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 버스, 아이들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13
조회
1388
몇 년전부터인가 버스에 커다란 모니커가 설치되었다.
친절하게 이번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화면과 함께 진기한 쇼, 우리말 퀴즈나 '라바'와 같은 만화가 나온다.
낯선 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 정류장 안내화면은 도움이 된다. 
차창 밖 풍경으로 자유롭게 향할지도 모를 우리들의 눈을 화면에 묶어두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들이를 하는 우리 학교 어린이들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각종 영상 중에서 애니메이션 '라바'는 참 재미있어서 아이들을 사로잡는다.
교통카드를 찍고 화면이 잘 보이는 자리로 재빠르게 달려가 앉는다.
다음 장면이 뭔지 말해버리는 아이를 누군가 탓하느라 사소한 다툼이 벌어진다.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오거나 다왔는데도 화면에서 눈을 못 떼어 누군가 야단맞는 일이 한두 번은 생긴다.
내리기 전에 교통카드를 준비하라고 여러 번 이르는데 놓치는 아이도 있다. 

1학기 어느 여름날이었다.
내려야 하는데 '라바'를 보느라 안 내리고 뒤쪽에 서있던 아이를 잡아끌기도 했다.   
아이는 내리라는 내 말을 못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가 내 말을 못 들은 척했다고 느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 아이를 미워할 뻔했다. 
내가 미움을 쏟는다면 화를 내야할 대상은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화면을 설치하고 끊임없이 영상을 내보내는 사회현상이지 아이가 아닐 텐데 말이다.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지 시각을 흐리게 만드는 게 우리 사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 학교밖학교.

여느 때처럼 아이들의 눈동자에 라바가 담긴다.
아이들의 웃음코드는 비슷해서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다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한 마디씩 평을 하는 것도 비슷비슷하다.
누군가의 평에 꼬리말을 달고, 그 꼬리말에 또 꼬리말...

"애들아 웃는 건 좋은데 너무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버스기사나 다른 승객들이 야단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큰 것 같아서 부탁한다.
자꾸 이러면 나 혼자 내릴 거라고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라바가 너무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나오는데다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참기 힘들다고 한다. 
그 마음이 진심으로 이해되어 소곤소곤 말해달라고 했더니 
귀여운 아이 하나가 우리가 그렇게 하기엔 너무 어렵다고 했던가.

에휴, 나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창룡문에 이르러서 우르르 내렸다. 
밥을 먹고 마음껏 쉬고 있는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한 게 분명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애 낳지 마세요. 애들은 키우면 시끄러워요." 


하하하!
이 시끄러운 아이들과 다음 학년회의 때 버스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분명 시끄러울 테고 
분명 모두를 시끄럽게 만들 명언이 줄줄 튀어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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