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강‘자유와 생명의 공동체’ 수원칠보산자유학교는,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고,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져서 2008년부터 열린강좌 ‘아이와 강’을 꾸준히 열고있습니다. 아이는 자라고, 강은 흐릅니다. 아이와 강은 우리에게는 큰 화두와 같습니다. 아이와 강은 그 존재 자체로서 생명을 상징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순수하고, 강은 늘 생명을 품어 줍니다.  아이와 강은 한결같지만 또 얽매임 없는 자유입니다. 우리 모두 아이에서 출발하여 자라고, 흐르고 또 만나고 이어집니다. 우리는 생명과 자유, 자라고 만나고 이어지는 아이와 강에게 배웁니다

2016년 10월 28일 학부모교육 내용 - 우리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는가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11-30 23:08
조회
658
[학부모교육내용] 우리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는가

날짜 :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강의자 : 가야(수원칠보산자유학교 4학년 담임교사)


얼마전 학교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신편입생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이지요. 새로운 아이들이 또 이곳에 옵니다! 그 아이들 만날 생각에 들뜨고 설레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시기입니다. 내년에는 어떤 아이들이 이곳의 색깔을 풍요롭게 할까 떠올리면 참 기쁘지요.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인원이 많을 때는 살짝 괴롭기도 하지요. 우리가 뭐라고, 이곳이 절실해서 온 저 아이와 가족을 떨어뜨려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해요.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한 번쯤은 했던 생각, 그러나 말을 꺼내기엔 좀 뭣했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학교가 맞이하는 여러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번쯤은 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 학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물을 때, 뭐라 답해야 하나 고민하다 떠올랐을지도 모를 생각이지요.

학교가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뽑을까 궁금할 때가 있을 겁니다. 저 반은 이미 장애학생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또 장애학생을 뽑았을까? 선생님들이 신중하게 결정하셨겠지만, 교사회는 뽑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의 에너지나 역량에 한계가 있는데 손이 가는 아이들을 자꾸 받아들이면 이미 뽑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쓰는 건 아닐까.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말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학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는지,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지.



1학기 장애이해교육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를 기억하시나요. 특수교육법에서 정의하는 특수교육대상자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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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장애
2. 청각장애
3. 지적장애
4. 지체장애
5. 정서·행동장애
6. 자폐성장애(이와 관련된 장애를 포함한다)
7. 의사소통장애
8. 학습장애
9. 건강장애
10. 발달지체
11.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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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의 상황은 어떠할까요. 이 정의에 따르면 현재 학교에 특수교육대상자는 여럿 존재합니다. 한 반에 딱 한 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본디 특수교육대상자에게 맞는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회가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는 학생은 학년 당 한두 명이고 이 아이들이 보통 10%입니다.

먼저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장애인을 무엇이라고 부를 건가 하는 논의도 참 다양하지요.

장애인을 영어로 ‘people with disabilities’라고 합니다. ‘disabled people’은 사람 그 자체보다 장애/무능력을 강조하는 용어라는 비판이 있어서 한때는 덜 사용했지요. 장애인을 달리 정의해야 한다고. 그러다 이 용어를 잘 뜯어보면, 사회가 장애를 규정하는 의미를 담은 수동태라는 점과 장애에 대해 당당히 인정한다는 뜻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최근 다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differently abled’, ‘physically challenged’, ‘특별한 요구가 있는 사람’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썼던 표현을 떠올리면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지요. 그런데 장애라는 걸 돌려 말하지 않고, 당사자성을 드러내려는 뜻에서 ‘disabled people’을 쓰는 겁니다. 우리 학교가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에서 ‘장애학생’이라고 말하듯이.


‘특수교육대상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현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위해 쓰는 용어이지 아이를 모자라는 아이라고 낙인찍는 게 아닙니다. 교사들끼리 쓰는 표현을 소개하자면, 결이 다른 아이/손이 좀 더 가는 아이/경계선 어디쯤의 아이에 해당되는 용어이지요.


다시 학교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현재 학교에는 다양한 결의 아이들, 경계선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즉 여러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이들에게 딱 맞는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지 않습니다. 개별화교육계획이 없다고 해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적인 지원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제 입으로 스스로 말하려니 부끄럽지만 담임교사의 지원과 특수교사의 협조가 분명 있습니다. 얼마나 잘하는가 물으면 아쉬운 면이 있고 우리가 더 나아갈 방향이 있을 뿐이지요.


개별화교육계획은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교사회의 협의에 따라 아이의 발달상황에 맞는 교육내용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걸 말합니다. 이 계획을 수립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명, 때로는 두 명입니다. 이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이라고 부릅니다.
‘특수교육대상자’, 그러니까 결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개별화교육계획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아주 평균적인 인간이다, 발달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다, 사회통념에 비춰볼 때 괜찮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원칠보산자유학교라는 교육공간은, 그냥 이곳의 힘만으로도 어떤 아이가 지내기에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회의 역량과 무관하게 이런 공간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 겁니다.


학교의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는 여럿이지만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는 아이는 10%이다.”가 개교 이래 우리 학교의 근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게 교육환경을 불안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수업은 제대로 될 것인가,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갸웃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면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런 상황이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사에겐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만들고, 어떤 아이들로 길러야 하는지 돌아보게 만들고, 아이들이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사는 자체만으로도 얻는 게 있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의 장애를 규정하는 요인이 태생적인 면과 사회적 환경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회적 환경을 잘 조성하고 싶습니다. 양적으로 소수였던 이들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 사회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아이들을 늘리는 게 아니라, 아이의 타고난 바는 인정하되, 그게 장애요인이 되지 않을 교육공간을 만들고 싶은 꿈도 있어요. 그리고 여러 아이들과 십 년을 지내다보니 살짝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꾸었던 꿈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이런 교육과정과 이 공간의 힘으로 어떤 아이들은 잘 자라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이러저러한 인간들이 뒤섞여 사는 것은 점점 필요한 것임을 확인합니다.


사회적 거리척도라는 평가도구가 있어요.
다음 문장에 내가 얼마나 동의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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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구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게 낫다”









“우리 학교가 장애통합교육을 하는 게 낫다”









“우리반에 장애학생이 있는 게 낫다”









“아이가 장애학생과 같은 모둠인 게 낫다”







“내 아이가 장애학생과 짝인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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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보며 솔직한 마음이 어떤가요. 장애인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의식이 남다른 제 친구가 있는데, 딸의 짝이 장애학생이었고 딸이 힘들어하자 짝을 바꿔달라는 말이 목까지 걸렸다고 해요.



학교의 성장방향을 고민합니다. 대안교육의 주요 가치인 자유와 생명, 민주시민의식 등은 공교육에서 반영하고 실천하는 추세이죠. 건강한 교육운동으로 공교육 현장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대안학교가 확보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가치는 바로 다양성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양성이란 소득수준이나 가정환경, 아이를 둘러싼 삶의 배경이 다양하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 존재 자체의 다양함을 의미하는 겁니다. 나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러므로 타인은 더더욱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사람과 어릴 적부터 지내다 보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내적 힘이 더 큰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요.

앞서 공간의 힘을 여러 차례 말씀드렸는데, 그러면 이곳의 힘을 믿고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교사회가 다양한 아이들을 받겠다고 하면 교사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특수교육대상자로 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때 정확히 하고 있는지 더 예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기준이 분명해야겠지요. 장애이해교육을 받으며, 장애유형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나도 이런 면이 있는데...’ 생각합니다. 나도 장애가 있는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하지요. 아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아이에게 장애유형의 특성이 있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교사가 명확한 판단까지 놓치면 안 되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어떤 특성이 있지만 그걸 자기가 잘 끌어안으며 성장할 수 있는 아이가 있고, 아이 고유의 무엇, 말 그대로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유형이라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이도 있습니다.
교사들이 다양한 아이들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긴장감과 균형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폭넓게 바라보는 시선과 세밀한 교육지원 사이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환경은 교사회의 역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의 지지와 공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대안교육을 선택할 때, 내 아이의 교육문제가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더라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의식이 점점 확장되지요. 우리 아이들의 교육까지 점점 고민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부모님들이, 학교에는 퍽이나 다양한 아이들이 있구나, 이런저런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힘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믿고 지지한다면 그게 학교의 교육환경을 바꿔나가는, 우리의 품을 넓히는 동력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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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말에 했던 학부모교육 내용입니다.
원고를 준비해서, 말하려는 바와 글을 거의 맞추려고 했는데, 세세한 부분은 좀 다를 수 있겠어요.
그날 3학년 현호어머님께서 애써 기록해주셨는데 그 기록을 못 찾아서 준비했던 원고를 올립니다.

질문해주신 분, 경청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동의되지 않는 내용도 있을 텐데 저나 교사회에 전해주시면
생각을 다듬고 고민을 성숙시키는 데 귀한 디딤돌로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