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4월]도시락과 대장 -by 가야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6-05-17 17:50
조회
1332
지난 4월 17일. 네 학교가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신발던지기, 단체줄넘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늘 하는 종목이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이라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요령을 깨치는 재미가 있다.
과연 상품으로 무엇이 걸려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점수가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응원점수를 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리 모둠은 어찌나 신나고 즐거운지 본경기에서 시원찮은 점수를 응원하며 다 만회했다.
아이들 고래고래 목청 높이는 모습만으로도 체육대회 잘 왔구나 싶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모든 어린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성균관대역에 도착해서 물었다. "화장실 갈 사람?"
말은 이랬지만 화장실에 갈 사람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천문원공원에서도, 과천역에서도 충분한 시간을 써서 화장실에 들렀다 왔기 때문이다.
난 그저.... 교사로서 습관적으로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딱 한 아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날렵한 자세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민첩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신속한 동작을 보건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머무를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를 듯한 불안함이 몰려왔다.

역시나..... 불안이 명중하고야 말았다.
들어갈 때는 재빨랐던 아이가 변기 위에서 무슨 사색중인지 감감무소식인 것이었다.
그날은 내게 감기손님이 오던 중이라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겨우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휴.. 왜 이렇게 안 나오지?'
화장실에 들어가볼까말까 밖에서 망설이다가 칸막이벽 아래에 꿈쩍하지 않는 신발 옆모습을 보았다.
(성균관대역 남자화장실 첫째 칸 발목 아랫부분은 밖에서 보인다. 화장실이 계단을 올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크기인지 어른 크기인지 가늠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남자화장실 입구에서 크게 소리쳤다.
"땡땡아!" (아이의 명예를 위해 가명처리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주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네."
"아직도 화장실?"
"네."
"문 앞 첫번째?"
"네."
아이가 머물렀던 시간을 헤아려보면 대장의 모든 것이 죄다 배출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 다시 물었다.
"혹시 화장지?"
"아니요."
그럼 대체 왜..?
이어서 작게 각주처럼 따라오는 대답.
"네."
"화장지 줄까?"
"음.... 네."
가방을 열었는데 앗!!!
오늘 가져간 화장지를 전부 써버렸다.
그때 내 눈높이에 대형 두루마리 화장지가 보였다.
그 화장지를 아이에게 전해주면 될 일이었다.
남자아이의 체면을 깎지 않고 화장지를 무사히 전달할 방법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땡땡아. 고개 들어 하늘 봐봐."
"네."

나는 칸막이 천장쪽으로 화장지 끝을 넣으며 물었다.
"보여?"
"네."
"그럼 잘 잡아라."
둘둘둘둘 잘 뭉친 화장지 한쪽 끝을, 하늘에서 오누이에게 동아줄 내려주듯이 살살 풀었다.
"잡았어?"
"네."
"놓는다."
"네."
나는 뭉친 화장지 나머지 부분을 천장틈으로 쑤셔 넣고는 가볍게 손을 놓았다.
아이는 화장지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무사히 잡았다고 했다.
독한 냄새에 갑자기 코가 아픈 기분이 들어 얼른 나왔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꿈쩍하지 않는 신발이 또 눈에 들어왔다.
'아... 저 신발은 왜 안 움직일까? 땡땡아 제발...'
따뜻한 봄볕을 싣고 불어오는 바람이 왜 이리 추울까.
왜 이리 머리가 아프고 졸릴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지친 마음에 화가 터질 것 같은 순간, 아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선생님!"
그 환한 표정이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가워 뒤처리를 잘했는지 굳이 묻지는 않았다.
우리는 유유히 개찰구를 빠져나와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갔다.
이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나무꾼선생님에게 전했더니 그와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지 않았느냐 묻는다.
맞다... 그랬다.
그 순간에는 뭔가 당혹스럽고 곤란하지만 돌아보면 참 흐뭇한 화장실 추억^^
이번 일은 지극히 사소한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다~ 하하하

 

***************************

바깥나들이 때 지나친 양의 도시락은 아이들의 대장상태를 곤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적당량의 음식을 싸주시면 아이도, 모둠 친구들도, 교사도 즐겁답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