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풍경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3-02 17:47
조회
1631
입학 풍경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3차 전형과 예비학교에 함께 하지 못해서 우리반 아이들을 온전히 다 보는 게 입학날이 처음이다. 방학 동안 이슬 선생님과 입학식을 준비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너무 완벽해서 역대 최고의 입학식이 되는 게 아닐까 자신감 넘치는 걱정을 했다. 역시나.... 그리 되고 말았다. 내가 1학년 담임교사여서가 아니라 2017년 입학식은 정말 멋졌다.

1학년 교실에는 열아홉의 신입생과 1학년 교사들이 기다린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아래로 내려갔고 위층이 고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떨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는 아직 쉽지 않다. 마음은 벌써 아래층으로 가버렸다. 선생님들이 이끄는 대로 복도에 나간다. 한 줄로 가만가만 걷는다.

계단 입구. 3,4학년 아이들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줄지어 서 있다. 깜짝파티를 준비할 때 상대방이 얼마나 기뻐할까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가득한 얼굴이다.

드디어 우리 신입생들이 한 명씩 내려간다. 귀가 터질 듯한 박수소리가 들린다. 언니오빠들은 오직 이날을 위해 팔 힘을 길렀다. 아주 힘차게, 뼈에 금이 가도록 손뼉을 친다. 특히 3학년 아이들이 기쁨 넘친다.
박수를 받는 신입생 면면은 다 다르다. 나 입장하니 모두들 보시오 하며 어깨가 떡 벌어지는 아이, 조금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고 걷는 아이, 스타가 팬들의 환호에 응하는 것처럼 형님들과 눈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아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재빨리 살피고는 교사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아이.

둥지층에서 우리 신입생들 태울 준비를 하는 형님들. 애들이 내려올 때마다 귀엽다고 어쩔 줄 몰라 입이 헤벌어진다. 방학 동안 더 의젓하고 듬직해진 5,6학년들이다. 형님들의 품으로 아이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가 자리를 잡는다. 중력을 거스르며 휘청거리지 않고 곧게 선 형님들이 멋지다. 아이구, 저 애를 태우다가 내 연약한 손목이 부러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염려하는 형님이 있다. 다행히 하늘이 돕는다. 가마 안 타고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울어버린 아이를 만난 형님들 얼굴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한 줄기의 안도감을.
그나저나 나도 저걸 타 보고 싶다. 가마 타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을까?

신입생들이 모두 의자에 앉았다. 무대가 꽉 찬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린이선언문에 가락을 붙인 아름다운 교가를 재학생이 부른다. 목소리가 가볍다.
“우리는~ 수원칠보산자유학교 어린이~~”

드디어 달아선생님의 나긋나긋한 사회가 시작된다. 아이들 귀가 절로 쫑긋해지는 목소리이다.
우리 2학년들은 준비한 덕담을 들려준다. 메시지는 짧고 굵다. 역시 아이들 마음은 아이들이 잘 안다. 지금은 길게 말해도 말이 귀에 다 안 들어오니까.

이슬 선생님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입학증서를 건넨다. 새로운 이름이 들릴 때마다 크게 박수치는 전교생. 무대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작고 귀엽다고 저 뒤의 나이 든 6학년들이 정말 좋아한다. 6학년들이 1학년이었던 시절이 잠깐 스친다. 전교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시절이 너희에게 있었단다. 신입생이 나오니 6학년 언니부대들이 맹활약한다! 졸업식 때 서윤이와 인정이에게 해줬던 환호의 백 배쯤으로 크게크게 소리를 지른다! 어떤 1학년은 긴장했는지 환호에 놀란 모양인지 남의 이름을 제 이름으로 알아듣고 나온다. 그 덕에 우리들에게 재미난 추억이 하나 더 생긴다.

아이들이 마법카드를 한 장씩 뽑는다. 이 마법이 우리들의 일 년을 지켜줄 거다. 기다려보시라. 카드대로 일이 일어나니까!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면 숙명이 되고야 만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학교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선물을 3,4학년이 건넨다. 발길 닿는 땅 어디든 잘 일구라고 대장간 호미를 천가방에 담아 건넨다. (마음 같아선 괭이를 주고 싶고, 써레를 안기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땅이 없다!) 신입생들이 이것저것 받는 걸 보고선 학교가 점점 좋아진다며 가벼운 투정이 들린다. 남이 받는 건 다 부러운 법이다. (뭐 좀 좋긴 좋았지만^^)

드디어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온 1학년 아이들 입이 마구마구 열린다.
심심하다, 집에 가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배고프다....

하루닫기 무렵 누군가 오늘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학교가 왜 이렇게 재미없어요?”
내일은 더 재미있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아이들 마음을 홀리지만 잘 안 된다. 그렇게 입학 첫날을 닫는다. 그리고 믿는다. 입학날이 좀 재미없었더라도 입학식만큼은 최고였다고^^

어떤 행사가 무척이나 좋았다면 그건 기획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뒤에서 애써주는 이들 덕분이다. 남몰래 넣는 교사들의 손이 얼마나 고맙고 놀라운지.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대견한지. 그리고 개학날부터 오늘까지 1학년 교실에 드나들며 뭘 하고 놀아야 재미있는지, 사물함 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 언니오빠들, 밥을 받아 오래오래 감상하고 있던 동생들을 격려하며 밥 먹이고 놀다가 토라져 있는 동생들을 친절히 달래준 형누나들, 우리 1학년의 미래들아~ 모두모두 고마워.

학교에 빠르게 적응하는 우리 1학년에게는 더 고맙지요^^

(1학년들의 놀라운 적응기는 차차....)
전체 4

  • 2017-03-03 11:10
    소박하고 따뜻한 입학식 풍경과 선생님 마음에 꽉 차게 들어온 아이들이, 글을 읽는 동안 제 마음에도 들어오네요^^

    왠지 얼굴보고 오래 대화하지 않아도 자주 글 올려주셔서 이야기 듣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 2017-03-03 11:14
    입학식 가보지 않아도 마치 그곳에 있는양 눈에 선하게 보이는 입학식 풍경입니다~ 귀여운 1학년들 성대한 입학식 행사 감사드립니다.

  • 2017-03-12 00:36
    눈 앞에 그려지는 즐거운 입학식이네요~ 선생님들의 하루 일기는 언제나 반갑고 고맙고 즐겁습니다!

  • 2017-03-26 21:49
    입학한 지 한 달, 지금 이 글을 보고 다시 입학 증서와 마법 카드를 읽었어요. 벅차고 행복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