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학년 성장여행-오키나와평화대행진-이야기#2
작성자
나무꾼
작성일
2018-05-23 15:34
조회
2235
*누리집 용량관계로 좀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여기는 손님들도 보시는 게시판이니, 본 누리집 사진방의 '6학년 성장여행 이야기-안내'글을 클릭하여
제 블로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5/13일
이 날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했습니다. 5시 30분에 일어나 기노완시청으로 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평화대행진 마지막날로 오전엔 후텐마비행장 포위시위를 하고 오후엔 집회로 마무리합니다. 서둘러 준비하여
7시 30분에 숙소에서 기노완시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능동안 한기덕 선생님과 일본, 오키나와, 한국의 이모저모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노완시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시청으로 갔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총집결하여 각 무리마다 만장을 들고 모였습니다.
한국참가단과도 만났습니다. 행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중 11일 행진 동안 선두차량 안에서 마이크로 행진, 시위를 독려하던 마이미씨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늘 오후 마무리 집회 때 아이들과 같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를 부르며 세월호 플래시몹을 보여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감사를 드렸고, 오후 집회 때 뵙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약속된대로 만장을 든 무리마다 차례대로 출발하였고 우리는 한국참가단과 함께 행진 대열의 중간보다 앞 쪽에 서게 되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주위 도로를 행진하면서 시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날도 여지없이 하늘엔 헬리콥터가 떠 있고, 행진 옆에는 우익 차량이 방해를 하였습니다.
시내 행진인데도 아이들은 11일 행진 때보다 더 목말라 하고 힘들어하였습니다. 중간에 한국말을 할 줄 아시는 일본할머니로부터 사탕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라고. 힘든 데 사탕이라도 먹으며 힘 내라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사탕과 어른들의 배려 속에 끝까지 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우익차량의 위험한 행동도 있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인 해변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여 도시락을 먹고 무대에 올라설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날 점심은 삼각김밥이었는데, 아이들이 만들었습니다. 시중에 파는 삼각김밥과 같았습니다.
공연장 바로 앞에서는 어느쪽인지 모를 어른들이 소식지, 정보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우리는 애써 피하였습니다.
시청에 모였을 때 잘 모르고 받아든 정보지는 우익사람들이 준 정보지였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는 따가웠지만, 주최하는 분들이 우리 자리를 미리 마련해주셔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햇볕이 너무 따가웠는지 아이들이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잠시 그늘에 있다가 나오곤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무대 뒤 준비하는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초록샘 선생님과 한기덕 선생님이 소통과 준비를 해주셨고,
저는 음향 쪽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노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밖 공원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공연장에 들어오지 않아도 공원에서 다들 자유롭게 모여 앉아 하나의 바람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마이미상과 같이 부르기로 했지만 변경되어 우리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세월호 플래시몹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해찬이가 미리 준비된 응원의 말을 일본말로 전해드리고 노래에 맞춰 플래시몹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힘을 내어 몸짓을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어른들이 크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공연 후 마지막 집회까지 마무리하고 우리도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무리즈음 모치즈키 목사님을 만나 14~16일 일정을 점검하였습니다. 돌아가려는데 오키나와타임즈 여기자가 와서 한번 더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터뷰 후 한국참가단 어른들과 마지막 인사(한국참가단은 다음날 귀국)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11일날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먹이라 돈을 주신 어른이
이번에도 주시려하시기에 괜찮다고 그 마음에 너무 감사드린다며 다음에 제주도에서 연락드릴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내내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한기덕 선생님과 모치즈키 목사님이 우리 대신 차량을 가지러 가신 동안에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크림을 먹으며 더위와 피곤함을 달랬습니다. 편의점 한 구석에 모인 우리 모습이 정말 진풍경이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두 분이 차량을 가지고 오셨고 차에 탄 후 오키나와 아이들을 만나러 소이소이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작년에 만난 그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 가니 미리 준비하신 듯 음료와 과자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곳 아이들과 모리상(숙소의 모리상과 다른 분입니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는 지역 놀이방/공부방입니다.
지역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열려있는 곳입니다. 그 곳을 운영하는 분은 다른 곳에서 수익을 내어 소이소이하우스 같은 곳을 운영하고 늘리려 하였습니다.
모리상 말씀이, 올해 1월에도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헬리콥터 창문이 떨어져 모두 대피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체육시간이어서 운동장에 아이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답니다. 그 후 사이렌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대피해야한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이런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합니다. 책으로만 본 비행기 추락사고, 또는 사건 사고가 모리상의 말을 들으며 어느정도 실감이 났습니다.
평화행진대열에 오키나와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는 지, 그 분들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왜 나이드신 분들이 집회와 시위에 나서야할 정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근처 편의점에서 편지봉투를 사서 5,000엔을 기부하였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습니다. 마지막 밤이라서 숙소의 여러 어른들이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도 조그만 선물들을 각각 마련하여 각각 전해드리며 이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키요타카상과 요시다상은 우리 아이들이 쓴 엽서 내용을 전해달라하여 짧은 일어로 긴 시간에 걸쳐 전해드렸습니다.
키요타카상, 모리상은 나름대로 메시지와 그림을 그려 코팅한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짧은 날들 중에 만난 인연이 소중하였습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같은 인간으로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애뜻하게 나누었습니다.
서로 문화가 달라도 마음과 뜻이 통할 때 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는가 느꼈습니다.
기노완 시청입니다.
오후, 마지막 평화 집회 때 공연 전 마이미상과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서 오키나와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습니다.
5/14일
평화대행진 일정은 끝났지만 남은 일정도 바쁩니다. 6시에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합니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살피고 정리는 잘 됐는지도 살폈습니다. 숙소의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고 요미탄촌으로 향했습니다.
요미탄촌에는 1945년 4월 1일 미군상륙지점이 있고 치비치리가마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큰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가는 도중 모치즈키 목사님과 만나 요미탄촌의 '한의 비'를 보러 갔습니다. 한의 비는 전쟁 당시 한국인의 죽음을 위로하는 부조와 비를 말합니다.
풀숲을 지나 누가 관리할까 싶은 곳에 가니 부조와 비가 있었습니다. 비의 내용을 같이 나누며 잠시 묵념을 올렸습니다.
한의비 다음으로 치비치리 가마와 시무쿠 가마로 향했습니다. 가마는 자연적인 동굴을 말하는데, 전쟁 당시 많은 오키나와인들이 가마로 피신했답니다.
그런데 일본군들의 세뇌와 전쟁상황으로 인해 처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치비치리 가마에 피신한 약 140명 가운데 80명이 자결, 학살 당했다고 합니다.
시무쿠 가마는 영어를 할 줄 알고 정보를 아는 두 사람이 오키나와인들을 설득해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비치리 가마는 쿠로이(검은) 가마, 시무쿠 가마는 시로이(흰) 가마라고 합니다.
두 가마는 오후에 사키마 미술관의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전쟁상황과 사람들이 왜 죽이고 죽어야 했는지 등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두 가마를 본 후 모치즈키 목사님이 예약한 식당에서 오키나와소바(고기국수)를 먹었습니다. 두꺼운 돼지고기 두 점을 얹은 국수인데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고 난 다음 가데나 미군기지로 향했습니다.
미군기지 앞에 전망대가 있는데 전쟁과 일본정부, 미군기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었습니다. 3층 전망대에서는 카메라를 가진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건 사고가 있을 지 몰라 대기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사키마 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사키마 미술관은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가 미군으로 부터 땅을 돌려받아 세운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후대로 하여금 잊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가니 사키마 관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미술과의 가장 큰 그림-마루키이리, 마루키토시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찍는 사진도 허락해주셨습니다. 마루키부부가 그린 작품은 1945년 당시 전쟁의 비극이 담겨 있었습니다.
치비치리가마와 시무쿠가마도 있고 오키나와 남쪽 절벽과 그 절벽에서 밀려 떨어져 죽은 이들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의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담고 있는 바가 직접 느껴지고 다가왔습니다. 천천히 작품들을 보고 미술관 옥상으로 가보았습니다.
옥상에서 서쪽을 향한 난간이 있는데, 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 구멍으로, 매해 6월 23일(전쟁 종료선포) 해질 녁에 해가 들어온다고 합니다.(6월 23일 이후에도 전쟁종료선포를 못들은 사람들의 게릴라전 들이 있어 계속 사람들이 죽었답니다.) 다음으로는 가카즈 고대-라는 곳에 갔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을 볼 수 있는 달팽이집 모양의 전망대인데 그곳에서 후텐마 비행장과 오스프레이-수직이착륙기-를 봤습니다.
그 넓은 비행장을 단 200명의 미군이 운용한다고 합니다. 전망대 주변의 비와 참호 등을 보고 남은 일정의 숙소인 사시키 교회로 향했습니다.
한참을 달려 난조시로 향했고 사시키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가나이소 목사님 부부와 인사를 나눈 뒤 짐을 풀고 저녁을 해 먹었습니다.
여학생들과 초록샘 선생님은 예배당 안 작은 방에서 자고 남학생들과 한기덕 선생님, 저는 예배당 긴 의자 두 개를 붙여 하나의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짐 풀고 숙소 부엌이나 에어컨, 선풍기, 빨래 관련 일들을 안내받느라 늦은 시간에 잠들었습니다.
빨래가 여의치 않아 저는 빨래방에 다녀왔습니다. 공간이 넓어 우리가 사용하기에 괜찮았습니다.
헤노코 숙소에서 출발 하기 전 다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의 비 입니다.
치비치리 가마입니다.
시무쿠 가마입니다.
사키마 미술관, 마루키이리.마루키토시 부부의 작품입니다. 1945년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사시키 교회에서 짐을 풀고 모치즈키 목사님의 산신 연주를 들었습니다.
5/15일
오늘은 좀 여유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엔 슈리성을 가고 점심 때 전통시장을 들렀다가 오후는 해변에서는 여유를 즐기는 날입니다.
아이들도 이날 만 기다렸습니다. 해변에서 노는 것보다도 전통시장에 가서 뭔가를 산다는 것을 한껏 기대하였습니다.
여행 중 처음으로 7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아침에 주원이는 주원이 주먹만한 달팽이도 보았습니다.
일전의 소라게도 그렇고 이 날 본 달팽이도 그렇고 오키나와는 모두 큰 가봅니다. 일어난 자리들을 정리한 후 가나이소목사님과 인사한 후 길을 떠났습니다.
슈리성 근처에 주차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외에도 관광객들이 이미 많이 와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 본토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아 슈리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슈리성으로 올라갔습니다.
특별히 크거나 독특한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성은 아닙니다. 류큐왕국시대의 상징이자 전쟁의 희생이 된 오키나와를 증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성 안에는 전쟁과 관련한 것은 거의 없고 류큐왕국시대의 문화와 역사, 왕성의 재현 위주로 되어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류큐왕국을 나타내는. 한기덕 선생님 설명 덕에 풍성한 오전이 되었습니다. 슈리성을 나와 오키나와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돈키호테'인데 왜 이름이 돈키호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장이 굉장히 크고 물건도 다양하며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아이들과 둘러보고 점심도 먹으며 충분한 장구경을 하였습니다. 기념품을 사고나서야 '할거 다했다~'는 듯 만족스런 표정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해변에서 물놀이이니 처음으로 여유로운 날을 즐겼습니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고 숙소로 오니 가나이소 목사님이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며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사시키교회에서 자고난 다음 날입니다.
5/16일
전 날 최대한 짐을 싸고 점검하였습니다. 이제 공항으로 가야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 아침에도 마지막 식재료를 비우고 가방 점검을 하였습니다. 예배당 의자들도 원래대로 돌려놓았습니다.
오전에 평화기념공원에 갔다가 공항으로 가면 바로 집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차에 가방을 싣고 가나이소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시간 맞춰 오신 모치즈키 목사님과 같이 평화기념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에서 제일 먼저 한국인위령탑에 먼저 들렀습니다.
공원 내에서 큰 부지와 거대한 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기덕 선생님은 그렇게 크고 거대하게 만들지 않아도 될텐데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엔 한국인과 더불어 일본인, 오키나와인, 미군, 영국인, 북한 사람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은 것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화기념공원의 비석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들의 국적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치즈키 목사님 설명에 의하면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닌 것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일일이 다 확인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사키마 미술관의 그 그림에 있는 절벽도 실제 보았습니다.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당시 마지막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죽은 장군이 있던 언덕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평화기념자료관을 돌아보며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위령탑으로 먼저 갔습니다.
아이들 너머 보이는 절벽에서 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전쟁당시 폭격으로 불타버린 슈리성입니다.
여행 전 생각했던 것보다 특별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아마 아이들에게도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여행 일정에 고된 점도 있으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난 것,
평화행진, 집회를 방해하는 우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행진과 집회, 시위를 이끌어가고 힘을 보태주는 오키나와 주민들
아이들은 전통시장의 다양한 볼거리들과 해변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여행 동안 만난 던 분들과 그 마음, 뜻도 함께 보고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과 평화에 대해 배우고 알아갈수록 이번 여행이 다시 떠오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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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했습니다. 5시 30분에 일어나 기노완시청으로 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평화대행진 마지막날로 오전엔 후텐마비행장 포위시위를 하고 오후엔 집회로 마무리합니다. 서둘러 준비하여
7시 30분에 숙소에서 기노완시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능동안 한기덕 선생님과 일본, 오키나와, 한국의 이모저모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노완시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시청으로 갔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총집결하여 각 무리마다 만장을 들고 모였습니다.
한국참가단과도 만났습니다. 행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중 11일 행진 동안 선두차량 안에서 마이크로 행진, 시위를 독려하던 마이미씨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늘 오후 마무리 집회 때 아이들과 같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를 부르며 세월호 플래시몹을 보여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감사를 드렸고, 오후 집회 때 뵙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약속된대로 만장을 든 무리마다 차례대로 출발하였고 우리는 한국참가단과 함께 행진 대열의 중간보다 앞 쪽에 서게 되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주위 도로를 행진하면서 시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날도 여지없이 하늘엔 헬리콥터가 떠 있고, 행진 옆에는 우익 차량이 방해를 하였습니다.
시내 행진인데도 아이들은 11일 행진 때보다 더 목말라 하고 힘들어하였습니다. 중간에 한국말을 할 줄 아시는 일본할머니로부터 사탕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라고. 힘든 데 사탕이라도 먹으며 힘 내라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사탕과 어른들의 배려 속에 끝까지 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우익차량의 위험한 행동도 있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인 해변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여 도시락을 먹고 무대에 올라설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날 점심은 삼각김밥이었는데, 아이들이 만들었습니다. 시중에 파는 삼각김밥과 같았습니다.
공연장 바로 앞에서는 어느쪽인지 모를 어른들이 소식지, 정보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우리는 애써 피하였습니다.
시청에 모였을 때 잘 모르고 받아든 정보지는 우익사람들이 준 정보지였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는 따가웠지만, 주최하는 분들이 우리 자리를 미리 마련해주셔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햇볕이 너무 따가웠는지 아이들이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잠시 그늘에 있다가 나오곤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무대 뒤 준비하는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초록샘 선생님과 한기덕 선생님이 소통과 준비를 해주셨고,
저는 음향 쪽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노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밖 공원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공연장에 들어오지 않아도 공원에서 다들 자유롭게 모여 앉아 하나의 바람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마이미상과 같이 부르기로 했지만 변경되어 우리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세월호 플래시몹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해찬이가 미리 준비된 응원의 말을 일본말로 전해드리고 노래에 맞춰 플래시몹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힘을 내어 몸짓을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어른들이 크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공연 후 마지막 집회까지 마무리하고 우리도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무리즈음 모치즈키 목사님을 만나 14~16일 일정을 점검하였습니다. 돌아가려는데 오키나와타임즈 여기자가 와서 한번 더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터뷰 후 한국참가단 어른들과 마지막 인사(한국참가단은 다음날 귀국)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11일날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먹이라 돈을 주신 어른이
이번에도 주시려하시기에 괜찮다고 그 마음에 너무 감사드린다며 다음에 제주도에서 연락드릴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내내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한기덕 선생님과 모치즈키 목사님이 우리 대신 차량을 가지러 가신 동안에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크림을 먹으며 더위와 피곤함을 달랬습니다. 편의점 한 구석에 모인 우리 모습이 정말 진풍경이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두 분이 차량을 가지고 오셨고 차에 탄 후 오키나와 아이들을 만나러 소이소이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작년에 만난 그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 가니 미리 준비하신 듯 음료와 과자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곳 아이들과 모리상(숙소의 모리상과 다른 분입니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는 지역 놀이방/공부방입니다.
지역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열려있는 곳입니다. 그 곳을 운영하는 분은 다른 곳에서 수익을 내어 소이소이하우스 같은 곳을 운영하고 늘리려 하였습니다.
모리상 말씀이, 올해 1월에도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헬리콥터 창문이 떨어져 모두 대피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체육시간이어서 운동장에 아이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답니다. 그 후 사이렌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대피해야한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이런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합니다. 책으로만 본 비행기 추락사고, 또는 사건 사고가 모리상의 말을 들으며 어느정도 실감이 났습니다.
평화행진대열에 오키나와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는 지, 그 분들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왜 나이드신 분들이 집회와 시위에 나서야할 정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근처 편의점에서 편지봉투를 사서 5,000엔을 기부하였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습니다. 마지막 밤이라서 숙소의 여러 어른들이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도 조그만 선물들을 각각 마련하여 각각 전해드리며 이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키요타카상과 요시다상은 우리 아이들이 쓴 엽서 내용을 전해달라하여 짧은 일어로 긴 시간에 걸쳐 전해드렸습니다.
키요타카상, 모리상은 나름대로 메시지와 그림을 그려 코팅한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짧은 날들 중에 만난 인연이 소중하였습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같은 인간으로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애뜻하게 나누었습니다.
서로 문화가 달라도 마음과 뜻이 통할 때 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는가 느꼈습니다.
기노완 시청입니다.
오후, 마지막 평화 집회 때 공연 전 마이미상과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소이소이하우스에서 오키나와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습니다.
5/14일
평화대행진 일정은 끝났지만 남은 일정도 바쁩니다. 6시에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합니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살피고 정리는 잘 됐는지도 살폈습니다. 숙소의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고 요미탄촌으로 향했습니다.
요미탄촌에는 1945년 4월 1일 미군상륙지점이 있고 치비치리가마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큰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가는 도중 모치즈키 목사님과 만나 요미탄촌의 '한의 비'를 보러 갔습니다. 한의 비는 전쟁 당시 한국인의 죽음을 위로하는 부조와 비를 말합니다.
풀숲을 지나 누가 관리할까 싶은 곳에 가니 부조와 비가 있었습니다. 비의 내용을 같이 나누며 잠시 묵념을 올렸습니다.
한의비 다음으로 치비치리 가마와 시무쿠 가마로 향했습니다. 가마는 자연적인 동굴을 말하는데, 전쟁 당시 많은 오키나와인들이 가마로 피신했답니다.
그런데 일본군들의 세뇌와 전쟁상황으로 인해 처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치비치리 가마에 피신한 약 140명 가운데 80명이 자결, 학살 당했다고 합니다.
시무쿠 가마는 영어를 할 줄 알고 정보를 아는 두 사람이 오키나와인들을 설득해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비치리 가마는 쿠로이(검은) 가마, 시무쿠 가마는 시로이(흰) 가마라고 합니다.
두 가마는 오후에 사키마 미술관의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전쟁상황과 사람들이 왜 죽이고 죽어야 했는지 등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두 가마를 본 후 모치즈키 목사님이 예약한 식당에서 오키나와소바(고기국수)를 먹었습니다. 두꺼운 돼지고기 두 점을 얹은 국수인데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고 난 다음 가데나 미군기지로 향했습니다.
미군기지 앞에 전망대가 있는데 전쟁과 일본정부, 미군기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었습니다. 3층 전망대에서는 카메라를 가진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건 사고가 있을 지 몰라 대기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사키마 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사키마 미술관은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가 미군으로 부터 땅을 돌려받아 세운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후대로 하여금 잊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가니 사키마 관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미술과의 가장 큰 그림-마루키이리, 마루키토시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찍는 사진도 허락해주셨습니다. 마루키부부가 그린 작품은 1945년 당시 전쟁의 비극이 담겨 있었습니다.
치비치리가마와 시무쿠가마도 있고 오키나와 남쪽 절벽과 그 절벽에서 밀려 떨어져 죽은 이들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의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담고 있는 바가 직접 느껴지고 다가왔습니다. 천천히 작품들을 보고 미술관 옥상으로 가보았습니다.
옥상에서 서쪽을 향한 난간이 있는데, 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 구멍으로, 매해 6월 23일(전쟁 종료선포) 해질 녁에 해가 들어온다고 합니다.(6월 23일 이후에도 전쟁종료선포를 못들은 사람들의 게릴라전 들이 있어 계속 사람들이 죽었답니다.) 다음으로는 가카즈 고대-라는 곳에 갔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을 볼 수 있는 달팽이집 모양의 전망대인데 그곳에서 후텐마 비행장과 오스프레이-수직이착륙기-를 봤습니다.
그 넓은 비행장을 단 200명의 미군이 운용한다고 합니다. 전망대 주변의 비와 참호 등을 보고 남은 일정의 숙소인 사시키 교회로 향했습니다.
한참을 달려 난조시로 향했고 사시키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가나이소 목사님 부부와 인사를 나눈 뒤 짐을 풀고 저녁을 해 먹었습니다.
여학생들과 초록샘 선생님은 예배당 안 작은 방에서 자고 남학생들과 한기덕 선생님, 저는 예배당 긴 의자 두 개를 붙여 하나의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짐 풀고 숙소 부엌이나 에어컨, 선풍기, 빨래 관련 일들을 안내받느라 늦은 시간에 잠들었습니다.
빨래가 여의치 않아 저는 빨래방에 다녀왔습니다. 공간이 넓어 우리가 사용하기에 괜찮았습니다.
헤노코 숙소에서 출발 하기 전 다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의 비 입니다.
치비치리 가마입니다.
시무쿠 가마입니다.
사키마 미술관, 마루키이리.마루키토시 부부의 작품입니다. 1945년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사시키 교회에서 짐을 풀고 모치즈키 목사님의 산신 연주를 들었습니다.
5/15일
오늘은 좀 여유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엔 슈리성을 가고 점심 때 전통시장을 들렀다가 오후는 해변에서는 여유를 즐기는 날입니다.
아이들도 이날 만 기다렸습니다. 해변에서 노는 것보다도 전통시장에 가서 뭔가를 산다는 것을 한껏 기대하였습니다.
여행 중 처음으로 7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아침에 주원이는 주원이 주먹만한 달팽이도 보았습니다.
일전의 소라게도 그렇고 이 날 본 달팽이도 그렇고 오키나와는 모두 큰 가봅니다. 일어난 자리들을 정리한 후 가나이소목사님과 인사한 후 길을 떠났습니다.
슈리성 근처에 주차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외에도 관광객들이 이미 많이 와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 본토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아 슈리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슈리성으로 올라갔습니다.
특별히 크거나 독특한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성은 아닙니다. 류큐왕국시대의 상징이자 전쟁의 희생이 된 오키나와를 증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성 안에는 전쟁과 관련한 것은 거의 없고 류큐왕국시대의 문화와 역사, 왕성의 재현 위주로 되어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류큐왕국을 나타내는. 한기덕 선생님 설명 덕에 풍성한 오전이 되었습니다. 슈리성을 나와 오키나와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돈키호테'인데 왜 이름이 돈키호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장이 굉장히 크고 물건도 다양하며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아이들과 둘러보고 점심도 먹으며 충분한 장구경을 하였습니다. 기념품을 사고나서야 '할거 다했다~'는 듯 만족스런 표정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해변에서 물놀이이니 처음으로 여유로운 날을 즐겼습니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고 숙소로 오니 가나이소 목사님이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며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사시키교회에서 자고난 다음 날입니다.
5/16일
전 날 최대한 짐을 싸고 점검하였습니다. 이제 공항으로 가야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 아침에도 마지막 식재료를 비우고 가방 점검을 하였습니다. 예배당 의자들도 원래대로 돌려놓았습니다.
오전에 평화기념공원에 갔다가 공항으로 가면 바로 집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차에 가방을 싣고 가나이소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시간 맞춰 오신 모치즈키 목사님과 같이 평화기념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에서 제일 먼저 한국인위령탑에 먼저 들렀습니다.
공원 내에서 큰 부지와 거대한 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기덕 선생님은 그렇게 크고 거대하게 만들지 않아도 될텐데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엔 한국인과 더불어 일본인, 오키나와인, 미군, 영국인, 북한 사람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은 것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화기념공원의 비석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들의 국적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치즈키 목사님 설명에 의하면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닌 것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일일이 다 확인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사키마 미술관의 그 그림에 있는 절벽도 실제 보았습니다.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당시 마지막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죽은 장군이 있던 언덕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평화기념자료관을 돌아보며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위령탑으로 먼저 갔습니다.
아이들 너머 보이는 절벽에서 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전쟁당시 폭격으로 불타버린 슈리성입니다.
여행 전 생각했던 것보다 특별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아마 아이들에게도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여행 일정에 고된 점도 있으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난 것,
평화행진, 집회를 방해하는 우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행진과 집회, 시위를 이끌어가고 힘을 보태주는 오키나와 주민들
아이들은 전통시장의 다양한 볼거리들과 해변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여행 동안 만난 던 분들과 그 마음, 뜻도 함께 보고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과 평화에 대해 배우고 알아갈수록 이번 여행이 다시 떠오를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그날 맑은 바닷가에서 썼던 '平和'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말은 안통해도 평화를 바라는 연대의 마음은 뜨겁게 통했을테니까요.
정말로 있을 거 다있는 특별하고 멋진 여행 준비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