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역할 바꿔 하루 지내기.>

작성자
그루터기
작성일
2018-11-04 14:25
조회
1235
<도전: 역할 바꿔 하루 지내기.>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늦가을이네요.

아이들과 수원화성에 다녀왔습니다.

달 돌아보기에서 3-4학년 시기 아이들에게 작은 도전거리를 주는 일이 중요하다 했지요.

이번 학교밖학교에서 작은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바로 교사와 학생이 역할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수원화성은 2학년 때 사신반 아이들이 이곳저곳 누비며 다녔던 곳이기에 적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가정학습이 있는 친구 없이 9명의 교사와 1명의 학생이 수원화성을 탐방했습니다.

수요일부터 미리 말해두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기대감이 충만했습니다. 분수대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선생님이 학생을 한다며 기대에 차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다 모이자 저는 학생이 되었어요. 말도 존대를 썼지요.

조사한 것과 옛날 기억을 더듬어 수원화성으로 갑니다. 팔달문에 내려 성벽을 찾아갑니다. 보통 남자 선생님들이 앞을 살피며 빠르게 올라가고 여자 선생님들이 옆에 서서 이것저것 알려주며, 어디로 새지는 않는지 지켜봅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들을 해 보았어요. 신기한 게 보이면 멈추었다가 가고, 담장이 있으면 올라타고, 성벽 안쪽 잔디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10시부터 배고프다며 노래를 불렀어요.

동북각루 앞 공원에서 밥을 먹었어요.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어요. 교사 놀이가 힘들었는지 점심시간에는 ‘학생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고 물어보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약 한 시간 동안 다시 교사가 되었답니다. 호수를 보며 맛있게 밥을 먹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다시 그루터기는 학생이 됩니다.

창룡문에 도착했어요. 시간이 2시를 향해 갑니다. 선생님들이 회의를 시작했어요. 시장을 가자는 쪽과 시장을 가지 말고 쉬자는 쪽이었어요. 의견이 전혀 합의가 안 됩니다. 심심해진 학생은 창룡문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성루에 잠깐 숨어있기로 했어요. 한 5분여 회의 소리가 들리더니 “그루터기 선생님 어딨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 흩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쉬운 곳이라 금방 찾아냅니다. 앉아서 쉬고 있었다며 성벽에 올려진 막대기를 들고 이거 발견했다며 해맑게 벽을 두드리며 돌아다녔어요. 결국 약 20분의 회의 결과 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휘리릭 뿅!’을 외치고 그루터기 교사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장을 가자는 의견과 그냥 쉬자는 의견이 팽팽한 상태였습니다. 일단 ‘가자’와 ‘가지 말자’를 정하자고 했습니다. 동전 튕기기와 교사에게 와서 말하기 중에 정하기로 합니다. 교사에게 와서 말하기로 4:5로 ‘가지 말자’로 정해졌습니다. ‘그럼 뭐할까?’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2~3가지 정도로 좁혀준 뒤, 정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혹시나 ‘그냥 있자’, ‘학교로 돌아가자’이런 의견이 될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기다렸습니다. 결론은 ‘2학년 때 못한 완주를 해보자!’. 대견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저는 학생으로 돌아가고 성곽길을 걷습니다. 팔달문시장에 도착하니 30분 정도에 시간이 남아 맛있는 것을 사먹기로 합니다. 저는 학생이니 ‘선생님들이 모둠 나누어 회식하면 되겠어요.’라고 말하자 또 의견이 분분합니다. 모둠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결국 저는 다시 교사로 돌아왔습니다. ‘자리로 오른쪽, 왼쪽 나누자’라고 말하니 한 아이가 “아 좋아요! 속 시원해!”라는 말이 들립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붙으면 안 되는 아이가 있다며 서로 의견이 다시 분분해집니다. 방법을 제시해 줬지만 그렇게 1,2분가량을 서로 애기하더니 결국 제 방법으로 합니다. 30분 중 약 10분을 회의를 했습니다. 그렇게 간식을 사먹고 아이들의 인도로 안전하게 분수대로 돌아왔답니다. 돌아와서 도전 성공을 자축했습니다.

저에게도 참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한 아이는 제가 계속 중얼중얼 거리니 “아 불평 좀 그만해요!”라며 버럭 화를 한 번 냅니다. 저는 속으로 ‘평소에 네가 가장 불평하거든!’이라는 생각을 하며 있었는데, 출발 할 때는 “잘 따라와요 그루 선생님”이라며 다시 친절하게 말하며 앞장서 가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오늘도 평화로운(?) 사신반의 하루가 갔답니다.
전체 3

  • 2018-11-04 17:24
    하하 재미있네요~^^ 가끔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나는 수업 듣는 학생하고싶다 말하곤했는데~ 시도해보고싶네요~ 지난해 수원화성을 누비던 귀여운 2학년들이 많이 컸네요~ 풀숲에 쭈그리고 숨어서 아이들이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보며 대견해하던게 생각나요.그리고 갑작스런 위기(?)를 같이 해결하고 무척들떴던 아이들 모습이 스르륵~

  • 2018-11-05 12:17
    정말 특별한 학교밖 학교였겠어요. '작은' 도전과 성취가 아이들에게 큰 경험으로 남게 될 것 같네요. ^^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민주적 합의와 참여를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고 있으니 분명 우리보다 훨씬 나은 어른이 될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분발해야겠어요 :)

  • 2018-12-12 09:33
    우와~~ 재밌다. 이걸 한달이 지나서야 읽었네요. 반성반성.. ^^;;
    그루터기 쌤이 아이처럼 행동하는거 상상해보니 넘 웃겨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