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8일] [연수후기] 삶을 위한 수학교육에 다녀왔어요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57
조회
1696
삶을 위한 수학교육

2월 마지막주 토요일, ‘교육공동체벗’과 ‘대안학교 수학교육 연구모임 수학세상’이 함께 연 심포지엄에 이슬 선생님과 다녀왔어요.

대안학교 초등수학교육 과정을 집대성한 왕규식 선생님이 어김없이 오셨습니다. 우리 학교 4,5,6학년 교사라면 꼭 참고하는 교사용지도서의 저자입니다. 
1,2,3학년을 맡은 교사로서 한번쯤은 보았을 <즐거운 수학시간 만들기>의 저자 조성실 선생님도 오신 반가운 자리였어요. 

우리 학교 아이들이라고 모든 과목을 늘 즐거워하는 건 아니라서, 게다가 아이마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천차만별이라서, 교사로서 교과연구는 손에서 뗄 수 없어요. 오랜만에 4학년을 맡은 저는 9할의 설렘과 1할쯤의 부담감을 안고 있었던 터라, 또 4학년 무렵이면 많은 아이들이 학습의 갈림길에 서는 까닭에 수업시간을 아주 재미있게 꾸리고 싶은 욕심이 너무나도 컸어요. 그래서 이번 연수를 놓칠 수 없었네요. 올해 반을 맡은 이슬 선생님 마음도 비슷했을 겁니다.

성미산학교에서 10년의 수학교육과정을 정리해주셨고,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윤상혁 선생님이 수학교육의 철학적 바탕과 함께 삶을 위한* 수학교육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수업이 왜 중요한지 말씀해주셨어요. 
(*‘삶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는 그룬트비에서 따왔다고 해요.)

듣는 내내 제가 했던 수업, 우리 학교의 수업이 떠올랐어요. 대안학교의 수업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우리 안의 의식 덕분(!)에 꽤나 많은 ‘수학/교육서’들을 뒤적이며 떠돌았네요. 명품수학, MIC, 새로 쓰는 초등수학 교과서, 일반 교과서, 대안학교 초등수학교육과정 지도서, 그 밖의 수많은 문제집과 책...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수업방법이 정리되어 있다고 하면 꼭 찾아보려 했네요. 그게 늘 좋은/재미있는 수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요. 어떤 때는 의욕이 지나치고 당위가 앞서서,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어리석었던 수업시간도 자주 있었지요. 

그래도 드물게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조작활동’이었어요. 우리 몸의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수를 접하면 좋겠다, 연산만이 수학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교사회 안에서 명확하게 합의되지는 않았더라도, 대강 이 정도의 감은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요. 꼭 조작활동이 아니어도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왜 반드시 조작활동?”이라고 물으면 답이 궁색해지곤 했는데요. 그러다 조성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그래! 이거야!” 싶은 게 있어서 함께 나눕니다.

조성실 선생님이 초등수학교육에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얻기를 바라는 다섯 가지를 정리해주셨어요. 
-생각의 재미를 찾는다.
-언어로 정리하는 힘을 기른다.
-새 생각의 문을 여는 기쁨을 경험한다.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경험을 한다.
-사회적 정의를 경험한다. 

수 시간에 아이들이 정말 이걸 다 얻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교사가 어떤 마음을 품으며 수업을 바라보고, 수업에서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 뚜렷하다면 교사의 소망이 아이들에게 조금씩 스며들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늘 보고자란 풍경이 우리 안의 미의식이나 인식의 바탕이 되듯이.

‘사회적 정의’가 수 시간에 어떻게 살아나는지 선생님이 정리한 원고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는 수학시간에 아이들이 얻기를 바라는 것 다섯 가지 중에 사회적 정의를 경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사회적 정의는 수학 시간의 기본 바탕이다. 
교실에서 수학 공부를 할 때 아이들은 차이가 나는 조건을 갖고 있다. 수학 선행학습으로 답을 쉽고 빠르게 구하는 상태, 수학 감각이 뛰어나서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상태, 수학 감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서 수학 선행학습과정에서조차 실패한 상태, 수학을 잘하지만 수학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상태, 수학 감각은 있으나 가정환경으로 수학 학습경험이 없는 상태 등 차이가 많다. 수업 시간에는 모든 아이들이 고르게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특히 가정환경에 어려움이 있거나 수학 감각이 없어서 수학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조작활동을 하면서 수학공부를 하면 선행학습을 많이 한 아이나 사정에 의해서 수학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모두 잘 배울 수 있다. 나는 조작활동이 기본소득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개념과 원리를 적용하는 문제 풀이를 하는 시간에, 모르는 사람이 당당하게 손을 들고 모른다고 표현하며 즐겁게 다시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임금에 해당한다. 놀라운 것은 교실에서 수학적으로 배려 받고 고르게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 저절로 협력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를 먼저 푼 아이가 늦게 푸는 아이를 스스럼없이 도와주고, 배우는 아이는 기죽지 않고 고마워한다. 협동학습에서 짝을 지어서 협동하는 원칙을 정하지 않아도 자발적인 협력의 분위기를 수학시간에 만들 수 있다.”

(부분만 인용해서인지, 이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조작활동과 사회적 정의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덜 드러나네요. 궁금한 분들은 자료집에 실린 글 전체를 읽으며 나눠요^^)

예를 들어볼게요. 센티미터나 미터의 개념을 익힐 때 그 길이의 감을 알기 위해 내 몸을 이용해 직접 재는 것에서 시작해 학교 곳곳의 길이를 재는 과정까지 확장이 됩니다. 천이나 만과 같은 새로운 자리의 수를 배울 때 쌀알이나 콩을 직접 세는 수고를 하며 10000이 얼마나 큰지 겪어보고, 정삼각형이나 정사각형을 배울 때는 작은 조각을 붙여나가며 합동, 닮음이나 거듭제곱을 직관적으로 깨닫습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활동이 더러 있기에, 우리반 전체의 깨달음을 위해서는 나의 기여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모두 수를 사랑하게 되고, 잘하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자신 있게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를 굳이 덧붙이는 까닭은, 아이들의 실력을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확인하고 싶은 제 욕망을 저버릴 수 없어서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했기 때문이에요. 객관의 상징은 대개 ‘시험’이라는 형태이지요. 그 시험의 과정과 결과는 얼마나 놀라운가요! 사이좋게 의논하며 올망졸망 시험을 치르는 아이, 끙끙대는 아이들을 기꺼이 돕는 아이, 모르면 내 걸 보고 하라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시험’이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고, 어떤 방식의 시험이 올바른 것인지 짚어보게 되지요.)

그래도 조작활동을 꼭 하고픈 까닭은...
지금 당장은 수학을 잘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훗날 나름의 계기를 만나 수학을 다시 공부하게 될 때 난 수학시간에 배운 게 기억이 전혀 안 나도 즐겁기는 했다고 추억한다면, 수학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한번 해볼까 마음을 먹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관점에 의거하여, 아주 먼 훗날 드러날 그 뭔가를 바라보며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하하!

그러나 말을 이렇게 해놓고서 핀란드교재를 두 쪽이나 풀어오라고 숙제로 냈네요. 
아이들이 숙제를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 싶게 만드는 건, 신의 몫으로 떠넘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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