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강‘자유와 생명의 공동체’ 수원칠보산자유학교는,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고,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져서 2008년부터 열린강좌 ‘아이와 강’을 꾸준히 열고있습니다. 아이는 자라고, 강은 흐릅니다. 아이와 강은 우리에게는 큰 화두와 같습니다. 아이와 강은 그 존재 자체로서 생명을 상징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순수하고, 강은 늘 생명을 품어 줍니다.  아이와 강은 한결같지만 또 얽매임 없는 자유입니다. 우리 모두 아이에서 출발하여 자라고, 흐르고 또 만나고 이어집니다. 우리는 생명과 자유, 자라고 만나고 이어지는 아이와 강에게 배웁니다

2017년 4월 30일 아이와강 -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 졸업생들을 모시고

작성자
(4소윤2재윤맘)
작성일
2017-05-03 12:46
조회
560
⟪2017 모꼬지 토크콘서트⟫


· 장 소: 무봉산청소년수련원
· 시 간: 2017년 4월 30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 강연자: 1기 졸업생 최은솔, 4기 졸업생 권혜민, 5기 졸업생 최한민
· 기 록: 소윤재윤모 (배움분과)


바다별: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다. 정해진 질문이 끝난 후 부모님들과 학생들이 궁금한 것도 질문해주시라. 1기 졸업생 최은솔, 4기 졸업생 권혜민, 5기 졸업생 최한민을 자리로 모시겠다.

최은솔: 1기 졸업생 최은솔이다. 어느덧 24세가 되었고, 대학교 4학년 졸업반에 있다. 자유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께서 충남 홍성으로 귀촌을 하셔서 중학교는 일반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산청 간디를 다녔다. 중간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1년 정도 다녀온 후 남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현재 전남대학교 사범대학을 다니는 중이다.

권혜민: 칠보산 자유학교를 졸업한 후 산돌학교에 진학했다. 산돌학교는 5년제여서 19세에 사회에 나오게 된다. 졸업 후 2년간 놀다가 현재 대학에서 메이크업을 전공 중이다.

최한민: 자유학교를 졸업한 후 금산간디 중학교를 갔다가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국민대학교 기계공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질문 1>
바다별: 자기 진로를 찾아가는 고민의 과정을 자세히 들려주시면 좋겠다.

초록샘: 혜민이의 경우 2년간 놀았다고 했는데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최한민: 고등학교 때는 치열하게 공부만 했다. 치열한 경쟁구도를 경험했다. 상대적으로 느끼거나 고민한 것이 적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초등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 있었다. 초등 때는 선생님들께서 관리 및 케어를 해주셔서 저는 억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중학교는 초등에 비해 자유로웠다. 자유로운만큼 방황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중2때 감정 표현들이 많이 터져 나왔다. 에너지를 어떻게 쏟아내야 할지 몰라 친구들과 몰래 시내에 나가 놀기도 하고 밤에 몰래 나가 산책도 했다. 학교가 산 밑이라 산책길이 예뻤다. (일동 웃음) 밴드 활동도 하고 친구들과 밤에 몰래 치킨도 시켜먹고 등등...

초록샘: 진로 선택을 할 때 고등학교 때 치열하게 공부한 뒤 어떻게 진로 선택을 했는지가 궁금하다.

최한민: 진로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지 공부를 하고 싶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한 번 해봐야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남들처럼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공부를 하고 그 환경에 적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과 연결이 되었다. 고2때 천천히 생각을 했는데, 당시 물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물리와 연결된 전공을 선택했다.

권혜민: 나의 경우 산돌에 진학을 했는데, 산돌은 마지막 학년에 진로찾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1년을 보낸다. 친구들은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로 졸업을 했다. 내가 그나마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이 메이크업이어서 산돌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선배를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고 그 선배가 다녔던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열아홉-스물은 알바-여행을 반복하는 삶이었다. 그러다가 스무 살 4월에 검정고시를 봤다. 검정고시 점수가 내신으로 인정되는 대학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검정고시 준비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은 후 또다시 알바-여행의 삶이 이어졌다.

최은솔: 나는 상촌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자유학교 5학년에 편입을 했다. 6학년 때는 실상사 작은학교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해서 합격도 했었는데 발우공양과 같은 힘든 점이 있어서 홍성에 있는 작은 일반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가정환경이 힘든 친구들도 많았고 해서 나는 친구관계에 문제가 많았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미국에 가게 되었다. 나에게는 도피의 느낌이었고 엄마에게는 영어를 위한 것, 아빠는 나를 어디에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에 다녀온 후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간디 3년은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잊을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시기였다. 대안학교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준비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진로를 결정할 때 내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당시 물리선생님도 존경스러웠고 물리도 좋았었기 때문에 물리교육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질문2>
바다별: 초등 시절에 말도 거의 안 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말을 잘 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학교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들려주고, 현재 고민이 되는 점을 이야기해달라.

최은솔: 대안학교에서 일반학교를 갈 때 그 초반이 정말 힘들었다. 자유학교에서 홍성의 일반학교에 갔을 때 선후배 관계에 적응이 어려웠다. 자유학교에서는 언니들과 당연히 반말을 사용했는데 중학교에서 언니들에게 반말을 사용했다가 혼난 일도 있었다. 시골 일반학교에서는 부모님들의 따뜻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친구들이 또래에 훨씬 의존하고 뭉쳐 다니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간디학교는 좋았는데, 대학교에 입학했더니 엠티를 가면 군기를 잡는다거나 그런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불합리한 것이 있을 때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것이 힘들었다.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내가 유일했다. 지금 현재의 고민은.. 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 경쟁률이 정말 높아서 과연 합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스트레스가 크다.

권혜민: 힘들었던 시절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5년 동안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마지막 학년 때는 진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졸업한 후 검정고시를 보거나 수능을 볼 생각이 없어서 바로 알바를 시작했는데, 일반학교를 졸업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대안학교 졸업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말을 했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이 “거기 소년원 같은 곳 아니냐”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기숙형 학교를 다녔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들 내가 부자인 줄 안다. (일동 웃음)
대학에서 중간고사를 봤는데, 평가가 상대평가더라. 평가 결과가 나중에 취업에 다 반영이 되니 굉장히 열심히 수업을 듣고 시험 준비도 열심히 했다. 시험이 다가오는데 친구들한테 카톡이 와서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등을 묻더라. 알려주기 싫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옹졸한 나도 싫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최한민: 관계에 있어서 주로 여자 친구들이 힘들어 한다. 나는 관계에 있어 힘든 점은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때 경쟁구도에 들어가면서 그때부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등급을 매기고 상대평가니까 누군가는 1-9 등급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의식하니까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비판을 많이 했다. 이게 맞는 것인지.. “경쟁이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경쟁구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피 말리게 경쟁하고 견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질문3>
바다별: 아이들이 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겪은 사회가 우리가 속한 사회구도와 비슷한 것 같다. 내부고발을 하면 주위에서는 무마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을 아이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민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초록샘: 대안학교에 있다가 일반 사회를 만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질문을 많이 하신다. 또한 공부 면에서 다름이 없는지.

최한민: 처음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다른 친구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소수이고 친구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도 굽히지 않았다. ‘내가 옳은 건데 지금은 내가 옳다고 말을 못하겠고 내가 큰 위치에 올라가면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냥 말해가지고는 설득력이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처음에 잘 적응을 못하고 내가 다르다고 느껴졌다.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이 나에게는 자존감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대안학교 공부는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배움에 목적이 있는데, 일반학교 공부는 이론 공부이고 점수를 많이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공부에 관해 건강한 생각을 덜 하는 것 같다.



<질문4>
초록샘: 적응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대안학교를 다닌 후 다른 문화를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했는지가 궁금하다. ‘자존감이 높은 것이 힘이 된다.’ 라는 것이 예가 될 수 있겠다.

권혜민: 나에게는 다른 사회에 대한 반감이 별로 없었다. 무엇이든 겪어봐야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새로운 것들에 대해 우선은 부딪치고 보는 편이다. 나는 긍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봤다는 마음이랄까. 대안학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는 아무도 나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나의 기술 습득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것이 이분법적이다. 예쁘거나 못생기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대안학교에서는 다양함이 존재했는데, 지금 내가 속한 사회는 나와 같냐 다르냐 두 가지인 것 같다.

최은솔: 대안학교에서는 수업다운 수업을 한다. 일반학교에서는 ‘아, 이걸 왜 하고 있을까? 시험을 위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도 무언가를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점수를 잘 받으려고만 공부하는 것 같았다. 대학에서도 그렇다.



<청중 질문>
바다별: 아쉽지만 최한민 군이 먼저 가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선 최한민 군을 중심으로 질문을 좀 받아보도록 하겠다.

=질문1
황찬우모: 대학의 공부는 대안학교의 공부와 일반학교의 공부 중 어떤 것과 더 비슷하다고 느끼는가. 또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언제 만난 친구들인지.

최한민: 대학 공부도 고등학교 공부와 비슷하다. 교수님은 말씀하시고 친구들은 열심히 받아 적고 외운다.
제일 많이 만나는 친구들은 중학교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경우 경쟁을 하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잘 지낸다. 그래도 가장 마음이 맞는 친구들은 중학교 친구들이다.

나무꾼: 전공 수업은 그렇다 치고 교양 수업은 좀 다르지 않은가.

최한민: 교양은 다음 학기에 듣는데 재미있고 괜찮은 교양 수업도 많아 보인다. 내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여성사회, 젠더에 관한 문제이다. 다음 학기에는 그런 것에 대해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다.



=질문2
정은규모: 나에게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데 대안에 아이들을 보낼 때 (딸을 보낼 때와 아들을 보낼 때) 느낌이 달랐다. 본인이 자녀가 생긴다면 대안학교를 보낼 것인지?

최한민: 초등 때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멋모르고 입학을 한 것 같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두 군데를 다 보내보고 선택권을 주고 싶다. 중학교에 입학을 할 때에는 아이의 의사를 물어서 선택하도록 하고 싶다. 사실 결정을 할 때 경제적인 문제가 클 것 같다. 경제적인 부담이 해결된다면 대안학교를 보내면 좋겠다. 나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

권혜민: 나에게 선택권이 있나 싶다. 내가 자유학교에 오게 된 계기는 친구였다. 나는 공부를 안 한다는 말에 자유학교로 옮겨왔다. 중학교에 갈 때는 일반 중학교를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맡기셨다. 내가 인생 선배로서 나의 아이들에게 조언은 해줄 수 있겠지만, 내가 결정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은솔: 나는 당연히 대안학교 보내야지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동 웃음) 대안학교를 안 좋게 보는 남자랑은 아예 결혼을 안 해야겠다.



=질문3
김은강부: 관계 면에 있어서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거치고 성장을 해나가는데 인지 부분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을까 부모로서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공부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땠었는지 좀 더 듣고 싶다.

최한민: 우리 부모님들도 그랬고 다른 대안 친구들의 부모님들도 그랬다. 다들 걱정이 많으시다. 그런데 일반학교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똑같은 걱정을 하시고 그래서 학원들도 보내고 하시는 것 같다. 공부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걱정이 되시더라도 표현을 하지 않고 기다려주시면 좋겠다. 대신 아이에게 책임을 지워주면 좋겠다.



=질문4
초록샘: 입시 공부를 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학원의 형태로 공부하는데 한민이는 어땠는지.

최한민: 나도 학원도 다녀보고 과외도 해봤다. 그런데 학원도, 과외도 도움을 받는 정도이지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이다. 고등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뒤처질까봐 많이 걱정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뒤처지지 않았고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질문5
이해찬모: 지금까지 키워주신 부모님께 한 말씀 드린다면?

최한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시고 너무 티를 내셔서 엄마가 밉기도 했다. 아버지는 잘 기다려주신 편이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어머니는 공부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다. 그래도 대안교육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질문6
바다별: 토크콘서트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한민: 대안학교에 다니는 것이 내가 소수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수로 느껴지겠지만,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큰 잠재력이 생기는 것 같다. 친구들도 인정을 해준다. 내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걱정보다는 자존감을 키워주셨으면 한다.
(최한민 퇴장)



=질문7
이재서.수연부: 재서가 중학생이 되었고 서서히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권혜민: 나도 기숙학교에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떨어져 있는 것이다. 주말에 학교에 있다가 월요일에 다시 등교를 하는데, 주말에는 반가워서 싸울 틈이 없었고, 방학 때는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다. 졸업 후 1년 동안에도 엄마와 정말 많이 부딪혔다.

최은솔: 진짜 명답이다. 떨어지는 것. 중학교는 부모님과 함께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떨어져 지냈다. 하지만 함께 있건 떨어져 있건 대화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권혜민: 그리고 떨어져 지낸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족여행을 갔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더라.



=질문8
초록샘: 특히 여학생들은 관계 문제를 정말 많이 겪는 것 같다. 겪고 난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지?

권혜민: 산돌 친구들과는 관계 문제가 없다. 나에게 맞춰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가족 같은 느낌이다. 5년이란 세월을 무시할 수 없다. 일반학교에서 1년 만에 반이 바뀌는데 애들은 어떻게 친구를 사귀나 궁금하다. 대학에서도 관계 때문에 힘들었다. 산돌학교에서는 20명 정도가 우리 반이었는데 대학에서는 40-50명과 친해져야 한다. 나는 적은 수의 친구들과 깊이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은솔: 일반학교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 중에 누구 한 명이 제외되면 영원히 왕따가 되는 느낌. 그 무리에 끼려면 애들 말 들어야 하고 맞춰줘야 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간디를 다닐 때도 관계는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최소한 그렇게 무리지어 다니지는 않았다. 두루두루 친해졌고 소수의 친구들과 깊게 친해졌다. 안 좋을 일이 있어도 간디에서는 풀 시간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아이들이 훨씬 살벌하고 이기적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서로 속이는 경우도 많고.



=질문9
찬우모: 등록금과 용돈은 지금 어떻게 해결하는가?

최은솔: 나는 국립대에 다녀서 나름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빨리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동 웃음)
권혜민: 등록금이 비싸다. 400만원이 넘는다. 등록금을 할아버지가 내주셨다. 용돈은 한 달에 50만원을 받는데, 그런데도 너무 빨리 써버려서 알바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일동 웃음) 알바를 하지 않고 아껴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질문10
김나은부: 교과과정 중에 진로에 대한 시간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다.

권혜민: 처음에는 ‘3인행’이라고 해서 세 명이 짝을 이루어 스승으로 삼을만한 직업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있다. 나는 그 때 찾고 싶은 스승이 없어서 그냥 친구들을 쫓아다녔다. 그 다음 ‘인턴십’ 과정이 있다. 나는 업사이클링 분야에서 인턴을 했다. 힘들었는데 현실을 깨달으면서 꿈을 접게 되었다. 하지만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고 도움도 많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졸업작품, 졸업논문’이다. 나는 에세이집을 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보통 친구들은 뚜렷해지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이끌어준 과정 자체는 좋았는데 내가 나의 길을 못 찾았다고 생각한다. 뭘 더 한다고 해서 더 나은 건 아니다.

최은솔: 산청간디에서 현실이 이렇게 힘든 곳이라는 것을 안 알려줬을 뿐, 진로 수업은 잘 되어 있다. 여러 진로에 대해 탐색하고 인턴십도 다녀왔다. 일반학교 아이들은 대학 진학에만 관심이 있는데.. 대학 입시는 전략 싸움이고 운도 좋아야 하는데 간디 선생님들이 자기소개서 준비 등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다.



=질문11
이한결.어진모: 혜민양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을 많이 하셨다는데 어떤 여행이 기억에 남는지, 은솔양은 대안학교 교사에 뜻은 없으신지,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 오실 마음은 없으신지.

권혜민: 돈이 없어서 가난한 여행을 했다. 처음 갔던 곳은 라오스와 태국. 내 힘으로 가는 첫 여행이어서 서툴렀지만 재미있었다. 검정고시 후에는 유럽에 갔다. 풍물 치면서 버스킹을 해보자 해서 풍물 악기를 가져갔다. 파리, 스페인, 포르투갈에 갔고 돈을 꽤 벌기도 했다. 벌어봤자 저녁 사 먹을 정도였지만. 산돌학교에는 풍물 문화가 발달해있다. 산돌에 있을 때는 서로의 풍물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 당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오히려 유럽에서는 항상 반응이 좋아서 풍물을 즐길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주로 카페에서 했다. 여담이지만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진상 손님들이 정말 많다. 집에서 아빠한테도 내가 자주 당부하는데, 여기 계시는 부모님들도 카페에 가시면 알바생들에게 잘해주시기 바란다. (일동 웃음)

최은솔: 내일부터 일반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나간다. 일반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일반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일반학교에 다닐 때 주로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힘이 되는 선생님들도 몇 분 계셨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아직은 대안학교 교사에 대한 생각은 많지 않다.



=질문12
바다별: 앞으로의 계획은?

최은솔: 얼른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점이 많지만 조금씩 바꿔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국에서도 교환학생을 했지만, 유럽에서도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그곳의 학교들을 탐방하는 기회도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 돌아올 때는 정겹고 눈물이 날 것처럼 반가웠는데, 유럽에서 학교들을 돌아보고 난 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정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권혜민: 나는 꿈이 없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 메이크업을 평생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해보자 하는 마음이다.



=질문13
바다별: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최은솔: 지식적인 면에서 우리 아이들이 부족하지 않을까 부모님의 입장에서 많이 걱정이 되실 것 같은데, 대안학교에서 조금 다른 공부를 했다고 바라봐주시면 어떨까 한다. 일반학교 공부가 많이 남는 공부는 아니다. 뒤처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는 친구 중에 대안중, 대안고등학교 나와서 대학에 간 친구가 있다. 공부를 전혀 안 했던 친구였는데 대학에서 올 A+을 받았다더라.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도 있고 새로 뵙는 분들도 많은데, 이런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권혜민: 나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에서 나는 마음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순서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교육 후에 자기마음공부 순서로 가는데, 나는 순서가 반대였다. 대안학교 친구들이 시야가 넓은 것 같다.

초록샘: 이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일 때는 좀 더 면밀하게 지켜볼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보니 그 사이 정말 멋지게 자라난 것 같다.



<소감나누기>
이한결.어진모: 어떤 토크콘서트보다도 재미있었다. 민들레 모임을 하다 보면 나중에 졸업해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하던 부분이었는데, 그것을 오늘 잘 풀어주셔서 감사했다. 아이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줘야지 생각하지만 늘 실천이 힘든데, 그렇게 믿어주면 아이들이 저렇게 잘 자라는구나 확인을 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김은강부: 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정답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오늘 졸업생들이 많이 이야기해주셨다. 관계에서 갈등은 늘 있겠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똑같은데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겠다.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길섶: 나는 20대 후반인데, 20대 초반에 내 친구들을 떠올렸을 때 이렇게 말을 잘 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존감도 높은 청년들을 처음 본 것 같다. 대단한 것 같다.

손주원모: 딸이 중학생인데 딸이 나에게 질문을 해도 다 대답을 못해줄 때가 많다. 이런 자리에 와서 이야기 듣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조아현부: 여기 모여 있는 부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성인(어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김안나부: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학교에서는 사교육이 금지이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초록샘: 여러 가지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면 동시에 사교육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은솔이와 혜민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

최은솔: 여러 가지 경험이란 것이 당연히 사교육을 의미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대안학교 다니면서 사교육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사교육 정말 반대이고,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충족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혜민: 나는 피아노, 미술, 영어 학원을 다 다녀봤다. 사교육을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겠는 것이 모든 것이 입시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미술 학원도 다니다보면 상을 받아오라고 하고, 피아노도 실력이 안 되는데 어려운 책으로 올라가도록 한다. 사교육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선생님들은 덜 계신 것 같다. 대학생인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다보면 선생님의 이런 면은 좋은 것 같고, 저런 면은 아닌 것 같다, 가려서 받아들이게 되는데 초등학생들은 본인이 좋고 나쁜 것을 가려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인 것 같다.

이재서.수연부: 예전에 성미산 졸업생들을 모셔서 했던 토크콘서트에서 정말 멋진 청년들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9년 만에 다시 이런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멋지다, 잘 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있는 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왜 자식을 그렇게 실험적으로 키우느냐”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친구들이 맞는가 헷갈리기도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멋지게 자란 청년들을 보고 나니 다시 우리가 가는 길이 맞다는 믿음이 생긴다.

이태경.나경모: 태경이가 올해 우리 중등에 들어갔다. 나는 항상 아이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하는데, 그렇게 자꾸만 말을 하는 내가 사실을 불안해하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아이를 더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