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학년 3,4월 돌아보기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5-09 19:21
조회
1662
2017년 3,4월 1학년 돌아보기

-가야, 이슬 함께 기록했습니다.



아이다움이 살아 있는 아이들이 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 눈을 빛내고 하루하루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는 아이들. 하고 싶지 않으면 솔직하게 싫은 내색을 하다가 마음을 다잡는 아이들. 학교와 관련된 옛이야기를 들려주면 귀가 커지고 책을 읽어주면 두 눈 빛낸다. 쉬는 시간을 알리면 언제 수업에 집중했냐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징소리가 들리면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났냐며 아쉬워한다. 영혼의 어딘가는 동화 속에 살고 아직 땅에 온전히 발 딛지 않은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과 두 달을 지냈다. 한 쪽 발은 땅에, 다른 발은 환상의 세계에 디딘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감동적이면서도 고단하기도 했다.



1. 하루흐름

*아침열기 - 두 교사가 경험한 서클 방식(교사신뢰서클/회복적 서클)을 도입했다. 남녀가 섞여 둥글게 앉아 하루를 연다. 간단한 질문에 아이들이 짧은 답을 하며 제 목소리를 낸다. 하트 모양의 나무인 토킹 피스(talking piece)를 잡고 말한다. 말하고 싶지 않거나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고 옆 사람에게 토킹 피스를 넘긴다. 3월에는 질문에 아이들이 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 토킹 피스를 들고 장난을 치거나 토킹 피스를 손에 쥐고 묵묵히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뜸들이지 않고 차분하게 답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주말에 무얼 하며 지냈는지 아침에 뭘 먹고 왔는지 물으며 아이들의 생활을 짐작하고, 오늘 기분이 어떤지 날씨가 어떻다고 느끼는지 아침에 학교 올 때 무얼 봤는지 물으며 아이들의 관찰감각을 일깨운다. 우리반 아이들 한 명도 빠짐없이 별로 망설이지 않고 신나게 답했던 질문이 있다. “이번 칠보시장에서 뭐 사고 싶어요?” 구매의사를 확인하는 질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동안 입을 열지 않았던 친구마저 입이 트였으니.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친구들에게는 서클방식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연습이 된다. 말수가 없는 친구들에게는 자기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꺼낼 수 있는 기회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수업과 쉬는 시간 – 여러 과목 사이사이에 쉬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쉬는 시간 사이마다 편안한 쉼을 방해하는 수업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 몸과 마음의 흐름을 감안해 시간표에 규정된 것보다 쉬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데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고 주장한다(교사 역시 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고 느낀다).

시간의 신축성은 아이들 마음에 달려 있고, 아이들 마음은 교사의 교수법에 달려 있겠지. 아이들은 수업시간이 여전히 길게 느껴지겠으나, 교사 입장에서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수업시간이 자꾸 빨리 지나가버린다.



*점심시간 – 점심시간마다 수산나 선생님, 잎샘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급식 때 나오는 모든 음식을 다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입맛에 맞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고 싶을 텐데, 거의 모든 아이가 받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 두 분이 다정하게 이끌어주고 격려하는 덕이다.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어야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받는다. 너무 힘든 음식은 안 받아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평소에 잘 안 먹는 나물류는 조금이라도 먹어보자고 한다. 평소에는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낯선 음식을 맛보며 미각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풀 따위를 먹으면 구역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 채식을 선호하는 아이 등 아이들 입맛은 다양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채소를 강권하지만 채식을 원하는 아이에게는 고기를 권하지 않는다. 생명 있는 것들은 서로 기대어 살기 마련이지만, 남의 살에 의존하기보다 다종다양한 풀에 신세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청소와 하루닫기 – 한 달 반쯤 청소를 마치고 알림장을 썼는데, 4월 중순부터 알림장을 먼저 쓰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알림장을 쓸 때 뒤를 생각지 않고 마냥 늘어지던 아이들이 알림장 얼른 쓰고 청소하러 간다.

비질, 걸레질, 청소도구 정리, 걸레 빨아서 널기 등 차근차근 배워서 하고 있다. 학교의 힘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가정의 도움이 있어서 하루하루 아이들이 자란다.



2. 과목

* 말과글

어느 학교 교사가 지은 한글자음시를 통해 한글을 익힌다. 소리글자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시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 각 자음의 느낌이 다가온다. 아직 아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다.

자음 가운데 입술소리(ㅁㅂㅍ)를 먼저 익혔다. 어리석은 자도 열흘이면 다 배울 수 있다는 한글을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익히는데도, 아직도 미음과 비읍이 뭔지 헷갈린다고 몇몇이 말한다. 배울 마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한글을 천천히 익히는 아이가 알림장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난 한글도 모르는데 이걸 다 써야 하냐며 역정(?)을 내는 듯한 장면이 가끔 펼쳐지기도 한다. 언제나 당당한 아이들이 다니는 우리 학교이다.



* 수

선 그리기, 묶어서 수 세기와 20이하의 덧셈과 뺄셈을 했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 없이 아이들 스스로 배웠다. 바둑알이나 쌓기나무와 같은 교구는 놀잇감으로 활용되고, 놀면서 덧셈을 익히는 모둠별 활동은 성격 다른 아이들의 상호탐색작업으로 바뀐다. 마음속으로 진도를 가늠하느라 가끔 교사 마음이 바쁘다.

구체적 조작물을 통해 배우는 비중을 조금씩 낮추는 게 어떨까 생각하던 무렵, 교실에 몇 가지 보드게임을 가져다 두었다. 수 카드, 주사위, 숫자판을 써서 놀며 덧셈과 곱셈을 익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놀이의 형태를 빌린 수업을 진행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저절로 배울 수 있게 적절한 교구를 배치해야겠다.



* 텃밭살림

밭을 놀이터로 삼는 아이들에게 고랑과 두둑을 구별하는 일부터 알려준다. 아이들은 이곳저곳 자유롭게 넘나든다. 솟아오른 곳은 밟는 맛이 있고 푹 꺼진 곳은 채우는 즐거움이 있다. 형님들이 애써 갈아놓은 밭이 차츰 평평해진다.

쭈그려 앉아 씨뿌리기가 쉽지 않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시계를 확인한다. ‘3분도 채 안 되었는데.’ 싹트기는 씨뿌리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는지, 밭에 뿌린 씨앗(들깨, 대파, 아욱, 케일, 캐모마일)의 발아율이 예상보다 낮아서 모종 몇 개를 심었다.

그나마 염소와 토끼와 고양이가 없었다면 아이들에게 텃밭 가는 즐거움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게 있어서 아이들의 고단함을 달랜다.

비가 시원하게 내리지 않아서인지 심은 작물들 목이 탄다. 아이들이 식물에게 물을 잘 주면 좋으련만 고랑에 물을 채워 댐을 만든다고 한다. 부지런한 아이들 물통 덕에 고랑이 도랑 된다.

텃밭에 다녀온 후면 아이들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며칠 지나면 마음이 도로 제자리이다. 사람의 힘보다는 모든 식물이 지닌 생명력을 믿고 올해 농사를 기대해야겠다.



* 음악

고음이 자유로운 아이들과 아이들이 내는 영역의 소리까지 도저히 올라가지 않는 교사가 만났다. 선생님이 노래를 너무 못한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사실이다. 아이들의 흥이 넘치면 생목으로 소리를 빽빽 지르는 것처럼 느낀다. 한국 어린이들이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는 어느 음악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면서, 이 우렁찬 목소리를 어찌하면 어여쁘게 다듬을까 고민이다.

노래를 배우며 틈틈이 리듬을 익히는 연습(손박자, 발구르기 등)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거의 배웠고 교육계획에 담은 민요는 배우지 못했다.



* 생활미술

자연을 관찰하고 아이들의 감성으로 풀어나간다. 아이들이 작업할 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만 한정하지 않고 자연물을 가지고 다양하게 작업해본다.

아이들과 시간표 만들기, 선 그리기, 손과 발, 몸 그리기, 습식수채화를 했다. 흙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없애고. 또 나무위에 돌과 흙을 올려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보고. 교사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하게 표현해낸다.

습식수채화는 도구를 많이 사용하고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수업이다. 학기초에 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온다. 재료를 탐색해보고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직 헷갈리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들었던 것은 알아서 해내고 있다.



* 공동체놀이

공동체놀이는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수업 중에 하나다. 교사가 제안한 놀이에 따라 아이들이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뛰어 논다. 3,4월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숨바꼭질, 수건돌리기, 한발 뛰기를 했다. 규칙이 복잡한 놀이보다는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간단한 규칙이 있는 놀이를 했다. 함께 어울려 수업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지만 공동체놀이 시간만큼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놀이에 참여한다.

아직 서로를 배려해야 하거나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없었기에 갈등상황이 생기지는 않았다. 앞으로 아이들이 마음을 모으고 갈등이 있더라도 평화롭게 해결하기를 기대해본다.



* 칠보산어린이되기

3월 한 달 동안 칠보산어린이되기 수업에 집중했다. 칠보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며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이 칠보산에 잘 올라야 칠보산 어린이가 되는 줄 알고 힘들어도 참고 올라가기도 했다. 3,4월에는 빈그릇운동, 어린이 선언문, 우리학교에서 지켜야 할 약속들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좌식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몸을 바르게 하고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바르게 세우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연습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남들 앞에서 말하기 부끄러워하던 아이들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수업흐름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징이 치자 교실에 앉아 교사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있었다.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교사들은 보람을 느낀다.



* 1,2학년 생태교실과 학교밖학교

생태교실은 1학년 17명과 2학년 12명이 함께 꾸리는 수업이다. 첫 수업은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1,2학년이 함께 수업을 하는데 2학년 담임교사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은 천방지축 1학년이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두 학년이 수업을 따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러 번 고민이 들었다. 두 번째 시간에 세 모둠으로 나눠 1,2학년이 다녀보니 함께 하기를 잘했다고 느낀다. 아이들의 눈이 숲과 개울 곳곳에서 온갖 곤충을 찾았다. 2학년 곤충박사들이 동생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바를 신나게 전수한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칠보산에 다녀서 산 곳곳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길잡이를 자처하기도 한다. 교사보다 예리한 눈의 아이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니 무척 고맙다.

학교밖학교 시간에는 주로 칠보산 곳곳을 다녔다. 생태교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귀한 2학년들의 부재.



3. 생활

1) 천천히 학교 안으로

학교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이 아이들 몸에 익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 조바심이 났다. ‘올해 1학년 아이들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릴까?’ 하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엄마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다가 여덟 살 아이들과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아주 수월하다. 결국 기다리면 되었다.



2) 우리반 민주주의

우리반 이름은 아직 없다. 아이들마다 붙이고픈 이름이 갖가지였다.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고 양보하며 의견을 모으자고 제안했더니, 내가 낸 의견을 접고 마음을 모으다 ‘자연’ ‘드래곤’ ‘고양이’가 남았다. 만장일치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의견이 더는 모아지지 않아서 벽에 세 가지 이름을 붙이고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과연 반 이름이 뭐가 될지 아이들이 한동안 관심을 보이더니, 반 이름 게시판은 지금은 풍경화처럼 붙어 있다.

이 긴 과정을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더니,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거라며 의견이 꼭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말한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무얼 느낄까. 내가 낸 의견을 접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는데, 지나보니 별 게 아니었다고 생각할까.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친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결정하자고 할까. 앞으로는 다수결이나 만장일치와 같은 의사결정방식을 정해두고 표결에 붙이자고 할까. 6년의 학교생활 동안 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해석되며 현명한 합의를 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3) 어쩌면 한 번뿐인 봄날

국가적 재앙인 미세먼지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날이 좋다 싶으면 수업을 작파하고 무조건 밖에 나간다. 맑은 봄날을 실컷 누리기 위해서. 이런 날을 언제 다시 맞이할지 몰라서.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고, 칠보산 입구에서 바람을 맞고, 자목마을에 마지막으로 남은 탱자나무꽃을 보고, 옛 경로당 처마 아래 집을 지은 제비들을 반가워하고, 칠보산 자락 무덤에 해마다 피는 할미꽃에 우리도 고개 숙인다.



4. 관계

남녀 아이들이 어울려 놀기도 하고 같은 성의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기도 한다. 남녀 놀이문화가 조금 다르다. 다수의 남자 아이들은 몸놀이를 좋아하고 다수의 여자 아이들은 그림그리기, 꾸미기를 좋아한다. 남이 무얼 하든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도 있다. 친한 친구들이 모여 함께 놀기도 하고, 원하는 놀이가 엇비슷하면 모이기도 한다. 아이들끼리 크게 다투는 일은 별로 없다. 있더라도 소소한 다툼과 싸움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5. 중요한 행사



1학기에는 학년을 모두 섞어 네 모둠으로 나눈다. 모둠이 마음을 모아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에는 칠보시장과 전체여행이 있다.



1) 칠보시장

어린이들끼리 보낸 칠보시장은 즐거웠다. 1학년 아이들이 고학년들의 배려 덕분에 편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가게 지킴이 역할을 잊고 물건 사느라 바쁜 동생들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제 별을 다 쓰고는 해맑을 얼굴로 별을 더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도 언니들은 가진 별을 건넨다. 여러 교사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물건을 잘 살 수 있어서 고맙다.



2) 학교살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리면서도 “세 밤이나 떨어져 잘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는 질문에 용감하게 손을 드는 우리반 아이들. 1학년들은 모두가 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겠지.

여행 전 자는 연습과 우리반 단합을 겸한 학교살이. 1학년끼리 어떻게 하룻밤을 보낼까 고민했는데 6학년의 도움으로 대성공이었다. 6학년들은 음식재료를 나눌 때부터 동생들 부담을 덜어준다. 요리를 할 때는 아무리 동생이어도 칼이든 주걱이든 한 번이라도 써야 한다며 안 해본 사람은 줄을 서라고 한다. 덕분에 손쉽게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6학년들이 있어서 안전하게 모닥불을 즐겼고, 잠드는 것도 수월했으며, 이부자리 정리도 야무지게 할 수 있었다. 우리 1학년들이 6학년에게 받은 사랑을 잘 기억했다가 후배들에게 나눠주기를.



6. 그밖에

1) 두 담임 운영

두 교사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다. 아이들은 두 교사와 지내니 더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게 틀림없다. 두 사람의 내면과 경험이 서로 다르니 이를 고루 맛볼 것이다.

일상에서 다른 교사의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협업을 하니 다른 교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수업을 여는 방식, 말하는 태도, 아이들에게 건네는 사소한 농담 같은 것이 모두 내게 배움이다. 저학년 아이들을 대할 때 섬세하지 못한 교사에게 동료교사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본보기가 된다.



2) 수업준비

올해 아이들과 나누고픈 것을 자유롭게 펼치는 게 덜 된다. 충분히 내 것이지 않고 설익은 수업내용을 펼치려다 보니 그렇다. 최근 몇 년 아이들과 나누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차근차근 만나고 있는데, 그게 내 몸에 아직 녹아들지 않아서 어색하게 펼쳐진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내게 연습할 기회를 주는 귀한 사람들이다.



3) 말의 의도

아이들에게 말하는 바를 내 삶에서도 적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살자”와 같은 말들. 내가 조금이라도 노력할 수 없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에 관한 말은 처음부터 내뱉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지킬 수 있는 말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학교밖학교 나들이 나갔을 때였다. 콧물을 달고 다니는 한 아이가 가방에서 화장지를 꺼내어 코를 풀고는 그 휴지를 제 손에 들고 물어본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나는 “자기 가방에 넣으세요.”라고 답했다.

아이의 질문을 듣자마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늘 알려주는 건데 왜 또 물어볼까? 혹시 내 가방에 넣어달라는 뜻으로 물어봤을까? 스스로 할 수 있으면서 교사에게 도움을 바라는 걸까?’ 이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내 말 어딘가에는 복잡한 속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내 답을 듣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을 보며 말했다.

“저는 몰라서 물어봤을 뿐이에요.”

아이는 알아버렸다. 질문하는 아이를 내가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답하는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이의 질문을 듣자마자 내 마음대로 아이의 의도를 짐작하고 아이의 자조능력을 판단하며 답한 것이다.

날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게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나의 기준대로 걸러서 보는 일. 아이들은 이런 내 모습을 잘 알고 여러 번 신호를 줬을 것이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과하게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나 표정이나 몸짓으로 느낌을 말했을 것이다. 4월 중순쯤에 위의 일을 통해 깨닫는다. 내 기분이나 몸 상태나 삶의 잣대에 따라 아이들의 의도를 쉽게 판단하지는 말아야겠다고.



4) 교사를 위한 수퍼비전

입학 이후 두 달 내내 중요해 보였다. 제 힘으로 밥을 다 먹는 일, 자기 물건은 스스로 챙기는 일,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일, 친구들과 마음을 모으는 일. 두 달을 돌아보니 더 중요한 게 있다.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을 내가 사랑의 시선으로 잘 바라볼 수 있는가. 1학년을 거친 멋진 선배들의 모습을 내세우며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여러 특성을 ‘미숙함’으로 단정 짓지 않는가. 다행히 교사로서의 나를 보게 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동료교사와 날마다 나누는 이야기가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맞이할 때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아이들도 우리도 자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마음이 조금씩 넓어진다. 동료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꾸리는 수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한때 학교에 몸담았고 이제는 몸은 떠나 애정만 품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이 멘토 역할을 해주신다. 모든 훈육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르침은 충분하다고 전한다. 주기적인 연수 ‘교사신뢰서클’을 통해 만나는 내면의 교사도 있다. 이러한 과정은 자책과 남탓이라는 죄책감 없이 아이들 앞에 서는 힘을 기르게 한다. 가끔 만나는 졸업생들의 현재 모습도 여유를 갖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여러 모습을 빚으며 자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행동이 있더라도 한숨 돌린다.

이렇게 교사를 위한 수퍼비전이 여럿이라 고맙다.





기다리면 되지 아이들은 천천히 자라지 생각하다가도 마음이 여린 그 아이가 올해 안에 한글을 다 뗄 수 있기를 바라고, 손이 야무진 저 아이는 이왕이면 덧셈 뺄셈까지 차근차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학기 말이 되었는데 한글이 서툴면 조바심이 날 것이고 열에서 셋을 덜면 얼마냐는 질문에 일곱이라는 답이 10초 안에 나오지 않으면 교사인 나의 부족함을 떠올리겠지. 모든 아이들이 신비한 힘의 이름으로, 자기 타고난 속도대로 천천히 배우기를 꿈꾸며 두 달 돌아보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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