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8일] 흙으로 만든 사람 - by 봄날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48
조회
2354


울일이 얼마나 많을까.. 우는 사람의 등과 어깨가 정말 슬퍼보이는 곡선...달래주는 사람의 진정이 보이는 듯한 두 사람. ....

6학년 미술시간에 '조소'를 합니다. 1학기엔 연필그림 '소묘'를 했고요. 우리 학교 미술은 마냥 자유롭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할 것 같지만 6학년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가 자유를 일단 가져가버리고 아이들은 규칙에 따라 작업합니다. 이름도 어려워 보이게 소묘, 조소, 이러면서요.
올해 검정고시를 본 아이들 가운데 의식주라는 말을 몰라서 문제를 틀렸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남들 따 쓰는 말을 같이 쓰며 수업을 합니다. 6학년의 몸, 13살의 마음은 어떤 주제에 아주 고도로 집중해서 전체 안에서 자기를 표현할 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흙으로 6주간 작업하기로 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그동안 연습한 것으로 자기 주제로 만들 수 있도록 정해두었습니다.   그 전에는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작업하기로 하고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그냥 아무거나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돼요??? 하며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점점 몰입도가 높아지고 작품의 완성도도 매우 좋습니다. 결국은 아이들이 자기 작업을 하며 뭔가를 완성해내는 순간 어떤 자유로움과 기쁨이 함께 옵니다. 그런 걸 볼 때 속으로 저는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의 일을 말과글 시간에 글로 써보자고 하니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고도로 집중하며 그정을 씁니다. 아이들마다 글에 표현한 내용들이 다르지만 모두 재미난 내용들이 나옵니다. 글은 두 편만 살짝 엿봅니다.
조소이야기-6학년000

처음에는 공을 만들었다.

그 공은 영혼이 될 수도 있고 지구가 될 수도 있고 우주가 될 수도 있다. 최대한 동그란, 정말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손 안에서 굴리기도 하고 흙을 착착 때리기도 하고 물칠도 했다. 그리고 다 같이 앉아 나의 공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 공을 나에게 전달하며 공을 만져보았다. 어떤 건 따뜻하고 어떤 건 차가웠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었다. 같은 시간 동안 했는데 차가운 것도 있고 따뜻한 것도 있는 게 신기했다. 그때 00가 내 공을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렸다. 공이 뭉개졌다. 속상했다. 수업이 끝나고 뭉개진 공을 동그랗게 다시 만들려고 했다. 이미 뻣뻣해진 흙이라 쉽진 않았다. 어찌저찌 동그란 모양이 되었지만 처음 만든 거처럼 예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 굳고 다시 보니 더 못났다.

두 번째는 공을 만들고 나서 양 손에 세 손가락을 정삼각형으로 만들어 공의 위 아래에 손을 두었다. 그리고 꾹꾹 눌렀다. 누르라고 해서 누르지만 왜 누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르다 보니 가운데만 쏙 들어간 정육면체가 되어 있었다. 그 형태를 보고 감이 왔다. 정육면체를 다듬었다. 다듬자 약간 모서리가 둥근 정육면체가 되었다.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는 사람 얼굴을 만들었다.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만들려고 하려다보니 외국인 같아졌다. 얼굴의 이름을 찰리로 해야겠다. 정수리까지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의 중앙이 눈이다. 비율을 생각해서 만들었다. 비율을 생각해서 어떤 모양을 만드는 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재밌었다. 얼굴을 만들면서 제일 많이 수다 떤 것 같다. 전에 만든 두 가지는 약간 입체도형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애들 각자의 것이 비슷한 듯 달랐는데, 얼굴은 아예 다르니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네 번째는 사람을 만들었다. 어떤 포즈든 해도 되지만 팔 다리가 있어야 한다. 흙을 위로 긴 모양으로 만들고 7등분해서 1등분째에 손으로 눌러 얼굴을 만들었다. 밑에서부터 가운데를 손으로 눌러주며 올라와 다리를 만들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팔도 만들었다. 앞 뒤가 구분이 안 되어서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었다. 굳어가는 과정에서 팔 한쪽 다리 한 쪽이 떨어져서 사람은 흙에 누웠다. 비가 오면 다시 흙에 돌아갈 거다.

다섯 번째는 산하랑 달래주는 사람을 만들었다. 만드는 데 딱히 어려움은 없었지만 의도를 보이게 하는 게 어려웠다.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부드러운 흙으로 다시 해 보고 싶다.

찰리? 외국인....


팔이 짧고 가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업어주는 또는 안아주는 엄마와 아이


대체로는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도와주는 형태로 표현되지만
큰사람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작은 사람에게 의지해서 걸어가는 두 사람.


용서를 비는 듯한, 사연이 있을 듯한 두 사람.


위로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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