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칠보산에 높이 올라 시 쓰는 날

작성자
해님
작성일
2020-11-08 21:32
조회
896

도망가는 가을을 붙잡아 두려고... 시를 써요.


시는 그 때의 감흥을 글로 붙잡아 쓰는 일이죠.


저는 시가 너무 어려운데...어린이들은 매일 매일 입 말로 시를 씁니다.


(선생이 그 감흥을 붙잡아 두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가올 금요일은 산에 올라 시 쓰는 날~ <등산.백일장>을 소개했어요.



그래서 월요일 부터 어린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을 벌렁이고


귀를 쫑끗세우기로 하고


해님은 연필을 꼭 쥐기로 했어요.



#월요일


도깨비 놀이터까지 산책 다녀오며...


해 : 바람도 안 부는데 잎이 떨어져~


담 : 큰 나뭇잎, 갈색이었어.


준서 : 나뭇잎이 땅에 많았어.


지민 : 민달팽이가 몸을 말은채 낙엽에 감싸있어.


민준 : 큰 구멍을 봤어.


수민 : 나뭇잎에 물이 뭍어 있어요.


건 : 낙엽에 물이 있어서 양말까지 다 젖었네.


소정 : 옆이 뾰족뾰족하고 꼬불꼬불 한 걸 봤어요.


승우 : 삼지창 모양의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은우 :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어.


서연 : 도토리 껍질위에 빨강잎...


홍 : 나무가 내 손 두 뼘 크기...



#화요일


담이네 빨래터에서 놀다오며 발견했어요.


수민 : 이끼가 미끄러워요. 넘어져서 엉덩방아


소정 : 바위에 벌이..잠자나? 죽었나?


담 : 가재인 줄 알았는데 개구리가...


지민 : 나뭇가지 토막에 구멍이..


홍 : 산 냄새가 났어요


서윤 : 돌틈에도 나뭇잎이 끼어있어요.


동욱 : 바위를 들쳐봤는데 가재가 있었어요.


건 : 물에 손을 담갔더니 엄청 차가웠어요.


민준 : 나뭇잎 냄새...


해 : 숲 냄새도 차갑네요.


승우 : 바위틈에서 지하수가 나왔어요.


준서 : 뭔지 모르는 통을 찾았어요.



#수요일


드디어~ 학교 둘레에 서리가 내렸어요.


어린이들은 둘레로 뛰어나가 서리에 얼어붙은 나뭇잎을 너도 나도 찾아들고 왔어요.


교실에 들어서니 녹아버렸지만...


승우 : 희안한 색 단풍잎에 눈같은게 있어 주웠어요.


준서 : 빨간 나뭇잎 서리...


강건 : 뾰족한 기둥같은 얼음..(입에 쏙)


동욱 : 앞면이 반짝이는 쑥


소정 : 은행잎이 떨어져 있는데 길이 생겼어요.


수민 : 바위가 가만히 있는거 발견했어요.


서윤 : 초록빨강나뭇잎이 일자로 서있어요.


홍 : 꽃 봉오리에 꽃이 살짝 피었어요.


은우 : 햇빛이 비치면 나뭇잎이 반짝.


민준 : 서리가 꼭 눈처럼 내렸어요.


지민 : 서리를 남자친구들이 먹고 있을 때 맛있다고 해서 먹어봤더니 아무맛도 없어요.


담 : 오늘 꼭 비온거 같아요.




#목요일


이 나무 저 나무 ~~ 나무의 아기들이 아니라 칠보산 나무의 아이들~


저 멀리까지 날아간 친구를 찾느라 한 참을 뛰었지요~



"선생님 내일은 백일장 가방에 담아오면 되요?"



월요일부터 등산,백일장을 하도 말했더니 등산은 뭔지 알겠는데 백일장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어린이가 금요일에 가방에 담아오겠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도 해요.


어린이들에게 백일장을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하다 검색해 보니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로 검색되네요. ㅎㅎ



"##아 선생님이 준비해서 내일 가방에 담아줄께~ 안가져와도 된다." 했는데


제 답이 별로 시적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금요일


이제 칠보산으로 시쓰러 출발합니다.


일 주일 동안 어린이들이 관심있어했던 시어를 곰곰히 생각해서 발표했어요.


나뭇잎


열매


씨앗


서리


마스크





발걸음 늦은 동생들을 살피며 4학년 언니 오빠들이 함께 산에 올라요.


점심 먼저 먹고 시쓰고 싶은 마음을 참고 꼭꼭 눌러담아 시를 써요.


아뿔싸~ 떼구르르 연필이 굴러 그만 데크 속으로 쏙 빠져버렸어요.


다행히 시는 다썼는데...


산 아래로 누나와 내려가 찾아보고 이 친구 저 친구 나뭇가지로 콕콕 찍어 보았지만


시인의 특별한 연필을 칠보산이 갖고 싶었나봐요.



아~~


어린이들은 현재, 지금의 시간을 살죠


시어를 몇가지 알려주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나뭇잎"를 골라썼네요.


​(4학년과 함께 찍은 사진은 아라솔 선생님이 4학년 백일장 이야기에서 올려주시길 부탁드려요~)


백일장을 마치고 해님도 집에 가려는데...


산쌤이 저를 불러요. 감씨 하나를 제 손에 쥐어주네요.



**이가 이 감씨를 나에게 주면서 말하네요.


"선생님, 제가 감 씨를 하나 주웠는데...제가 씨를 모으기는 하지만 누가 떨어뜨린 걸 (모으지는 않아요.) 찾아주세요."


이 감씨가 니 감씨냐? 월요일에 한 명 한 명 요즘 씨앗 모으기에 푹? 빠져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겠네요.


그 때까지 쪼글쪼글해지면 잃어버린 친구도? 못 알아볼텐데.. 걱정이네요.

전체 2

  • 2020-11-10 01:46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정말 시가 있네요. ^^

  • 2020-11-18 13:16
    씨앗하나가 소중한 아이들..
    매일매일 자연속에서 호흡하면서 자라는 아이들..
    늘 살피고 함께해주시는 선생님들..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