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학년 2학기 원주여행 ②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10-26 08:21
조회
1902
무위당 장일순 할아버지와 백남기 할아버지
여행 전 책으로 만난 무위당 장일순 할아버지. 짧은 글과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며, 농부들과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한살림을 만든 분이라고 소개했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 겪었던 일 몇 가지 들려주었고, 더 자세한 건 크면서 배우라고 했다. (이 아이들 미래의 스승이시여, 미리 고맙습니다!) 1학기에 우리가 만났을지도 모를 문정현 신부님이나 백기완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떤 아이들에겐 살아있는 분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살짝 실망한 기색을 비친 아이가 있었으니. 좋은 어른을 만나고픈 마음이 아이에게도 있구나 싶어 아이의 실망이 반갑기도 했다.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은 소박한 곳이었다. 아이들마다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그 앞에 서 보았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에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모였다. 그게 왜 마음에 들었나 물었다. “그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어요?” 하고 한 아이가 되물었다. 하하하! 당연한 걸 마음에 들어 하는 아이들의 선택에 내가 다 뿌듯했다.
“세상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제일 위대한 사람이더라. 들에 핀 하나의 꽃도 일생을 그렇게 살더라.” 이 글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공책에 옮기던 아이가 있었다. 이런 걸 고를 줄 알다니, 참 고마운 아이다.
▶ 너희 나고 돈 났다!
강원감영 앞에는 백남기 할아버지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백남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져간 잡지에 백남기 할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기사가 실렸는데 몇몇 친구들이 그걸 꼼꼼 읽고는 물었다. 사람에게 왜 물대포를 쏘는지, 물대포를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병원에서 많이 힘드셨는지, 부검이 뭐고 왜 하는지, 가족들이 왜 부검을 반대하는지,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뭣하러 서울까지 와서 이런 일 당하셨는지, 사람들은 왜 시위를 하는지, 수원역에도 분향소가 있던데 강원도 원주에도 분향소가 있는 까닭이 뭔지.
고학년과 세상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지 않게, 혹시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게,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내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뭔가를 전하고 싶다. 아이들 눈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보이는데, 우리는 참 복잡하게 마주하고 있으니,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아이들과 함께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였는지 여행 마친 다음이었는지 나누었다. 우리들 마음이 모여 백남기 할아버지가 편히 쉴 거라고. 만났으면 좋았을 장일순 할아버지나 일찍 떠나신 백남기 할아버지 모두 다 고마운 분이라고.
▶ 분향소 앞에서
.
▶ 강원감영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본다. 죽음은 덧없고 생은 찬란하다고 했던가. 타인의 죽음을 덧없게 내버려두지 않는 너희들의 생이기를!
아름다운 나무들
우리의 숙소와 숙소를 둘러싼 자연은 퍽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강원도다운 울창한 나무가 특별히 멋있었다. 아직 단풍 때가 아니라 잎잎이 곱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하늘로 쭉 뻗은 가지들은 당당했고 땅에 뿌리내린 굵은 몸통은 듬직했다. 무언가를 눈에 담으면 마음이 그걸 닮게 된다. 그런 나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높아지고 커진다.
둘째날 용소막성당 앞 느티나무 다섯 그루 아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때때로 일어나는 소소한 다툼쯤이야 서로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같았다. 마을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셨다. 성당을 찾아온 분들(순례자?)은 아이들이 어쩜 이리 예쁘냐면서 내 분에는 넘치나 아이들 받기에는 마땅한 칭찬을 했다. 이럴 땐 꼭 내가 키운 자식들 같고 어깨가 으쓱^^
성당 마리아상 앞에서 어떤 아이가 기도를 했단다. 이번 여행 때 사정이 생겨서 집에 빨리 가게 해달라고. 여행 마지막날쯤 묻는다. 정말 기도하면 이뤄지는 게 맞는지. 자기 기도가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어쩌냐... 네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도 그 앞에서 기도를 해버렸는데. 우리가 4박5일간 한 명도 빠짐없이 여행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신이시여, 아직 공평하시고 무사無事하시군요!
▶ 용소막마을에서
휴양림 안에 있는 작은 전망대에 오르던 넷째 날이었을 거다. 숙소 있는 자리가 이미 산인데 무슨 산을 또 올라가냐, 이런 데까지 왔는데 숙소에서 베개싸움을 해야지 왜 산이냐, 학교 있는 곳도 산이요 여행도 산이요 숙소 있는 곳도 산이요, 산산산.... 아! 너무 힘들고 싫다.... 어차피 갈 거 다 아는데 속말이라도 해야 뭐가 풀리나 보다. 거듭 말하지만 부디 나를 탓하지 말아다오. 국토의 70%가 산지인 이 나라에서 태어난 네 운명이다. 언젠가는 고마워하고 즐기게 될 너의 운명.
전망대에 도달한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때, 정자에서 하하호호 웃을 때, 시장에서 사온 대추를 나눠먹으며 대추씨를 여기에 심으면 대추가 자랄까 이야기할 때, 작은 돌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 때... 그 표정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겠다. 살아있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얼굴들이었다. ‘저 이렇게 느끼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하고 온몸으로 말하는 자태랄까. 우리가 있는 곳이 아름다운 숲속이라 그랬을 것이고 마침 저물기 시작하는 태양의 아늑한 빛살이 깃들어 그리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잘 크고 있는 나무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리 예뻐 보였는지도^^
▶ 함께 쌓은 작은 돌탑
▶ 사진을 찍으려니 사뭇 진지해지는 어린이들
학교에 돌아와 아이들과 사진을 나누는데 빛이 담긴 나무 사진이 아름답다고, 그런 사진 하나쯤은 꼭 갖고 싶다고 했다. 신비롭게 빛나는 것을 동경하는 아이들 마음에 또 감탄했다.
▶ 우리 가는 길 곳곳에서 이런 빛을 만났다. 두 눈만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풍경
여행 전 책으로 만난 무위당 장일순 할아버지. 짧은 글과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며, 농부들과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한살림을 만든 분이라고 소개했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 겪었던 일 몇 가지 들려주었고, 더 자세한 건 크면서 배우라고 했다. (이 아이들 미래의 스승이시여, 미리 고맙습니다!) 1학기에 우리가 만났을지도 모를 문정현 신부님이나 백기완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떤 아이들에겐 살아있는 분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살짝 실망한 기색을 비친 아이가 있었으니. 좋은 어른을 만나고픈 마음이 아이에게도 있구나 싶어 아이의 실망이 반갑기도 했다.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은 소박한 곳이었다. 아이들마다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그 앞에 서 보았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에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모였다. 그게 왜 마음에 들었나 물었다. “그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어요?” 하고 한 아이가 되물었다. 하하하! 당연한 걸 마음에 들어 하는 아이들의 선택에 내가 다 뿌듯했다.
“세상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제일 위대한 사람이더라. 들에 핀 하나의 꽃도 일생을 그렇게 살더라.” 이 글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공책에 옮기던 아이가 있었다. 이런 걸 고를 줄 알다니, 참 고마운 아이다.
▶ 너희 나고 돈 났다!
강원감영 앞에는 백남기 할아버지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백남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져간 잡지에 백남기 할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기사가 실렸는데 몇몇 친구들이 그걸 꼼꼼 읽고는 물었다. 사람에게 왜 물대포를 쏘는지, 물대포를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병원에서 많이 힘드셨는지, 부검이 뭐고 왜 하는지, 가족들이 왜 부검을 반대하는지,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뭣하러 서울까지 와서 이런 일 당하셨는지, 사람들은 왜 시위를 하는지, 수원역에도 분향소가 있던데 강원도 원주에도 분향소가 있는 까닭이 뭔지.
고학년과 세상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지 않게, 혹시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게,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내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뭔가를 전하고 싶다. 아이들 눈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보이는데, 우리는 참 복잡하게 마주하고 있으니,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아이들과 함께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였는지 여행 마친 다음이었는지 나누었다. 우리들 마음이 모여 백남기 할아버지가 편히 쉴 거라고. 만났으면 좋았을 장일순 할아버지나 일찍 떠나신 백남기 할아버지 모두 다 고마운 분이라고.
▶ 분향소 앞에서
.
▶ 강원감영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본다. 죽음은 덧없고 생은 찬란하다고 했던가. 타인의 죽음을 덧없게 내버려두지 않는 너희들의 생이기를!
아름다운 나무들
우리의 숙소와 숙소를 둘러싼 자연은 퍽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강원도다운 울창한 나무가 특별히 멋있었다. 아직 단풍 때가 아니라 잎잎이 곱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하늘로 쭉 뻗은 가지들은 당당했고 땅에 뿌리내린 굵은 몸통은 듬직했다. 무언가를 눈에 담으면 마음이 그걸 닮게 된다. 그런 나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높아지고 커진다.
둘째날 용소막성당 앞 느티나무 다섯 그루 아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때때로 일어나는 소소한 다툼쯤이야 서로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같았다. 마을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셨다. 성당을 찾아온 분들(순례자?)은 아이들이 어쩜 이리 예쁘냐면서 내 분에는 넘치나 아이들 받기에는 마땅한 칭찬을 했다. 이럴 땐 꼭 내가 키운 자식들 같고 어깨가 으쓱^^
성당 마리아상 앞에서 어떤 아이가 기도를 했단다. 이번 여행 때 사정이 생겨서 집에 빨리 가게 해달라고. 여행 마지막날쯤 묻는다. 정말 기도하면 이뤄지는 게 맞는지. 자기 기도가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어쩌냐... 네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도 그 앞에서 기도를 해버렸는데. 우리가 4박5일간 한 명도 빠짐없이 여행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신이시여, 아직 공평하시고 무사無事하시군요!
▶ 용소막마을에서
휴양림 안에 있는 작은 전망대에 오르던 넷째 날이었을 거다. 숙소 있는 자리가 이미 산인데 무슨 산을 또 올라가냐, 이런 데까지 왔는데 숙소에서 베개싸움을 해야지 왜 산이냐, 학교 있는 곳도 산이요 여행도 산이요 숙소 있는 곳도 산이요, 산산산.... 아! 너무 힘들고 싫다.... 어차피 갈 거 다 아는데 속말이라도 해야 뭐가 풀리나 보다. 거듭 말하지만 부디 나를 탓하지 말아다오. 국토의 70%가 산지인 이 나라에서 태어난 네 운명이다. 언젠가는 고마워하고 즐기게 될 너의 운명.
전망대에 도달한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때, 정자에서 하하호호 웃을 때, 시장에서 사온 대추를 나눠먹으며 대추씨를 여기에 심으면 대추가 자랄까 이야기할 때, 작은 돌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 때... 그 표정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겠다. 살아있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얼굴들이었다. ‘저 이렇게 느끼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하고 온몸으로 말하는 자태랄까. 우리가 있는 곳이 아름다운 숲속이라 그랬을 것이고 마침 저물기 시작하는 태양의 아늑한 빛살이 깃들어 그리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잘 크고 있는 나무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리 예뻐 보였는지도^^
▶ 함께 쌓은 작은 돌탑
▶ 사진을 찍으려니 사뭇 진지해지는 어린이들
학교에 돌아와 아이들과 사진을 나누는데 빛이 담긴 나무 사진이 아름답다고, 그런 사진 하나쯤은 꼭 갖고 싶다고 했다. 신비롭게 빛나는 것을 동경하는 아이들 마음에 또 감탄했다.
▶ 우리 가는 길 곳곳에서 이런 빛을 만났다. 두 눈만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풍경
오랜만에 보는 4학년 아이들!!
정말 많이 자랐네요!
가야선생님의 재미난 후기와 아름다은 사진-잘 보았습니다!(늦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