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0일] 침 좀 뱉어봤다.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59
조회
1744

첫 과학시간. ‘요오드녹말반응’이란 제목 아래 실험을 한다. 녹말 성분은 딱 하나 밀가루뿐, 나머지는 설탕과 비타민C이다. 실험재료를 받은 다음 “먹어봐도 돼요?”라고 물은 몇몇 아이는 “네 이놈!”이란 호통을 듣고는 얼음이 된다. 과학시간에 위험한 재료를 쓰지 않으나 무엇을 받든 입으로 먼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 질문이 시식요청이었던 게다. 아이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음 시간은 외국어 수업이니까 수업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하면 “무슨 공책 꺼내요?” 하고 자주 물으니!


이번 시간 우리의 관찰 도구는 눈이다. 먼저 세 가지 가루의 색깔과 알갱이 모양을 잘 보고 적어보라고 하니, 흰 빛깔의 차이를 섬세히 포착한 아이들에게서 아름다운 표현이 속출한다! 반짝이는 가루가 예쁘다고, 가루가 무척 부드럽다고 감탄을 한다. 역시 시인들이다. 그 중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쓴다.


밀가루 : 친숙하다.
설탕 : 친숙하다.
비타민C : 먹고 싶다. 참을 수가 없다. 맛있는 냄새, 눈길이 자꾸 비타민C로 간다.


객관적 관찰이란 무척 어려운 거다. 우리의 심리나 욕구는 감각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아이 눈에는 뵈는 게 없다. 오직 먹고 싶은 마음뿐.
“정말 멋있다! 색깔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참 좋다!” 
각자 성의껏 쓴 아이들에게 칭찬을 날리니 더 열심이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아이들에게 맛이 정 궁금하거든 내 침 아무데나 묻히지 말고 조금씩 먹어보라 했다. 그러니 아주 열심히 맛본다. 책상 위에 흘린 가루 아까워하며. 우리의 아이들은 미각을 활용해 각 재료의 맛을, 그 재료가 놓인 배경의 맛까지 알아보는 중인 거다.


설탕에 요오드용액을 섞는다. 황토빛이다. 
비타민C와 요오드용액을 섞는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남은 요오드용액을 밀가루에 들이붓는다. 까맣다. 먹빛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푸른빛이 감돈다.
아이들이 연달아 탄성을 내지른다.


한창 들여다보고 달라진 색깔을 공책에 옮겨적다가, 세 모둠에서 동시에 묻는다. 
“이거 다 섞으면 어떻게 돼요?”


결과가 궁금하면 해보라고 하니 손들이 몹시 바쁘다. 큰 접시에 셋을 섞고 휘휘 젓는다. 밀가루 반죽이 여기저기 들러붙으니 묽게 만들려고 애쓴다. 잿빛 곤죽을 보고는 신기하다, 재밌다, 감탄사 연발이다.


그러다 어느 모둠에서 말한다. 
“선생님 여기에 침을 섞으면 어떻게 돼요?”
궁금하면 입에 침을 잘 모아서 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각 모둠의 남녀아이들이, 살짝 내외하는 마음 따위는 다 거두고, 둥그런 접시 위에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침을 뱉어보는 거다. 끈적끈적한 침의 소유자는 입술에 붙은 가느다란 침실[絲]을 떼어내려고 입술을 달싹거리고, 다른 아이는 입안에 모은 자기 침을 뱉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또 한 명은 친구가 뱉어놓은 침을 자기 침으로 조준할 기세인데다, 다른 아이는 아이들 틈새에서 접시 위의 곤죽과 친구들의 타액을 섞어보려고 나무젓가락 들고 대기중이다. 
아이들은 마음을 모으고 침도 모으고 열심히 섞는다. 그러고는 접시에 코 박을 듯 가까이에서 대단한 색깔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난, 열한 살 나이에, 그것도 수업시간에 침 좀 뱉어본 아이들과의 일 년을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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