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일] 좋은 가을날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20
조회
1287

오늘 비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구름이 하나도 없던 하늘에 감탄했던 때가 바로 며칠 전인데 말이에요.
어떤 아이에게 감탄했던 때도 바로 얼마 전이었고요.


아이들 목청소리에 하늘이 파랗게 높은 가을날이었습니다.
2학년과 3학년 아이들이 함께 텃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전 심은 배추에 물벼락 뿌리는 일입니다.
배춧잎 앞뒷면이 흙투성이입니다. 
배추를 살리려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천진난만하기만 합니다.
막 올라온 무싹은 몇 번씩이나 밟히기도 합니다. 
어디가 밭이고 어디가 사람다니는 길인지 분간도 안 됩니다.
아이들 발걸음은 늘 가벼우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본인들의 소박한 말을 빌리면 아이들은 물을 다 주었지요.
네, 물을 꼭 배추에만 주라는 법은 없지요.
여기저기 질퍽거리고 물이 고인 땅을 보며
어쨌든 물을 주었다는 아이들을 토끼장 앞으로 보내고 
달아 선생님과 나와 몇몇 아이들이 각자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 눈웃음이 두 번째로 정다운 아이가 묻습니다.


-선생님, 누나 말 들으니까 선생님밭에서 수박 키운다면서요.

참외보다 살짝 큰 수박이라서 어디에 나눠주지도 못하고 우리반에 새 친구가 온 기념으로 2학년들끼리만 먹은 수박이었지요.
나는 골려주는 심정으로 그러나 겉으로는 매우 안타까운 듯 답합니다.
-그거 우리반 애들이랑 진작 다 먹어버렸는데. 진~~~짜 달았어. 어휴. 같이 못 먹어서 아쉽다.

아이는 골려주는 내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웃음을 가득 담으며 의외의 질문을 합니다.
-밭 혼자 하세요?

나는 애가 일하다 말고 뭘 그런 걸 묻는지 의아하지만 일이 바빠 건성으로 말합니다.
-그럼 혼자 하지.

정다운 눈웃음의 아이는 느닷없이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서 같이 하세요. 혼자 하면 힘들어요.


하하하! 
우리 학교 아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따뜻할까요.
학교 텃밭일이 힘들어서 깨달은 것일까요, 아니면 일은 함께 해야 즐겁다는 걸 알아서 그랬을까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들과 지내고 있는지 자랑하는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혀를 차며 답합니다.
"이것아. 애들 눈에도 니가 불쌍해 보이는 것이여. 애들도 다 아는구먼."

오늘 이 비가 그치고 쌀쌀한 기운의 바람이 불겠지만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에요.
이렇게 즐거운 제안을 하는, 눈웃음이 정다운 아이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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