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1일]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 by 달아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56
조회
1635
(2015년 12월 9일 지금은 살짝 부끄러운 신입교사의 일기)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어제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아이들을 불러 혼을 내었지요. 우리가 친구나 형, 누나를 대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얘기해보면서 꾸지르기도 했답니다. 학기 말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이는 반의 모습들로 교사 스스로 조급해지고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아이들을 붙잡고 마음나누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고, 평화의 징을 쳐서 오랜 시간 무거움을 견뎌도 보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려고 노력했지요.

사실 참 마음이 그러합니다. 아이들의 자발성, 야생성, 놀이성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느 때부터 인가 아이들이 그림처럼 움직여줄 때 그때 만족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왜 변하지 않는거지?” 하는 조바심과 욕심이었지요.

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하거나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요 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늘어가는 요즘 제 마음 안에 평점심이 사라지고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을 다그치고 속상해 하고. 밤새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일년을 돌아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더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없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올라왔더랍니다. 교실에서 마음이 계속 편하지가 않았지요. 교사의 혼냄도, 다독임도, 교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어떤 일련의 활동들은 잠시일 뿐 아이들 안에 깊이 스며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리를 야무지게 하는 여자아이들 네명을 아이들과 추천해서 쉐프로 뽑고 남녀 비율을 나누어 모둠을 나누었지요. 그리고 ‘쫄깃쫄깃 단호박 전병 만들기’ 요리 방법이 적힌 인쇄지만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쉐프를 중심으로 요리 순서를 살피고 필요한 재료들을 정해서 옵니다. 그러면 교사는 주방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재료와 도구를 나누어 주었지요. 몸으로 하는 일을 할 때 참 반짝이는 아이들이지요. 누구하나 빼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하려고 도구를 가지고 싸우기도 합니다.

전체 요리를 하는 과정을 야무지게 잘하는 것이 여자아이들의 몫이라면 칼로 단호박을 자르고 버너에 불을 올리는 등의 위험도와 힘이 필요한 일은 남자아이들에게 맡기라고도 해봅니다. 과정에서는 서로 일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었지요.

자른 단호박을 찌는 동안 수산나 선생님께 도와 드릴꺼리가 있으면 주세요~ 했더니 양파 까기와 파 씻고 다듬어서 자르기 등의 일거리를 일부러 찾아서 주십니다. 아이들은 특별한 불평 없이 먼저 일거리를 받아서 열심히 합니다. 일하는 모습은 이제 4학년이 될 준비를 해가는 듯합니다.

이때의 아이들은 몸으로 익히고 경험하는 것이 더 필요하구나 새삼 아이들을 보며 느끼지요. 만든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고 맛있게 먹고 뒷정리까지 책임감있게 해냅니다.

어제는 4교시에 아이들과 교사 대 아이들로 3가지 대결을 하였습니다. 서로 대결 신청을 하였는데 제가 낸 종목은 전체 가위바위보 아이들이 낸 종목은 피구와 썰매 타서 멀리가기 였습니다. 결론은 제가 2대1로 졌지요. 오늘 4교시에 하고 싶은 활동을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교사실로 와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희 자유시간 주세요! 모두 동의 했어요!” “그래 알았어”

신나게 아이들은 밖으로 나갑니다. 무얼 하나 살펴보니 몇일 전부터 다양한 썰매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눈썰매장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있는 곳을 찾아 삽으로 깨고 퍼는 아이들, 썰매에 눈을 퍼 담아서 나르는 아이들, 썰매장을 평평하게 다듬는 아이들 일사분란하게 썰매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아이들 손으로 만들었다 본다면 훌륭한 3학년 눈썰매장이 완공되고 있지요. “그대신 싸우기 없기야! 혼자 노는 친구 친구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기!”

“네!”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지요.

교사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도구로 얼음깨는 소리, 얼음 퍼내는 소리, 다지는 소리와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내밀고 “진짜 멋지다!” 라고 했더니 정말 환한 얼굴로 아이들이 위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아이들 다같이 하고 있어요! 저희 지금 같이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 표정이 정말 정말 밝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여뻐서 한번씩 가서 지켜봅니다.

오랜만에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들 안에서 자발적으로 한 뜻이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소중해 보입니다.

왠지 잠을 설치고 조바심나고 불안하던 저의 서투른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네요.

함께 몸을 움직여 하나의 어떤 것을 도전하고 완성해가는 힘.

몇일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 하고 눈물 흘리던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봅니다.

볼이 빨개져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참 환하고 예쁩니다.

아, 아이들은 얼마나 변화 무쌍한지요.

아이들은 예측이 어렵고 언제나 과정 중에 있지요.

또 하루 이틀이 지나면 싸우고 속상해 하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오늘 아이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저도 참 편안하고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소중한가.

교사가 어른들이 어떻게 조합해보려는 아이들의 관계 문제, 이것을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 교사 스스로도 어떻게 마음을 돌보아야 하는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배우고 또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제가 뭘 가르치고 변화시키려는 욕심이.

참. 참.

참 나는 서투르고 욕심 많은 사람이구나.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은 모습들로 저를 배우게 합니다. 참 귀하고, 고마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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