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4월 4학년, 6학년 과학, 클래식기타

작성자
바 다별
작성일
2016-05-12 10:04
조회
1894
*4학년 반모임 때 달평가를 바탕으로 이야기 나눌게요. 부모님들 읽고 오시면 좋지요~
[2016년 3.4월 4학년 달평가 / 가야]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이 새롭고도 놀랍게 읽히는 요즘이다. 어느 때이고 읽어도 좋은 책이지만 지금 내가 4학년을 맡았기 때문에 더 눈에 들어오는 거라 생각한다.

올해 4학년은,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주 느끼게 하려고 내게 온 것 같다(우리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 표정, 행동, 눈빛, 버릇, 말투에는 다 의미가 있다. 그걸 밥 먹을 때, 놀 때, 공부할 때, 밭에 갈 때, 멀리 가는 버스를 탈 때… 매순간 일깨운다. 그런데 참 미안하게도 아이들의 속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이 책 펼치며 실마리 찾는다.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세요.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알려고 애쓰세요. 아이들의 권리와 책임을 논하기 전에 당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도 한때 어린 아이였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맞다.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아이였다. 나도 저기 저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1. 수업


 

4학년 시기의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이래서 즐겁다. 알고자 하는 아이들의 욕구가 그 실체를 점점 드러내기 시작하는 때라서, 교사가 전하는 지식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못 견뎌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생생히 다가온다. 수업에서 함께 하는 여러 활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서 꼭 그 방법을 써야 하는 건지 의아해 한다. 각자 궁금한 점, 이상한 점, 새롭게 발견한 점을 나눌 때는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 생각이 점점 커지는 게 보인다. 아이들의 모습에 교사인 내가 힘을 받는다.

 

1) 성공한 수업사례

① 수 시간 도형수업 중 도형 만들기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종류를 배울 때, 각 도형의 정의에 따라 그림을 보고 고르는 활동에서 시작해 내가 직접 자나 각도기를 써서 그려보는 활동을 한다. 그 중간쯤에 여러 조각을 이용해 정삼각형이라든지 마름모, 평행사변형 등을 직접 만들면 좋다. 도형을 이리 붙이고 저리 옮기고 하는 동안,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의 정의, 닮음이나 합동의 뜻이 눈으로 보이고 손에 닿으며 몸으로 들어온다.

3월 반모임 때 부모님들이 수 시간에 필요한 다각형을 하나하나 오려주셨는데, 그걸 40분만에 다 쓰고 말았다. 교사가 하자는 활동은 안 하고, 아이들이 작은 조각으로 고양이 얼굴, 성, 사람, 레고 등을 만드는 데 푹 빠져버렸다. 영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고 삼각형과 사각형의 범주 안에서 자유로이 노닌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편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배울 것은 배운 수업이었다.

 

② 텃밭 만들기

모든 학년이 텃밭갈기를 하던 날, 4학년들은 분리수거장 근처의 밭을 일구었다. 수산나 선생님께서 작년 내내 혼자 일구어 아이들 먹을거리를 기르던 밭을 4학년들이 물려받아 약간 넓혔다. 아이들이 우리만의 밭이 생겼다며 힘을 내고 무척 신나 한다.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밭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땅을 갈아엎고 고랑과 두둑을 만드는 과정을 자기들 힘으로 해내서 ‘우리만의 밭’이라는 생각이 드나보다.

첫 시간, 우리가 뭔가를 옮겨 심으면 딸기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고, 우리가 땅에 구멍 숭숭 내서 이걸 꽂으면 고구마를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햇볕 아래서 좀 덥겠지만 토마토를 실컷 따 먹거나 땅콩을 캐먹을 수 있고,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참외나 달콤한 수박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노동의 열매를 앞세워 노동에 취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4학년들의 대동단결한 강렬한 눈빛을 개학 이후 이날 처음 봤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꼭 많은 걸 먹고야 말겠단다. 집에도 가져가겠다고 한다.

학교 근처 4학년 텃밭은 아직까지 물당번을 정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상추에 물을 주고 가꾼다. 가끔 호미나 물병이 흩어져 있어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지극정성인 모습이 참 어여쁘다. 정하지 않아도 절로 돌아가는 텃밭풍경이 흐뭇하다.

 

③ 습식수채화

빨강과 파랑과 노랑을 섞어 색을 직접 만드는 일에 아이들이 자주 감탄한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하다.” “선생님, 제가 만든 보라색이 생각보다 안 진해요.” “너는 이 색깔 어떻게 만들었어?” 아이들의 감탄을 듣고 있으면 아이들이 놀라워하는 사건과 신기하게 여기는 사물이 얼마나 폭넓은지 내가 다 감탄한다. (다른 친구들 그림을 본다고 일어나다가 책상 위 물통을 엎지르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감탄을 좀더 즐길 수 있으련만!)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저는 안 그랬는데 물감이 자기 맘대로 다른 데까지 흘러가버렸어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종이의 특성상 내 뜻과 달리 물감이 저 멀리 흘러가기도 한다. 야단도 이런 야단이 없는 아이에게 “그럴 땐 깨끗한 붓으로 스윽 닦으면 되지.” 말한다. 그대로 해보고는 “이거 정말 신기하다! 애들아 너희도 해봐! 나 틀렸는데 다 지웠어.” 하면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자기들이 그린 작품을 책으로 묶어달라고 누군가 부탁하니 너도나도 내 것도 그리 해달라고 한다. 습식수채화는 처음 계획보다 2차시쯤 늘려서 해볼 예정이다.

 

④ 성교육

“우리는 상대방의 무엇을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단할까?”라는 질문으로 수업을 열었다.

얼굴 생김새, 말투나 행동을 보면 구별할 수 있다고 답한다.

“그럼 지금부터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생각해봐.”

 

칠판에 스포츠로 짧게 깎은 머리를 한 얼굴을 하나 그린다. 진한 눈썹을 그린다.

“남자다! 남자! 딱 봐도 남자네.”

아이들이 확신하는 말을 들으며, 눈썹에 마스카라 표시를 하고 귀걸이를 하나 단다. 몸통에는 가슴을 크게 그리고 여자의 성기를 그려 넣는다.

“어, 이상하다. 여자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그린다.

“이번엔 진짜 여자다.”

몸 곳곳에 근육을 넣고 남자의 성기를 달아놓는다.

“아니네!”

 

이렇게 수업을 열었더니 아이들의 질문과 의견이 쏟아진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어요?

-여자 같은 남자도 있잖아.

-맞아, 어떤 아저씨 중에 있었어. 텔레비전에 나와.

-우리반 누구는 남자처럼 힘이 세.

-여자가 여자 좋아하는 건 왜 그런 거예요?

-게이는 왜 생겨요?

-여자애들은 왜 서로 붙어 다녀요? 게이예요? (레즈비언을 말함)

-걔네들은 원래 그래.

-선생님 어떤 사람들은 원래 남자였는데 여자로 수술했대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래요?

-남자끼리 결혼하면 아이는 어떻게 낳아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을 시작으로 해서, 동성애와 이성애. 세상에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성폭력예방교육도 함께 한다. 와! 아이들이 뚫어지게 본다. 오랜만에 놀랍도록 고요하다. 그 눈빛이 아까워서 한 명 한 명 눈을 오래 맞추고, 아이들의 침묵을 즐기며 말을 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내가 고민했던 바가 뚜렷해졌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 몸의 변화, 내 몸을 소중하게 아끼는 여러 방법, 몸사랑주간이니 위생이나 건강에 초점을 둔 내용…. 4학년 성교육 때 다룰 수 있는 보편의 무엇이 있더라도, 한 달 동안 지켜본 우리반 아이들을 떠올리니 어딘가 맞지 않았다.

여자애들 중에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가 있지만, 대부분 우리 몸의 변화과정에 관심이 없었다. 남자아이들은 어떤가. 하루닫기 인사를 할 때, 꼭 안겨서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부비는 애들이 있다. (경험에 따르면 남자아이들이 안아주기 인사를 어색해하는 순간이 올 때 2차 성징 이야기를 꺼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니까 이성을 의식하고 신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라기보다는 천진난만한 무성(無性)적인 느낌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아이가 어떻게 생길까”, 정확히 표현하면 “엄마의 아기씨와 아빠의 아기씨가 어떻게 만날까?”였다. 둘이 만나야 아기가 생기는 건 알고 있는데 남자 뱃속에 있는 게 어떻게 여자 뱃속으로 가는지가 너무나 궁금하다는 것이다. 또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낳는지도 알고 싶단다. 여자아이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누군가 살짝 말을 흘린다. 여자에게 오줌 싸는 데 말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 아이들의 호기심 질문이 수업 전체를 채웠다. 한 아이가 남자랑 여자랑 손잡고 자면 아기씨가 만난다고 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럴 것이라 알고 있어서,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가 만나야 정자와 난자가 만난다고 전했다.

-손을 잡고 뽀뽀하면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그럼 서로 옷을 벗고 자야겠네요.

-으악! 안 돼!!

-선생님 옷을 어디까지 벗어야 돼요? 다 벗어요?

-영화 같은 데 보면 외국 사람들만 옷을 벗고 얼레리꼴레리 하는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그럼 우리 엄마아빠도 그랬어요?

-나는 우리 아빠가 안아도 별론데, 어떻게 다른 남자를 껴안아요? 어른이 되어도 절대로 안 할래요.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믿을 때만 성기가 만나야지,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하다고 아무 때나 막 만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 장면을 떠올리면 어딘가 부끄럽고 쑥스럽고 싫을 것 같은데, 우리 부모님들이 서로 무척 사랑하고 아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겠다고 굳게 약속했기 때문에 옷을 벗고 잘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들이 세상에 나오는 거라고.

그리고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시절,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들이 ‘아, 난 저 엄마랑 아빠를 꼭 만나야지.’ 하고 각각의 부모님을 찾아왔다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만나는 것도 우리들이 만나는 것도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가끔 부모님이 말할 때 잔소리 같아서 듣기 싫을 때가 있겠지만, 그 말이 내게 꼭 필요한 말이니 잘 들어보라고.

 

-난 우리 엄마가 진짜 좋은데. 역시 난 옛날부터 보는 눈이 있었어.

-야, 나도 우리 아빠가 좋거든. 우리 아빠는 나한테 진짜 잘해줘. 그리고 애들을 사랑해.

 

여기저기서 부모님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반 아이들이 다들 나는 보는 눈이 있다고 한다. 지금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서 정말 좋단다.

(남녀의 성기가 만난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충격 받은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음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한다.)

 

3월말, 우리반에 필요한 성교육 내용을 딱히 정하지 못했는데 성교육을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온다. 4학년 시기에 이런 것을 다룬다더라 하는 보편적 교육과정을 적용하지 않고, 현재 우리반 아이들의 정신적/신체적 발달에 어울리는 내용을 하고 싶다.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 안에 아이들과 나눌 내용이 없는 건 아닌데, 하던 대로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럴 때는 기존의 교육 자료를 활용해도 되는데, 까닭을 설명할 수 없지만 안 끌린다. 게다가 그 날은 점심시간에 잠시 면담을 하다 두 번째 성교육 수업이 시작하는 때를 놓쳐서 아이들이 모두 나를 찾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교사의 수업 준비도를 보자면, 전적으로 실패한 수업이다. 그리고 내가 수업시간에 늦으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수업을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는 까닭은 아이들 덕분이다.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무얼 할지 모를 때, 아무리 궁리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 물으면 된다. “우리 뭐 배울까?”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이 중요한 사실을 아이들이 내게 일깨웠다.

 

2) 실패한 수업사례

① 첫 번째 수영시간

수영을 매우 잘하는 산 선생님과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내가 함께 한다.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뒤섞인 상황에서 어떻게 수업을 이끌지 충분히 의논을 못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물에서 놀며 자유롭게 익히는 수영’이라는 수업방향을 어떻게 펼칠지 모르겠는 채로, 마음껏 놀게 했다.

역시 물에서 노니까 재미있다고 한다. 정말 기대했던 시간이라고. 그런데 수업이 다 끝난 다음에 4학년 아이들 중 여러 명이 말을 했다. “노는 건 좋은데 놀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어요.” “수영은 언제 배워요?”

이 말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의 재미만을 충족시키는 수업의 한계를 아이가 일깨웠다. 동경하는 무엇, 더 나아지려는 무엇. 그것이 없는 수업은 수업으로 불충분한 것이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지금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두 번째 수영수업은 산선생님과 바다별선생님 덕분에 꽤 체계적이고 좋았다. 교사 스스로도 흐뭇했고, 아이들도 거의 좋아했다. 키판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 거리가 더 길어졌을 때 뿌듯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그걸 전해주었다.)

 

② 과학수업 중 아이들이 계획하는 실험

닭의 머리가 정말 닭대가리라 불릴 정도로 단순한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실험을 설계한다. 닭의 지능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방법이 나온다. 닭이 좋아하는 먹이로 유인을 하겠다든지, 색깔을 알아차리는지 알아보겠다든지 계획을 세운다. 수산나선생님께 버리는 음식물 중에 다시마가 없는지 묻는 아이, 닭이 좋아하는 지렁이를 잡는 아이, 공벌레 모으는 아이.

아이들이 말로 의논한 계획을 공책에 옮기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있으니 공책에 안 써도 잘할 수 있다고 한다. 매우 의욕적이던 아이들이 닭을 보러 가자마자 한 일은, 토끼에게 풀을 뜯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아이를 빼고는 이번 수업이 역시 재미있고 좋았다고 한다.

다음 주 실험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발표할 게 없다.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 모둠은 안 했어요.” 말한다. 다른 모둠도 그렇다.

누군가 말을 안 해도 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시절은 우리 인생에서 별로 없지 않은가. 발표수업이 있다면 교사가 틈틈 환기시켰어야 하는데 놓쳤다. 교사의 역할을 다 안 한 것이다. 수업시간이 아까워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실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밥을 먹기 전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줬다는 사례. 이 이야기를 확장해서 폭력을 내면화한 사람이 보이는 무기력한 반응이라든지, 칵테일새우를 까는 어린이들이 왜 탈출을 못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미있으니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달라고 계속 조른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런데!

수업을 마무리할 때, 이렇게 재미없는 과학수업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주에 실컷 재미있게 놀았고, 교사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다고 바로바로 말했는데, 결론은 “수업이 재미없었다.” 이 말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계획하고 시도한 활동의 의미가 내 것으로 스며든 수업시간과 내 것으로 남지 못한 수업은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뭔가 재미있었지만 돌아보면 허전함이 남는, 그래서 아이들의 언어 “재미없다”로 표현되고 마는.

 

3) 보완이 필요한 수업사례

① 습식수채화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전에 마음을 가지런하게 모으는 단계가 필요하다. 습식수채화를 그릴 때 몇 가지 약속을 아이들이 지키면 좋다. 물에 젖은 종이 위에 붓질을 할 때 종이가 벗겨지도록 힘을 주지 않는다. 남의 그림에 붓질을 하지 않는다. 세 가지 물감으로 원하는 색을 만들어가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붓을 잘 헹군 다음 물감을 묻힌다. 이런 약속을 아이들과 나눈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행동이 있다. 책상 위에 물감통을 엎지른다든지 친구의 그림 위에 물감을 떨어뜨린다든지. 그러면 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 행동을 한 아이를 야단친다. 아이는 실수라고 말하지만, 나는 같은 실수를 여러 번 하면 그건 네가 달라져야 하는 거라고 한다.

어떤 행동이 예상되는 아이에게 수업하기 전에 살짝 귀띔하기,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 친구들끼리 모아서 앉히기. 두 방법 모두 도움을 받았다. 비슷한 행동이 나타나는 아이들을 나란히 앉혀본 건 그런 성향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너그러우니 그깟 실수 하나로 친구에게 소리 지르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서 그랬다. 실제로는 아이 두 명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져서 좀 놀랐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업이 시작할 때 똑같은 약속을 전체에게 알리고 교사가 아이들의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 활동 중 표현하기를 할 때, 아이들 안의 것이 자연스레 나오려면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게 좋으므로.

② 공동체놀이

달리기라든지 뜀뛰기, 줄넘기 등 체력을 증진하기 위한 체육활동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이유는 아이들의 기초체력이 담임교사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서 그렇다.

아,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원하고 있는가! 우리반 아이들이 밭일 한 시간쯤은 거뜬히 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일하고는 칠보산의 빛깔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다함께 칠보산 정상에 휘리릭 올라가면 좋겠고, 도서관의 책도 여러 권씩 번쩍 들어 올리면 좋겠고, 밖에 나갔을 때 좀 걸어도 별로 안 힘들다고 말하면 좋겠다. 뭐 좀 하자고 하면 궂은 날씨 몸이 쑤시는 노인들처럼 아프다 힘들다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다. 일과 중 다른 시간을 빼기 어려워 수업시간을 찾아보니, 공동체놀이 때 몇 차례 쓸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남자아이들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욕구 때문이다. 뭘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나, 몸을 막 쓰고 격렬한 움직임을 때때로 원한다는 걸 느낀다. 함께 어울리고 배려하며 노는 일도 즐겁지만,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활동을 원하는 게 느껴진다.

 

③ 시 읽기

월화수 아침에는 시를 꾸준히 읽는다. 또래의 시가 아니다. 시인들이 쓴 동시나 잠언시 가운데 우리 반 누구를 떠올릴 수 있거나 우리 생활과 닮은 데가 있는 시, 좀 어려워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시를 나눈다. 아이들이 문집에 실린 시를 즐겨 읽는구나 짐작하고, 이 시간에는 굳이 어린이시를 나누지 않는다.

시를 읽을 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좋은 모습이다. 다함께 소리 내어 읽는다. 한 명이 읽기도 하고 모둠이 읽기도 한다. 교사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냥 읽는다. 그리고 느낌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그냥 두고 있으면 시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아이도 있고, 시의 어떤 부분을 떠올리며 깔깔 웃는 애도 있다. 더 욕심을 부리고 싶기도 하지만, 때를 기다린다. 아이들의 감상평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기를. 만화책 이야기를 할 때 곳곳에서 이야기가 쏟아지듯이, 시를 읽다가 우리들 마음이 다함께 움직여 할 말이 터져나오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한 번쯤 시를 고르면 좋겠다. 직접 고르는 게 아직은 부담이라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를 더듬더듬 찾아가면 좋겠다.

 

④ 몸검사

아이들의 키나 몸무게를 잴 때,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네가 작년보다 얼마나 자랐는지 몸무게가 늘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필요한 것임을 배웠다. 퇴직한 동료교사 봄날 선생님이 이 날 오셔서 도움을 주셨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키를 잰다.

교실에 돌아오니 몇몇 친구들이 다른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변화를 알아채고 그걸 말로 꺼냈을 때, 아이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그게 내게도 전해졌다. 나도 닮아야겠다.

 

*이번에 달평가 형식을 달리 했다. 과목별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술하지 않고, 수업사례 몇 가지를 꼽아서 정리했다.

그 까닭은, 몇 차례를 빼면 <2016 교육계획>에 나온 그대로 수업을 진행하여 무엇을 배웠는지는 나와 있어서이다. 우리반에는 오늘 무엇을 배우는지 다 알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있어서 <2016 교육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교사에게 꼭 상기시킨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수업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담임교사인 나의 현재 상태 때문이다. 교사의 눈이 읽는 수업 풍경과 아이들이 느끼는 수업시간이 다를 텐데, 4학년을 오랜만에 맡아 수업을 하노라니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재미있어서 매 수업시간이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묘사될 게 우려된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시간은 앎을 향한 인내의 시간으로 서술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내용이 나오는 수업은, 아무리 어려워도 귀담아듣는 태도가 얼마나 좋은지 칭찬으로 가득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자꾸만 샘솟고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다. 아이들은 별 의욕이 없는 게 분명한 순간에도, 나 혼자 신나서 “이런 놀라운 게 있는데 알려줄까 말까?” 하고 묻고는 별 대답이 없으면 “그럼 한 번 알아봐. 이걸 알면 얼마나 놀라운지.” 그러면서 계속 펼친다.

내게 의미 있는 사례와 아이들의 직접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던 사례를 쓰면, 교사로서 수업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형식을 바꿔본다.

 

 
  1. 생활습관


① 청소

사물함이든 교실바닥이든 청소를 할 때는 누가 보기에도 깨끗해야 한다. 4학년이 맡은 분리수거도 말끔하게 해야 한다.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넣을 때는 더러운 게 묻을까봐 손을 안 대려고 하지 말고, 쓰레기통 안의 것들이 바깥으로 흘리지 않게 봉투 안에 쓰레기통 입구를 맞추어 뒤집어서 탈탈 잘 털어서 넣어야 한다. 쓰레기봉투가 꽉 차지 않았는데 봉투를 묶어버리면 물건 귀한 줄 알아야 한다고 잔소리를 듣는다.

“선생님, 청소 다했어요.”

“아니! 여기 이런 쓰레기 한 조각도 주워서 넣어야지.”

“선생님, 청소 다했어요.”

“아니! 먼지 하나 없게 싹싹 쓸어야지.”

“선생님, 대체 언제까지 해요?”

“애들아 청소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내가 생각하는 깨끗한 정도와 너희가 생각하는 깨끗한 정도가 달라.”

이렇게 말할 때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그럴 거면 내가 하지 왜 청소구역을 나눠맡아서 아이들에게 하게 하는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내 기준이 높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이런 내용이 찾아온다.

 

“아이의 영혼도 어른만큼이나 복잡하고 끝없는 투쟁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

해야 하지만 해낼 수가 없어.“

 

② 학교 물건을 소중히 다루기

아이들에게 학교 물건 아끼라는 말을 달고 산다. 책상을 칼로 긁으면 안 된다, 벽에 낙서 하면 안 된다, 보드마카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 탁구채 아무데나 두면 안 된다. 안 된다는 말이 어찌나 많은지, 내가 하루에 내뱉는 말 중에서 “안 된다”를 세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아이들 몸에 조금은 스며든 것 같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쓰레기통에서 다른 학년이 버린 보드마카를 주워오는 걸 보니. 그래서 4학년 칠판 앞에는 흐릿한 보드마카가 너무 많다.

 

③ 이 닦기

아무리 챙겨도 이를 닦지 않는 아이들이 네댓 명쯤 된다. 아, 쉽지 않다. 나도 밥을 먹는 일에 골몰하다 보니, 남의 입속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서 어물쩍 넘어갈 때도 있다. 누구누구가 양치질 안했다고 신고정신을 발휘하는 어린이들이 드물게 있는데, 그건 친구의 구강위생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자기네끼리 사소한 다툼이 있어서 교사에게 뭐라도 일러줘야 속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들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가벼운 말싸움이 있었더라도 굳이 그걸 교사에게 일러주느니, 얼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해한 다음 번거로운 양치질 안 하고(서로 이르지 않고)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낫다는 것을.

 

④ 꾸준히 하는 무엇

일기나 수 숙제. 꾸준히 하라고 강조하는 일이다. 교사가 몇 번 환기시키면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아이가 있다. 어떤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건 아직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진심으로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하라고 자주 말을 꺼내는 게 내 역할이겠다.

 

 

 
  1. 교사와의 의사소통


 

①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은 제법 많다. 왜 그런지 자세히 알려주면 일을 풀어가기가 쉬운데, 아직 몇몇 아이들은 그게 서툴다. 내가 지금 기분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말을 하는데 왜 기분 나쁜지 설명할 수 없고,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는데 그 배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용기를 내서 내 마음이 왜 그런지 이야기하기. 아이들도 나도 천천히 연습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유까지 표현해보기. 나는 아이들이 다 털어놓아도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넉넉한 사람이 되기.

 

② 있었던 일을 전달할 때 잘 구별해서 말하기

말을 옮길 때 아이마다 어조와 어휘가 다르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달리 그림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보자.

“OO가 돌을 던졌어요.”와 “OO가 돌로 찍었어요.”

“OO가 강아지랑 놀고 있어요.”와 “OO가 강아지를 괴롭혀요.”

“OO가 청소를 안 하고 놀기만 해요.”와 “OO가 빗자루 들고 가만히 서 있어요.”

 

아이들이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벌어진 일의 풍경이 다르다. 전하는 아이의 시선에 따라 같은 일도 달리 볼 수 있다. 해석이 들어간 것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표현에는 차이가 있다.

늘 하던 대로 말하는 게 아이이지만, 친구와의 다툼이나 싸움은 억울하다고 느끼는 입장에서는 좀더 부풀려 전할 수 있다. 그러니 잘 가려들어야 한다. 어른인 나도 무척이나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난 이런 종류의 일을 하루가 멀다하고 겪는다. 아이들 때문에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일인 것이다.)

 

③ 일기

우리반 아이들은 내가 일기장 확인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다. 내 것은 봤는지 안 봤는지, 누구 것을 먼저 봤는지 자세히 본다. 그리고 뭐라고 쓰는지도 온 신경을 기울인다. 아이들이 날마다 쓴 일기에 나는 날마다 답을 달지 않으려 했는데, 아이들은 일기를 쓴 만큼 답을 써주기를 바란다.

“애들아, 정말 미안해. 오늘 너무 바빠서 일기를 다 못 봤어. 너희도 알지? 나 오늘 쉬는 시간 없었던 거.”

“선생님 놀기만 하는 것 같던데요, 왜 그것도 못해요? 지금 쓰세요.”

그럼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아까 쉬는 시간에 남은 일기를 좀 보려고 했는데, OO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야 해서…. 그 다음 쉬는 시간에는 누구누구가 다퉈서….’

아이고, 애들이 숙제 못해왔을 때도 다 까닭이 있겠구나.

 

“선생님, 있잖아요. 저 며칠 전에 이런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아니 어디서 듣긴 들은 것 같은데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같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 그래?” 하고 물으면 이런다.

“아, 제 일기에 있었잖아요. 읽었는데도 몰라요?”

아이고, 애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것 까먹었을 때 내가 묻는 말이랑 같구나.

 

일기확인이나 수업준비로 바쁠 때 아이들이 온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말에 뭐했는지, 무슨 공부가 재미있는지 들려주러 온다. 바깥에 참새가 떨어졌다, 4학년 텃밭을 누가 침범했다, 딸기에 꽃이 많이 피었다…. 다 들을 수 없어서 잠깐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는 이런 글이 온다.

 

“아이의 방해를 반가워합시다. 그 시간에 아이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합니다.

 

사람을 어른과 아이로 나누고

삶을 소년기와 성인기로 나누어 생각하면

세상에는, 그리고 삶에는 정말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자신은 삶과 고민에 빠져서 이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전 시대에 여성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가능한 한 어른들을 방해하지 않는 아이로 길러 왔습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지 알아볼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1. 3월초를 떠올리며


 

-아침에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든 내가 먼저 인사한다.

-친구의 도움을 받았을 때, 다른 아이들이 내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부모님이나 교사에게 알린다.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꼭 사과한다.

-다툼에 휘말렸을 때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잘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전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학기 초에 우리 반을 지도할 때 필요하다고 정리한 내용이다. 마지막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가 아이들에게 점점 스며들고 있는 듯해 기분이 좋다. 친구가 예전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고 말로 표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 예전만큼 안 괴롭혀요.” 하고 말할 때 정말 반갑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부모님이나 교사에게 알린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이들이 내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잘 몰랐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자기들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횟수가 늘고 있다. 아이에게 따로 묻거나 마음나누기 같은 자리가 없어도. 먼저 용기를 내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럴 때 이 글이 떠오른다. 부모님에게도 교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가 늘어날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 놓으라 재촉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다짐하며.

 

“아이가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고마워하십시오. 아이가 당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밀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호소든 협박이든 비밀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나쁩니다. 그렇게 해서 비밀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는 당신에게 가까워지기는커녕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여운이 긴 행사


 

우리 학교 백일장

 

우리 학교에서 일 년에 두 번 백일장을 연다. 이런 기회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게 시인데, 굳이 백일장을 열어 모두가 시를 쓰게 한다. 우리의 글쓰기 교육에서 시를 각별하게 여겨서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백일장 풍경.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칠보산에 오른다. 백일장 하나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무슨 등산인가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들이 몸을 움직여 산을 향해 다가갈 때,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이 확 열린 아이들이 글감을 찾는다. 오감을 활용하고, 산에 오르며 있었던 일도 떠올려본다. 그러면 시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내 품에 안기는 시가 있다. 지나가는 시를 휙 붙잡을 때도 있지만, 시가 오는 소리가 몹시도 희미하여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교사에게 가져오면, 교사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이 다 지나도록 아직까지 시를 찾지 못한 아이와는 교사가 곁에 앉아 이야기 주고받으며 아이 속에 꿈틀거리는 뭔가를 끄집어내려고 함께 궁리를 한다.

 

우리 학교 백일장에서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

 

아이들이 정성껏 쓴 시를 읽은 후 교사마다 감상이 다를 때가 많다. 사람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서로 감상을 나누는 선에서 그치면 괜찮은데, 시를 뽑는 과정에서는 교사들의 마음이 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내가 시를 고를 자격이 있을까.’

‘아이마다 시를 쓴 배경이 다른데 교사들이 이렇게 모여앉아 백일장 수상작으로 무엇을 정할지 고르는 게 맞을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작품을 고를 수 있을까.’

‘남의 작품을 평가하는 게 맞을까.’

 

누구나 드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자기 취향과 안목에 확신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시에 대해서든 삶에 대해서든 공부를 더 하는 게 낫다. 자기가 좋다고 고른 시를 누군가가 달리 생각할 때, 그 까닭이 궁금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필요하고 즐거운 일이다.

 

아이들의 정성을 알고 면면이 보이고 속사정이 그려지기에 아이들 쓴 시에 좋다느니, 좀 아쉽다느니, 군더더기가 많다느니 평을 하다 보면 ‘아이고, 내가 뭐라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시를 장원으로 올릴지 지난하게 의논하는 것보다 누구나 참고할 만한 기준이 있으면 낫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깨닫게 된다.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란 없다는 것을. 심사기준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건 나의 갈등과 무지를 외부기준에 의탁해 해결하려는 태도라는 것을.

 

사람들이 아이들의 시를 볼 때 여러 가지를 볼 것이다. 아이들의 삶이 잘 담겨 있는지, 감동이 있는지, 아름다운 생각이 담겨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한다든지, 운율이 느껴지는지, 문장이 좋은지 등.

 

우리 학교 백일장에서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은 뭘까. 꼭 한 가지만 꼽아야 한다면 아마 이러한 것이겠다.

 

“교사들이 지닌 시에 대한 애정과 안목, 그걸 기르기 위한 자기공부.”

 

사람의 취향이 다르니 좋아하는 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해가 지니 어두워졌다’처럼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할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시를 읽은 다음 우리들 감상의 폭이 넓다는 것과, 어떤 시가 높거나 깊거나 좋은 작품이라는 건 살짝 구별된다.

감상하는 눈도 훈련이다. 마음 가는 대로, 그냥 느끼는 대로 시를 읽어라. 참 편하고 좋은 말이지만 교사이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시도 자꾸 봐야 보인다. 책을 많이 본다고 해서 어린이글을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소설을 자주 읽는다고 시가 덩달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사람의 눈을 열리게 하거나 자꾸 웃게 만들거나 천천히 스미거나 마음을 뒤흔들며 우리에게 오래 남는 시가 있다. 그런 시를 찾고자 한다. 진실함과 아름다움을 담은 예술형식으로서의 시. 그러한 시의 가치를 다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참된 것을, 바른 것을, 아름다운 것을, 감동적인 재미와 풍자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아이들의 시를 통해서.

 

 

시쓰기부터 시상식까지

 

아이들에게 찾아오는 시와 교사의 역할

 

어떤 아이가 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부모님이 놀란다.

“선생님, 애가 이런 시를 썼다고요? 설마 그럴 리가.”

모든 부모의 눈에 내 아이가 아무리 예뻐 보이더라도, 그 애 혼자서는 이렇게 쓸 리가 없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평소에 아이가 시를 쓰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목격했어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선생님, 애가 혼자서 썼어요?”

시상(詩想)이 떠올라 일필휘지이든 괴발개발이든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아이 혼자 쓰는 모습,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하다.

 

그런데 백일장은 그리 진행되지 않는다. 교사가 아이에게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써내는 게 중요하다면, 이러한 행사는 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에게 주제를 정해주고, 시간 안에 써서 내라고 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여느 백일장 대회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게다가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나 의사표현수단이 글이 아닌 아이는 이러한 행사에 참여할 자격이 아예 없다.

 

백일장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보자. 모둠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그 풍경은 이러하다.

아이들이 쓴 시를 함께 읽는다. 아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이러한 시를 썼는지 들어본다. 시다운 무엇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아이는 고쳐 쓰거나, 고쳐 쓰지 않는다. 교사가 이리 써 봐라 저리 써 봐라 하는 것과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생각을 끌어내는 건 차이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록 시를 못 쓰고 끙끙대는 아이들과는 글감을 함께 찾는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아이들의 말에 시가 가득 들어있는 걸 안다. 아름다움은 자신이 아름다운 걸 몰라 더 아름다운 법이다. 교사들은 무심결에 줄줄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의 말에 감탄을 하며, 그게 시라고 격려한다. 시를 제 시간 안에 다 쓰면 좋겠지만, 다 못 쓴 아이는 학교에 와서 마저 마무리한다.

 

나와 아이들에게 ‘시상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 시가 읽히기를 기대하는 아이의 눈빛을, 시를 읽는 교사는 함께 읽는다. 그래서 잘 쓴 시만 읽지 않고, 상을 못 받았더라도 여러 아이들의 시를 두루 읽는다. 시간이 넉넉하면 다 읽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한다. 교사들이 어렵게 고른 장원시를 읽었을 때, 시를 쓴 아이의 흐뭇하고도 쑥스러운 미소,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보인다. 듣는 아이들 얼굴이 환해지는 게 보인다. 그 시가 우리반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험도 한다. 와! 진짜 좋은 시다!

시상식 자리에서 다 못 읽은 시는 우리반끼리 따로 읽는다. 아무리 시끄러운 아이도 이때는 참 고요하다. 내 시가 읽힐 때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내게 중요한 일 하나 더. 아이들이 쓴 시를 하나하나 종이에 옮겨서 전해준다. 나만 좋은 줄 알았는데 몇몇 친구들이 그 이야기 꺼내는 걸 우연히 듣다가 ‘아, 그게 좋았구나!’ 느꼈다. 아이들의 시를 옮겨 적으면, 시를 쓰는 일이 참 어려웠겠구나 싶다. 이런 성향의 아이가 이 글감을 찾기까지 얼마나 고심했는지 전해진다. 올해도 난 이렇게 할 거다. 4학년 아이들 기뻐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백일장을 마친 후 아이들의 시로 수업을 했다. 남의 시 말고 우리 시 읽어달라는 아이들의 말이, 맨날 이것만 하자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당분간 우리반에 시가 오래 머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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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4월 6학년 과학 달평가 / 가야]

 

오랜만에 이 아이들을 만나는 마음에 무척이나 기대했던 과학수업이다. 아직 생각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보고들은 게 많은 아이들이라 역시 꿈꾸는 바가 참 크다. 아이들의 뜻을 살리면, 로봇도 만들 것 같고 자동차도 뚝딱, 심지어 핵폭탄도 만들 것 같다. 이 아이들은 실제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그런데 부족한 건 딱 하나, 교사의 능력과 준비인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실험은 자주 실패로 흐른다. 정전기를 일으키는 실험도 잘 안 되고, 네오디뮴 자석을 이용해서 건전지 없이 불을 켜는 것도 못했다. 떠올려보니 이 아이들이 4학년이었을 때 그 쉬운 치즈 만들기조차 실패했다. 까닭을 찾자면, 어떤 실험은 교사가 미리 해본 실험이 아니라서 그렇다. 준비물이 정교하지 못했던 점도 있다.

아이들에게 해보고 싶은 걸 함께 나누자고 하니 “우리들은 자꾸 실패만 하네요.” 그런다. 하고 싶은 것을 구체화하려고 하니 딱히 할 만한 게 없고 선생님 알아서 해도 괜찮다는 의견을 준다. 우리가 실패를 통해서도 배운다고 하지만, 적절한 성공의 경험이 없으면 아이들의 의욕이 꺾인다.

그래서 앞으로의 수업을 재구성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매우 활발해지는 과학지식 이야기를 수업 때 더 늘리고(이 아이들과 과학 상식이나 생활 속 과학원리 등을 주고받을 때 기쁨이 크다), 실험에서는 화학분야를 앞당겨 배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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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4월 클래식기타 달평가 / 가야]

 

올해는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전보다 늘어나서 좋다. 교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아이들 질문도 더 편하게 받을 수 있다. 아이들마다 연습하는 곡이 다르니 내가 남보다 뒤처지나 염려할 필요도 없다. 수업시간 이외에 마음을 내어 연습을 덜 하는 모습이 늘 아쉽지만, 아이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면 바쁜 사정이 이해가 된다.

각자 개인 진도에 따라 수업을 하는 한편,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는 마음이 모아져서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다장조 편곡과 비발디의 <사계> 중 봄 부분을 함께 연주한다. 반주를 맡은 고학년 친구들은 C, G, F 코드를 배운다.

교사가 곡을 제시하면 아이들이 따라오는 편이었는데, 고학년 중 두 명이 작년 선배들이 배운 <작은 로망스>를 치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 두 아이는 연습량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3월에는 연습을 따로 하라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건네곤 했는데, 이번에는 교사가 시키지 않고 스스로 하는 거다. 그 모습을 후배들이 자주 보면, 언젠가 선배들 뒤를 따라 나도 저 곡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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