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어졌다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6-08-03 20:46
조회
1777
아이가 없어지는 건 참 난감한 일이다.

4월초 텃밭시간, 딸기모종을 심기로 했다. 아니 딸기밭을 조성하기로 했다. 옛날 학교 텃밭에서 겨우내 잘 자란 딸기모종을 캐는 모둠, 그 모종을 판에 쌓아 나르는 모둠, 학교 건물 옆 작은 텃밭에 모종을 심는 모둠. 이렇게 세 모둠으로 일을 했다. 언제나 교사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 걸 알고는 있는데, 고학년 아이들을 그리 대하지 못해 아이들을 모둠으로 나누고 각자 움직이게 했다. 4학년을 고학년이라고 판단한 게, 과학관에 갔을 때도 모둠별로 잘 다녔는데 손바닥 위의 동네에서쯤이야 하고 방심했던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너희들 있는 곳에 내가 늘 있는 게 아니다,
교사가 안 봐도 맡은 일은 스스로 하는 거다,
자목마을을 우리가 잘 알더라도 지금 함께 걸었던 길 이외에 다른 데로 가면 안 된다, 아는 사람 만나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이 정도로 당부하고 일을 시작했다. 만일을 대비해 대처능력이 뛰어나고 제법 똘똘하다고 판단한 아이들에게 예전 학교 텃밭과 모종 옮기는 일을 맡겼다. 마을에 차가 오가니 사고가 날지도 모르고, 옛날 텃밭 쪽은 인기척이 뜸한 것 같아서 말이다.
모둠별로 잘하는지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각 모둠이 맡은 일을 성심껏 하고 있었다. 조만간 딸기가 주렁주렁 열린다며 꿈에 부푼 아이들을 보니 흐뭇했다. 그러다 모종 심는 쪽 일이 밀려서 나도 가세했다. 모종 옮기던 아이들도 맡은 일을 끝내자마자 함께 거들었다. 그렇게 야심의 딸기밭이 꼴을 갖춰나갔다.

그런데 옛 텃밭에 있던 아이들이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종을 옮기느라 양쪽을 오간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딸기모종은 거의 다 캤으니까 지금쯤은 왔어야 한단다. 딸기밭 아이들에게 일 끝나면 뒷정리하고 쉬라 하고, 텃밭으로 아이들 데리러 갔다. 이 녀석들 왜 안 오는 거야 하면서.

애들아~ 부르며 텃밭에 짠 등장했다. 그러나 밭에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캐다 만 딸기모종 몇 개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썼던 괭이와 삽도 땅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두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른다. 대답이 없다. 이상하다, 어디 갈 리가 없는데. 잠시 오줌을 누러 간 건가. 잠시가 지났지만 안 온다. 오줌을 왜 이리 길게 누지. 그리 믿어도 안 온다. 몰래 숨는 장난을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려도 안 나타난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뒤를 찾아보는데도 없다. 약속한 길로만 다니기로 했으니 서로 어긋났을 리도 없다. 그러다 괭이랑 삽이 놓인 모습을 찬찬히 보니 뭔가에 마구 저항을 한 것처럼 놓여 있다. 땅바닥에 막 내던진 모양새다.

대체 이 상황이 뭘까. 갑자기 작년 일이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했다.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딱 이만큼만 하고 가야지, 이만큼만 하고 가야지 그러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이번에는 진짜 집에 가야지 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내 앞에 낫과 작은 곡괭이를 든 아저씨 한 분이 서 있었다. 땅만 보고 일하느라 앞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분이 아무 소리도 없이 내 앞에 있어서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게 아니고 인사를 드렸다. 사람이 진짜진짜 깜짝 놀라면 인사를 하게 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약초를 캐러 오신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서둘러 가셨다.

아! 그 일이 하필 반년이 지난 이제야 떠올랐다. 약초를 캘 사람이 늦은 시각 동네 밭에 왜 나타났겠는가. 그리고 왜 기척도 내지 않고 앞에 있었겠는가. 사람이 당황하면 상상력이 급해진다. 그 나쁜 놈이 그날 이후 근처를 살피다가 애들만 있는 걸 알고 잡아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들은 누가 하나 잡히면 나머지 하나라도 재빨리 도망쳐서 도움을 청하지 똑똑한 녀석들이 왜 둘이나 다 잡혀간 거야 하는 원망도 했다. 두 아이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전화기가 없으니 일단 학교로 가서 선생님들에게 알릴까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애들 자취를 좇아 뒤쫓아야 할까 고민했다.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두 아이가 내 상상력에 불을 지핀 거다. 매초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이 사건이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며 온갖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내 간절한 호명에 응답이 없을수록 아이들이 근방에 있으리라는 확신은 점점 옅어졌고, 아이 실종으로 부모님들 실신하고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 학교 문 닫고 나는 애들 찾아 사방팔방 헤매는 걸로 상상이 정점에 치달을 때.

그때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혹시...? 있는 힘껏,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다오 하는 간절함을 담아 애들 이름을 목청이 터져라 불렀다. 그러니까 고라니들 나돌아다닐 때처럼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리더니 수풀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드라마에서 잠시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만나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며 애들을 막 때리면서 우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내가 그 심정이었다. 해맑은 두 녀석은 코딱지만한 밭에서 일을 하다가 좀 힘이 들어 잠깐 숲에 가서 놀았고, 어찌나 재미나게 놀았는지 내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한다. 아무 일 없이 나타난 아이들이 정말 반갑고 고마워서 아무데나 때리며 울고 싶었다. 역시 똘똘한 아이들이 맞았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일과 쉼을 조절했으니. 쬐금 일하고서는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풍부한 표현으로 노동의 수고를 묘사할 줄 알았으니. 남의 가슴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서는, 밝은 웃음과 반가운 포옹으로 혼날 상황을 은근슬쩍 넘어갔으니.

‘음.. 제법 당돌하고 용기 있군.’
그러한 나의 판단이 맞았는지 아이/아이들이 사라지는 일이 1학기에 몇 번 더 생겼고, 사건은 매번 모두 다른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아이들은 언제나 무사하고 태연했으나, 그때마다 내가 늙어죽을 시점이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다가온 듯했다.

학교에 있었던 지난 시간 돌이키면 이런 일이 왜 없었겠는가. 내 간이 점점 콩알만 해지고 나날이 기억은 희미해져서, 매순간이 처음 겪는 일 같고 매상황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는 것뿐이겠지. 아이들이 제힘으로 잘 커나가며 현명하게 대처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7월 방학 앞둔 마지막 금요일, 서울에 전시회 보러 나갔다가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아이들 줄이 끊겨 일부만 타고 일부는 남았다. 난 열차 안 자기들끼리만 있는 아이들 얼굴에서 살짝 번진 미소를 보았는데, 열차 밖에 있던 아이들은 가만히 있던 내게서 태연함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목적지에서 반갑게 재회했다.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떨어지는 일을 또 겪고 싶다며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너희들도 꼭 해보라고(?) 권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들의 2학기가 매우 역동적일 듯한 예감이 몰려왔다.

아... 과연 기쁨일까 괴로움일까...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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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무한한 사랑과 자비만이 참나이다. 아이들과 다투면 안 된다.”
얼마 전 만난 멋진 분이 건네주신 이야기 중 일부이다. 적절한 시점에 내 귀에 쏙 들어왔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계속 만나기에는 내가 턱없이 모자란 게 아닐까 싶어서, 내면의 갈등으로 뒤숭숭하던 학기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을 곱씹을수록, 내가 표면에 일렁이는 파도 때문에 바다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애들아 2학기에도 마음껏 휘젓고 실컷 날뛰어다오.
난 끄떡없을 것이고 너희들은 무사할 것이다.
너희들도 나도 모두 바다이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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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7 13:07
    가야선생님 책한권 내주세요^^
    다음편이 기다려져요~~ㅎ

    고녀석들이 누군지 진짜 궁금하지만 주인공보다는 스토리가 더 흡입력이 강해서 참을수있을것 같습니다^^

  • 2016-08-29 13:45
    선생님의 상상력에 동참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