이 후 애벌샤워를 하며 모래를 씻어내는 아이.
☆ 저 물벼락을 맞아야 하다니... 으으으...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수원보다 더 동쪽이라 해가 아주 약간 일찍 뜨는 정동진에서, 동이 트기 전부터 깨어난 아이들. 학교 여행경험에 비춰보면 젊을수록 잠이 없다!
동해에 왔으니 해가 뜨는 걸 꼭 보겠다는 아이들은 남들 안 깨우려고 조심이야 하지만, 들뜬 목소리와 우당탕 발걸음으로 “동네 사람들~ 나 해 보러 나가오!” 하고 온몸으로 광고를 하고 나온다. 그날 첫 번째로 비추는 햇살을 보겠다는 아이들. 그런 일념 품은 아이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하늘이 감복할 법한데 한 번도 해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바닷가에서 해를 기다리지만, 사위만 밝아질 뿐 해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 아쉽고 또 아쉽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사진이나 찍자고 이런저런 자세를 주문하니,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팔딱팔딱 잘도 뛴다. 아직 졸립고 피곤하다면서도 사진기 셔터를 누를 때는 생기발랄이다. 해가 떴으면 너희 실루엣만 나왔을 거야. 해가 없으니 잘 보이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 셔터 타이밍과 뛰는 타이밍이 자꾸만 어긋난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게 이리 어렵다.
☆ 커다란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서 눈만 뜨면 부지런히 주워먹었지요.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따뜻함을 느낄 때가 있다.
시내버스에 우르르 탈 때면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손주도 이만하다, 함께 앉자 그러시며 아이들을 앉힌다. 어떤 분들은 곧 내린다며 아이들 앉게 하고 서 계신다. 도시와 달라 시골 쪽으로 가는 버스일수록, 정류장 간격이 긴 걸 아는데도. 그런 분들 뵐 때마다 참 고맙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기만 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묵호항 어시장을 지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잔치를 열고 있던 상인 중 한 분이 우리를 보고 막 뛰어와서는 음료수 한 상자를 안겨 주셨다. 여러 번 사양하니까 받아도 된다고, 오늘이 잔치니까 나눠야 한다고 그랬다. 아이들 입이 귀에 걸리고 우리는 무척 좋아하며 못 이기는 척 받았다.
캔에 박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상표를 보자마자 재치 넘치는 재서가 계속 웃는다.
“선생님은 석류 안 좋아하죠?”
아, 역시 이재서! 넌 정말 정직한 아이이지.
그런데 어쩜 좋니. 난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야.
그리고 네 질문의 의도도 잘 알고 있단다^^
“재서야 그거 알아? 어떤 명제 p이면 q이다가 참일 때, 반드시 참인 명제가 뭔지.”
학습욕구가 왕성한 이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 나는 속사포처럼 명제의 역과 이와 대우의 참과 거짓에 대한 말을 쏟아내서 재서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까먹게 만든다. 재서는 듣다가 웃다가 그런다. 재서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표정, 입을 반쯤 벌리고선. 중학생이 되면 이렇게 재미난 것도 배운다고, 얼른 중학생 되라고 덧붙인다.
묵호등대 쪽으로 오르는 동안, 정아가 마을길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벽화는 색을 잘 섞어서 썼다, 저 조형물은 흔히 볼 수 있는 걸로 재미있게 만들었다, 저 건물이 너무 도시스럽고 이 마을과 안 어울릴 정도로 생뚱맞다, 저쪽 풍경이 비오는 날이라 아름답다... 우리 학교도 구석구석 이렇게 예쁘게 꾸미면 좋겠다. 정아의 안목과 감상평도 놀라웠는데, 우리가 본 아름다운 걸 학교까지 잇는 마음에 내내 감탄한다.
그리고 날 놀라게 했던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허름하고 낡은 건물에는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살아요. 아파트처럼 좋은 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살아요. 골목길이 복잡하고 오래된 연립빌라 있는 동네에는 무릎도 아픈 할머니들이 많아요. 여기에 젊은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동네 사는 거 안 좋아할 거예요, 불편하니까. 여기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계단 올라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요.
애들이 이렇게 컸구나. 세상이 어떤 모양새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구나. 잠시 울컥한다.
사람마다 길이가 달리 느껴지는 사흘이 지나고, 우리는 수원으로 온다. 터미널에서 엘지빌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모둠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걸고 미션에 도전했는데, 가게에서 고학년 아이들이 동생들에게 그런다.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줄 때는 비싼 걸 고르면 안 된다고. 저쪽 칸에 있는 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고 싼 걸 먹으라고. 선생님 부담된다고. 나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속닥인다. 가게가 좁아서 다 들려버린다.
돈이 모자라는 게 아니어도 아휴, 고마워라! 그런 건 어디에서 배웠을까. 아이들 이런 말과 행동에 여행의 피로가 다 날아가고 꼭 내가 키운 자식들처럼 보람이 있다. 이렇게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염치며 배려며 선한 마음들이 가만가만 스미나보다. 그 후배들은 나중에 선배가 되어 동생들과 또래와 교사들까지 살피겠지. 이번 여행에서 여러 아이들이 그랬듯이.
고마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이번에 더 고마웠던 분들 꼭 짚고 가야겠다.
이슬 선생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듣기 좋은 노래를 나지막하게 불러주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대신 아름다운 음악을 휴대폰으로 틀어주셨다. 그 덕에 여러 아이가 잠을 잘 잤다. 게다가 잠자리에서, 식사 때, 씻을 때... 수시로 손길 넣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또 한편에서는... 나무꾼 선생님이 아이들 먹으라고 불 피워 식수 끓이느라 내내 바빴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모두 바닷가로 놀러갈 때 아픈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고 숙소 지킨단다. 뽐내기대회 상품 준비며 모둠활동을 할 때 불편함이 없는지 여기저기 살피고 다닌다.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하는 누군가 있어서, 이번 여행도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온 게 분명하다!
쓰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을 후기를, 이제 그만 줄여야겠다.
사람이 다 말하고 살려는 것도 욕심이다.
우린 이런 멋진 선생님들과 이런 당찬 아이들고 남다른 여행을 한다고 자랑하고 싶어요.
글을 읽다 보면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가 실제 음성으로 들려온답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는 안나맘 오드리이고, 남푠(부엉) 회원가입 시켜주고 둘러보다 댓글 남겨요.
고 며칠사이 부쩍 자라 돌아와서 놀랐는데 저런 누나 형아들의 의젓함이 스며들어 그랬나보네요.
내년엔 자신에게 황금같은 간식도 나눠줄 수 있게 자라오리라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