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김장축제 첫 날!

작성자
해님
작성일
2020-11-25 22:44
조회
858
일기장에 할머니 댁 다녀온 이야기, 고모랑 김칫소 버무린 이야기, 맛난 수육 먹은 이야기, 삼촌이 용돈으로 만원이나 주셨다는 즐거운 이야기가 넘친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집집마다 서둘러 김장을 담근다.

모처럼 온 가족 둘러 모여 배추 속에 양념을 버무려 넣고, 절인 배추 한 잎 톡 따서 수육 쌈을 먹는 날이라 축제라 이름 지었을까? 오늘부터 학교에서도 <<김장축제>>가 열렸다.

“1학년 땐 김장축제라고 해서 진짜 축제인 줄 알았는데... 김장 지옥이었다.”

선배의 한 마디처럼 과연 <수원칠보산자유학교>의 <<김장축제>>는 축제일까? 지옥일까?

첫째 날 이야기를 펼친다.

자전거 거치대 옆. ‘뭘까?’ 궁금했던 마음에 뚜껑을 열었더니 죽은***동물의 사체가 있었다. 는 무시무시한 괴담이 전해온다. 지난 해 담아두었던 김치를 꺼낸 자리에 일 년 동안 시간 먼지가 쌓인다. 진짜 뚜껑을 열었더니 빗물과 원래의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통 절반을 채웠다. 냄새는 덤이다. 그 것을 꺼내고, 빈 통을 깨끗이 씻는 일, 참 수고로운 일을 올 해는 5학년과 길섶 선생님이 애써주셨다. 여러분의 눈 건강을 위해 사진은 생략하겠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가을 내내 정성껏 키운 작물을 모두 모아 김장을 담근다. 필요한 도구도 만만치 않다. 채반과 대야, 칼과 도마를 구성원 전 가정에서 하나 씩 집에 있는 도구를 보태어 준비한다. 자연스레 품앗이가 시작된다. 학교 물건은 오랜만에 꺼내서 미리 씻어두고 말린다. 6학년이 도와주었다.



우리 김장은 나 혼자 모든 일을 다 하지는 않는다. 짜잔 다 준비된 것을 버무리는 재밌는(?) 일만 체험(?) 하지 않는다. 한 해 두 해 함께 일하며 내 일머리가 늘 때를 기다린다. 내 손이 영글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며칠 전부터 살피던 5,6학년이 나선다. 텃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는다. 흙을 털어내고 끈은 하나하나 따로 모은다. 칼과 도마라는 연장을 옆구리에 찬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뿌리를 자른다. 배추를 가른다. 누런 잎을 뗀다. 뗀 잎은 시래기를 위해 따로 모은다. 또 한 번 정리하고 1,2학년에게 학교까지 잘 나르라고 장바구니에 담아준다.



축제라 한껏 들뜬 1,2학년은 준비된 일꾼처럼 재잘댄다.

“저 할머니 집에서 버무려봤어요.”

“배추 뿌리 아무리 깊어도 나도 힘줘서 영차 할래요.”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장바구니에 손질 된 배추와 무를 담아 학교까지 나르는 일이다. 왠지 쉬운 일만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서지만 2-3번을 왔다 갔다 나르다 보니 몇 번을 다녀왔는지 아예 까먹어버렸다. 쉬운 줄 알았다 큰 코 다쳤다. 배추가 쌓이는 만큼 어린이들도 지쳤다. 빨리 빨리 끝내자며 바람처럼 달리는 2학년, 둘이서 수다 떨며 천천히 걷는 1학년. 1년 차인데 일 눈이 참 다르다.



3학년은 둥치층(학교강당)에 자리를 넓게 펴고 눈물을 흘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배추를 나르던 어린이들이 올 해는 쪽파, 마늘, 대파, 양파, 갓을 다듬는다. 까고 까도 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씻고 씻어도 줄지 않을 줄 알았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니 얼 추 반은 했다. 작년보다 양이 반도 더 줄여 준비했는데 3학년은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했다.



올 해 배추 씻기와 절이기는 4학년이다. 모둠으로 나눠 착착 소나기 선생님의 지휘아래 아라솔 선생님은 재빠른 행동대장이다. 아~~~ 흙을 털어 물통에 퐁당 물만 담그지 말고 두 번 세 번 살살 흔들어 씻자. 무는 흙자국 없을 때까지 솔로 솔솔 문지르며. 꼼꼼히 씻자. 두 분 선생님의 목소리가 운동장에서 끊임없이 흩어진다.

장갑 젖었다. 신발 젖었다. 손이 시려. 허리 아파. 이유는 왜 이리도 많은지? 끝날까 싶었던 배추 씻기가 점심시간이 돼서야 겨우 마쳐졌다. 그리고 점심 먹고 수산나 (영양교사) 선생님이 출동하셨다. 소금물에 풍덩풍덩 다시 한 번 목욕하고 살살 소금을 뿌린다. 제 할 일 마친 1학년이 창문 너머로 오후까지 또 일하는 형님들을 구경한다. 아니 보며 배운다.

“4학년 수고했다. 배추 씻기와 절이기는 아무래도 4학년이 하기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내 년에 이 일은 꼭 5학년이 하라 할게!”

“맞아요! 5학년이 해야 해요!” 외치는 두 녀석의 이름은 안 밝히겠다.



6학년이 시래기를 삶으며 김장축제의 첫 날이 끝났다.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300인 이하 작은 학교 방역수칙을 기준으로 진행했습니다. 공간의 밀집도와 개인위생을 철저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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