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6일] 겨울엔 편지를 하겠어요 - by 가야

작성자
teacher
작성일
2016-05-18 10:53
조회
1487
편지의 철이 왔네요.

우리 어린이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아픈 손목 흔들어가며 편지를 쓰는 때.
내가 누군가의 그대가 되고 싶지만
내게는 누구라도 그대가 되지는 말았으면 하는,
편지를 받을 그대들이 너무나 많은 계절.

먼저 학기말 콩깍지를 위한 편지가 있지요.
나의 콩깍지, 단 한 사람을 위한 편지.
이건 설레는 마음으로 쓰는 이가 많겠네요.


우리 학교에는 두 학년끼리 묶어 생일편지를 쓰는 문화가 있는데
12월과 1월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섯 분의 교사들도 태어나고 말았지요.
달마다 반복되는 일이라서, 쓰긴 쓰지만 살짝 지겨운 마음도 들겠어요.
선생님은 왜 우리에게 편지를 안 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어린이들에게 미안함을 전해요.

졸업생에게 쓰는 편지를 방학숙제로 내면 놓치기도 해서
내년 2월에 졸업하는 6학년 선배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쓰네요.

게다가 올해는 특별히, 
어느 출판사에서 아주 많은 책을 후원해준 덕분에 감사편지까지 써야 하네요.

아!!! 편지를 쓸 곳이 많긴 하네요. 
그러니 "선생님, 쓸 말이 생각이 안 나요!" 하고 외치는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그동안 생일편지는 잘 썼는데 졸업편지를 쓰며 막막해 하는 아이에게 
재치 넘치고 친절한 다른 아이가 이렇게 써보라며 도움을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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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형에게

어린이회장을 하며 자치회의 이끄느라 힘들었지?
앉아있는 나도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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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이렇게 쓰는 건 어떠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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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형에게
이번 연극 멋있었어.
당나귀 역할 정말 잘 하더라.
다음 생에는 당나귀로 태어나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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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물론 농담이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알면 아깝잖아요.
아마 실행에 옮겨버린(!) 아이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멋진 선배들은 후배들의 귀여움으로 받아주겠지요~


출판사에 감사 편지를 쓴 고학년들은 어떨까요?
선배들 중에는 아래와 비슷한 내용으로 편지를 쓴 이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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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출판사님께

내년에 졸업하는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 후배들이 열심히 읽을 거예요.
책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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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독서문화를 잘 알고 있는 선배의 예측은 과연 적중할까요?


오늘 생일잔치부 아이들이 편지를 정리하는데 
봉투 안에 든 각양각색의 생일편지들을 얼핏 보았어요.
기쁨으로 열었다가 실망할 아이도 있겠고
틀린 맞춤법 사이사이를 헤매며 암호를 풀듯 읽을 아이도 있겠네요!
모두들 편지 쓴 상대방의 수고를 너그럽게 헤아리며 다정하게 읽기를^^


편지 쓰기 좋은 겨울밤~
성장보고서 쓰기에도 좋은 겨울밤이어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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