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2015년 6학년의 지리산종주 이야기-by 봄날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6-05-17 18:00
조회
1777
아이들과 지리산을 다녀오고 함께 사진을 정리하고 후기를 씁니다.
천천히 곱씹으며 돌아봅니다.
봄날의 후기 이후로 아이들의 후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20156학년의 지리산 종주 여행



6학년 아이들과 두 달의 준비를 하고 지리산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큰산을 하나 넘었다. 지리산은 실로 크다. 다른 말로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압도적으로 크다. 미처 그 산의 크기를 수치로 가늠하지 못한 아이들은 가도 가도 산만 펼쳐지는 34일의 산 풍경을 그저 암담해하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힘든 중에도 언덕마다 펼쳐지는 놀라운 절경은 또 지리산만이 우리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른 무엇이 대신하기 어려운 자리. 그것이 지리산의 모습이었다. 작년 모습 그대로 거기 앉아서 다른 날씨와 다른 아이들을 품어주는 산, 지리산이다. 그 선물을 받을 줄 아는 아이들이 놀랍고 고맙다.



첫날 수원역에서 가방을 들어보고 무게를 점검해보니 이상하게 더 무거운 아이들이 있다. 미처 빼지 못한 소소한 짐부터 여분의 코펠까지 빼도 될 짐들을 덜어내었다. 짐을 뒤져보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 그걸 가지고 갔더라면 얼마나 더 고생스러웠을까.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간다. 구레구역까지는 4시간. 오후부터 비 소식이 있지만 아직 창밖은 쨍쨍하고 수다도 흥겹다. 우리 아이들은 조용한 수다여서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구례구역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터미널로 이동해서 성삼재행 버스를 기다리다 기사 아저씨께 들으니 태풍 오거나 호우주의보가 내리면 하산 조치를 할 확률이 90%라 한다. 그러나 아직 비가 시작만 할 뿐 많이 오지 않아서 일단 성삼재로 가기로 한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비가 제법 쏟아진다. 고갯길을 돌 때마다 버스가 위태로울 만큼 바람도 분다. 아이들은 놀이기구 탄 것 같다 한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버스 기사아저씨는 우리가 비옷을 다 입고 챙겨서 내릴 수 있도록 차를 세우고 대기를 해주신다. 내리자마자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그러나 아직은 빗줄기보다 바람이 거세다. 일단 노고단 대피소까지 2.7km를 약간 빠른 속도로 걸어야 한다. 중간에 쉬거나 앉을 수는 없다. 시간도 늦었지만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약간 힘이 들지만 누구 하나 불평이 없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눈앞에 펼져진 산과 바람과 날씨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에.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자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서 마치 판타지 영화의 배경을 연상하게 한다. 아이들은 그 풍경을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라며 흥미로워했다.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는다. 호빗의 배경 같기도 한 오묘한 분위기의 산길.



1시간 정도 걸어서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해서 숙소 배정을 받고 나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내린다. 역시! 비가 우리를 위해 조금 더 참다가 쏟아지는구나! 다행이다. 올라올 때는 장대비가 아니어서 바지만 젖었지 다른 큰 피해는 없었다. 연수는 등산화가 젖어서 발이 젖었다. 수건을 넣어서 물기를 좀 빼내고 밤새 말리는 만큼 말려서 내일 신어야 한다. 그래도 어쩐지 이번 여행에서 날씨가 우리를 도울 거라는 안도가 잠깐 왔다 간다. 안도하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대피소에는 단체로 온 학생들이 와글와글한다. 취사장에서 어디선가 뵌 듯한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 1월에 어느 연수에서 만난 선생님이었다. 금산에 있는 기독교대안학교인 별무리학교’ 10학년 48명과 교사 12명이 우리와 거의 비슷한 코스로 지리산을 종주하러 온 것이다. 단체가 크니 거기도 우리와 상황이 비슷해서 서로 날씨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냈다. 비옷을 입고 밥을 해먹고 왔다갔다 하느라 올라올 때보다 더 젖어버린 아이들.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또 홀딱 젖는다. 겨우 밥을 해 먹고 나니 내일은 호우주의보로 산행이 어렵다고 안내방송을 한다. ! 진짜 하산해야 하면 어쩌나. 아침 일찍 호우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으면 벽소령까지 14km를 걷는 것은 불가능한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구례로 가서 함양으로 이동하고 오후에 날씨가 개면 바로 벽소령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를 검색하다 보조교사 택샘과 의논을 한참 하다, 그냥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잔다. 어쩐지 오늘처럼 운명의 신이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 비슷한 것이 온다. 개인 침상이 있는 노고단대피소는 숙소 시설이 좋은 편이다. 숙소도 좋고 물도 쓰기 편하다. 아이들이 묻는다. 다른 숙소도 다 이렇게 생겼어요? 그럴리가요.



둘째 날


새벽에 잠이 들다 깨다 하다가 5시쯤 밖을 보니 아직 비가 주룩주룩 온다. 아침에 개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6시쯤에도 제법 많이 비바람이 쳤는데, 7시쯤 되니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진다. 호우주의보가 해제되면 출발할 수도 있겠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일단은 밥을 해서 먹고 있으니 직원이 취사장에 와서 조금 전에 호우주의보가 해제됐으니 오늘 등산해도 좋다고 전한다. !~~ 아이들은 실망인지 안도인지 모를 묘한 환호성을 지른다. 이 상황을 도훈이는 여행 후기에서 슬프게도 비가 그쳤다고 썼다.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도훈이에게는 슬픈 일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다 싶다. 8시쯤 비가 완전히 멎었다. 비옷을 입지 않고 출발할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비옷의 거추장스러움은 배낭 무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산행에서는 고생스러운 요인이다. 안개가 끼어 있기는 하지만 날씨가 맑아질 예정이니 가뿐히 출발한다. 다행히 아이들 발걸음이 가볍다. 노고단고개까지 가서 잠깐 숨을 고르고 출발해도 아직 완만한 산길이다. 아이들은 지리산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좋아한다. “선생님 지리산이 계속 이런 식으로 걷는 거예요?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한다. 아직은 좋지만 그럴 리가! 우리는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어서 대체로 완만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천왕봉을 향해 올라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니 중간에 당연히 가파른 길이 나오지, 이런 대화를 하며 걷는다. 비온 뒤라 날씨도 선선하고 오르막이 많지 않은 산길을 걸어 삼도봉에 닿는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걸쳐 있는 산이고 그 삼도가 만나는 봉우리가 삼도봉이다. 아직은 괜찮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리는 아직 거뜬하고 배낭은 무겁지만 허리끈을 꼭 한 번 더 조이니 걸을 만하다.



연수와 하성이는 뒤를 맡아서 보조교사 택샘과 함께 뒤에서 다른 친구들이 처지지 않게 보조를 맞춰준다.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거나 등산의 전체 흐름을 읽으며 앞쪽에서 친구들을 살피며 걷는 역할을 산하와 한결이가 맡는다. 휘서는 봄날 바로 뒤에서 처지지 않고 잘 간다. 병찬이는 도훈이와 함께 추임새를 넣으며 걷는다. 가현이와 동윤이는 체력이 많이 좋아져서 처지지 않고 앞쪽에서 재잘재잘 하며 간다. 여학생들은 서로 의지하며 속도 맞춰서 중간쯤에서 앞뒤를 연결한다. 누군가 신발끈이 풀어지면 신호를 하여 상황을 알리고 모두 멈춰서 선 채로 기다려준다. 더워서 점퍼를 벗어야 하면 또 모두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기다려준다. 모두 함께 보조를 맞춰서 등산한다는 규칙을 잘 지키며 욕심부리지 않고 걷는다. 힘들지 않다고 혼자 빨리 걸으면 오히려 체력 조절이 안 되어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초반부터 도훈이가 힘들어한다.지리산이 이렇게 큰 산인 줄 몰랐다는 눈빛이다. “언제 숙소에 도착해요?” “언제 쉬어요?”를 연신 묻는다. 아직 오전 11시인데. 아침밥 먹은 것이 금세 소화되고 배가 고파진다. 간식은 대강 보니 넉넉해보인다. 쉴 때마다 조금씩 꺼내 먹으며 임걸령 지나고 피아골삼거리 지나 화개재까지 가서 점심을 먹는다. 도시락은 모둠마다 다르지만 거의 고추장에 맨밥 비벼먹거나 간단한 양념을 한 밥이다. 그래도 한 통 거뜬히 비운다. 아마 산이 다 먹은 모양이다. 화개재는 작년 6학년들이 점심을 먹은 곳이기도 하다. 석영이는 거기서 파리와 싸우다 밥을 다 엎어버리고 말았다고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 거기가 여기였어요?” 한다. 추억이 서려 있는 길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이제 제법 고난의 산행을 하게 된다. 빨리 걸어야 연하천에 4시쯤 도착하고 다시 벽소령대피소까지 3km 이상 걸어야 한다. 연하천까지 4km남짓 가야 하는 오후 산행이 아이들에겐 가장 어려운 코스로 남아 있다. 발이 후끈거리고 다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파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처음처럼 완만하지 않고 자주 오르막길이 나온다. “산길1km가 이렇게 먼 줄 몰랐다!!”고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정표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무슨 1km가 이렇게 머냐고 난리다.이걸 누가 자로 잰 거냐고, 잘 못된 것 아니냐고!!! 몸에 힘이 빠지고 오르막이 자주 나오는 탓이다. 모두에게 가장 힘든 구간이다.



연하천에 가니 별무리학교가 또 있다. 중간에 우리를 추월했지만 거기서 다시 만난 것이다. 별무리학교는 점심 도시락을 안 싸서 오후 3시 넘은 시간까지 초코바로 때우며 걸었다 한다. 군용식량이라 물만 부어 먹으면 되는 밥인데 중간에 물이 없고 먹을 곳이 없어서 그랬다 한다. 우리는 늘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시간 되면 먹는데, 별무리 학교는 종주가 처음이라 몰랐다며 절레절레 한다. 아이들은 일회용 밥을 먹는 별무리학교를 부러움 반, 불편함 반인 시선으로 본다. 아무래도 우리학교 정서에는 아침 점심을 모두 군용식량 인스턴트로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보이지 않는다. 산에서 밥 해 먹는 것이 그렇게 힘들어도 말이다. 그러나 별무리학교도 대규모로 오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온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6학년인 우리가 꼬박꼬박 따라 붙는 것을 보고는 뒤에 또 6학년들 왔어!” 하며 서둘러 가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은 대강별무더기학교라 불렀다.


연하천에는 물이 많다. 등산화를 벗고 물에 잠깐 발을 담가 씻는다. 피로가 확 달아날 만치 물은 차고 발도 시원해진다. 이 대목에서 기꺼이 발을 담그는 아이들과 그대로 등산화를 신고 몸을 쉬는 아이들로 나뉜다. 발을 씻고 나면 샤워한 것 이상으로 개운하다는 봄날의 꼬임에 빠져 결국 양말을 벗은 아이들은 참 잘했다. 벽소령에서도 우리는 발을 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하천에서는 꼭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야 한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발을 이렇게 담글 만한 곳은 없다. 적어도 천왕봉까지는.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도 멀다. 오후 4, 체력이 거의 다 떨어졌을 무렵 다시 3km 넘게 걷는 것이어서 발에 불이 난다. 발목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 그래도 연하천을 지났다는 안도감이 있어서 조금 여유가 생긴다. 어떻게든 저녁 시간 전에 벽소령에 도착할 수는 있는 것이다.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연하천 이후로는 거리가 잘 좁혀지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도 그런가보다. 산을 올라가는 길이 많으니 여기서부터는 가다 서면 모두 포토존이다. 경치가 점점 좋아진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친 내색 많이 안 하고 잘 따라 온다. 필요할 때는 쉬자고 말해달라고 하니 쉬자는 아이들이 있다. 힘이 들긴 한가보다.



드디어 산에서의 2, ‘푸른 바람의 언덕이라는 벽소령이다. 작년과 비슷한 날짜인데 날씨가 더 춥다. 바람도 세다. 올해는 그리 덥지 않은 날씨다. 대피소 직원이 물 뜨는 곳까지 거리가 약간 줄어 120m만 가면 된다고 일러준다. 그러나 마나 너무 피곤하고 멀다. 그래도 밥을 해먹어야 하니 오늘 같은 날은 진짜 물만 부어 먹는 밥이 필요한 때이긴 하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밥을 해먹는다. 택샘이 아이들을 잘 챙겨서 버너에 불 붙이고 김치 꺼내 놓고 밥을 올린다. 아이들도 귀찮지만 모둠마다 식단에 따라 밥을 한다. 고맙다.


14.1km를 젖은 채로 연수를 담고 오던 신발은 그만 바닥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2년 전 재윤이 등산화가 떨어져 등산화 대여서비스를 이용한 생각이 나서 얼른 직원한테 문의를 하니 맞는 사이즈가 없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한 번 더 오라고 한다. 안 되면 큰 거라도 빌려 신고 가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 결국 신발이 떨어지기도 하는구나. 연수에게 어쩐지 미안하고 연수가 대견하고 복잡한 마음이 된다. 옛날에는 슬리퍼 신고도 천왕봉을 오르락내리락 했대..하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래도 밝은 연수, 멋진 아이다.



휘서가 전혀 처지지 않고 표정도 펴안하게 잘 걷는다. 앞쪽에서 바짝 붙어서 힘든 기색도 없이 잘 간다. 자기 짐도 잘 챙기고 필요한 간식을 적절하게 꺼내어 먹는다 힘드냐 물으면 안 힘들어. 괜찮아!” 하고 또 걷는다. 역시 실전에서 강하다. 힘들어도 넘어서려는 마음을 먹고 온 것이 확실하다. 마음을 내어 걷는다.


잘 걷는 휘서를 보며 함께 도전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종주를 6학년의 정규 교육과정으로 넣는 것이 과연 좋은가, 또는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올해가 6학년 지리산 종주 4년째다. 해마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들의 구성과 체력과 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산에서 34일을 하는 것도 무리가 되고 6학년 아이들의 일반적인 체력으로 가능한 일인지, 또 힘든 구간이 있게 마련인데, 의지로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에 모두 잘 이겨낼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었다. 학년마다 과제가 다르겠다. 한참 고민을 하다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어떤 도움이 약간만 필요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먼저 그 한계를 정하고 도전해볼 기회를 뺏는 일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이들은 많은 변수를 가지고 길을 나서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든 자기를 밀고 가는 힘을 내고 의지를 갖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시 너무 힘들 때 예민해질까 걱정을 했던 휘서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든든하고 온전하게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해 내었다. 길을 나서보지 않았다면 교사도 친구들도 어쩌면 자신도 발견할 수 없었을 모습이다.


칠보산에서 가방 메고 등산하다 울었던 동윤이의 눈부신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가장 체력을 걱정해야 했던 동윤이다. 학교에서 야단을 쳐 가면서 줄넘기를 할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동윤이는 마음을 내고 운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함께 광교산 등산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출발 직전에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체력이 되었다. 그 정점에서 지리산을 걸었으니 과연 친구들이 보기에도 그 변화가 놀라울 만했다. 스스로도 잘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산행 내내 표정에 서려 있다. 건강한 기운이 흐른다.


지리산 종주를 준비하고 산행을 하며 보인 모습들 속에 아이들의 현재와 변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여행이 서로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셋째 날


벽소령까지 오는 길은 멀었지만 오늘은 훨씬 짧은 9.7km.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산길의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오르막, 계단, 가파른 길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어디서나 산아래를 내려다보면 첩첩 겹쳐져 산너머 산인 지리산의 품이 느껴진다. 세석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날이기도 하다. 벽소령을 나선 지 15분 만에 다시 도훈이의 질문이 시작된다.


숙소에 언제 도착해요?!”


이제 출발했으니 오후 5시에 장터목 숙소에 도착해. 세석에서 라면 끓여 먹을 거니 힘내어 가자.”


그 다음부터는 질문이 쏙 바뀌어 있다. 힘들 때마다 언제 라면 먹어요?” 똑똑한 도훈이 같으니라고!


그런 도훈이를 보고 연수는 도훈이의 말이 산에 오니까 휠씬 또렷해지고 커졌어요!” 한다. 도훈이는 뚜렷한 목적과 의지를 담은 질문을 할 때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다. 쉬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목소리. 자꾸 따라하게 되는 목소리.



벽소령에서 세석까지는 제법 오르막이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을 으악!’ 소리 나게 만든 건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다.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서 쉬어가다 보면 끝이 나는가 싶은 길 끝에 다시 또 긴 계단이 나온다.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오르는 일이 가장 힘들다. 계단을 지나 한 모퉁이를 겨우 돌면 탁 트인 바위가 나온다. 아이들은 거기서 잠깐 쉬며 사진을 찍는다. 욕이 절로 나오는 구간이라서 그 아름다운 곳을 욕의 언덕이라 부르기로 했다. 지리산은 다 받아 줄 테니 너무 힘들면 욕을 하라고 잠깐 허용을 했다. 그래도 욕을 잘 못하는 입이 부드러운 우리 아이들이다. 진짜 욕해도 돼요? 기세등등한 목소리와는 달리. 바람이 머리카락을 하늘로 끌고 올라가는 듯한 곳이다.


멀리서 세석 평원이 보인다. 세석은 산 가운데 있는 평원이다. 키작은 나무들과 철쭉들이 있지만 평원이다, 숲이 아니다. 세석평원을 멀리서 바라보면 따뜻하고 아늑하고 뭔가 아련한 아름다움이 있다. 아이들도 우와!”를 외치며 서둘러 내려간다. 라면을 먹을 시간이다. 가는 길에 취나물을 몇 잎 불법 채취했다. 아이들은 불법 채취한 나물을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리산 취나물 라면의 개운한 맛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쉽게도 한 모둠만 그 취나물라면을 먹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하성이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에 거림에서 세석으로 가서 1박 하고 장터목 거쳐 천왕봉을 갔다온 하성이가 생생하게 기억을 더듬어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기꺼이 사진을 하락하는 하성이는 덕분에 사진이 많다. 지리산은 역시 한 번 가는 것보다 두 번째 가는 것이 더 좋고 두 번 갈 때보다 세 번째 가는 것이 더 좋다. 아이들은 다시는 가지 않을 거라고는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인 것이다!


날씨가 좋아서 작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작년에는 이 구간 내내 비가 와서 비옷을 입고 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잡고 올랐다. 아이들한테 작년에는 셋째 날 비가 와서 비옷을 입고 걸었다고 하니 이 길을요!? 비옥입고 계단 올라갔으면 엄청 힘들었겠다.!!” 하며 놀란다.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지리산. 오늘이 가장 다르다. 지리산 종주하면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세석에서 장터목이다. 장터목에 다다르니 구름이 아래 떠다닌다. 아이들은 와 운해다! 한다. 그냥 구름이지만 아이들은 구름이 정말 발아래 떠다니는 것을 보며 감탄한다. 제법 힘이 들었지만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할 때쯤 가현이가 등산을 왜 하는지 그 멋을 조금 알 것 같아요!” 한다. 풍경보다 더 감동적인 말이다.가현이는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도 둘째 날 많이 힘들어했다. 도훈이 속도에 맞추느라 전체가 천천히 가서 자기가 눈에 띄지 않았던 거라고, 진짜 힘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가현이가 장터목에서 맛을 알겠다고 하니. 아이들의 컨디션도 날마다 약간씩 달라진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택샘이 빨리 잠깐 나와 보라한다. 장터목 일몰이다! 아무리 와이드로 촬영해도 그 장엄한 광경을 담을 수는 없다. 작년에 운해가 짙게 깔렸던 그곳에 붉은 해가 꼴딱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부르러 갔다 오니 해가 막 넘어가는 중이다. 해가 지지만 하늘가로 빛이 남아 노을이 환하고 슬프게 퍼진다. ‘해가 넘어간다는 말이 맞다. 정말 해가 어디론가 넘어갔다! 해가 넘어가도 빛이 남아 먼 하늘을 한참 적시고 있다. 빛이 옅어지면서 더 퍼진다. 밥 먹느라 못본 아이들도 있고, 하필 그때 신호가 와서 화장실 가느라 못 본 아이들도 있다. 다 같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어둠이 내려도 서쪽 하늘에는 빛의 흔적이 오래 남아 있다. 밤이 되자 그 노을이 거의 사그라들고 별이 총총 빛나기 시작했다.



장터목은 기회의 땅이에요! 실패가 없어요!” 택샘이 감탄에 젖어 한 마디 한다.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같은 시기에 장터목에서 운해와 일몰을 본 우리는 깊이 공감한다. 올해의 장관은 단연 일몰이다. 일출을 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총총 박혀 있다. 샛별이 왜 샛별이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알 것 같다. 강희는 별자리를 다 모르지만 지금 이 별을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별을 사랑하는 가야선생님이 오면 얼마나 좋아할까! 함께 있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별무리학교 선생님이 별자리 앱을 켜서 설명을 해주셨다. 다 알지 못해도 마냥 아름다운 별무리 하늘이다. 아이들 눈에 가득 담긴 별이 총총.



넷째 날


전날 별 보느라 약간 늦게 들어갔지만 새벽 산행을 위해 준비를 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옷을 입고 헤드랜턴과 장갑은 머리맡에 두고. 330분에 일어나서 챙겨서 350분에 천왕봉으로 출발한다. 남자 숙소에서 택샘과 아이들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별을 보았다고 한다.별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느냐고 자랑을 한다. 별을 많이 보고 좋아하고 자랑하는 아이들이 별 같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은 1.7km로 가까운 거리지만 가파르다. 휘서가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한 구간이 바위가 많은 밧줄 구간이다. 무서워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그래도 씩씩하게 따라 온다. 랜턴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보일 만한 하늘에 잠깐 하현달이 비치다 만다. 꿈엔 듯이. 아이들은 ! 저기 달이다!” 하고 나면 구름이 달을 가려 안 보인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하다. 한동안 달을 찾으며 걷는다. 달이 잠깐 보이다 말다 할 만큼 구름이 빨리 흐른다. 한 시간도 더 걸려 천왕봉에 닿으니 날이 밝아 온다. 구름이 여전히 많고 빨리 흘러 다니는 것을 보니 일출을 제대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던 천왕봉 일출을 이번에도 못 본다. 해 뜨는 그 시간에 그 곳에서 해를 맞는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제대로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다. 옷을 많이 챙겨 입어도 추워서 오래 있기 어렵다. 아이들은 손 시리고 추워서 사진도 못 찍고 내려간다. 해가 어렴풋이 구름 뒤에서 비치는 것을 보고 하산한다. 산 아래 보이는 구름바다는 신비롭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제석봉에서 멀리 보이는 지리산 줄기가 장엄하고도 따뜻하다.



우리는 오늘도 도시락을 싸서 출발한다. 산에서 하는 마지막 밥이다. 시원섭섭하다. 별무리학교는 중산리로, 우리는 작년과 달리 백무동으로 내려간다. 5.8km. 올해는 실상사작은학교를 탐방하기로 했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는 우리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방 청소를 해두고 화목보일러를 때어서 준비를 해주셨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도 있어서 4일 만에 감동샤워를 했다. 세심하게 신경써주신 실상사학교의 정성이 담긴 편안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편안하게 꿀잠을 잤다고 후기에 썼다. 실상사작은학교에는 우리의 자치회의 비슷한 야단법석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참관했다. 모두 모여 지난 2주 동안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 세상보기를 갈무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청소년들이어서 발표 내용이 수준이 높고 재미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아늑하고 편안한 기운을 담고 있는 학교 건물과 분위기,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우리 학교처럼 친근하다. 오랜만에 맛있는 나물반찬이랑 밥을 점심으로 대접받고 내려온다. 실상사작은학교에는 아직 우리 학교 졸업생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이다. 참 비슷한 색깔을 가진 곳인데 10년 동안 아무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새롭다. 함양으로 가는 길에 택샘이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사 와서 아이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눈다. 2년 동안이나 우리의 지리산 종주를 함께 해준 고마운 택샘! 우리 학교 아이들 덕분에 아이들이 좋아졌다는 택샘!



능력의 한계로, 또 인간인 한계로, 글로도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지리산인 것을 실감한다.


다만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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