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7일] 선생님의 속셈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12
조회
1295
개학날이었다. 학교 둘레에 우거진 풀을 보니 마음이 살짝 쓰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볼 엄두가 안 났다. 마침 청소를 다 끝낸 우리반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그랬다.

"여러분 우리 학교의 주인은 우리이지요?"
"네!"
"우리집 방안에 풀이 가득 자라 있으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이런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이들 앞에서 마땅한 구실도 생각나지 않아서...
아까 전교생이 모였을 때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옆사람과 이야기하기에 바빴던 우리반의 모습을 문제삼았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이라기보다 명령)했다.
"풀 뽑으러 갑시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동요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 잘 들었어요!
나는 몸바로를 잘했어요! 
싫어요!!!!! 
왜 우리가 해요?
풀 뽑는 게 재미있어요. (-> 극소수의 의견임)


웅성웅성하던 가운데, 한 아이가 말했다.
"전 가야 선생님의 속셈을 다 알아요! 우리를 최고의 어린이로 만들려는 거잖아요!"

아이는 어쩌면 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눈물도 흘렸다. (개학날부터 울려서 미안하다....)
풀뽑기와 최고의 어린이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내 속셈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2학년이 그 많은 풀을 뽑았다고 칭찬하면서 좋아할 거란다.
허허허.... 그렇게 최고의 어린이가 되는구나.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어떤 면을 모른 척할 때가 있다.
그 아이는 나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친구이다. 
나도 모르는 내 속셈에 대해 며칠 생각해보았다.


얼마전 한 선생님이 '주인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잔뜩 핀 곰팡이와 널려 있는 물건으로 어수선한 학교 공간을 방학중에 함께 목격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우리 공간의 주인으로서 살고 있는지 선생님 스스로 묻는 말이었다.

방학 중에 학교가 그나마 학교다운 꼴을 갖추었다면 여러 사람의 숨은 노력 덕분일 것이다.
현관이 지저분하면 얼른 빗자루를 들고 깨끗이 쓸어내는 잎샘이나
아이들이 설거지를 한 후 개수대 근처에 물이 떨어져 있으면 걸레로 쓱쓱 닦는 수산나선생님이 떠올랐다. 
학교 앞에 사는 아저씨도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 교문 앞에 쓰레기가 널려 있거나 토사가 도로로 흘러내리면 꼭 비질을 하신다.
'주인의식'은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스며들 것인데 부지런한 몸을 만드는 게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만사에 사람 끌어들이려는 물귀신 속성의 나는 우리반 아이들을 '주인의식'이라는 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을 좀더 차리게 되니까 말이다.
찬찬히 살펴보니, 나의 문제의식을 아이들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게다.
나에게 이런 속셈이 있구나.... 
그 아이의 눈이 참 밝구나...


어쨌든 눈물바람에다가 불평가득이라, 아이 한 명이 풀 열 포기쯤 뽑고 5분만에 다 끝났다.
풀을 뽑은 흔적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그렇게 개학날을 닫았다.



수요일이 되었다. 화요일 비온 뒤에 땅이 어떨지 몰라 텃밭돌보기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5학년 아이들과 최재혁 선생님이!!! 
더운날 땀 뻘뻘 흘리며 학교 주변을 말끔하게 다듬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말끔하지 않을 수 있는데 풀 한 포기 없는 땅은 참으로 삭막하다!)
회양목 아래에 강하게 뿌리내린 덩굴식물을 아이들이 잘라내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땅 속 사방팔방으로 수염뿌리를 뻗은 외떡잎식물들의 생명력을 아이들의 두 손이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5학년들이 죄다 해낸 것이다.

우리반이 신나게 공동체놀이를 할 때 옆에서 열심히 제초작업을 하는 5학년 아이들을 보며 
정말 최고의 어린이들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그 아이의 말이 맞았다.
풀뽑기를 하면 최고의 어린이가 된다.
교사는 그런 속셈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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