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학년 성장여행 이야기 #1

작성자
길섶
작성일
2022-07-06 14:25
조회
488
22년 6월 20일 월요일

<해님 이야기>

"그런데...왜 우리 성장여행 가야해요?"

 

마주한 질문에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홍길동도 열두 살에 집을 떠났다. 신라시대 화랑도...' 어째 답이 될 수 없어 말을 아낀다.

 

"그냥 이 학교에 오는 순간 정해졌던 것 아니었니?"

나사반의 운명은 바우길로 정해졌다. 오늘이 바로 운명의 그 날이다. 예정보다 1시간 앞당겨 터미널에 모였다. 30-40분 여유 있게 모여서 다행이다. 몇 번을 확인했는데 첫 에피소드를 만들어준 C 서수원터미널로 길을 잘 못 들었다가 그래도 깨닫고 시간 맞춰 도착했다. 역시나 그런 사람 꼭 한 명 있다. 했는데... c가 당첨 되셨습니다. 쾌적한 버스에서 새벽길 나서느라 부족했던 잠을 잔다. 좀 불편해서 자다 깨다 했다지만 버스가 젤 편했다. 배낭 한 번 내려둘 짬 없이 길을 나선다.

첫 길잡이 B는 한 손에 캡쳐 해둔 사진 한 무더기를 들고 이끈다. 사진 속 장소가 나타날 때 마다 한 장씩 한 장씩~ 25장의 사진이 조각 조각 맞춰질 무렵 모산봉 앞에 도착했다. 구불구불 산길 오르기 전 길가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으아~" J의 포효가 산을 가득 채운다. 고소한 참기름 향내도 산을 가득 채운다. 엄마가 챙겨준 마지막 밥을 고스란히 다 쏟아내고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빈 그릇을 우리의 정으로 다시 채운다. 야옹~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반갑다 인사한다. 날름날름 뭔가 얻어 먹으려고 몸을 비빈다. (하루 닫기 시간에 기억남는 일로 고양이 이야기를 젤 많이 했다.) 1리터의 물을 아껴 먹지만 날씨가 너무 덥다. 역대 급 더운 날씨에 지금 필요한 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물! 얼음은 보너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무겁게 내려앉는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발이 따끔따끔 발목이 욱씬욱씬 무릎이 지끈지끈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생각될 때쯤 저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군부대에서 저녁을 알리는 군가를 응원가 삼아 마지막 힘을 낸다. 우리 중 누군가 저 앞 바다를 지켜줄 청년이 될 어린이가 한 명 쯤 있으려나? 몇 해 후 이 군가를 들으며 오늘을 기억할 어린이가 한 명쯤 있을까 미래를 상상해 본다. 엉덩이 먼지를 털어낼 생각도 안 들고, 등이 바닥에 닿을 만큼 기대 눕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다다!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평평해 보인다. 옛 사람들이 왜 지구를 둥글다 생각 못했는지 알 것 같단다. 숙소는 방도 넓다. 저녁 당번은 손만 씻고 부대찌개를 끓인다. 칼질을 하는데 손이 후들 후들 떨린다. 압력솥에 처음 밥을 해봤는데 누룽지까지 일단 성공했다. 햄보다 달달한 호박과 당근을 골라먹게 하는 맛있는 부대찌개를 싹 다 비워먹었다.

내일은 얼마나 힘들까? 발가락에 볼록하게 잡힌 물집에 오늘의 기억을 담아둔다.

 

<오늘의 일기>

시작 - 이진서

성장여행을 시작했다. 약 70km다. 너무 힘들 것 같다. 오늘은 20km를 걸어야 한다. 9kg짜리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가서 계속 계속 걸어야 한다. 걷고 또 걷고 6구간 모산봉으로 들어가려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 도시락을 쏟아서 통곡했다. 친구들이 밥을 나눠줬다. 다시 출발했다. 산을 오르는데 너무 힘들었다. 버스가 너무 그리웠다. 계속 걸어가다가 쉬고 있는데 발목이 아파서 선생님께 말하고 계속 걸어갔다. 다음 쉴 때 식재료를 윤성이가 들어주고 숙소까지 다시 걸어갔다.

 

시체 - 윤소현

오늘은 아주 힘들게 걸었다.  어떤 논을 지나가는데 아저씨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한결이가 소리를 ‘꺄아악’ 질러서 깜짝 놀라서 한결이한테 ‘왜 그러냐’하고 물어보았다. 손가락으로 논을 가리켜서 봤는데 목 잘린 마네킹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시간이 지나서 거의 어깨에 감각이 사라지고 있을 때 또 한결이가 초음파로 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다. 무의식중에 바닥을 사선으로 봤는데 아휴... 어떤 까치 같은 새가 죽어있었다. 더 끔찍한 건 새의 배가 아예 다 해부한 느낌이었다.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도 무서워서 새의 사체 옆쪽으로도 걸어가지 못하고 그냥 제자리에 서서 한결이와 소리만 지르면서 사체 옆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안 보고 싶은데 계속 보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고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고양이와 숙소 - 박지우

11시 40분. 가다가 점심시간이 돼서 도시락을 먹었다.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지르더니 고양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무서워서 도망갈 거로 생각했는데 안가는 것이다. ‘저 고양이 왜 안갈까?’ 하필 내 쪽에 나타나서 저쪽으로 피신했다. 그 고양이는 조윤성 가방 냄새를 킁킁 맡더니 자기 집인 것 같이 누웠다. 민서가 나랑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오늘따라 밥이 맛이 없었다. 이유는 김치만 들어있기 때문. 진짜 맛이 없어서 반을 남겼다.

숙소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일단 진짜 힘들었다. 숙소는 넓었다. 여자 숙소가 더 넓었다. 발에 물집이 하나 잡혔고 발에 멍이 든 것같이 아팠다. 저녁 당번이어서 바로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부대찌개는 정말로 맛있었는데 이유는 소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여행을 준비하는 5학년. 모둠별로 여행코스와 여행지의 역사, 지리, 문화를 조사해서 정리한다.



#수원버스터미널.  형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잠이 쏟아진다.



#걷기 시작. 출발부터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직 10분의 1 밖에 오지 않았다.



#쏟아지는 도시락과 고양이는 모두 이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등산연습을 많이 했어도 산은 힘들다.



#"선생님 너무 더워요~" "편의점만 나오면 시원한 물과 얼음을 먹을 수 있어!!"



#"힘들어요..." "숙소에 도착하려면 좀 더 걸어야 해~ 바다가 나오면 끝이야"



#와 바다다!



#끝이라고 생각해 밝은 아이들. '미안해 애들아 1km는 더 걸어야해..'



#맛있는 부대찌개



#줄 서서 더 받는 아이들. 맛있으면 두 그릇. 편식이 안 생기는 마법



#하루닫기로 오늘의 일정 끝!

전체 2

  • 2022-07-09 20:10
    베낭의 무게를 짊어지기엔 아직 너무나 아기아기한 아이들인데... 나중에 더 큰 아이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생했어요.

  • 2022-09-13 20:19
    간만에 초등 여행기가 고파져서 놀러 왔습니다. ^^
    길섶 선생님의 여행기가 유튜브 영상에서 글로 바뀌었네요. 와와, 만세!!!

    이 어린이들의 1학년 마무리잔치 연극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데, 어느새 5학년 형님들이 되었다니!!! 그 동안 저는 얼마나 늙어버린 것일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