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후기] 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11-10 22:59
조회
1755
아주 뒤늦은 연수후기이다.
바로 올리고 싶었는데 혹시 어떤 가정에 누가 될까 싶어 망설였다.
연수를 맡은 부모님께서 후기를 올려도 괜찮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제야 나눈다.

2학기 개학 직전, 한 아버님께서 교사회 연수를 진행주셨다.
장애이해교육,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내용이었다.
교사회 연수 가운데 ‘장애이해교육’이 꼬박꼬박 들어가는 까닭은
아이들과 일상을 지내다 보면 나를 환기하는 무엇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이해교육’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Autism Spectrum Disorder


‘스펙트럼’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자폐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세부현상이 다 다르다.
총론이 비슷해도 각론은 다른 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autism’의 어원은 ‘자아’라는 희랍어에서 왔다.
어원을 몰랐을 때는 ‘자폐’라는 어감에서 이런 걸 느꼈다.
세상과 소통하는 이라기보다 내 안에 머무는 이들이구나.
언젠가 보았던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영화가 자주 떠오르기도 했고,
누구도 알지 못할 이유로 스스로 문을 닫은 듯한 생각도 들었다.

‘autism’의 어원을 알고 나니 생각이 슬며시 바뀐다.
지금보다 연구가 진전될 언젠가는, 인간이 무엇인지 묻게 될 명칭.
우리에게도 있는 무엇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명명.


미국을 기준으로 자폐증의 평균 발병률은 1.5%이며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관찰되는 모습은 아래와 같다.

1) 사회성 결핍 : 영유아기부터 기초 사회기술 습득이 잘 안 되어 눈맞춤과 행동 모방이 어렵다. 일상이 바뀔 때 힘들어한다.
2) 의사소통능력 부족 :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비언어적인 표현이 약하다.
3) 집착과 반복적인 상동행동 : 자기만의 규칙을 정해서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4) 감각이상 : 특정한 감각을 과하게 추구하거나, 어떤 자극에 민감하거나 둔감하다.


예전에는 양육자의 태도와 가정환경에 원인이 있다고 했으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 발달이 달라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뇌의 영역 간 연결에 이상이 있어서, 시냅스 가지치기가 덜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듣는 내내 숱한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고 또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완전 깜깜 까막눈이었을 때는 열쇠를 자폐인이 쥐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육환경을 제공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내가 부족하더라도 그 아이가 좀더 노력하고 훈련하고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달라지고 극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자기 관심이 있을 때만 눈을 마주치는 걸로 여겨 “내 눈 보고 말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었나. 세부적인 것을 먼저 포착하는 성향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그냥 넘어가라고, 작은 것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할 줄 알면서 왜 못한다고 해?” 이런 말은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를 격려할 거라면 좀 다른 식으로 하지...)

교육받은 직후 아이들이 더 잘 이해되었고, 몇몇 아이들의 행동을 좀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교육받은 지 세 달이 가까워오는 지금은 약발이 떨어져서 또 공부해야 한다.

이번 연수에서 마음을 울렸던 내용이 있다.
영상으로 보여주신 템플 그랜딘이라는 사람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거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증을 극복한 동물학자라고 한다. 그가 칼락이라는 과학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나중에 알았는데) 칼락은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템플 그랜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이였다. 템플 그랜딘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하도록 이끌어주셨다. 아이들이 다음 세계로 도약하는 데 초등교사인 우리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가! 훗날 아이들이 ‘칼락’과 같은 선생님을 만났을 때 아이의 관심사가 잘 확장되고 조직되도록, 기초 생활습관이 잘 자리 잡는 데 내가 보탬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느 강연에서 템플 그랜딘이 이야기한다.
만약 인간에게서 자폐증 유전자가 사라졌다면
인류는 아직도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을 거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자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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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에게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러이러한 면을 이해해주십시오.”

말이 쉽지, 난 이렇게 못한다.
남들이 동정할 것 같아서 싫고,
내 아이가 특정한 시선으로만 해석될까 두렵고,
무언가를 말하면 배려 받고 싶어 하는 가족이라고 할까 걱정되고,
말하지 않으면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고 할까 신경 쓰이고....

그래서 부모님이 용기를 내어 교사공부모임에 강연자로 와주셔서 고맙고 또 고맙다.
부모님은 아이 한 명을 통해 자폐가 무엇인지 전해주셨다.
그건 한 명에만 그친 게 아니라 다른 세계를 보여준 것과 같다.

사람이 지금 당장 바뀌기는 어렵지만
이런 자리를 거치면서 내가 천천히 바뀔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들,
교사들이 공부시켜주세요 부탁하면 꼭 와주세요^^
전체 1

  • 2016-11-13 19:59
    잘 읽었어요. 이미 충분히 '칼락'선생님이십니다. Autism 모습을 보니 저의 모습이네요. 의사소통도 잘 못하고, 사회성도 떨어지고, 반복적인 실수에 너무 예민하거나 둔감하니 말입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말을 자주 곱씹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