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우리를 힘들게 하는 말

작성자
해님
작성일
2021-12-14 15:45
조회
745
아침부터 계곡에서 얼음낚시 한다며 힘차게 나섰던 아이들. 그 중 한 아이가 교실로 돌아왔다. 재밌는 놀이 중 한 녀석이 쪼르르 온다는 건 뭔가 불편함이 생겼다는 신호다. "모두 나빴어." 아무 말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화난 마음을 큰 소리로 쏟아내니,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절대 사과해도 안 받아 줄 거야. 모두 나빴어." 까닭을 들어보니 충분히 속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친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저마다 자기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이야기 같다. 때로는 지금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난 앞 일까지 영향을 끼친다. 1학년과 생활하다 보면 이런 소소한 다툼이 많다.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지만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 쉽지 않고 의미가 크지 않을 때도 있다.



시비를 가려주는 선생이 되기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우선 귀 기울여 듣는 선생이 되고 싶다. 자기 이야기에 “응~” 맞장구치는 모습이 심판관 보다 더 영향이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럼 해님한테 다 말 한다~” 하는 아이들을 보면 공정한 판정을 원하는 것만 같다.(아닐 것이라 믿는다. 육총사) 곧바로 선생한테 말하면 ‘이름보(어른에게 잘 일러바친다는 뜻 인가봄.)’가 되거나 “그래, 일러라 일러. 나도 이를 꺼다.”로 대꾸하는데 어른에게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전에 먼저 친구에게 요청하는 말을 알려주고 있다. 내 감정을 전하고 친구에게 원하는 행동을 말하라고 일러준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내뱉는 말 “아이 씨.” “나! 화났어.” 자칼말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려준다. 주먹을 쥐고 흔들거나 툭툭 때리는 행동이 자칼 행동임을 일깨워주는 일이 1학년 무렵 중요한 배움이다.

무게를 갖고 이야기해야 할 때는 <평화의 징>을 울리고 <절명상>을 할 때가 있었다. 1학기 때는 욕과 거친 말이 주제였고, 2학기에는 놀림 말과 실내화 숨기기였다. 2주 동안 여러 상황에서 실내화 숨기기가 이뤄졌는데 놀다가 삐진 친구를 골려주려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나를 귀찮게 따라다닌 누군가를, 아무이유 없이 그냥 숨기기도 했다. 따뜻하고 좋은 기운이 퍼지는 것은 참 더딘데 좋지 않은 기운이 퍼지는 것은 더 빠른 것 같다. 이 맘 때 선생도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어느 순간 “왜 그랬을까?” 아이의 마음을 읽기 보다는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듯, 무조건 혼내는 선생으로 육총사에게 비춰졌을 것이다. 동료 교사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문제가 된 행동을 시간 순서로 기록해 봤다. 맥락을 살피고 보니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난의 경계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함에 중심을 갖기로 했다. 관련된 아이와는 속상한 마음을 물건을 숨기거나 던지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이야기 나눴다. 어울림 시간에는 반 전체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말>을 주제로 나눴다.

“친구가 미안해하면 괜찮고, 내가 하면 좀 싫어요.”


"아이 씨~ 저가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데 딴사람이 하면 기분이 안 좋아요.“


“다른 사람이 말하면 머리가 폭팔하도록 싫고 내가 말하면 폭팔해서 좋아요.”


“내가 말하는 건 모르겠고, **친구가 말하면 싫어요.”


"니 상관없으니까 끼어 들 지마."


“형들이 임마라고 할 때 싫어요.”


"없애버릴까?" "그냥 주먹으로 때려버릴까?"


칠판 한 가득 듣기 싫은 말을 모아 쓴 후 <화가 호로록 풀리는 말>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는 덜 쓰겠다고 약속하고 수시로 일깨워 주지만 쉽게 다듬어지지는 않는다. 자기감정이 앞서고 다른 친구의 상황이나 감정을 살피는 것이 덜 되는 것을 본대로 알려준다.

때론 선생이 일깨워 주 것보다 앞서 학교생활을 한 형님이 일깨워 주는 것이 더 아이들에게 닿는다. 한 아이가 철딱지를 치며 “죽어라. 죽어라.”외쳤다. 가만 듣던 5학년 형이 “얘들아, 놀이할 때라도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알려준다. 야구 하는 형들 사이로 뛰어다니거나 무덤가에서 함부로 놀 때도 형들이 일깨워준다. 피구를 할 때도 얼굴은 피해 공 던지기, 서로 돌아가며 공 던질 순서를 정하는 우리학교만의 약속도 사실 형들에게 먼저 배운다. 함께 놀며 문화에 젖어 들고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1학년 교실 안에서는 아직도 얼렁뚱땅 제멋대로지만 다른 학년과 만나는 자치 활동이나 여행 수업에서는 귀여운 1학년이 되는 걸 보면 교실 밖에서도 열심히 배우고 있으리라 믿는다.

소나기, 아라솔 선생님께 매달리며 2학년 때 우리의 담임선생님이 되어달라고 조르는 모습도 하나도 안 서운하다. 너희들이 스무 살이 될 무렵 육총사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가 알려줄 참이니까.

전체 3

  • 2021-12-15 10:25
    칠판에 쓰여있는 말들을 보니 집에서 종종쓰는 말도 보이네요.. 갈길이 멀군요ㅠㅠ
    2학년 되기전에는 좀.. 나아지려나요?^^;

  • 2021-12-15 12:06
    아......
    이거......
    해님쌤...
    마지막 말 괜시리 혼자 울컥했음요...ㅠㅜ

    고맙습니다~~!!

  • 2021-12-18 20:43
    내년에 동생들이 들어오면 2학년이 된 육총사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학기말이 되면 항상 짝사랑인듯한 그런 마음^^ 아이들 크는 게 아깝고 아쉽고.. 아이들은 부쩍 자라서 미래를 향해 가는 데 나는 여기에 혹은 어제에 머물러 있구나 싶을 때가 있더라구요. 한해 애 많이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