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후기] 발도르프교육 다녀와서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1-22 21:57
조회
2237
발도르프교육 연수 후기 - 가야

 

기간 : 2017년 1월 12일부터 18일까지

장소 : 서울 여성플라자

 

 

일주일 동안 들었던 강의 가운데 일부, 교육 후 느낀 바를 나눕니다.

 

100명이 넘는 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화음으로 그 공간을 채웠던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동요, 릴케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뮤지컬 삽입곡,,, 러시아 민요와 이원수의 ‘고향의 봄’을 4중창으로 불렀는데, 함께 만든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아른합니다. 노래에 심취해 있던 몇몇 분들의 표정도 떠오르고요. 또 우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이끌어주신 선생님들께도 고맙습니다.

 

인간학은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녹아 있는 학문입니다. 7년을 주기로 사람이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며 성장한다고 바라봅니다. 신체, 영혼, 정신의 영역으로 사람을 보고 의지, 감정, 사고의 영역을 시기별 주요과제로 삼으며 순차적으로 발달시킵니다. (이 설명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제가 이해한 내용만 공유합니다.)

 

연수는 크게 세 흐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간학, 음악, 교수방법론. 셋이 배타적으로 구성된 게 아니고 인간학과 음악, 음악과 교수방법, 인간학을 고려한 교수방법 등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어린이 이해하기 양극성과 리듬

 

인간의 몸에서 양극성을 찾자면 다음 같은 거라고 해요. 둥근 머리와 곧은 사지, 닫힌 체계와 열린 체계를 보여주지요. 머리는 생각, 팔다리는 의지(행위하기)를 상징하고요. 수업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호흡(들숨과 날숨)이었는데, 이는 리듬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에게 ‘잠’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제때 잠들고 제때 일어나는 습관이 아이의 몸에 배게 하기. ‘잠’은 휴식이기도 하고, 낮에 보고 듣고 만나고 겪은 모든 게 재창조되는 시간입니다. 아이가 푹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교육방법으로 확장하자면 아이들에게 잊을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머리에 지식을 너무 많이 넣고 자꾸 기억하려고 하면 좋지 않아요. 잊어야 기억합니다. 발도르프교육은 이를 ‘주기수업(에포크)’으로 구현하고 있고요.

 

발달시기마다 적절한 내용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건 모든 교육자에게 중요하겠지요. 어린 나이에 머리를 일찍 깨우는 게 좋은 교육이 아닙니다. 초등시기에는 지나친 지식교육보다 가슴을 건드리는 게 중요합니다. 교사의 생생한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알맞은 활동으로.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접하게 하는 방식, 고학년으로 갈수록 수업에서 새로운 내용을 도입할 때 개념 정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하며 불안했던 내 모습이 교육행위로 나타난 것이죠. 내가 확고하지 못해, 남이 이거 하면 저 역시 따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이의 모국어, 음악

 

‘음악’이 이번 학기 주제였습니다. 아침 8시 반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열어요. 손으로 부르고 몸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부릅니다. 내 목소리로도 부릅니다. 연수를 할 때마다 늘 노래가 빠지지 않는데 이번 학기만의 색다른 경험은, 바로 소리를 생생하게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귀만 쓴 게 아니라 손짓과 몸짓으로도 함께 느꼈어요. 선율이 흐르다가 잠깐 멎는, 소리와 소리 사이의 빈 공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숨소리도 고요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소리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걸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도 인상적이었어요. 노래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질문을 던져주셨고, 음악이 끝났다고 음악이 죽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가슴에서 소리가 울려나오게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부르라는 말씀도 좋았고요.

 

몸짓으로 노래하는 건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음의 높낮이에 맞춰 손을 높이 들거나 낮추면서 멜로디를 표현합니다. 처음에는 음악에 맞춰 손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먼저 해보고 의미는 뒤에 만납니다. 의미를 다 이해해야 행위를 의미 있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접근법과 다르지요. (이 사실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자유로운 허밍과 몸짓으로 선율을 느낍니다. 아주 오래오래, 며칠에 걸쳐. 처음에는 선생님 보고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래와 일체가 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고요. 노래가 아주 익숙해지고 나면 그제서야 악보를 받습니다. 악보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수업이 아니었어요.

 

합창을 통해 소리의 울림을 느낍니다. 그 공간에 있을 때만 겪을 수 있는 소리. 남자 선생님들이 내는 소리가 아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부드럽고 힘 있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 소리의 여운이 오래오래 남았지요. 소리가 솜털 단 민들레씨앗처럼 허공에 떠 있는 느낌.

첼로 연주곡을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시도도 새로웠어요. “라라라” “나나나”로 허밍을 하는 게 아니라 “음뿌라또이”처럼 모음을 고루 섞어서 썼어요. 특정 모음만 많이 쓰면 목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아우디오패디’라는 ‘듣기예술교육’의 일부를 소개해주셨니다. 발도르프교사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 고안된 교육방법론이라고 합니다. 현대의 아이들이 점점 잘 듣지 못하는 걸 보고선 아이들이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지요. 내면에 고요가 자리할 때 힘이 생기지요. 그래서 내면의 소리를 듣게 이끕니다. 악기뿐만 아니라 돌멩이도 소리를 들려주는, 아니 내 소리를 듣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걸 보며 우리 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귀담아 듣기’가 떠올랐습니다. 몸을 곧추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게 귀담아 듣는 게 아니지요. 물론 자세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 하려는 말이 무얼까 생각하며, 진심을 헤아리려는 태도를 1학년부터 스밀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신, 교사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재잘거릴 1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 표현에 갇히지 않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잘 들으세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주의를 모으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교사라는 존재

 

저 앞에 서 있는 연세 지긋한 선생님들이 지치지도 않고 강연을 하십니다. 현직에서 한 반의 아이들 최대 30명, 한 번 맡으면 8년을 데리고, 그렇게 세 번을 만난 분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만났던 아이들 사례를 들려주며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합니다. 독일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고 통역에 의존해야 하지만, 말하는 태도에서 직업적 자부심뿐만 아니라 존재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교사는 아이의 영혼을 건드리는 일을 한다고, 어떤 시기에 아이의 내면이 (불가피하게) 훼손되었다면, 그걸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 시기에 또 찾아온다고. 그러니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사명감을 느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한 선생님이 수업사례를 들려주셨어요.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과 하루를 어떻게 여는지 구체적으로. 아이들보다 교실에 먼저 도착해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꼭 잡는다고 하지요.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신호를 주고, 어떤 몸짓과 노래, 시로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연다고 해요. “이건 저의 방법이다. 여러분도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라.” 말씀하셨어요. 단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학교생활에서 교사는 이런 느낌을 전하지요.

“내가 널 믿고 있어. 넌 잘 자랄 거야. 너의 길을 가게 될 거야.”

‘사랑’으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도 마음속에서 깊게 울렸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그렇게 만난다고 하네요.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만나라는 말은... 너무 묵직하게 느껴졌어요.

 

발도르프교육현장에 오래 몸담은 선생님들일수록, 습식수채화나 라주어페인팅, 5도 분위기의 노래... 특정 도구나 방법을 써야 발도르프교육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발도르프교육은 인지학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교육으로, 예술적인 면이 교사라는 인간 자체와 교육 공간 곳곳에서 넘칩니다. 저만 해도 ‘발도르프학교’ 하면 금세 떠오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철학이 뚜렷할수록 특정 방법론을 고수하기보다는 열린 모습을 보였어요. 본인이 발도르프교육을 받고 자라서 몇 십 년을 현직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이 “나는 아직 발도르프교육을 잘 모른다. 나도 막힐 때는 인지학 책을 펼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게 큰 용기를 불어넣는 말이었습니다. 학교에 몸담은 시간이 길어진다고 문제해결능력이 더불어 커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내면을 잘 헤아리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맞닥뜨리며 엎치락뒤치락 좌충우돌하는 제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이야기였고요.

 

그리고 시스템의 재건을 통해 교육을 바꾸려는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7일간의 연수에서 학년에 걸맞은 수업방법론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마음에도 일침을 놓았습니다. (시스템이나 방법론에 의존하는 걸 경계하라는 걸로 이해했습니다.)

 

연수를 받으며 자기 연마를 꾸준히 한 선생님들을 만나곤 하는데,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 그분들의 태도나 삶에서 느낍니다. 내면에 집중하는 힘이 강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참 넓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걷습니다.

 

독일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발도르프교육은 나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일이다. 학문을 아이들보다 먼저 배우고 직접 활동하는 일 자체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이다. 때로 나보다 천재적인 아이들, 내 도덕성보다 멀리 있거나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나는 교사로서 스스로를 가르치고 연마하려는 사람이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갈 길은 언제나 멀지만, 우리 학교에서 긴 시간 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건, 더구나 올해는 열일곱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지내게 되는 건 내 일생에 특별한 축복이구나 싶었어요.

 

우리 학교 교육을 다시 바라보다

 

이상을 잃지 않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돌아보며 열심히 공부하면, 궁극에는 닮나 봅니다. 강의를 듣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우리 학교 교육과 닮은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학교 분위기나 수업방법론은 사뭇 다르지요. 뭐가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통하는 구석이 있었어요.

“이 모든 것에 놀라움을 불어넣어주는 신비한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 교육계획 짜기


교사회는 해마다 교육계획을 짭니다. 어떤 학년을 맡을 때 이 해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걸 할까 오래 고민하는 날들이 있지요. 한번 해본 학년이라고 뚝딱뚝딱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해에는 술술 풀리는데, 다른 해에는 그 시간이 참 오래 걸려요. ‘교육계획’을 문서로 완성해 교육계획집으로 나오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교사 내면에서 고치고 현실에 적용하고 또 고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차시별 계획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안전하지만(그런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저는 자칫 계획에 갇혀 아이들을 억지로 끌어오는 일도 있었지요. 그 해 담임교사와 아이들이 무얼 했는지 책으로 만들어진 교육계획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때로는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달평가나 한 해 돌아보기가 중요합니다.

 
  • 사례 나눔


교사회의 때 아이들 사례를 나눕니다. (아이 한 명을 여러 교사가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간이면 좋겠지만, 전 그러지는 못합니다.) 어떤 아이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이 내게 크게 다가올 때, 담임교사가 이야기를 꺼내면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탭니다. 아이가 겪는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만으로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걸 경험합니다. 내가 사례를 나눌 때의 태도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 타당하단 말이에요!” 하고 항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아이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내 어려움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


우리 학교는 한글을 모른다는 전제로 여덟 살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일 년 동안 한글을 천천히 익힙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잘 풀리지 않았던 고민이 있었어요. 한글을 모른다는 전제로 아이들을 맞이하는데 입학 후 몇 주부터 글씨 쓰는 일이 차츰 생기고, 1학기 전체여행을 준비할 때는 여행수첩에 자기가 직접 내용을 기록해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지요. 이 문제가 제 안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않아 어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이 쓰는 양을 조절해주는 것 말고는 분명한 해결책이 없었어요. 한글을 모르지만 한글을 쓰게 되는 상황, 이게 교육적으로 잘못되었고 여기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적용할 만한 방법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학교가 가정한 전제와 현실에서 펼쳐지는 교육상황이 뭔가 모순인 듯해, 이랬다저랬다 하는 제가 문제였지요. 칠판에 글씨를 쓰려면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교사가 칠판에 천천히 바르게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아이들이 아직 잘 모르는 칠판의 저 글자들을 그림처럼 바라보며 예쁘게 따라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 고민이 해소되었습니다^^

 
  • 의미와 행위


교육활동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의미는 알고 하나요?”라는 질문을 만나기도 하죠. 아이들이 뭘 하려면 의미는 제대로 알고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 전 그 말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어요. 우리가 모든 의미를 알아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걸까, 어떤 행위를 꾸준히 하다보면 의미는 나중에 절로 찾아오기도 할 텐데. 어떤 의미는 긴 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오기도 하고. 예를 들면 밥기도, 텃밭활동, 편지쓰기. 더구나 초등시기의 아이들에게 ‘의미’는 좀 인위적인 것 같았어요. 이 고민도 스르르 풀렸습니다.

 
  • 아이들에게 던지는 선택권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결정을 잘 못하는 친구들이 있지요. 음식점에서 가서 뭘 먹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 뭐하고 싶은지 물을 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아이.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아이들이 모두 자기 줏대가 없거나 우유부단한 게 아닙니다. 모든 질문에 내 생각/취향/기호를 밝히지 않아도 건강한 아이들이 참 많아요.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 추운 겨울을 맞이한 아이에게 “너 오늘 뭐 입고 가고 싶니?” 하고 물어요. 이런 접근이 늘 좋은 게 아니지요. 아이에게 두꺼운 옷을 입히고 목도리를 둘러주며 이런 날씨에는 이렇게 입는 게 낫다는 분명한 기준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아이의 선택을 무시한 처사가 아니라 아이가 온전히 설 수 있게 토대를 마련하는 겁니다. 건강한 판단의 힘을 이렇게 기르는 거지요.

아이에게 허용해야 할 것의 범위와 아이 삶의 밑바탕으로 스미게 해야 할 것을 잘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겠다고 느꼈습니다.

 
  • 소중히 여겨야 할 수업


연수를 받으면서 생태수업이나 살림수업을 귀하게 여기고 학교에서 잘 가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매실지구가 개발되면서 직선을 수없이 만납니다.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나무, 구불구불한 산의 능선, 부드럽게 흐르던 논틀밭틀이 다 사라지고 반듯반듯한 건물과 인간의 편리에 맞게 가지를 잘라낸 나무들이 점점 아이들 눈에 담깁니다. 이런 시공간에 사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움, 흘러가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좀 어렵긴 하지만 물질문명의 병폐를 자각하고 내 삶을 소박하게 가꿔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우리 학교

 

작년 이탈리아에 다녀왔을 때도, 이번 연수를 통해서도 느끼는 것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학교가 잘하고 있는 면을 스스로 발견하고 더 아름답게 가꿔나가야겠다. 모자라는 점이 있다고 너무 자책하지 않아야겠다. 현실이 이상에 미치지 못해 실망할 때도 있지만, 이상을 꺾거나 현실을 탓하지 않고 우리가 나갈 방향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되겠지요. 무엇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인지 깊게 느끼고 내 몸을 그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요.

일주일 동안 연수를 간다고 교사회의와 행사에 빠졌어요. 누군가 그 자리에서 성의껏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밖에서 교육을 들을 수 있어요. 그곳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연수 받다가 회의하러 들어가거나 가정사에 바쁜 분들도 있었는데, 전 얽매임 없이 그 시공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지요. 제가 교육 잘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교사회와 우리 가족에게 고맙습니다.
전체 3

  • 2017-02-09 11:02
    후기를 한 줄 한 줄 감사히 읽었어요. 이렇게 연수 받은 내용을 써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여러번 읽고 새기고 싶은 내용이 참 많아요. 우선 노래부터 하려고요. '움뿌라또이~~~'

  • 2017-02-12 21:36
    귀한 후기 감사해요. 봄날의 발도르프 후기도 선생님의 후기도 참 좋아서 발도르프 교육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발도르프 교육 좋아서 가야쌤도 공부하러 가는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ㅋㅋ
    그렇게되면.. 앞으로 발도르프 연수 금지?? ㅎㅎㅎ

  • 2017-02-17 13:26
    우와, 감동의 글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연수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해 할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