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풍경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2-27 19:48
조회
1590
개학풍경

학교가 아이들로 꽉 차니 이제야 학교 같다.
둥지층에 모여서 개학식을 한다.
“와, 개학이다!!!”
교사들은 환호하고 아이들은 멀뚱멀뚱.
뒤에서 보니 여러 교사들이 손 흔들고 박수치고
분위기 띄우려 애쓴다.
그러나 분위기 별로 안 산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일단 방학 모드로 있을 테다 작정한 모양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사들은 신났다.
역시 우리 학교 아이들과 교사들이다.

수산나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처럼 급식이 없는 날에
수저와 식기를 오래오래 푹 삶으려고 오신 거다.
6학년 정OO님이,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배고파서
구충제라도 먹여야 할 것 같은 그 아이가 귓속말로 묻는다.
“오늘 간식 나오죠?”
“아니. 청소하고 입학식 준비하느라 먹을 시간 없어.”
“에이~ 다 알아요. 수산나 선생님 오셨잖아요.”
수산나 선생님이 등장하면 먹을 것이 나타난다고 아이는 믿어버린다.

최재혁 선생님이 앞에 나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이끈다.
등장만으로도 무대가 환하다.
아이들 얼굴이 갑자기 방긋방긋.
선생님이 이름만 말해도 아이들은 까르르까르르.
사람은 일단 젊고 잘생겨야 한다.
그게 아니고선 음절 하나에도 파안대소하는 이 분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
고 믿고 싶지만 <2016문집 영원한 친구> 220쪽 글에 그 까닭이 잘 나와 있다.

개학식을 마치고 모든 학년이 맡은 구역을 청소한다.
방학을 보내고 왔어도 청소실력은 일취월장.
역시 몸으로 익힌 것은 오래 남는다.
여기를 다 언제 치우나 아득했던 곳곳이 반짝반짝.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작년 우리반 아이가 교사실 문을 열고 “선생님!” 하고 부른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겠다.
반가워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이가 찾는 사람은 새 담임선생님이다.
보통명사 ‘선생님’을 고유명사 ‘가야 선생님’으로 받아들여도 좋았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를 맘껏 향유했던 시기는 이제 굿바이.
작년 우리반 다른 아이가 들어온다.
‘선생님’을 찾는다. 그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가리키지 않는다.
아이가 문을 열고 부르는 선생님이
나였다가
나였다가, 나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이슬 선생님과 열일곱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몸과 마음이 바쁘나
아직 1학년들의 집합을 실체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마음 한구석엔 옛 아이들이 남아 있는 거다.

필요한 물건 찾으러 다니다 살짝 둘러본다.
둥지층을 가까이에 둔 3,4학년들은 중원을 평정한 무림고수 같다.
어느 학년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어느 학년은 제법 의젓하여 8박9일 여행을 떠나보내도 되겠다.
새로운 담임과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듯 자연스럽고 합이 딱딱 맞는다.


올해도 우리 모두 꽤 괜찮을 듯하다!
전체 5

  • 2017-02-27 23:18
    선생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귀가 쫑긋~~~ 올해도 우리 모두 꽤 괜찮겠지만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 올 한해...꼬맹이들과 더욱 행복하고 젊어지시길~~~~

  • 2017-02-27 23:28
    겨우 이틀째인데, 그러게요, 저희집 아이들도 벌써부터 새 선생님과 새 분위기에 꽤 익숙한 듯 그러네요. 아이들은 지난날을 까마득히 잊은 듯 행동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만든 지난 선생님들의 노고를 부모들은 잘 알지요. 올 한 해도 모든 선생님들, 꽤나 괜찮은 날들 되시기를!

  • 2017-03-01 15:44
    하루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누리집에 들어왔는데 역시! 있네요. ^^

    작년 가야선생님 반 아이었던 저희 아이의 개학 소감..
    "완전 조용해. 우리반이 아닌 줄 알았어!"
    5학년들이 계속 저럴지 자못 궁금합니다~

  • 2017-03-02 13:17
    친절안한^^* 가야선생님.. 문집 220쪽은 집에가서 꼭 찾아보리..
    아이들은 정말 자라고 있나봐요.. 개학전날 앉아서 준비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물스물 자라는 아이를 봅니다.(물론 첫째만...^^;)
    학교가 들썩들썩, 또 새로운 일년.. 신나고 기뻐요..선생님 글자취가...

  • 2017-03-08 15:31
    아, 저도 문집 220쪽 봐야겠네요!!
    늘, 반가운 가야선생님! 아이들 개학은 엄마들의 방학이었죠!!
    우리 엄마들도, "야호!"한 번 소리 질렀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