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학기 전체여행 - 묵호 중앙시장 <짬뽕집> -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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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er
작성일
2016-06-22 22:15
조회
2497
“이번 여행에서 뭐가 좋았어요?” 물으면 “라면이 맛있었어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전교생이 며칠 생활에 필요한 짐을 이고 지고, 오로지 대중교통과 제 걸음에 의존해 발 디딘 풍광 좋은 어디쯤엔가에서, 그리 애써 찾아가지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손에 꼽는다. 미각의 충족과 포만감을 앞세운 듯한 짧은 답에는, 미처 설명하지 못한 배경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짜장면이었다. 정확히 말해 아이들과 짜장면 함께 먹는 자리였다. 내게 인상적으로 남았던, 이번 여행의 단면은.
여행 사흘째. 날이 개지 않는다. 푸른 바다와 쨍한 햇볕이 우리를 맞이해야 하는데, 하늘은 흐리고 잿빛 바다는 자꾸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잘 노는 법이지만, 물에 젖은 몸을 말릴 볕이 부족하니 바다로 들어가자고 권하질 못하겠다. 이런 날씨에는 몇 십 분 노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금세 떨어지며 바들바들 떨 테니. 여행 첫날에 한 번, 둘째날 두 번 물놀이를 했으니 셋째날은 세 번 물놀이보다 새로운 게 필요하다.
애초 가기로 한 강릉시장 대신 묵호로 방향을 튼다. 급히 내린 결정이다. 아침 5시40분부터 우리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던 정동진역의 역무원, 강릉일대를 손바닥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수산나 선생님, 어쩌면 짝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에 들뜬 모둠장 현지 덕분이다. 아침을 후다닥 먹고 서두른다. 8시15분 묵호행 기차를 타려고.
아, 이번 여행은 왜 이리 뛰기만 하나. 여행 첫날 수원터미널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바람에 강릉행 버스를 부랴부랴 탔는데 이번에도 정동진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향해 달린다.
터미널 앞 건널목에서 박주원이 “전쟁 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뛰어요?”라고 느긋하게 물었다. 전쟁 난 게 아니어도 뛰어야 할 때가 있으니 일단 뛰라고 그랬다. 이번에는 배재윤이 말한다. “아침부터 왜 뛰어요?”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 셈법으로는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다음 기차를 타도 될 텐데 말이다.
(참! 첫날, 아이들 무사히 승차할 수 있게 도와주신 재돈어머님, 승빈아버님 고맙습니다!)
역시 동해는 기차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커다란 유리로 들어오는 바다가 참 넓고 크고 좋다. 파랗지 않더라도 바다는 바다이다.
20분 거리, 아이들은 의자를 돌려 네 명씩 마주보고는 이야기를 나누며 간다. 이대로 앉아서 수원까지 가면 좋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도 있다. 수시로 아이들 마음을 두드리는 수구초심은 이 나라 모든 교통의 종착지를 수원으로 만든다. 철도를 새로 깔지 않는 이상, 이 기차가 어찌 수원으로 갈 일이 있겠는가. 시장에서 맛있는 걸 먹고 생각해보자는 얼렁뚱땅 위로를 전할 수밖에.
개시(開市)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우리는 묵호 중앙시장 골목골목을 터벅터벅 걷는다. 가게 간판이라든지 밖에 쓰인 가격표를 보고는 점심 때 뭘 먹을까 훑으며. 아직 시장은 한산하고 비까지 온다. 급히 일회용 우비를 사서 나눠 입고 묵호등대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빗줄기 굵어도 항구는 어시장이 활발하다. 길가에 온갖 생선들이 즐비한 가운데, 입찰가를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럴 때 등장해야 한다. 오줌이 급하다는 아이들. 신기하게도 빗소리를 들으면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들이 꼭 나타난다. 화장실 찾아 공판장 앞을 지나는데, 한 아이 탄식한다.
“낙지를 여기에서 팔았어야 하는데...”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이 사랑하는 주원이가 후회를 한다. 어제 바다에서 놀다가 둥둥 떠 있는 미역을 건졌는데 거기에 낙지가 한 마리 붙어 있더란다. 우리 모둠 국거리가 마땅치 않았으니 가져와서 탕이라도 끓여먹었으면 좋으련만. 박애정신이 과하게 발동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망망대해에 방생하고야 말았고, 바다의 것들이 활발히 거래되는 이곳 어시장에서 뒤늦게야, 어제 만난 낙지의 가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낙지 한 마리이면 호주머니가 제법 두둑해졌으리라 상상하며 무척이나 아쉬워한다. 어쩌겠는가. 어제 놓아준 낙지는 엄마아빠 만나 잘 살고 있으리라 위로하는 수밖에.
우리는 묵호항 전망대에 오른다. 계속 비라서 바다 쪽 시계(視界)가 답답하다. 반면 안묵호라 불리는 논골담길, 낮은 지붕이 어깨 겯고 있는 산등성이 마을은 비안개 속에서 제법 운치가 있다. 이 아름다운 골목길을 걷고 싶으나 너무 배고파서 안 되겠다. 중앙시장으로 되돌아가 뭐라도 먹고 오자고 결정했다. 산길 걸을 힘은 없어도 먹기 위해 걸을 힘은 난다!
선택은 때로 어렵다. 절제된 식단에서 선택이 무제한 보장된 식단으로의 전환이여!
주린 배를 무엇으로 채울지 심사숙고하는 아이들은 ‘면’이라는 범주 안에서 두 무리로 갈린다.
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파는 집에서 그 맛을 봐야겠다는 아이들과, 저가공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이 얼마이든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 달아 선생님은 국수 쪽으로, 나는 짜장면 쪽으로 간다.
(국숫집 이야기는 달아 선생님이 서술할 예정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찾아봐.”
짜장면파 중 최고령자 이지헌이를 임시 모둠장으로 지목하고 난 뒤로 빠진다.
“내가 모둠장이라니! 말도 안돼!”
바다에서 동해용왕이 튀어나올 정도의 고음으로 호들갑인 지헌이를 동생들이 일시에 바라보니, 지헌이는 애들 손을 잡고 앞장선다. 시장골목으로 들어서는 발걸음들이 느릿느릿. 짜장면파 아이들 걸음이 다소 느린 때문도 있겠으나, 낯선 길 자기들끼리 가라 하니 배고파도 빨라질 수가 없나보다. 아까 둘러본 길이라도 초행은 초행이니.
재바른 2학년 윤하가 걸음을 서두르고 크게 외친다.
“여기! 짬! 뽕! 집! 있! 어!”
붉은 짬뽕집 간판을 본 아이들이 서둘러 달려가서는 고민한다.
“짬뽕집인데 짜장면을 팔까?”
짬뽕 전문집에서 짜장면을 팔지 말지 고민했을 주인장도 있었겠지만,
짬뽕 전문집에서 짜장면을 팔지 말지 더욱 더 고민하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보다 못한 요엘이가 형을 이끌고 가게에 들어선다. 노란 우비를 도포처럼 휘날리며.
“여기 짜장면 팔아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들은 목소리 중 가장 또렷할 뿐만 아니라 확신과 희망에 찬 목소리다.
“네!”
알바언니의 한 마디에 환호한 아이들은 대담하게 한 그릇씩 주문한다.
짜장면은 4천원, 공기밥은 무한리필. 우리 가진 비상금이 딱 5천원뿐이므로 둘이서 하나를 시켜 나눠먹고 짜장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좋으련만,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1인 1그릇을 주장하는 아이들. 빈그릇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각자 한 그릇씩 받아든다.
윤하와 채원은 한 그릇을 사이좋게 갈라먹기로 했다. 가위로 면을 곱게 잘라 똑같이 나눠준 알바언니의 공평함에 두 아이 흐뭇해하며 사이좋게 먹는다. (아이들이 갈등 없이 아무거나 골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똑같았다!) 한 젓가락씩 집어 천천히 씹고는 꿀꺽 삼킨다. 그리고 발우공양하듯 한 점 짜장국물 없이 말끔히 먹는다. 내가 안 볼 때 혀로 핥아먹었나 싶을 만큼 그릇이 제법 깨끗하다.
호기롭게 한 그릇에 도전한 지욱이는 음.... 우선 면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그리고 면 한 가닥 한 가닥을, 향과 질감을 음미하듯 오래오래 우물거리며 먹는다. 먹는 속도보다 붇는 속도가 더 빨라, 아무리 먹어도 지욱이 그릇은 화수분이다.
서준이는 아주 즐거워하며 쭉쭉 들이마신다.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속도다. 그렇게 급하게 먹는 아이는 아닌데, 내가 맞은편에 앉아서 경계하느라 그럴지 모른다. 내가 단무지를 먹으려고 앞으로 젓가락을 내밀었을 뿐인데 서준이가 움찔한 걸 보면.
섬세한 입맛의 요엘이는 매우 빠르게 면만 건져 후루룩후루룩 삼킨다. 면도 채소도 다 식물성이니 구별하지 않고 고루 먹으면 안 될까 싶지만, 면이 지나간 입안을 감히 채소맛으로 더럽힐 뜻은 없다는 듯 단호하다. 여기에 와서까지 빈그릇운동 할 마음은 없단다. 평소 같으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안 하는 요엘이인데, 너무 배가 불러서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나보다. 하하, 역시 짜장면의 힘이란!
재돈이는 어떠한가. 우리 모둠의 간소한 식단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끼니마다 소식(小食)하였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없다. 한 그릇을 당당히 비우고, 지욱이의 관상용 면을 식용으로 바꾸어 제 뱃속으로 옮긴다. 그걸로 다 차지 않았는지, 내 밥도 좀 거든다. 수원 가면 꼭 따로 불러 짜장면 한 그릇 먹여야겠다 생각했다.
우리의 모둠장 지헌이는 소리 없이 한 그릇을 비운다. 윤하와 채원이만큼은 아니었으나 건더기의 형태를 띤 것은 다 건져 먹었다. 모둠장답게 모든 그릇을 점검하고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오래오래 품평을 한다. 말이 길었으나 요약하면 이러하다.
“역시 저학년들이 빈그릇운동을 잘 배웠어...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빈그릇운동을 강요할 수는 없어... 내 위장의 크기로는 한 그릇이 부족해... ”
아직도 배가 덜 찼기에 채소를 잔뜩 남긴 아이들의 뒤처리를 할 뜻도 조금은 있으나, 잔반의 시각적 상태가 썩 청결하지는 않고 남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을지 모를 것들을 굳이 제 뱃속에 넣고 싶지는 않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제 먹성대로 먹는다. 오직 먹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는 듯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경건히 그리고 충실하게 먹는다. 감히 비유하면 ‘최후의 만찬’이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식당주인이 물었다. “혹시 교회에서 오셨어요?”
그런 상상이 어찌 안 들겠는가.
짜장면을 받아들고 두 손 모아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먹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른 먼저 드세요.” 밥기도를 한 다음, 묵언수행 기간처럼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면.
입 가장자리며 콧등까지 짜장국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은 뒤늦게야 입이 열리고, 알아서 계산해 달라며 돈은 모둠장 지헌이와 내게 다 맡긴다. 드디어 아이다운 활기를 되찾고는 가게가 떠날 정도로 깔깔 웃으며 떠든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고 치워놓았던 단무지를 손으로 집어먹는다.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백성이 배가 부르니 나라가 평안하도다!
이제야 돌아보니 안묵호의 꼭대기 등대까지 올라가겠다는 다짐이며, 곳곳의 벽화를 보며 감탄하는 눈빛, 흔들다리까지 뛰어가겠다는 열정은 모두 다 짜장면 한 그릇 덕이었겠다. 묵호 중앙시장, 짬뽕 전문집의 짜장면 한 그릇 말이다.
☆ 묵호 중앙시장 곳곳에 그려진 벽화 앞에서. 옛 건물이 잘 보존된 곳이다. 놀라울 정도로 먹을거리도 풍성하고^^
두 모둠으로 나눠서 골목 따라 둘러본 다음 시장 끝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장길이 거미줄처럼 얽힌 줄도 모르고.
☆ 호떡 한 입만 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줬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서 내가 먹을 걸 뺏어먹지 못한 최초의 아이!
친구를 앞세워 우정에 호소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 일회용 우비 패션쇼.
단연 돋보이는 저 분홍 어린이~ 방수점퍼라 때깔이 다르다~
☆ 짜장면 먹는 사진은 차마 못 올리겠다. 사진 찍는 솜씨가 형편없어서 애들이 좀 추하게 나왔다... 허허허.
짜장면이었다. 정확히 말해 아이들과 짜장면 함께 먹는 자리였다. 내게 인상적으로 남았던, 이번 여행의 단면은.
여행 사흘째. 날이 개지 않는다. 푸른 바다와 쨍한 햇볕이 우리를 맞이해야 하는데, 하늘은 흐리고 잿빛 바다는 자꾸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잘 노는 법이지만, 물에 젖은 몸을 말릴 볕이 부족하니 바다로 들어가자고 권하질 못하겠다. 이런 날씨에는 몇 십 분 노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금세 떨어지며 바들바들 떨 테니. 여행 첫날에 한 번, 둘째날 두 번 물놀이를 했으니 셋째날은 세 번 물놀이보다 새로운 게 필요하다.
애초 가기로 한 강릉시장 대신 묵호로 방향을 튼다. 급히 내린 결정이다. 아침 5시40분부터 우리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던 정동진역의 역무원, 강릉일대를 손바닥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수산나 선생님, 어쩌면 짝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에 들뜬 모둠장 현지 덕분이다. 아침을 후다닥 먹고 서두른다. 8시15분 묵호행 기차를 타려고.
아, 이번 여행은 왜 이리 뛰기만 하나. 여행 첫날 수원터미널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바람에 강릉행 버스를 부랴부랴 탔는데 이번에도 정동진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향해 달린다.
터미널 앞 건널목에서 박주원이 “전쟁 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뛰어요?”라고 느긋하게 물었다. 전쟁 난 게 아니어도 뛰어야 할 때가 있으니 일단 뛰라고 그랬다. 이번에는 배재윤이 말한다. “아침부터 왜 뛰어요?”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 셈법으로는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다음 기차를 타도 될 텐데 말이다.
(참! 첫날, 아이들 무사히 승차할 수 있게 도와주신 재돈어머님, 승빈아버님 고맙습니다!)
역시 동해는 기차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커다란 유리로 들어오는 바다가 참 넓고 크고 좋다. 파랗지 않더라도 바다는 바다이다.
20분 거리, 아이들은 의자를 돌려 네 명씩 마주보고는 이야기를 나누며 간다. 이대로 앉아서 수원까지 가면 좋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도 있다. 수시로 아이들 마음을 두드리는 수구초심은 이 나라 모든 교통의 종착지를 수원으로 만든다. 철도를 새로 깔지 않는 이상, 이 기차가 어찌 수원으로 갈 일이 있겠는가. 시장에서 맛있는 걸 먹고 생각해보자는 얼렁뚱땅 위로를 전할 수밖에.
개시(開市)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우리는 묵호 중앙시장 골목골목을 터벅터벅 걷는다. 가게 간판이라든지 밖에 쓰인 가격표를 보고는 점심 때 뭘 먹을까 훑으며. 아직 시장은 한산하고 비까지 온다. 급히 일회용 우비를 사서 나눠 입고 묵호등대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빗줄기 굵어도 항구는 어시장이 활발하다. 길가에 온갖 생선들이 즐비한 가운데, 입찰가를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럴 때 등장해야 한다. 오줌이 급하다는 아이들. 신기하게도 빗소리를 들으면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들이 꼭 나타난다. 화장실 찾아 공판장 앞을 지나는데, 한 아이 탄식한다.
“낙지를 여기에서 팔았어야 하는데...”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이 사랑하는 주원이가 후회를 한다. 어제 바다에서 놀다가 둥둥 떠 있는 미역을 건졌는데 거기에 낙지가 한 마리 붙어 있더란다. 우리 모둠 국거리가 마땅치 않았으니 가져와서 탕이라도 끓여먹었으면 좋으련만. 박애정신이 과하게 발동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망망대해에 방생하고야 말았고, 바다의 것들이 활발히 거래되는 이곳 어시장에서 뒤늦게야, 어제 만난 낙지의 가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낙지 한 마리이면 호주머니가 제법 두둑해졌으리라 상상하며 무척이나 아쉬워한다. 어쩌겠는가. 어제 놓아준 낙지는 엄마아빠 만나 잘 살고 있으리라 위로하는 수밖에.
우리는 묵호항 전망대에 오른다. 계속 비라서 바다 쪽 시계(視界)가 답답하다. 반면 안묵호라 불리는 논골담길, 낮은 지붕이 어깨 겯고 있는 산등성이 마을은 비안개 속에서 제법 운치가 있다. 이 아름다운 골목길을 걷고 싶으나 너무 배고파서 안 되겠다. 중앙시장으로 되돌아가 뭐라도 먹고 오자고 결정했다. 산길 걸을 힘은 없어도 먹기 위해 걸을 힘은 난다!
선택은 때로 어렵다. 절제된 식단에서 선택이 무제한 보장된 식단으로의 전환이여!
주린 배를 무엇으로 채울지 심사숙고하는 아이들은 ‘면’이라는 범주 안에서 두 무리로 갈린다.
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파는 집에서 그 맛을 봐야겠다는 아이들과, 저가공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이 얼마이든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 달아 선생님은 국수 쪽으로, 나는 짜장면 쪽으로 간다.
(국숫집 이야기는 달아 선생님이 서술할 예정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찾아봐.”
짜장면파 중 최고령자 이지헌이를 임시 모둠장으로 지목하고 난 뒤로 빠진다.
“내가 모둠장이라니! 말도 안돼!”
바다에서 동해용왕이 튀어나올 정도의 고음으로 호들갑인 지헌이를 동생들이 일시에 바라보니, 지헌이는 애들 손을 잡고 앞장선다. 시장골목으로 들어서는 발걸음들이 느릿느릿. 짜장면파 아이들 걸음이 다소 느린 때문도 있겠으나, 낯선 길 자기들끼리 가라 하니 배고파도 빨라질 수가 없나보다. 아까 둘러본 길이라도 초행은 초행이니.
재바른 2학년 윤하가 걸음을 서두르고 크게 외친다.
“여기! 짬! 뽕! 집! 있! 어!”
붉은 짬뽕집 간판을 본 아이들이 서둘러 달려가서는 고민한다.
“짬뽕집인데 짜장면을 팔까?”
짬뽕 전문집에서 짜장면을 팔지 말지 고민했을 주인장도 있었겠지만,
짬뽕 전문집에서 짜장면을 팔지 말지 더욱 더 고민하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보다 못한 요엘이가 형을 이끌고 가게에 들어선다. 노란 우비를 도포처럼 휘날리며.
“여기 짜장면 팔아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들은 목소리 중 가장 또렷할 뿐만 아니라 확신과 희망에 찬 목소리다.
“네!”
알바언니의 한 마디에 환호한 아이들은 대담하게 한 그릇씩 주문한다.
짜장면은 4천원, 공기밥은 무한리필. 우리 가진 비상금이 딱 5천원뿐이므로 둘이서 하나를 시켜 나눠먹고 짜장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좋으련만,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1인 1그릇을 주장하는 아이들. 빈그릇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각자 한 그릇씩 받아든다.
윤하와 채원은 한 그릇을 사이좋게 갈라먹기로 했다. 가위로 면을 곱게 잘라 똑같이 나눠준 알바언니의 공평함에 두 아이 흐뭇해하며 사이좋게 먹는다. (아이들이 갈등 없이 아무거나 골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똑같았다!) 한 젓가락씩 집어 천천히 씹고는 꿀꺽 삼킨다. 그리고 발우공양하듯 한 점 짜장국물 없이 말끔히 먹는다. 내가 안 볼 때 혀로 핥아먹었나 싶을 만큼 그릇이 제법 깨끗하다.
호기롭게 한 그릇에 도전한 지욱이는 음.... 우선 면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그리고 면 한 가닥 한 가닥을, 향과 질감을 음미하듯 오래오래 우물거리며 먹는다. 먹는 속도보다 붇는 속도가 더 빨라, 아무리 먹어도 지욱이 그릇은 화수분이다.
서준이는 아주 즐거워하며 쭉쭉 들이마신다.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속도다. 그렇게 급하게 먹는 아이는 아닌데, 내가 맞은편에 앉아서 경계하느라 그럴지 모른다. 내가 단무지를 먹으려고 앞으로 젓가락을 내밀었을 뿐인데 서준이가 움찔한 걸 보면.
섬세한 입맛의 요엘이는 매우 빠르게 면만 건져 후루룩후루룩 삼킨다. 면도 채소도 다 식물성이니 구별하지 않고 고루 먹으면 안 될까 싶지만, 면이 지나간 입안을 감히 채소맛으로 더럽힐 뜻은 없다는 듯 단호하다. 여기에 와서까지 빈그릇운동 할 마음은 없단다. 평소 같으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안 하는 요엘이인데, 너무 배가 불러서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나보다. 하하, 역시 짜장면의 힘이란!
재돈이는 어떠한가. 우리 모둠의 간소한 식단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끼니마다 소식(小食)하였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없다. 한 그릇을 당당히 비우고, 지욱이의 관상용 면을 식용으로 바꾸어 제 뱃속으로 옮긴다. 그걸로 다 차지 않았는지, 내 밥도 좀 거든다. 수원 가면 꼭 따로 불러 짜장면 한 그릇 먹여야겠다 생각했다.
우리의 모둠장 지헌이는 소리 없이 한 그릇을 비운다. 윤하와 채원이만큼은 아니었으나 건더기의 형태를 띤 것은 다 건져 먹었다. 모둠장답게 모든 그릇을 점검하고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오래오래 품평을 한다. 말이 길었으나 요약하면 이러하다.
“역시 저학년들이 빈그릇운동을 잘 배웠어...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빈그릇운동을 강요할 수는 없어... 내 위장의 크기로는 한 그릇이 부족해... ”
아직도 배가 덜 찼기에 채소를 잔뜩 남긴 아이들의 뒤처리를 할 뜻도 조금은 있으나, 잔반의 시각적 상태가 썩 청결하지는 않고 남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을지 모를 것들을 굳이 제 뱃속에 넣고 싶지는 않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제 먹성대로 먹는다. 오직 먹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는 듯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경건히 그리고 충실하게 먹는다. 감히 비유하면 ‘최후의 만찬’이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식당주인이 물었다. “혹시 교회에서 오셨어요?”
그런 상상이 어찌 안 들겠는가.
짜장면을 받아들고 두 손 모아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먹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른 먼저 드세요.” 밥기도를 한 다음, 묵언수행 기간처럼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면.
입 가장자리며 콧등까지 짜장국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은 뒤늦게야 입이 열리고, 알아서 계산해 달라며 돈은 모둠장 지헌이와 내게 다 맡긴다. 드디어 아이다운 활기를 되찾고는 가게가 떠날 정도로 깔깔 웃으며 떠든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고 치워놓았던 단무지를 손으로 집어먹는다.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백성이 배가 부르니 나라가 평안하도다!
이제야 돌아보니 안묵호의 꼭대기 등대까지 올라가겠다는 다짐이며, 곳곳의 벽화를 보며 감탄하는 눈빛, 흔들다리까지 뛰어가겠다는 열정은 모두 다 짜장면 한 그릇 덕이었겠다. 묵호 중앙시장, 짬뽕 전문집의 짜장면 한 그릇 말이다.
☆ 묵호 중앙시장 곳곳에 그려진 벽화 앞에서. 옛 건물이 잘 보존된 곳이다. 놀라울 정도로 먹을거리도 풍성하고^^
두 모둠으로 나눠서 골목 따라 둘러본 다음 시장 끝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장길이 거미줄처럼 얽힌 줄도 모르고.
☆ 호떡 한 입만 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줬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서 내가 먹을 걸 뺏어먹지 못한 최초의 아이!
친구를 앞세워 우정에 호소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 일회용 우비 패션쇼.
단연 돋보이는 저 분홍 어린이~ 방수점퍼라 때깔이 다르다~
☆ 짜장면 먹는 사진은 차마 못 올리겠다. 사진 찍는 솜씨가 형편없어서 애들이 좀 추하게 나왔다... 허허허.
마치 제가 그 자리에 있는듯 생생하고 흐믓하네요.
선생님이랑 친구 호떡 한입만 줄 일이지. ㅋㅋㅋ
추한 사진도 보고싶당...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