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5일] 우리 말 글 연수에 다녀와서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03
조회
1398

과천의 이웃 맑은샘학교에서 연 <우리 말글 교사연수>에 다녀왔습니다. 서울경기지역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2008년부터 시작해서 달마다 공부하는데 맑은샘이 주축이 되어 해마다 귀한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습니다. 대안학교 돌아가는 게 비슷비슷할 텐데, 바쁜 가운데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느라 힘을 내는 맑은샘학교에 고마웠습니다.


첫 강연자로 백기완 선생님 오신다고 했어요. 나이가 드셨어도 사람들 만나려는 마음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 더 만나 뵙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다리가 다쳐 오시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몸조리하고 계실 텐데 쾌유를 빕니다. 혹시 어디서 백기완 선생님 강연 있다는 소식 들으면 제게 알려주세요!


(1) 읽고 쓴다는 것, 그 통쾌함과 거룩함에 대하여


대신 감이당 연구원 고미숙 선생님이 오셨어요. ‘수유너머 동의보감을 비롯한 호모쿵푸스’ ‘호모큐라스와 같은 책을 쓰신. 배움과 만남이 있는 삶을 꿈꾸고 그걸 자기 살아가는 자리에서 이뤄가는 분이에요.


요즘 미디어에 주로 나오는 먹방, 쇼핑의 즐거움에 매몰된 사람들, 도시인의 생활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패턴 등, 요즘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주셨어요. 입말이 참 매력적인 분이더군요. 편안한 어투, 가끔 49금도 섞어가면서^^


-쇼핑이나 맛집 탐방, 성형수술은 인간의 욕구와 감각을 넓히는 것에 불과하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행위에 사유가 없으니 문제다. 광고와 멜로드라마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리메커니즘을 움직이면서 유지되는 구조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욕망을 부추긴다. 결국 우리의 몸을 바꿔버린다.


-노예는 쾌락과 불안을 오가는 속성이 있다. 배움이 생략되고 타자와의 관계가 단절되면 쾌락에만 빠진다.


-사람이 자신의 신체성을 바꾸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전복이 불가능하다. 낮에는 투쟁, 밤에는 야동. 그런 몸으로 혁명을 한들, 그 이후는?


그러니 우리는 어찌 살까요.


-삶의 맛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공부는 물욕과 성욕을 제어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천지인을 탐구할 때만 욕망을 제어할 수 있고, 근본적인 탐구는 동양고전을 통해 가능하다.


-지식이 삶을 반영하지 못하면 우리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본인 스스로 기억을 조작하는 이도 있다. 심리학 공부를 통해 엄마의 태교가 내 불행의 근원인 걸 밝힌다? 그게 어른의 태도인가? 꾸준한 공부를 한 결과인가?


선생님은 낭송 글쓰기를 중요한 공부 방법으로 제안하셨어요. 이 방법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사회를 인식하는 틀을 바탕으로, 십 년 넘게 학습공간을 꾸리며 겪은 일을 통해 나온 방법임을 긴 서설로 밝혀주신 것이지요.


-진리는, 가장 평범하여 이 세계의 중심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걸어갈 길이다. 보통 사람이 자기의 길을 갈 수 있게 돕는 방법이 진리라면, 그 전달수단인 에 주목한다.


-공부가 즐거우려면 나의 기운을 써야 한다.


-낭송은 자기 몸을 쓰는 일이다.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몸 전체가 소리의 파동으로 들어간다. 목소리를 통해 오장육부를 단련시킨다.


-20년 이상 책을 읽고도 글쓰기가 어렵다면 뭔가 이상하다. 생산과 창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 삶의 철학을 일굴 수 없다. 글쓰기는 언어의 창조이다. 남을 흉내 내는 구경꾼으로 살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자.


선생님이 들려주신 독특한 연애론이 흥미로웠는데, 이 후기를 읽을 주요 독자들이 아들딸 구별 않고 낳아 잘 살고 있고 그 상황에서 굳이 연애가 필요하지 않은 분들이 분명하므로 (게다가 미혼남녀들은 자기 앞가림 알아서 하고 있으므로) 굳이 옮길 까닭이 없어서 생략.


(2) 윤태규 선생님, 교사의 삶과 동화 이야기


이날 제게 큰 울림을 준 만남은 윤태규 선생님이었어요. 426개월을 교직에 몸담고 지금은 퇴임하셨지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선정한 10대 작가에 권정생 선생님과 더불어, 윤태규 선생님이 여러 해 뽑히기도 했대요. 농고 출신인 본인이 어떻게 동화책을 펴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지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듣는데 말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솜씨에 울고 웃었어요. 선생님이 침을 꼴깍하면 저도 덩달아 꼴깍하고, 선생님 눈이 휘둥그레지면 그 뒷일이 어찌 되는지 저도 궁금하고요. 게다가 어려운 한자말은 거의 없고, 맑고 아름답게 살아숨쉬는 말이 입에서 술술입니다.


처음에는 본인의 삶에서 시작해 차차 아이들 이야기로 옮겨갔지요. 자두 서리를 하겠다고 방학숙제를 정한 아이의 일기. 오늘은 몇 개 훔쳤다,오늘은 몇 개 훔쳤다, 오늘은 못 훔쳤다... 그러다 오늘은 들켜버렸다. 그런 망측한 숙제를 허락한 선생님을 개학날에 찾아오겠다는 과수원 주인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올까 말까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개학날을 보냈다 합니다.


어느 날은 수업하는데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리고, 정임이네 엄마가 나타나서는 비가 오니 널어놓은 나락을 걷어야 한다며 등에 업은 막내를 공부하던 딸에게 받으라 했다지요. 정임이가 무안할까 선생님은 아이 눈치를 보았지만, 아이는 당당하게 수업시간에 참여했다지요. 막내동생 업고서요.


제자가 전화해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자고 해서, 전국 최대의 음치가 제자들 덕분에 본선까지 진출했던 경험도 있었대요.


들려주실 이야기가 어찌나 많았던지요. 짧은 시간이 아깝기만 했습니다.


방학을 잘 쉬다 보면 학교는 더러 잊게 되고, 지금의 휴식이 너무나도 달콤해서 좀 더 쉬고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윤태규 선생님과 함께 하는 내내... 글쎄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살을 조물락거리기 좋아하는 시헌이가 어느날 제 허벅지를 더듬다가 가야 선생님은 왜 방망이를 다리에 달고 다니세요?” 묻던 일이 떠오르고, “가빵 선생님! 나 심심해요. 야옹야옹!” 하는 지윤이가 그립고, 선생님들은 아이들 괴롭히기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는 현호가 여름방학을 어찌 보내는지 궁금하고, 자기가 정하는 방학숙제를 꽤나 많이 낸 기산이가 과연 숙제를 기억할까 알고 싶고... 엉뚱한 아이들과 재미난 일을 꾸려갈 2학기가 무척 기대되었지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제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교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일깨우는 윤태규 선생님의 힘이 무척이나 대단했던 것입니다.


숱한 사례를 들려주시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려주셨고, 모든 아이들을 관심과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어른이 있어야 함을 전해주셨어요. 교사의 삶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과 유리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요.


윤태규 선생님 덕분에 며칠 안 남은 방학이 전혀 아쉽지 않았고, 개학을 떨리는 마음으로 맞이했어요. 심지어는 개학날 아침이 얼른 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이럴 수도 있더군요^^ 우리 학교 부모님들 중에서도 교직에 계신 분이 있는데, 기회가 되거든 윤태규 선생님을 꼭 만나보십시오!


나홀로 공부도 좋지만 여럿이 배우는 건 더 즐겁지요. 들은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이 정리되고 배움의 길에서 좋은 벗을 얻기도 하니까요.


이번 연수는 중등칠보산자유학교 유성미 선생님과 함께 갔어요. 유성미 선생님은 중등에서 별수업을 맡고 계셔요. 과학 수업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을 향한 애정,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이 풍부한데도 본인은 대안교육이 처음이라며 모든 면에서 배우려는 마음가짐, 강연에 대한 짤막한 품평,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각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곁에 있으니 내가 사람노릇을 하는구나 싶어서 고마웠습니다.


이번 말글 연수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답니다.


우리가 말과 글의 주인이 되려면 꾸준한 책읽기와 글쓰기도 중요하고 그 말과 글이 머물고 깃들고 솟아나는 우리의 존재와 삶의 방식 또한 중요하구나. 아름다운 생각 품으며 아름답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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