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연수후기] 발도르프 습식수채화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58
조회
2752

습식수채화 연수에 다녀와서


습식수채화는 젖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발도르프교육의 미술교육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습식수채화는 바깥연수를 다닐 때 어여쁜 이름표 조각으로 가끔 만났어요. 어떤 식으로 물감을 쓰기에 빛깔이 참 고운지, 종이의 찢어진 결과 색이 조화로운지 궁금했지요. 원본작품을 과감하게 찢어 이름표를 만드는 그 대담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요.


작년 봄날 선생님이 다른 학년과 수업 하는 걸 본 적 있고, 지금 3학년이 햇살웃음반이었던 시절 아이들과 해보았는데 흥미로웠어요. 올해 여러 학년에서 습식수채화를 해보겠다고 계획을 세워서 2월말, 교사회가 반나절쯤 습식수채화를 배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아이라움에서 하는 연수에 다녀왔어요. 이번에도 이슬 선생님과 함께 신청했고,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서로 다른 날짜에 다녀왔네요.


하루 종일 여섯 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노랑과 파랑으로 봄의 생명력이 땅에서 솟아나는 꽃 그림
-빨강 파랑 노랑의 색 얼룩이 서로 섞이며 색깔의 조화를 드러내는 그림
-무지개처럼 색깔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둥근 색상환
-하얀 형태의 동물을 배경색부터 채워가며 그리는 오리 그림
-하늘의 여러 빛과 대칭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수면을 경계로 물에 비친 산 그림
-빛과 어둠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그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루를 그림에 온전히 바쳤네요^^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할 때 이런 적이 있어요. 
물감을 처음 쓰는 시간이었는데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그림이 물감범벅이 되어 도화지가 혼란스럽고, 물통은 금세 탁한 물로 가득 찹니다. 붓펜으로 선을 천천히 그려보는데 하얀 종이가 어느새 까맣게 떡칠이 되어서 대단한 추상화로 승화해버립니다. 
아이들이 본래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존재라 그렇다고 말하는 건, 일면 사실이지만 교사로서 나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변명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어요. 아이들 안의 정성과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번 습식수채화 연수가 직접적인 도움이 되네요.


붓을 처음 쓸 때, 미술도구를 다룰 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새로운 세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합니다. 앞에서 이끄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붓질을 하니 나는 몰랐으나 남들 보기에는 조금 빠르던 붓질이 천천히 느려집니다. 
분위기... 차분한 분위기에 이끌립니다. 앞에서 지도하는 저 선생님처럼 하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아이 안의 고요함을 꺼낼 수 있을 듯해요. 
물걸레는 어떻게 쓰는지, 스펀지로 물기를 닦을 때 힘의 강도는 어느 정도로 하면 좋은지... 참 세심한 교육방법을 만나서 기뻐요. 게다가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설명해주십니다. 이 나이대에는 꼭 이걸 가르쳐야 한다가 아니라, 아이의 발달과정을 지켜보니 경계를 넘는 걸 주저하는 마음이 보편적인 나이가 있더라, 색을 섞을 때 망설임이 별로 없는 나이가 있더라 이런 설명이 도움이 되었어요.


습식수채화를 그리다 보면 어둠을 표현할 때조차 빛을 그리는 기분이 든답니다. 그림을 망쳐버렸다거나 잘못 그렸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아요. 매끈매끈한 종이 위를 붓이 스윽 지날 때마다 빛줄기가 옮겨다니는 기분이 들어요.


별을 좋아하는 저는, 내 눈에 보이는 밤하늘을 똑같이 그려보려 애썼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까만 바탕에 노란별을 아무리 애써 그려넣어도, 밤하늘이 전혀 밤하늘답지 않았어요. 검은 어둠이 왜 검은색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지 답답했지요. 그러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밤하늘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어서요. 까만색이 아니라 파랑으로 어둠을 드러낸 것에 감탄하기도 했지요.
뉴턴의 빛이론에 생각을 달리 했던 괴테는 그의 관찰과 직관을 바탕으로 색채론을 구상하는데요, 색채론에 따르면 빛은 노랑으로 어둠은 파랑으로 드러난다고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쓰인 색들이 떠올랐어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 괴테의 이론이 고흐에게도 돌고 돌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어요.


그리고 습식수채화를 하는 내내 자기표현이 덜 되는 친구들, 그림을 그릴 때 뭘 그릴지 막막해하는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습식수채화에서는 뭘 그려야 한다는 게 없고 경계도 모호하고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면 되니까요. 몇 번의 붓질만으로도 멋진 작품이 되니, 예술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얼마나 좋은가요!


발도르프교육의 일부를 조금씩 맛볼수록, 이 교육이 약하고 어린 존재들에게 맞춤이구나 싶습니다. 알수록 매력적이라 천천히 공부하고 싶네요.


어쨌든 이번 학기 실전에서 잘 쓰일 총알 획득하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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