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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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02 09:18
조회
1311
# 단풍 즐기기

칠보산이 금새 고운 옷을 갈아입었다가 또 다시 옷을 벗는 듯하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가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잎이 떨어진다. 바닥이 온통 노란 물결이다. 아름다운 빛깔에 흠뻑 빠져들어야 당연한 가을날. 가능한 많이 바깥 수업을 한다. 그리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노래며 시다. 자주 시를 쓰다 보니 글재주가 점점 느는 것 같다. 좋은 글들이 많다. 올해 문집은 더 풍성해지겠다.



시를 쓰고 갖가지 색깔의 나뭇잎을 주워 앙상한 학교 나무에 꽂아 보니 나뭇잎 트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우아하고 멋스러운 느낌이 든다. 또 만들어 보고 싶다.

# 학교살이

2학년 17명이 모두 온전히 함께 했던, 의미 가득한 학년 여행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학교살이 요구가 간간히 삐져나왔다. 여행 후 학교살이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진짜로 학교살이를 하게 되면 어쩌나 근심어린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딱 하룻밤뿐인 학교살이가 여행보다 마음이 무겁지 않다. 그도 그런 것이 3박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하룻밤쯤이야 어렵지 않은가 보다. 1학기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달라진 아이의 말을 들으니 아이가 달라 보인다. 의지해도 될 만큼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아이의 마음이 한 뼘 더 자랐구나 싶다.

간간히 삐져나오던 학교살이 요구는 기어이 안건이 되어 학년회의 시간 의논되었는데, 밀려 있는 안건들 때문에 꽤 늦게 논의가 진행되었다. 벌써 단풍이 지려하고, 기온이 내려가는 지금, 김장축제를 앞두고 있으며 2019년 신,편입생 입학 전형 시기와 맞물려 학교가 아주 북적거리는 이 시기에 학교살이 논의가 빠른 물살을 타고 진행되고 있다.

오늘은 두 번째 논의 시간. 일단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들어 보았다. 찬성 9명, 반대 4명, 기권 3명, 결석 1명. 그리고 의견에 대한 까닭을 들어 본다.

학교살이 할까? 말까?

찬성...

- 밤탐험을 하고 싶어서요.

- 못한 요리 해보고 싶어서요.

- 학교에서 자고 싶어서요.

- 00이랑 같이 하고 싶어서요(지난 번에 00이가 빠져서요)

- 그냥 하고 싶어요.

- 못해 본 놀이를 할 수 있어서요.

- 엄마 잔소리 안 들어서요.

- 방과후 안 하는데 많이 놀 수 있어서요.

반대...

- 추울까봐요.

- 몸이 아플까봐요.

들어 보니 대부분 일리 있는 말이다. 의견을 듣다 보니 생각이 바뀌는 아이도 있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넘어 간다. 나의 주장과 얽혀 무리하여 설득하거나 주장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누구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짧았지만 참 좋고 따뜻한 회의문화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다음 주 학년회의 시작 전에 아이들을 칭찬해야겠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이어지도록 잘 도와야겠다.

# 푸하하하

어느 날 저녁, 바다별이 말했다.

바 : 오늘 2학년 00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이상해.

산 : 뭐라고 말했는데?

바 : 00이가 “바다별 선생님, 잘생긴 원숭이 닮았어요”라고 말했어. 원숭이 닮았다고 하면 기분이 나쁜데, 잘생긴 원숭이라고 하니까 또 기분 나쁜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 원숭이라는 걸까? 잘생겼다는 걸까??
전체 2

  • 2018-11-04 17:25
    신비로운 힘이 아직 더 많이 깃든 2학년들의 시가 궁금하네요~^^ 또 어떤 귀엽고 놀라운 상상이 시에 담겨졌을까~

  • 2018-11-07 13:57
    푸하하하~~~바다별 선생님~~~~"잘생긴"이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