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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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3-13 12:29
조회
184
개학하고 꽉 채운 2주를 보냈다.

긴 방학을 보내고 온 친구들, 새로온 친구들이 한데 뒤섞여 일상을 보내며,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생생하게 쓴다.

새 학기의 두근거림은 내 생각에 사나흘 정도였던 것 같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서로 호흡을 맞춰 나가는 모습을 보며 올해 전체여행모습을 그려본다.

올해도 힘차고 활발한 움직임이 쉽게 예상된다.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일이었다.

수업시간 빠뜨린 것이 있어 가지러 나가려고 6학년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실내화 한 켤레.

가지런히 벗어 놓은 실내화 한 켤레는 1학년 교실 문 앞에 1학년 교실 방향으로 놓여 있다.

한창 수업 중인 1학년들 사이에 누가 실내화를 벗고 들어갔는지 얼핏 봐서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가지런히 벗어놓은 실내화를 보니 웃음이 나오고 귀엽다.

방처럼 알고 벗어 놓았을까? 방인 줄 착각하고 습관으로 벗어 놓았을까?

벗어서 획 던져진 모양이 아니니 분명 신경 써서 벗고 들어간 것 같다.

그러자면 마지막으로 들어갔나? 중간에 잠시 나왔다 들어갔나? 친구들이 밟을까 실내화를 지켰을까?

아직도 까닭은 모르지만 내 눈에 들어온 그 실내화는 너무 귀엽고 재밌었다.

살짝 긴장하며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우리 막내 학년의 모습이 너무나 어여쁘다 생각되었다.

그래서 선생님들 불러 같이 보고,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 전쯤이었을까? 4시 무렵 방과후 간식을 먹을 시간이었다.

우르르 탕탕탕 손을 씻으러 몰려 내려왔다가 올라간 자리에서 또 어떤 것이 눈길을 끈다.

둥지층과 햇살층 사이는 잇는 계단.

손을 씻은 아이들이 우당탕탕 지나간 계단에 손도장이 계단 마다 찍혀 있다.

계단 한 칸에 손도장 하나씩, 꾸욱 꾸욱... 정확하게 찍혀 있다.

한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고 아이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서커스 하듯 물구나무를 선 뒤 손으로 짚으며 올라갔을까?

그랬다면 그 기이한 광경에 동네방네 소문이 크게 났을 텐데... 조용할 걸 보니 그건 아니다.

그럼 네 발 짐승처럼 손과 발을 모두 써서 기듯이 갔을까? 음... 이것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

계단을 네 발로 기는 모습은 아주 가끔 내가 본 적이 있다.

아이쿠야! 손 씻으러 내려와서, 손을 씻고 손도장이라니...

간식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도록 방과후 선생님들이 특별히 신경 쓰고,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딱 걸렸을 것이다. 그리곤 두 번 손을 씻었을 것이다.

손도장 찍으며 올라갈 때 얼마나 재밌고 신났을까?

그리고 바로 어제,

나는 수많은 손도장을 한 번에 보았다. 아니, 손도장을 보기도 전에, 네 발로 우당탕탕 아주 빠른 속도로 계단을 기는 아이들을 보았다.

네 발을 자유로이 쓰는 꼬맹이들을 보았다. 두 발로 걸을 때 보다 더 활기차고 즐거워보였다.

인간이 직립보행으로 진화하지 말 걸 그랬다. 네 발로 뛰어 다니는 재미를 더 많이 볼 걸 그랬다.

1학년들.. 우리 막내.. 뭘 해도 귀엽다.

올해 처음 1학년을 맡아, 날마다 에너지를 바닥까지 소진하고 퇴근하시는 길섶 선생님.

몸도 마음도 절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시는 모습이 또 어여쁘다.

길섶 선생님은 날마다 우당탕탕 1학년들과 밥을 맛있게, 많이 많이 드신다.

맛있게, 많이 밥을 코로 드신다.
전체 8

  • 2019-03-13 21:51
    네발로 뛰는 막둥이가 제가 생각하는 그 아이일까요..ㅎ;; 길섶선생님 고맙습니다~ 식사 든든히 많이 많이 드세요 ^^;

  • 2019-03-13 21:58
    푸하하하~ 우리 대안돌 길섶샘 다크써클이 흰 피부를 덮는 날을 보나요? 그러고보면 아이들 키에는 네 발이 더 맞을것 같네요. 몸을 퍽 잘 쓸줄 아는 막내들입니다.^^

  • 2019-03-14 17:02
    하하하,,, 길섶선생님~ 먹어도먹어도 살이 빠지는 경험을 올해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보약 놔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2019-03-15 11:34
    대안돌 길섶선생님~ 고맙습니다~. 산선생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2019-03-15 12:00
    감사합니다^^~♡

  • 2019-03-16 08:13
    방과후 선생님들은 앞으로 손검사를 더욱 강화하신다는...
    네 발로 다니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계단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 계실 수도 있다는...
    ㅎㅎㅎ
    이제 네 발 행진은 보기 힘들게 됐다요!~

    • 2019-03-18 14:14
      저런~ 아이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이렇게 또 칠보산 아이들이 되어갑니다^^

  • 2019-03-16 20:28
    손도장을 꾹꾹 찍으며 네 발로 간식을 향해 돌진할때는 어찌나 신났을런지...ㅋㅋㅋ
    손검사로 다시 씻어야할때의 급실망했을 표정도 함께 떠올라 웃음이 멈추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