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비가와도 비가개도

작성자
해님
작성일
2021-06-02 19:27
조회
863


우산 넷이 나란히 걸렸다.

여름에 들어선 요즘 전보다 비 내리는 날이 부쩍 늘었다.

원래 이 때 날씨가 그런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비 온 뒤 하늘이 선물처럼 주어져 시작된 여름이 싫지 않다.

비가 그치자마자 뛰어나간 오총사! 할 것 놀 것이 더 많다.

창가로 시선을 돌리면 ‘은행잎이 언제 저렇게 자랐나?’ 놀란다. 비 덕분에 더 푸르고 크게 잘 자라는 것 같다. 찔레꽃도 하양을 뽐내고 아카시아꽃도 하양과 향내를 뽐낸다.



텃밭에 ‘추추’(상추-우리가 붙여준 이름)도 힘껏 자라 두 번이나 잎을 따먹고, 감자도 꽃몽우리를 키운다.

풀마다 이름이 있는데, 잡초라 뭉쳐 이름 부른다.

비온 뒤에는 쏙쏙 잘 뽑혀 텃밭일이 아직 재밌다.

감자 꽃 몽우리를 자세히 살피고 그렸다. 꽃이 더 피면 첫 꽃은 따주어야 한다고 하니 오총사가 갸우뚱 한다.

감자를 키우려면 꽃을 따버리라니?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것 같다.



텃밭에 나설 때마다 하나씩 잡초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련다. 오늘은 ‘명아주’ 찾기다. 삐쭉삐죽 모양과 향기로 찾았던 냉이와 달리 잎이 자라 비슷비슷 하다. 냉이처럼 가만히 봐야 보인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명아주, 꽃다지, 괭이밥, 씀바귀, 민들레... 선생이 알고 있는 밑천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봐두어야지.



봄을 마칠 땐 ‘학교살이’를 했는데, 여름이 시작하자마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하루 방학에다 첫 기차나들이를 다녀왔다.

무엇보다 ‘기차나들이’는 코로나 검사를 안 받아서 너무 좋다.

형님들 여행 갈 때 마다 마당에 나가 배웅했던 것이 부러웠는지 우리 기차여행도 모두 나와서 박수쳐요?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리가 교실마다 문 두드리며 인사 하고 길을 나섰다. (‘7월에 학년 여행 나설 때 전교생 모두 나오고 플랜카드도 걸어주세요!’)



코로나19와 함께 한(?) 지난 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몸에 스몄나 보다. 누구하나 마스크를 만지지도, 벗지도 않는다. “쉿!” 눈짓하니 도란도란 조용히 이야기 나눈다.

“우리 엄마 어렸을 때는 여기에 어떤 아저씨가 먹을 것 담아서 수레 끌고 갔었데요.”

기차하면 소세지와 삶은 계란은 역사 속에서나 기억될 일 되어버렸다.

눈치-눈치 살피다 살짝 의자를 돌려주었는데 맘이 좌불안석이다.

십여 분 뒤 다시 거리 두어 앉았다.

반쪽의 기차여행이 된 것 같지만 오총사는 기차 탄 것 만 으로도 신났다.

기차에 내렸는데 군인아저씨들이 내리고 탄다. 올 해 만날 군인을 다 만난 것 같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똑같은 군복과 군인이라는 이름 속에 한 명이 된 익명의 젊은이들...

씩씩하고 힘이 센 군인아저씨...

서로 다른 시선으로 그 들을 끝까지 바라본다. 손을 흔든다.

조치원역 앞에서 군인처럼 경례한 사진은 이러한 이유로  탄생했다.



우리 마을 둘레 너머 나선 첫 여행지는 복숭아가 유명하다는 조치원의 문화정원이다.

옛 정수장을 정비한 곳에서 우리 마을 이름을 만난다. (눈치채셨나요? 사진 속에서?)

예전에는 물을 많이 담아두었던 곳이라 ‘수원지길’이라 한다.

우리 마을도 예부터 물이 많아 ‘수원’이라 불렸다.

정수장을 둘러보기 무섭게 쌩~ 하고 뛴다. 짚라인이다. 어느새 비도 그쳤다. 하늘이 어찌나 밝고 맑은지 가슴이 뻥 뚫린다.



요즘은 어린이들과 도시락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여럿이 둘러앉아 마스크 벗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정자 그늘에 둘러앉아 조심스레 마스크 벗었다. 점심 때라 공원에 나온 어른들, 모처럼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반가운지 보내는 눈빛이 다행이 따스하다.

할머니들은 “애가 넷이유?” 인사를 건넨다.

맛난 점심 먹고 신나게 놀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 저게 뭐야?’ 펌프다. 어찌 알았을까 손잡이를 당기더니 손 씻는 흉내를 낸다.

갑자기 담벼락이 물놀이터다. 예쁜 담벼락 마다 사진을 찍는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호매실- 최대 지을 수 있는 비율에 따라 건물들이 들어서니 자목마을에서도 낮은 담 찾기 쉽지 않다.

이렇게 발 끝 세워 들여 볼 수 있는 담이 반갑다.

몇 해 뒤 아이들은 우리 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까?

(아래 사진은 머릿속에 도깨비 음악 깔아주세요.)



시장 구경 나섰다. 오디, 찐빵, 꽈배기, 닭 강정, 신발, 두부, 인형...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많다. 간식 한 가지 사주기로 약속해서 착한? 해님 되었다. 착한? 아이들도 해님에게 이 것 저 것 사달라 조르지 않는다.

저들끼리 간식을 하나로 정했다. 1000원에 3개 꽈배기! 싸다! 싸! 역 광장에서 멀리 멀리 떨어서 얼른 하나 먹는다.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기차에서 쿨쿨 잠에 빠졌다.

"우리 또 어디 갈까?"

전체 6

  • 2021-06-02 19:42
    오총사가 아니고 사형제라고 반이름을 바꿔야 하려나요 ㅎㅎㅎ
    학교오고 쌤이랑 첫 장거리 여행이었는데 잘 다녀온것같은데~ 맞지요?
    7월 학년여행 갈때는 형님들 모두의 배웅을 받길!!! ^^ㅋ

  • 2021-06-03 07:20
    풀(?) 이름은 말씀하신것도 모름요..^^ㅎ
    착한 해님과 착한 아이들의 즐건생활~~!!
    사랑입니다~~^^

  • 2021-06-03 15:16
    오총사..대장님과 네 형제..ㅋ
    이런 오붓한 여행이 또 매력이 있네요.^^

  • 2021-06-04 15:07
    "애가 넷이유?" ㅎㅎㅎ

  • 2021-06-07 10:47
    슬기 동생 기대하겠습니다.

  • 2021-06-11 21:24
    장면이 상상되는 자세한 여행이야기, 감사히 읽었어요~
    지난번 저희가 민들레에서도 나누었지만, 저도 텍스트형 인간인지 이런 긴 글이 읽는 재미가 더 크네요. ^^

    올해 오총사반 활동 모습을 보며 자주 느끼는데, 소수정예로 축복받은 학년인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