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피정을 마치고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7-27 17:24
조회
1617
작년 가을에 시작해 올여름을 끝으로, 일 년 여정의 사계절 피정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었다. 1년에 한두 번쯤 1박2일 프로그램에는 참여했으나 1년 주기 과정은 처음이라 기대하는 바가 컸다.

교사신뢰서클처럼 마음비추기 피정 역시 내 안의 빛을 밝히고 내면의 교사를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 시나 이미지, 상징물을 통해 내면의 진실을 좇는 과정은 에고를 넘어서 참자아를 찾는 길이다. 서클에서는 침묵이 중요한 멤버이며, 구성원들이 고도리 방향으로 돌아가며 발언하든지 매 주제마다 반드시 말해야 하는 규칙은 없다.

서클의 중심에 놓인 꽃과 촛불, 여러 오브제를 센터피스라고 하는데, 센터피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말하다가 타인의 동조를 구하거나 내 생각을 마구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데, 센터피스를 향해 말을 하면 다른 이의 감정적 반응에 휘말리지 않는 연습이 된다. 한가운데에 꺼내놓은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인류 공동의 지혜와 맞닿으며 내 것으로 스미는 순간도 있다. (우리 1학년 반모임처럼...^^)

2013년 교사신뢰서클에 갔을 때는 아이들과의 만남, 동료관계, 학부모들과의 협업, 공동체의 역할을 비롯해 교사 정체성에 초점이 있었다. 그게 나의 중요한 이슈였다. 여기에서 배운 걸 내 삶에 적용하려 노력했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학부모와 동료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얻었던 점이다. 이런 시각이 내게 체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아이들의 실수에도 경탄하고 해가 뜨고 지는 자연현상에 감탄하는 정도의 10분의 1이라도, 동료를 향해 표현했나 살펴보니 거의 그러지 않았으니까.

우리 학교 교사로 일한 지 올해 만 9년. ‘교사’는 내 삶의 여정에서 잠시 거친 외피일 뿐 이게 내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게 찾아온 교사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핑계, 두려움, 시기, 자만, 비굴, 분노, 허세, 집착...
학교에서 숱한 일을 거치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였다.
따지고 들면 미숙한 점이 한둘이 아닌 흠결덩어리가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격려, 인내, 극복, 배려, 보살핌, 사랑, 관심, 경청, 환대 역시
사람의 중요한 덕목이고 이게 빛을 발하며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내가 어떤 문제에 휘말려 있으면 나의 가장 취약한 눈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기 쉽다.
아이구.. 힘들어서 못하겠다, 그냥 나 생겨먹은 대로 살란다... 하고 포기할 무렵에 계절은 바뀌고 다음 피정 과정이 찾아오니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여름 피정에서는 5분씩 ‘마음비추기’를 했다. 그 덕에 지난 일 년 자료를 들추며 내가 어떻게 나아졌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난 남탓하는 사람들을 못 견딘다. 분명 자기 문제로 빚어진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을 탓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이야기를 듣다가 몹시 불편해진다. 남의 무언가가 불편하다면 그건 내게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말에 백배 공감한다. ‘남탓’과 ‘자책’은 대상만 다를 뿐 ‘탓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그래서 남탓이 불편한 거다. 내가 자책이 심하기 때문이다. 남탓보다 자책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내 생각에 그 둘은 결코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동료와 고민을 나누다가 조언을 들었다.
“선생님이 자신을 다 내려놓으세요. 나를 바닥까지 버리고 완전히 죽어야 새롭게 태어납니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너나 죽어라!” 하고 반사했다.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인격파탄자로 몰리지 않을 만큼의 표현으로.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하며 자책감으로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는데, 그런 조언을 들으니 귀를 막고 싶었다. 자책이 어마어마한 남탓으로 돌변하는 걸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남탓’을 하는 줄 몰랐다. 몇 년 전의 일을 새삼 꺼내는 건, 내게 일어났던 일의 의미를 이번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알게 되어 그렇다. 내가 계속 자책하는 역할을 하면, 상대가 나 대신 남탓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안 거다. 역시 인간은 나아지는 존재! 피정 노트를 뒤적이다 보니, 나의 오랜 습성 자책과 남탓이 조금씩 희미해진 걸 발견했다. 아무도 탓하지 않고 내게 일어났던 일을 잘 맞이한 기록을 봤을 때는 뿌듯했다.

교사의 습관 가운데 세상을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내가 뭐라도 하거나 남이 무어라도 해주길 바라는 태도가 있다. 비단 교사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사계절 피정에는 타인에게 충고하지 않고 섣불리 조언을 구하지도 않으며 내면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마지막 피정에서 중심인물을 자처해 내 이슈를 다룰 수 있던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러 위원들의 ‘정직하고 열린 질문’을 통해 내게 일어나는 일이 상징하는 바에 좀더 깨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때 얻은 중요한 통찰은, 나는 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교사신뢰서클’이나 ‘사계절 피정’은 교실이나 학교에 당장 써먹을 기법을 배우려는 교사에게는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풍성한 내면이 자신의 삶과 아이들과의 만남에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맞춤과정이니 열렬히 추천한다. 10년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나 그에 준하는 강도로 일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 과정이 매우 의미 있을 것이다. 같은 집단이나 학교에 소속된 여러 사람이 한 서클에 다 들어가지 않고 서로 조율해 흩어져서 신청하면 낫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앞으로 걸어갈 삶의 길이 지금과는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나, 그 또한 본인의 선택이니 기쁘게 갈 수 있겠지.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 블로그에 가면 자세한 일정이 나와 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학부모님들, 꼭 가보셔요^^
전체 2

  • 2017-08-13 13:33
    가야선생님 추천으로 함께 했던적이 있지요.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만날수있던 고요가 좋았어요. 그땐 내 생각에 더 빠져있던 때라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기도 했지만요. 나눔 고맙습니다

  • 2017-09-10 08:54
    가고싶어서 가방에 지갑에 늘 넣고만 다니는 마음의 씨앗 피정안내....
    방학때라도 평소에 못 챙겨준거 만회해야지...싶어서 선뜻 떠나질 못하는데.. 저는 이걸 벗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