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학년 2학기 원주여행 ③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10-26 08:32
조회
760
보조교사 없이

어딘가를 다닐 때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갈 수는 없다. 출발을 함께 해도 자연스레 멀어진다. 저 앞에 가는 아이와 뒤에 오는 아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는 순간이 있기도 했는데 선두에서 잘 조절해주었다. 뒤를 차지한 아이들도 힘을 내고 부지런을 내었다. 시장에서 밥을 사먹을 때 교사가 한 명이라 어쩌나 싶었는데, 선생님 한 명이니까 우리들이 잘 다녀야 한다며 세 모둠으로 나눠서 다녔고 다들 약속장소까지 무사히 찾아왔다.
여행 때 보조교사가 없으면 당연히 걱정이 된다. 갑자기 아프거나 너무 재밌게 놀다 다치면 어떡하지. 아이들 말고 내가. 어떤 아이들도 비슷한 걱정을 하면서, 선생님이 아프면 우리들끼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내가 아플 일은 절대 없고, 혹시 아프더라도 너희들은 아주아주 잘하는 아이들이니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아이들은 이 말을 굳게 믿었다! 자기들이 정말 잘하는 아이라는 걸.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여행수첩에 나와 있는 대로 버스를 타고 수원에 돌아갈 거란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귀엽게 악용했는데, 여행 마지막날 선생님이 자꾸 청소를 시키는 걸 보니 집에 안 가고 하루 더 자려고 시간을 질질 끄는 것 같다고 자기들끼리 원주터미널로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청소도 다 안 한 채로. 차표도 없이^^
(이번 2학기 여행에 3,4학년 모두 보조교사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으리라 담임교사들이 판단했나, 있으면 굳이 마다하지는 않았겠지. 여행 마지막 날 산 선생님과 짧은 통화하면서 우리 둘만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3,4학년 아이들을 과대평가한 우리들의 시선과 이렇게 밤낮을 온전히 함께 지내보니 그동안의 아이들이 더 이해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 우리가 대체 어디쯤 있나





▶ 어디든 잘 찾아가는 아이들





▶ 산길에서 만난 죽은 뱀. 사람들 안 다니는 곳에 옮겨주었다. 그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우리들뿐이긴 했으나.





▶ 계곡에서 돌을 던지며 노는 아이들





▶이 힘으로 훗날 안나푸르나도 가고 알프스도 가리라





▶ 학교에서 가져간 은행을 구워먹는 아이들





▶ 밤밥을 지으려고 산에서 주운 밤을 까는 아이





▶ 숙소에 문이 너무 많아 이름표를 붙였다. 학교 청소구역 쓰레기 분리수거를 맡은 4학년답게 숙소에 작은 분리수거장도 만들었다.





▶ 나란히 누워도 자고 일어나면 이렇게 뒤엉켜 있다





▶ 집에 올 때도 읽게 되는 부모님 편지




전설이 될 것이다

“선생님 애들 데리고 다니느라 힘드시지요?”
휴양림을 떠날 때 그곳 선생님이 묻는다.
“저희가 선생님 따라다니느라 힘든데요.”
한 아이가 대답한다.

하하하! 이 정도의 여행으로 힘들다고? 단언하지만 이번 4학년 여행은 지금까지 어떤 여행보다도 아주 편안했다. 졸업한 아이들이 와서 “선생님 요즘 애들 어떻게 키우는 거예욧!” 따질 만큼 편안한 여행^^

옛날에 말야, 어떤 선배들이 있었거든.
학교 앞에 있는 저 노란 은행을 300개씩 500개씩 가득가득 주웠단다. 그걸 정성껏 까고 씻고 말리고 구워서 여행비를 20만원 가까이나 벌었지.
우리 학교에선 보조교사가 여행에 함께 가잖아. 그런데 이 선배들은 보조교사 없이 여행을 떠났어. 역할을 나눠맡아서 함께 준비했단다. 기자도 있고, 청소반장도 있고, 기상반장도 있고, 요리사도 있었어. 다 자기 역할을 잘했지.
어떤 형이 여행대장을 맡았거든. 그 형아는 대장노릇을 어떻게 했게? 애들이 청소를 잘했는지 살펴보다가 좀 지저분하면 애들에게 막 뭐라고 했을까? “너네 잘 치워!” 아니아니, 글쎄 자기가 남몰래 다 치우는 거야. 친구들도 힘들다고. 그리고 버스를 탈 때 못 앉는 아이들이 있으면 빈자리 찾아서 앉히고 그랬어. 자기도 다리 아프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씩씩하게 가서는 길도 잘 물어보고. 우리들도 그럴 수 있겠지?
어머나! 여행 중간에 집에서 싸온 반찬이 똑 떨어져버렸어. 하지만 아무 반찬이 없어도 밥을 얼마나 맛있게 먹은 줄 아니? 나중엔 된장에 고춧가루에 밥을 비벼먹는 것 있지. 뭐 반찬이 떨어지면 어때. 구하면 되거든. 산에서 자라는 버섯을 따와서 요리 해먹은 형이 있었어. 진짜 맛있는 버섯이었어. 시장에 갔더니 똑같은 버섯을 팔더라. 오가며 밤을 줍기도 했단다. 참! 시장에서 고구마를 사고는 당근을 덤으로 얻어온 형도 있었어.
여행을 가면 알게 되는데 우리가 싸는 짐의 절반은 필요 없을 걸. 그러니 팍팍 줄여봐. 여벌옷 한 벌로 4박5일 잘 지낸 형님들이 있어. 너무 더러우면 빨아 입으면 돼. 안 마르면 그냥 입던 거 입고.
너희들 여행 때 걸어 다닐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힘들지? 사람이 자꾸 걷다보면 축지법을 쓰게 되는 거 알아? 한 시간 반이나 걸린 거리를 다음날엔 한 시간 만에, 그 다음날엔 30분 만에 걸어갔단다. 못 믿겠지? 축지법의 비결? 깜깜할 때 걸어야 더 빨리 걷게 돼.
치악산 깊은 산자락에서 튼튼한 나무막대기 두 개를 구해선 그걸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던 여자애들이 있었어. 폼은 히말라야 등반가들 뺨칠 정도였는데, 오르막길 내리막길 만날 때마다 나무막대기 들고 잘 다녔지. 여행 내내 친구가 되었던 막대기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글쎄 그걸 수원까지 갖고 왔지 뭐야. 그 막대기를 들고 버스에 어떻게 탔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걸. 막대기는 걔네들 집안 가보로 대대로 전해진대. 보고 싶으면 너희들 소개해줄 수도 있어.
그리고 희한한 일이 있었어. 숙소에 들어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잖아. 근데 열쇠가 없는데도 숙소에 들어가 놀았다지. 대체 어떻게 열쇠 없이 숙소에 들어갔을까? 힌트는 스파이더맨! 진짜 대단한 아이들이지.
집을 떠나려면 걱정이 되지? 엄마아빠 보고 싶고 몸이 좀 아프기도 하고. 여행이면 몸이 아픈 친구가 있었는데 이번엔 나흘째 밤에만 잠깐 아프다 말았단다. 우리 학교 여행은 씩씩한 힘을 주나 봐.
1박2일만 여행 할 거라고, 절대 집에서 못 떠난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어.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 친구를 데리고 그냥 떠나버렸지. 그런데 세상에나! 여행 다녀와서 변해버린 거야. 앞으로는 5박6일도 도전할 수 있겠대. 우리 학교엔 신비한 힘이 있는 게 맞지?

2016년 4학년 여행 이야기는 내가 맡을 다른 아이들에게
적절한 윤색과 각색, 그리고 와전을 거듭하며
전설이 되어서 살아 숨 쉴 것이다.
나도 화를 안 내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실현불가능한 꿈을 꾸며
전설이 되려고 노력하겠지^^

덧없는 덧.
4학년 부모님들, 여행비 또 내셔야겠습니다.
이번엔 1박2일이나 2박3일쯤 여행을 가고 싶다 합니다.
보조교사 없이, 경치 좋은 곳으로.
정취도 풍경도 소용없게 할 짐일랑은 줄이고 줄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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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들 얼굴이 고루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해해주시길요.
사진 찍는 솜씨가 영....
전체 1

  • 2016-10-28 17:03
    후기를 보니 제가 뒤를 졸졸 따라다닌 느낌이에요. 후기 고맙습니다..
    남자친구들 얼굴에선 벌써 청년티가 나는 듯 하고.. 아가들이 많이 컸어요..
    여행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