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꽃을 든 남자

작성자
달아
작성일
2017-06-08 15:18
조회
1723
봄날. 꽃을 든 남자

봄이 깊어지던 4월.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벚나무 큰 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겨우내 견디고 기다려서 이제 꽃 피울 일만 남았는데 툭 떨어져 내린 가지에 마음이 갔다. 가지 몇 개를 꺾었다. 아이들과 텃밭에 심을 씨감자를 사러 농원에 들렀다. 사장님이 물에 넣어두면 꽃이 필거라고 끝부분을 전지가위로 잘라주셨다. 집에 오자마자 물에 꽂아두었었다. 그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부러진 가지에도 꽃이 피었다. 사랑과 약간의 물만 있으면 되었다. 죽어가던 가지에도 봄이 왔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길래 교실에 두고 보려고 꽃이 몇 송이 핀 가지를 들고 와서 병에 꽂아두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2학년 아이들은 참 감성적이다. 꽃이 피어나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여긴다.

“선생님. 그런데 문제가 있겠어요. 앞으로 가지가 자라면 큰 나무가 될 텐데.. 아주 큰 물병이 필요하겠어요.”

라고 부드러운 남자가 얘기한다.

아... 아이들은 그리 생각할 수가 있겠구나. 아이의 상상이 너무 귀여워서 가지가 커서 나무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반 아이들과 한참 고민을 했다.

김장 때 쓰는 아주 큰 고무통에 옮기거나 학교 여러곳에 심거나...  학교에 나무 심을 자리가 거의 없는데 어디가 좋을까...

다음날부터 산책을 가다 부러져 있는 꽃나무가지를 보면 몇몇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선생님. 꽃이 불쌍해요. 학교에 가지고 가서 키워도 돼요?” 하고 물어본다. “그래. 그렇게 하자.” 가지를 가지고 온 아이들은 플라스틱통을 주워 와서 물에 꽂아두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의 부러진 가지 살리기가 일이 커졌다. 부러진 가지만 보면 주워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교실에 물에 꽂힌 나무 가지가 하나둘 늘어갔다. 부드러운 남자는 사물함에 몇 개나 병을 주워다가 꽂아서 키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니 꽃도 피고 초록잎도 자랐다. 부드러운 남자는 꽃을 든 남자가 되어 매일매일 아주 세심하게 꽃을 돌보았다. 어느 때보다 정성을 기울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면서 내내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가지들이 커서 나무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학교 어딘가에 심어야할까?
전체 3

  • 2017-06-13 18:24
    ㅋㅋ 누굴까요? 그 부드러운 남자~~~^^ 넘 사랑스럽네요.

    • 2017-06-15 16:51
      김씨 성을 가진 *규가 아닐지요~

  • 2017-06-14 21:35
    우리가 이런 아이들과 생활하는 게, 이런 교사와 지내는 게 모두 좋은 일이네요.
    자랑스러워하던 2학년 남자아이 얼굴이 떠오르고요
    대단한 발견을 긴급타전한 또다른 남자애도 떠올라요.

    2학년이 선물한 미니화병은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홀로 여러 번 엎질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뭇가지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비타**병은 1학년 손에 이끌려 재활용이라는 숙명의 길을 묵묵히 갔습니다.
    우리 교실에는 낭만이 우아하게 깃들기 어려운 듯합니다.
    신비로운 힘이 바닥부터 꽉 잡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