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학년 성장여행-지리산종주(6/19~23) 여행 사진과 이야기 올립니다.(학부모님들은 '사진방'으로 가주세요)

작성자
나무꾼
작성일
2023-06-25 21:02
조회
294
2023년 6학년 성장여행-지리산종주(6/19~23)

 

안녕하세요. 나무꾼입니다^^

지난주 월요일(6/19)부터 금요일(/23)까지 6학년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습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고개를 지나 연하천, 장터목, 천왕봉에 오른 다음 중산리로 하산하여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 준비로 7kg 무게를 맞춰 칠보산에도 오르고 평소 운동도 꾸준히 하며 지리산을 기다려왔습니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컸지만 우린 무사히 종주를 하고 왔습니다.

산행 중 나눈 이야기는 태만이 힘들다는 말이었지만, 썰렁한 농담과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들 웃픈 얘기들을 나누며 이겨냈습니다.

그 풍경과 이야기들을 올립니다.

 



 

0619-월요일/ 수원->구례읍 숙소

 

미리 싸둔 여행 배낭에 도시락과 물통을 챙겨 평소대로 출근하였다. 10명의 아이들 이상없이 모두 여행배낭을 준비해왔다.

9시 전에 보조교사 버들쌤도 오셨다. 배낭, 준비물, 오늘 일정을 확인 후 10시 10분쯤 학교를 나섰다. 동생들과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배웅해주셨다.

원래 자목마을 버스정류장에서 13-1번 버스를 타고 수원역으로 갈까 하다 무거운 배낭의 감을 느껴야할 것 같아 솔내음캠핑장까지 걸어서 갔다.

어깨가 무겁다고는 해도 아직 할 만한 것같이 보였다. 마침 온 13번 버스를 타고 수원역으로 향했다. 수원역에서 한참 놀고 기다리다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기다리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수다를, 남자 아이들은 장기를 두었다. 요즘 한창 학교에서 고학년들이 즐겼는데, 어느새 휴대용 장기판을 챙겨 온 것이다.

12시 43분 구례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좌석을 돌려 서로 마주 보도록 했다. 긴 시간 동안 수다도 떨고 장기도 두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5시쯤 구례구역에 도착하여 정건 어머님, 초승달을 만났다. 버스편을 미리 알아두었는데, 버스 탈 시간이 6시여서 초승달이 두 번 숙소를 오가며 우리를 픽업해주셨다.

예일스테이. 5층까지 올라가 예약한 방에 짐을 풀었다. 방 크기는 넓어서 충분히 잘 수 있었다. 다만 화장실이 부족할 것 같아, 나중에 방 하나를 더 추가로 빌렸다.

다행히 에어컨도 작동하여 더위를 식혔다. 저녁을 먹어야 해서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국밥을 선호했지만, 아이들은 분식을 선택하여 분식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멀리 김밥천국이 있어서 밥을 먹고 각자 편의점을 찾아 내일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것을 샀다.

난 윤성, 태훈, 진서와 함께 가장 먼 편의점으로 향했다. 앞서 출발한 아이들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김밥류를 다 샀기 때문이다.

먼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산 다음 오는 길에 하나로마트에 들려 삼겹살과 아이스팩을 샀다.

가장 힘겨운 날이 될 연하천대피소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한다. 1인당 1줄씩 열두 줄을 샀다. 사고 보니 과연 사길 잘한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무거웠다.

그래도 먹는 기쁨을 생각하며 그대로 들고 숙소로 갔다. 한 팩(고기+아이스팩+보냉가방)은 진서가 맡고 나머지 한 팩은 내가 맡기로 했다.

다행히 진서가 ‘네. 선생님!’하며 맡아주었다. 든든한 녀석이다. 아이들 씻고 내일 갈 준비를 미리 하니 이미 10시가 넘었다.

아이들 모두 잠자리에 들게 하고 초승달과 나는 다른 방에 가서 2학기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다.

예매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예상한 가격대로 예매를 마칠 수 있었다.

초승달이 이번 여행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여러모로 처음부터 힘겨웠을 것이다. 초승달께 감사드린다. 초승달 만세!!!

나도 잠자리에 드니 12시가 넘었다. 아이고...3시 반에 어찌 일어나지...

 

 



성삼재휴게소입니다. 이때가 약 4시 40분쯤 됩니다.

 



여기는 바로 노고단 고개입니다.

 

0620-화요일/ 성삼재휴게소->연하천 대피소

 

새벽 3시 20분에 비몽사몽 일어났다. 서둘러 준비하고 4시쯤 숙소를 나가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탔다. 초승달과 택시 2대로 움직였다.

가면서 택시기사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 영향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성삼재로 바로 가는 버스편이 생겼다고 한다.

아, 그래서 성삼재 가는 버스를 찾기가 어려웠구나 싶었다. 물론 우리는 노고단대피소가 공사 중이라 구례읍에서 하룻밤 자는 일정이었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어차피 택시를 탔어야 했겠다. 한쪽의 편의가 생기니 다른 한쪽의 생계가 위협받는 일들을 들으며 성삼재휴게소로 가는 고갯길을 올랐다.

우리는 산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지만, 버스 기사들과 택시 기사들은 생업이 달린 일이었다. 도착하니 어두운 가운데 바람이 몹시 불었다.

조금씩 날이 개고 있었다. 초승달과 아이들이 도착하여 우린 기념사진을 찍고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 지리산 종주 첫발을 내딛었다. 4시 50분이었다.

내딛자마자 떠올랐다. 5년 전에 아이들과 이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10년 내로는 안 온다던 이 길을 말이다. 왜 이제야 생생하게 떠오르는건지...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노고단고개까지 내리막이 없는 경사여서 모두 힘겹게 올라갔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쉬었다. 새 건물로 다시 올리고 주변을 정리 중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숨을 돌렸다. 5시 40분이었다. 어떤 아이는 자기는 평소 8시에 일어나는데 아직 일어나려면 2시간 넘게 남았다며 웃었다.

그 아이는 안타깝게도 배낭을 다시 메니 웃음이 사라져있었다. 노고단 고개까지 다시 출발하였다. 날이 개는 풍경 속에 걷고 또 걸었다.

6시 14분에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였다. 편의점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해 뜬 주변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아 노고단 정상까지 갈까 하다가 아이들의 힘겨운 모습과 성삼재부터 시작한 하루를 생각하여 우리는 연하천대피소로 가기로 결정했다.

초승달과 건이, 태훈이는 노고단 정상까지 갔다가 하산하여 지리산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연하천으로 가면서 초반에 숨 돌리는 구간을 걸었다.

아이들은 한결 표정이 밝았다. ‘이런 길이면 좋겠어요!’라며 희망어린 얼굴이었다. ‘얘들아...달리 지리산이겠니...’ 좁고 잘잘한 돌길을 걷다가 지우가 발을 삐었다.

친구들이 지우 짐을 나눠 가졌다. 지우는 스틱에 의지하여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었다. 맨소래담 스프레이를 뿌리고 붕대를 하니 걸을 만 했던 것 갔다.

뒤에서 버들쌤이 지우랑 같이 걸었다. 걷다보니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힘든 구간, 숨 돌리는 구간 등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아이고... 힘들게 가면서도 아이들과 반달곰 이야기, 선배들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버텼다.

가면서 멧돼지 또는 반달곰 똥으로 보이는 검은색 큰 똥을 두 번이나 발견했다. 한편으론 삼겹살의 힘으로 연하천대피소까지 걸었다.

드디어 대피소에 도착하여 야외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으니 살 것 같았다. 물을 채워 마시니 시원했다.

3시쯤 도착했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면 비 맞을 것 같아서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프라이팬을 꺼내 삼겹살을 구웠다.

삼겹살 기름을 버릴 수 없어 휴지로 닦아냈다. 그렇게 먹은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다. 산과 힘겨움과 배고픔으로 맛있게 먹었다.

내가 소금을 많이 쳤는지 짜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다들 배부르게 먹었다. 고기가 남았는데 더 먹을 수 없어 잔반통에 버렸다.

아쉽지만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정리한 다음 내일 일정을 안내하고 바로 남녀 숙소로 흩어졌다.

아이들은 이날 대피소 화장실을 보며 가장 많이 놀랐다고 한다. 좌변기이지만 구멍이 뻥 뚫린 변기.

똥과 여러 가지가 그대로 보이는 변기...그 야생의 훈훈한 냄새와 함께. 저녁 먹을 때는 비가 내렸다 안 내렸다 하다가 밤부터 비가 휘몰아쳤다.

일찍 잠들었다가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온 몸이 뻐근했다.

대피소 밖은 이미 어두운 가운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 아침에 어떻게 출발하나...

 

 

0621-수요일/ 연하천 대피소-장터목 대피소

 

5시에 일어났다. 병린이가 밖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아직도 내리는구나. 밖에 나가보니 어젯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빗줄기가 애매했다.

그냥 가자니 샌들로 바꿔신고 판초의를 입어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멈출 것도 같았다. 아침을 먹으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침으로 미숫가루를 텀블러에 타 흔들어서 먹고 점심으로 먹을 밥을 지었다.

도시락도 싸고 정리가 끝난 다음 기다리다 더 시간을 늦출 수가 없어서 등산화는 그대로 신고 판초의만 입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안개비 정도만 왔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얼굴을 스쳤지만 견딜만했다. 하룻밤 자고 나니 다시 근육이 새로운 힘을 냈다. 그 힘으로 열심히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걸었다.

새로운 힘이 적어도 장터목까지는 버텨주겠지 싶었지만, 1시간도 못 갔다. 더욱이 진서와 나는 삼겹살이 없으니 가벼워졌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스팩(버릴 수 없는 것)을 다시 챙기니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또한 꽤 많이 걸었다 싶은데 이정표에 보이는 남은 거리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마치 3km를 걸었다 싶은데, 남은 거리는 2km-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거리재는 것이 직선거리다, 아니다, 걷는 거리다 하며 이정표 농간에 대해 화를 풀며 걸었다.

지우는 곧잘 따라왔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듯했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지우의 짐을 우리가 나눠지기로 했고 장터목까지 무사히 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자 말했다.

걸으면서 신기하게도 숨이 가빠오고 힘들만 하면 ‘당신의 심장은 안녕하십니까?’라는 푯말이 있었다. 우와, 진짜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본 것 같았다.

꼭 운전자들이 속도를 낼 만한 곳에 과속단속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일수록 산행속도를 줄여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장터목을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 어제처럼 ‘반달곰 출몰지역’ 푯말을 종종 보았다. 한편으로 실제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한텐 곰이 나타났을 때 대응법을 말하고 조심하자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지리산 반달곰은 대체 어디에서 먹고 자길래 똥만 등산로에 뿌려 놓고 보이질 않는 걸까?

장터목대피소보다 세석대피소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 세석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2시간 반만 가면 끝이다.-라고 얘기했는데,

그 세석대피소가 걸어도 걸어도 당최 보이질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벽소령대피소에서 넉다운이 되었기 때문이다.

12시쯤 약간 넓은 곳에서 이슬비 맞으며 맨밥에 김자반 또는 고추장으로 비벼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약 2시쯤 그렇게 그리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물 채우고 화장실 다녀온 다음 다시 천천히 출발했다. 출발하려다 보니 장터목으로 향하는 등산로 통제가 오후 3시였다.

연하천에서 출발할 때 꾸물되면 안되었겠다 싶었다. 날은 점차 개서 판초의를 벗었다. 구름이 걷히며 맑은 풍경을 보았다.

연하봉을 지나 4시 반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어제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할 때처럼 감동은 덜했지만 그래도 기쁨과 안도감은 컸다.

오늘 저녁은 라면이다. 삼겹살보다 더 기다리던 음식이다. 야외 테이블에 쌀과 라면, 버너와 냄비를 모은 다음 취사장으로 향했다.

먼저 저녁밥을 지어 도시락통에 나눠 담고, 냄비를 씻은 다음 2명씩 짝을 지어 라면을 끓여 먹었다.

행복한 얼굴로 라면과 밥을 먹은 다음 다시 도시락통과 냄비를 물티슈로 닦은 다음 내일 먹을 밥을 지었다. 미리 밥을 도시락통에 넣는 것이다.

한편, 나무꾼의 라면은 까마귀가 가져갔다. 야외 테이블에 라면을 놓았을 때, 아이들 먼저 취사장으로 가라 했고 대피소 안에 잠깐 들어갔다 왔는데,

라면만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저기, 까마귀가 집어 갔어요.’ 말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는데 다른 아주머니도 까마귀가 가져갔다고 하는 것이다.

휴...내가 그 브랜드 라면을 얼마나 좋아하고 오늘 하루를 그 라면 때문에 버텼는데... 허망한 기분을 그대로 느꼈다.

혹시나 싶어 대피소 주변을 한바뀌 돌았지만, 빨간 비닐봉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장터목에 왔을 때 까마귀가 보여서 ‘어, 까마귀네?’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앞으로 올 우리 수원칠보산자유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 장터목대피소에서는 까마귀를 조심하세요!!!

아이들이 국물과 면발을 나눠줘서 나도 무사히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일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 마지막날 일정을 안내한 후 남녀 대피소로 흩어져 쉬었다. 3시 40분 기상이라 일찍 자는 것이 좋다.

 



 

0622-목요일/ 장터목 대피소->천왕봉->중산리 숙소

 

3시 40분에 일어났다. 침낭을 개고 취사장으로 나왔다. 춥고 바람이 불었다. 미숫가루로 아침을 먹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썼다. 지우는 오늘 온전히 제 짐을 졌다.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준비하고 4시 40분에 출발했다. 다른 분들은 아직 대피소 안에 있었다. 아마 일출을 보기 어려워서 그런 듯 보였다.

위로 오를수록 바람이 더 세게 불고 기온이 내려갔다. 중간중간 쉬면서 말로만 듣던 천왕봉이 어떤지 떠올렸다.

마지막 오름구간을 지나 5시 45분쯤 정상에 올랐다. 다행히 바위와 돌이 많이 젖지 않아서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다. 그러나 정상은 안개비와 바람이 휘몰아쳤다.

정상 비석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옆에서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중산리로 넘어갈 준비를 하였다. 봉우리를 조금만 등지니 바람도 덜하고 견딜만 했다.

숙소에 너무 일찍 도착할까 싶어 천천히 움직였다. 하산길은 중산리까지 5.4km. 대략 6~7시간 정도 걸릴 듯 싶었다. 이제 힘든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칠보산 하산길은 즐거워서 뛰어내려올 수 있지만, 지리산 하산길은 그래서는 목숨이 위험해진다. 더욱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는 그러기 어렵다.

무릎을 덜덜 떨면서 한발한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왔다. 내려오며 다람쥐를 많이 만났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 와서 구경하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가곤 했다.

힘들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신이 났다. 아이들도 수다가 많아지고 얼굴이 밝았다. 하산도 힘들 길을 맞은 편에서 오르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며 지나쳤다. 법계사.로터리대피소에서 아침겸 점심 도시락을 먹고 길게 쉬며 충분히 쉬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3.3km다. 칼바위(평상이 있는)까지 가면 거의 끝난 셈이다라고 말하며 우리는 다시 출발하였다. 평상이 있는 칼바위까지도 꽤 길게 걸었다.

큰 오르막은 없었지만, 내리막은 계속되어서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드디어 평상을 발견하자 우리는 다 끝난 듯 서로 마주보며 좋아하였다.

평상에서 또 한참 쉰 다음, 1시간 정도 걸어 중산리탐방안내소로 나왔다. 아, 그때의 해방감이란!!!

탐방안내소 옆 화장실에 들렀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물이 나와요!’외치는 거였다. 물이 나오는 화장실을 만나면서 아이들은 이제 힘든 여정이 끝이 났음을 느낀 듯하다.

그동안 씻지도 못하고 물티슈로 생활했으니 그럴 만했다. 30분 정도 더 걸어가 숙소 근처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송펜션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내일 아침 버스시간과 요금표도 확인했다. 숙소로 들어와 떡진 머리와 땀에 절은 몸을 씻었다.

중간에 건이와 태훈이, 초승달과 합류하였다. 아이들이 건이와 태훈이를 반겨주었다. 초승달은 아이들에게 수박과 요구르트를 선물해주시고 다시 집으로 출발하셨다.

건이와 태훈이는 오전에 숙소에서 미리 씻고 짐 정리하고 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다른 여정을 나누었다.

다른 아이들은 가방 정리도 다시 하며 그동안 모은 쓰레기도 모아 버렸다. 여유 있게 개인정비시간을 가지며 부모님께 편지도 썼다.

오후 5시가 되어 미리 예약한 숙소 건물 1층 식당으로 갔다. 오리백숙과 죽을 배부르게 먹었다. 밥을 먹고 동네 산책할 겸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GS파와 CU파로 나누었다. 먹거리를 산 다음 인근 공원 공터에서 진놀이도 한 판 했다. 숙소로 돌아온다음 하루닫기를 하며 이번 여행을 돌아봤다.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화장실이 힘들었다. 천왕봉이 제일 힘들었다. 지리산 둘레길도 오래 걸었고 힘들었다.

부모님 두 분도 지리산에 와봤으면 좋겠다 등 각자 느낀 것들을 나눴다.

힘든 여정을 무사히 완주한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0623-금요일

 

모처럼 6시에 일어나 갈 준비를 했다. 침낭이 아닌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 아침 식사를 했다.

7시 30분쯤에 숙소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후 중산리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표를 발권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우리가 간 그 천왕봉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서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진주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터미널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먼저 밥을 먹을 팀, 기다릴 팀을 나누었다.

11시쯤 서로 교대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찾은 식당은 ‘역전꼬마김밥, 돈까스’였다. 난 아무래도 집에 가서 국밥을 먹어야하나보다.

중간에 빨간 우체통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고속버스터미널 뒤편에 우체국이 있어서 아이들이 부모님께 쓴 편지를 부치고 왔다.

아마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면 저녁에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자신이 쓴 편지를 읽을 것이다.

12시 40분이 되어 아이들과 수원으로 가는 버스에 배낭을 싣고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뒤로 조금씩 젖히며 편안히 갈 준비를 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수원에 도착했다. 4시 50분쯤 수원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맞이하러 오신 부모님들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준비하신 사탕목걸이도 목에 걸었다. 메달 초콜릿에 아이들은 씨익 웃었다.

부모님들 환대를 받으며 다들 집으로 향했다.

 

아마 지금은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겠지만, 여행 사진을 보면 다시 그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산행 중일 때는 힘겨움만 느꼈겠지만, 경험하고 난 다음엔 다른 것도 느껴지고 생각도 될 것이다.

적어도 그만한 힘겨움과 부딪칠 때 이겨낼 힘이 아이들도 모르게 내면에 생겼을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런 성장여행을 다녀온 수많은 듬직한 선배들과 같이 말이다.

또한 혼자 걷지 않고 같이 걸었던 친구들이 있기에 서로를 이어줄 그 무엇이 생겼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 중요한 그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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