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은 스무 명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03-13 22:20
조회
2512
우리반은 스무 명


많은 이들이 궁금할 것이다. 우리 학교 12년 역사상 새로운 시도인, ‘열일곱의 아이들과 두 명의 교사’라는 조합이 어떠한지. 사랑과 감동이 넘치는 이야기를 듣다가 ‘학년이 올라가고 아이들이 커지면 어떨까?’ 노파심이 생길지 모르고, 좀 힘들다고 하면 “아이들을 많이 뽑아서 그렇지요.”라는 말을 할지 모른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예년보다 많은 인원, 예년보다 늘어난 장애학생’으로 귀결될까 싶어 조심스럽다.

아이가 재잘재잘 말하는 성격이라면 생활이 어찌 흘러가는지 대강 그려볼 수 있겠지만, 단답형으로 말하는 게 익숙하거나 지난 일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 아이라면 학교에서 대체 뭘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겠다. 자주 흙투성이인 아이를 보며 학교에서 뭘 하고 오는지 걱정스러울지도. 교사에게 뭐라도 묻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바로바로 연락하지 않고 기다리는 1학년 부모님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럼 1학년 교실을 들여다보자.


어떤 형은 자주 놀러와 동생 사랑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전체 모이는 시간에 꾸지람을 듣는 아이 뒤에서 교사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마구 보내며 말없이 동생을 구원하는 누나가 있다. 한 아이의 사촌은 교실에 찾아와 동생이 잘 지내고 있나 둘러본다. 사돈의 팔촌의 자녀라도 데려와 여기 보내야지 형제자매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싶은 이 풍경에, 내 동생이 어찌 지내건 말건 내 한 몸 노느라 바쁜 오빠와 형이 있고 방과후에 엄마 올 때 내 물건 챙겨가라며 심부름도 시키는 언니도 등장하니 역시 세상은 조화롭다.

뭐, 형제자매가 이 학교에 없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 6학년들이, 그리고 두 교사가 작년에 맡았던 아이들이, 1학년과 엇비슷한 2학년들이, 동생들을 귀여워라 하는 4학년들이, 결론은 우리의 전교생이 1학년을 자주 찾으며 동생들 살펴본다. 좀 더 큰 귀여운 애가 좀 덜 큰 귀여운 애에게 귀엽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엽다!


우리에게 귀여움뿐이겠는가. 입학 이후 며칠은 한숨이 나왔다. 1학년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 사이 어디쯤엔가 걸쳐 있는 듯하였다. 어떤 아이의 배는 수시로 고프고, 누군가는 엄마가 보고프고, 교사의 말을 듣기보다 친구와 대화하는 게 더 좋은 아이도 있다. 쉬는 시간에는 꽉 찬 오줌보를 아껴두었다가 수업 시작하는 징이 울리면 방출하려 하고, 배뇨욕구는 하품 못지않게 전염성이 강한 모양인지 누군가 화장실 간다 하면 너도나도 일어서고, 누군가는 물을 내보낼 때 누군가는 물을 먹어야 하기에 화장실 가는 아이를 보면 내 목이 마르고, 학교에 가져온 칫솔이 사라지면 이건 맨날 까먹는 엄마 탓이고, 먹기 힘든 반찬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이를 깨끗하게 닦긴 닦았는데 그 흔적은 입가와 옷에 하얗게 말라붙은 치약물로 남아 있고, 청소시간이 되어 걸레를 가지러 아래로 내려간 게 맞는데 올라오는 것을 그만 깜박 잊어버렸다가 청소가 끝날 무렵에 나타나고... 아이고, 이건 무슨 사태냐.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겠거니 여기면서도, 교사들이 손을 넣어 거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몇몇 조짐을 보고선, 내가 살기 위해, 오직 나의 행복을 위해 애들을 야무지게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안하다, 1학년들아! 나는 그리 친절한 교사가 아니란다.

불친절한 교사를 보완하는 건 친절한 형님들. 저 위에서 언급한 1학년을 뺀 전교생들이 1학년 교사와 아이들을 돕는다. 형님들에게 부탁만 하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 (2016 문집 <영원한 친구> 86, 87쪽에 나타난 것처럼) 가야는 (좀더 부드러운 이슬까지 합세해서) 오늘도 1학년 교실을 찾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이다.
“이 애한테 사물함 정리하는 방법 알려줄래? 네가 해주지 말고 방법을 알려줘.”
“○○야, 애 이 닦기가 덜 되었는데 화장실에 가서 이 닦는 방법 알려주라.”
“아직 비질하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어떻게 하는지 보여줘 봐. 네가 치워주면 안 돼.”
“이 애가 밥을 다 못 먹었는데 네가 옆에서 밥 잘 먹게 응원해줄래? 먹여주지는 말고.”
“실내화가 없어졌다는데 네가 손잡고 학교 둘러볼래?”
“아까부터 ○○가 안 보이는데 어디 나갔나 봐. 함께 찾아줄 수 있어?”

여러 학년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우리의 6학년들. 이러저러한 일들을 6학년에게 주문하면 우리 형님들은 아주 친절하게 부처님의 화신이 되어 조곤조곤 설명한다. 가끔 자기가 할 일을 하기 싫다고 떼쓰는 동생에게는 “우리 학교에서는 스스로 하는 거야.” 하며 웃는 얼굴로 여러 번 말한다. 나 같았으면 “얼른 하세요. 자꾸 이러면 쉬는 시간 없어요.”라고 할 텐데. 역시 인류는 점점 훌륭해진다.

어느 3학년은 1학년 동생을 앉혀놓고 종이접기를 하면서 단정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래 아이들은 허풍이 심해. 그러다 어른이 되면 점점 줄어들지.”
내 생각엔 그 반대일 것 같아서 아이에게 묻는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니 3학년 아이가 당당하게 말한다.
“네, 제가 그랬거든요.”
1학년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형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자기성찰능력까지 갖춘 우리의 형님들이다.


알다시피 학교에서는 많은 걸 아이들 스스로 한다. 준비물 챙기기, 가방 챙기기, 겉옷 옷걸이에 걸기, 식판 씻기, 분리수거, 청소. 행위의 완성도가 어찌 되든 아이들이 조금씩 시도하며 제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렇게 자유롭고 자립적인 인간이 되는 밑바탕을 천천히 닦아나간다.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이렇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게 진정으로 왜 좋은지 이번에 잘 알았다. 아이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질수록 교사인 내가 꽤 편한 것이다! 하하하~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 징소리에 형님천사들이 교실로 돌아가면 교사는 부탁할 사람이 없고 1학년은 기댈 사람이 없다. 1학년들은 진짜 자기 힘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책상을 옮기고 걸레질을 하고 비질을 한다. 자립이 타인에게 넘치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행위임을 나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가운데 이런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1학년 때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교사가 교실에서 여기저기 움직이면 앉아 있는 채로 엉덩이를 밀며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오리엄마와 새끼오리들이다. 분명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던 애들이 어느 순간이면 교사의 코밑 발밑에 와 있다. 하루닫기 시간에 이슬 선생님 도장 받으려고 알림장 들고 몰려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재미나다.


우리는 가끔 칠보산도 갔다.
입학날 칠보산에 올랐을 때부터 아이들 활약이 대단했다. 산에 오르다가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으로 잠깐 내려갔더니 얼어붙은 계곡에서 누군가 미끄럼을 탄다. 남이 재미있는 건 나도 재미있으니 너도나도 따라한다. 군데군데 모난 돌이 조금 위험해 보였지만 신체장착쿠션 푹신푹신한 아이들 엉덩이를 신뢰하기로 했다.
놀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 얼음물에 빠져 신발이 푹 젖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학교에 내려가 갈아입을 신과 옷을 가져온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이 장면을 지켜본 옆 친구도 우연처럼 물에 발이 빠지는 거다. 다른 친구도 실수로, 분명 실수로(!) 빠진다.
“선생님 저도 신발이 속까지 다 젖었어요.”
“저도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또 학교로 갈 수 없다. 이럴 때는 마법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옷을 챙겨올 수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신발이 다 젖었다는 아이의 발을 확인해보면 금세 다 말라 있는 거다!





아이들은 산에 잘도 오른다. 또 잘도 내려간다. 어느 아이가 자기를 ‘칠보산 안내인’으로 쓰라고 말했을 때, 다른 아이가 이 산을 넘어서 저기 화성까지 가자고 했을 때 예상했어야 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활기찬지를! 선생님을 남겨두고선 자기들끼리 학교에 가서, 아직 오지 않은 선생님을 느긋하게 기다리기도 하는 것을!




▷ 옷을 다용도로 쓸 줄 아는 똘똘한 아이들~



1학년 아이들이 거대한 고요와 평화로움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순간도 있다.
이슬 선생님이 그림책을 준비해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날이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니 아이들이 자연스레 둘러앉는다. 선생님이 읽는 문장마다 눈이 반짝인다.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를 읽던 날. 다 모이라 하지 않아도 책을 펼치니 아이들이 자석에 철가루 붙듯 스르르 다가간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이다. ‘태어나지 않아서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가 과연 어떻게 될까?

책을 다 읽고 이슬 선생님이 묻는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태어난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 말에 우리반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태어난 아이다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또 새로이 태어나겠지! 아이들 얼굴을 모두 둘러보며 기뻐하는 이슬 선생님에게 어느 아이가 덧붙인다.
“저는 태어난 지 8년 되었어요.”
태어난 지 8년이라니! 이토록 감격스러운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학년, 이게 바로 1학년이다.


<프레드릭>을 읽은 날은 어떠했는가.
무리와 다르게 움직이는 생쥐, 눈이 반쯤 감긴 프레드릭을 아이들 눈이 좇는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저거 알아!”
내가 아는 이야기라고 다음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시시하다는 말로 김새게 하지 않는다. 이번 1학년이 지닌 참 특별한 힘이다. 이슬 선생님이 천천히 읽어도 아무도 빨리 넘기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선생님 한 마디 한 마디를 듣는다. 마지막 쪽까지 다 읽고 그림책을 덮을 때 아이들 눈빛을 본다. 이야기에 푹 빠진 눈이다.



아침열기와 하루닫기, 우리반 모두가 둥글게 앉을 때 한둘이 함께 하지 않고 저만큼 떨어져 있어도 아직 괜찮다. 우리 1학년은 안다. 그 아이는 “햇빛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라는 걸. 프레드릭처럼.


어느 하루닫기 시간이었을 거다.
“우리반 열일곱 명이....” 이렇게 말을 꺼내니 우리반은 열일곱이 아니란다. 이슬도 있고 가야도 있으니까. 교사들도 우리반에 넣어준다. 그래서 우리반은 모두 열아홉 명이 된다. 거기에 또 한 명을 챙긴다. 프레드릭! 이렇게 우리반은 스무 명이다.

감동만 안겨주면 1학년이 아니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감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이었나. 아무리 봐도 우리반 아이처럼 생긴 아이가 와서 묻는다.
“그런데 이슬이 누구예요?”
(뒤따른 질문은 예측 가능하듯 “가야가 누구예요?”이다!)


우리반이 어떠하다고 아직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역대의 아이들과는 다른, 달라도 아주 다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우리를 찾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집에 돌아간 두 교사에게 강력한 잠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시길~




▷ 입학선물로 받은 호미에 내 이름도 써넣었다. 지금은 사랑스러운 내 호미가 뙤약볕의 원수가 되는 순간도 오겠지만. 그 순간은 아주 먼 훗날, 세상 돌아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6학년쯤^^




▷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공책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들. 이 선물을 하루 빨리 받고 싶어서 교사를 무척 재촉했다.




▷ 염소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 아이들도 염소 식성을 닮아가겠지.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저 은행알은 작년 4학년이 더는 못 까겠다며 팽개친, 파업의 결과물입니다~)
전체 6

  • 2017-03-16 15:35
    가야 선생님의 생생한 글에 절로 웃음이 나네요. 입학이후 해윤이의 모습도 다시 떠올려봅니다. ㅎㅎ 힘내세요~!

  • 2017-03-14 06:18
    올 해는 일학년이 은행알을 까는 거죠? ㅋㅋ 다른 학년 안심!

  • 2017-03-16 22:36
    원래 은행까는건 가야선생님 학년이? 이러다 가야쌤 기피하는 아이들 생기는건 아닌지.. ㅋ
    옛날옛날에 가야쌤 엄청 무섭단 소문이 났었는데.. 이젠 가야쌤 반은 은행 까느라 엄청 고생해.. 이런 소문? ㅋㅋ

  • 2017-03-17 06:20
    선생님....얼른 더욱 자립시켜서 더욱 편해지시길요. 저도 어제 반 아이들에게 사노요꼬의 <백만번 산 고양이> 읽어줬는데.....아직도 마음에 남는 그림책이더라고요. 책만 펼쳐들면 기적같이 고요해지는 순간들과 온 몸으로 듣는 아이들 때문에 자꾸 읽어주고 싶어집니다. 이 새벽에 모니터 보면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어봅니다. 맑은 마음 되어 출근합니다.^^

  • 2017-03-18 19:35
    가야샘 학교이야기가 어느 소설보다 재미나네요 심지어 우리 1학년의 모습이라니~^^ 해님샘께서 지난번에 [태어난 아이] 읽어주셨을때 울컥했는데
    태어난 것이 그저 신난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어른은 쓸데없이 심각한 것인가..라는 민망함이 ㅎㅎ

  • 2017-03-27 15:20
    6학년인 우리 딸은 1학년 아이들 이야기를 할때면 흥분합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