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학년 성장여행-오키나와평화대행진-이야기#1

작성자
나무꾼
작성일
2018-05-23 14:01
조회
1617
*누리집 용량관계로 좀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여기는 손님들도 보시는 게시판이니, 본 누리집 사진방의 '6학년 성장여행 이야기-안내'글을 클릭하여

제 블로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2018년 6학년 성장여행-오키나와평화대행진-이야기

(6학년 14명의 아이들과 초록샘, 나무꾼. 그리고

한기덕 선생님, 모치즈키 목사님)

 

올해 6학년은 우리학교 처음으로 해외로 성장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제주 강정마을 및 4.3 현장을 다녀온 후 올해도 평화를 주제로 성장여행을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오키나와평화대행진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수요일 여행에서 돌아와 한 이틀은 적응하는 시간을 지냈습니다.

아이 등하원과 여행 짐 풀기, 기타 잡다한 일들...

 

금요일 학교에 나와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인사하고 여행발표 준비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더이상 일본말을 하는 이들도, 일본말로 하는 간판이나 이름도, 좌측주행을 하는 자동차도 없는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오키나와에서 6박 7일은 나름 그곳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씩 저와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행을 돌아보니 무엇보다, 선한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제일 남습니다.

평화대행진 하는 일정동안 내내 아이들을 살펴주고 놀아준 키요타카상, 모리상, 요시다상, 고바야시상, 호시상

숙소에서 아이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눠주신 나리타상, 뽓짱

마지막 이틀 일정을 가이드해 주신 모치즈키 목사님

그리고 이번 여행 숙소와 일정을 도와주시고 살펴주신 한기덕 선생님

(여행 중 만난 어른들과 평화대행진 한국참가단 어른들, 마이미상께도 감사드립니다.)

6박 7일 동안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5/10일

 

6시 북수원 한일타운 앞 공항리무진버스 정류소에 모였습니다. 시간 맞춰 다들 도착했고 2모둠을 나누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른 출퇴근시간인데 차가 밀리지 않고 제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아이들과 자리를 잡고 있으니 초록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서준이가 몸이 좋지 않아 버스 안에서 토했다고 합니다. 고생하신 초록샘 선생님...

잠시 후 모든 아이들이 만나 가방 무게를 재고 위탁수하물로 보낼 짐을 다시 꾸렸습니다. 준비가 되자 이스타항공 프론트로 가서 여권을 확인하고

티켓을 발권 받아 출국심사하러 갔습니다. 출국심사 후 출국장으로 나와 탑승구에서 천천히 시간을 지냈습니다.

창 밖 비행기 사진도 찍고 서로 장난도 쳐가면서. 11시 30분 비행기에 타고 오키나와로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 쯤 지나니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이고 오키나와 본섬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 밖을 나오면서부터 일본어가 들렸습니다. 입국심사를 하며 나오는데, 아이들이 연필로 쓴 입국서류를 다시 볼펜으로 써야 했습니다.

오키나와 국제선을 나와 국내선 공항건물로 이동하여 렌트카 업체 셔틀버스를 옮겨 탔습니다. 일본어로 조금씩 말하며 더듬더듬 찾아갔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약 15분쯤 이동하여 우리가 탈 렌트카를 인도받았습니다. 빌린 차량보다 큰 차로 렌트해줘서 여행동안 편했습니다.

시간이 2시 반을 넘어 렌트카 업체 옆 길에 주저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늘 우리 여행에서 그랬듯이 말입니다.

드디어 초록샘 선생님과 제가 두근거릴 시간입니다. 운전석도 반대이고 차량 운행길도 반대인데 과연 잘 할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숙소 맵코드를 입력하고 천천히 숙소로 향했습니다. 처음엔 우회전과 좌회전에 서툴렀지만 이내 할 만 해졌습니다.

다른 차량들이 있기에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재밌는 건 방향지시등스틱과 와이퍼스틱이 반대여서 습관대로 방향지시등을 켜면 와이퍼가 움직였습니다.

아이들도 같이 웃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차들이 대부분 천천히 규정속도에 맞춰 달렸습니다.

국도가 보통 시속 40~50km이고 고속도로는 최고시속 80km였습니다. 한국보다 좋았던 건, 안전한 속도와 도로 변 흰색 선과 요철처리입니다.

한국은 흰색선만 있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요철부분이 있어서 '드드드드드'바퀴 진동이 있어서 운전자가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나라도 했으면 싶었습니다. 한참을 달려 숙소 근처까지 갔습니다. 마을 어귀 가게에서 물과 필요한 것들을 사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에서 나리타상과 키요타카상, 모리상, 고바야시상을 만나 인사하였습니다. 숙소안내를 받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짐 풀고 나니 꽤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서로 첫날 느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뻤습니다.

내일 6시에 일어나야해서 씻고 바로 잠들었습니다.

 



 

5/11일

 

6시에 일어나 밥당번을 밥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다른 아이들은 행진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걸을 거라서 두꺼운 양말, 팔토시, 썬크림, 모장 등 준비를 해야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약 23키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8시 조금 넘어 어제 숙소 오는 길에 본 미군기지 캠프스왑으로 향했습니다. 캠프스왑 정문 맞은편에는 천막들이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초록샘 선생님과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고 저는 좀더 멀리 주차 장소에 가서 주차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보니 오키나와타임즈 기자가 아이들과 초록샘 선생님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생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 물었습니다.

평화대행진 한국참가단(평택평화네트워크에서 모집한 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정문에서 시위를 하고 기노자촌면사무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여러 어른들이 아이들을 살펴주었습니다. 가는동안 일본 우익들이 차를 몰고 와서 여러 방해되는 말들을 하고 우리 아이들을 향해서도 기분나쁜 말들을 해댔습니다.

다행히 어떤 행동으로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우익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행이었습니다. 우익들의 도발에 누구도 반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오키나와 평화를 외치며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행진 대열 맨 가에는 젋은 청년들이 일정간격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고 행진을 살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잘 걸었습니다. 크게 뒤쳐지지 않고 어른들과 같이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기노자촌면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맨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킨정으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오후 햇볕과 우익들의 소리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하늘 높이 목적도 모를 헬리콥터도 우리를 따라왔습니다.

가면서 쉬는 동안 아이들은 세월호 플래시몹을 보여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기에 어른들의 배려와 관심을 받았고 감사드렸습니다.

킨정을 지나 다음 미군기지 캠프핸슨 정문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참가단과 우리는 각각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현지 분들은 좀더 시위행동을 하려는 듯 했고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한국인들을 먼저 가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은 라면으로, 아이들의 힘든 하루를 달래기에 충분했습니다.

숙소의 어른들은 '고레가 강꼬꾸노 라멘데쓰까? 오이시데쓰네~'라며 우리 인스턴트 라면을 맛있게 같이 먹었습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하기에 씻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참, 행진 중에 한국참가단으로 오신 제주에 사시는 한 남자분이 아이들 고생하는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이라며 돈을 주셨습니다.

아이들 살펴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행진 출발 전 나리타상 및 숙소어른들과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캠프스왑 맞은편 천막농성장입니다.



기노자촌면사무소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었습니다.



행진 마치고 숙소로 오던 중 들른 휴게소 미끄럼틀입니다. 정말 높고 긴 미끄럼틀이었습니다.



 

5/12일

 

이 날도 6시에 일어났습니다. 숙소에 있는 다른 분들은 평화대행진에 이 날 특별히 참석할 일이 없다했지만 우리는 한국참가단과 일정을 함께 하기에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채비를 하던 중 나리타상이 신문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키나와타임즈에 우리 아이들 소식이 실려있었습니다. 신문에 나오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와서 신문에 난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으로 소떡소떡(소세지떡소세지떡)을 먹고 교사들은 누룽지를 먹었습니다.

집결지는 어제 모였던 캠프스왑 정문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비옷을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키요타카상, 모리상, 고바야시상, 호시상도 같이 나섰습니다. 캠프스왑에 아이들과 초록샘 선생님이 내리고

저는 호시상 차를 따라 근처 바닷가 공터에 주차를 하고 일행과 합류하였습니다. 비가 와서 천막 안에 모두 모여 앉아 집회를 열었습니다.

참가한 무리마다 인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떠나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외쳤습니다.

원래 이 날 일정은 오전에 집회, 시위에 참가하고 오후는 기노완시 세미나하우스에서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변경이 되어 우리는 따로 시간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천막에서 어른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모은 기부금 224,100원을 기부하고 인사도 드렸습니다.

10시 반쯤 집회하던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주차된 바닷가 공터로 향했습니다.(집회 참석은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와서 함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의미가 큰 듯 했습니다.) 비오는 가운데 비옷을 입고 약 25분 정도 걸어 공터로 갔습니다. 이때 요시다상과 호시상, 키요타카상이 함께 하였습니다.

요시다상이 바닷가에도 농성장이 있는데 가보려는냐 해서 그 쪽으로 갔습니다. 그 농성장은 농성 시작된지 5137일째 되는 곳이었고,

평택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님이 꼭 가보라고 한 곳이었습니다. 우연찮게 인사를 드리고 오키나와 노래 '꽃'을 불러 드렸습니다.

천막 앞 바닷가를 산책한 후 숙소로 돌아가려 하는데, 요시다상이 근처에 미군기지 만드는 펜스가 있다며 가보겠느냐 했습니다.

얼마나될지 몰라 망설이는데 가깝다고 하여 같이 갔습니다. 걸어서 약 100미터 남짓한 곳에 펜스가 있고 펜스에 여러 현수막과 메시지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그곳의 메시지 내용을 나누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른 산호초 조각들과 조가비들로 한자 '평화'를 만들었습니다.

우연히 어른 주먹보다 큰 소라게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제를 지내던 한 분이 소라게는 약 30년 정도 산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본 소라게도 그 분이 알려주셔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진귀한 모습을 다같이 봤고, 소라게가 산란을 하러 바다로 가는 듯 하여 멀리 물러났습니다.

어느새 날이 개어 하늘은 파란색을 보였습니다. 해변가에서 도시락을 먹고 요시다상, 호시상, 키요타카상, 모리상과

듀공이 보이는 언덕(지도상 명칭은 '듀공이 보이는 공원'입니다.)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듀공이 보이는 언덕이라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숙소에서 차로 한참 가다 산길로 접어들어 주차한다음 약 15분 정도 길을 걸을 때도 큰 기대가 안들었습니다.

그런데 우거진 산길 끝자락 너머 파란색 바다가 보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마침내 바다를 본 순간, '우와~'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바다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여행사나, TV광고에 나오던 바다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한껏 바다를 눈과 가슴에 담고, 카메라에도 담았습니다. 여행 삼일 째 나름 힘든 여정에 힐링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듀공을 보기도 했습니다.  공원 절벽 아래 카누를 타고 가던 이들과 소리쳐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참 동안 바다를 구경한다음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숙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지냈고 저는 나고시로 한기덕 선생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얼굴을 익히 알아 반가움을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한기덕 선생님은 나리타상과도 알아 한참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떡소떡(소세지떡소세지떡)을 아침으로 먹었는데, 소스가 흘러내려 씽크대에서 차례대로 먹었습니다.



오키나와타임즈에 나온 우리 아이들입니다.



 



바로 듀공이 보이는 공원입니다. 바다가 정말 깨끗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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