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강‘자유와 생명의 공동체’ 수원칠보산자유학교는,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고,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져서 2008년부터 열린강좌 ‘아이와 강’을 꾸준히 열고있습니다. 아이는 자라고, 강은 흐릅니다. 아이와 강은 우리에게는 큰 화두와 같습니다. 아이와 강은 그 존재 자체로서 생명을 상징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순수하고, 강은 늘 생명을 품어 줍니다.  아이와 강은 한결같지만 또 얽매임 없는 자유입니다. 우리 모두 아이에서 출발하여 자라고, 흐르고 또 만나고 이어집니다. 우리는 생명과 자유, 자라고 만나고 이어지는 아이와 강에게 배웁니다

2017년 6월 1일 아이와강 - 최동석 박사님을 모시고

작성자
(4소윤2재윤맘)
작성일
2017-07-03 03:54
조회
2366
<4차 산업혁명과 사회적 변화>
최동석 박사님


저는 강의 일정이 늘 잡혀있어서, 느닷없이 메일이나 문자를 보내 강의요청을 하면, 대개 할 수 없다는 양해를 부탁한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외부강의나 자문을 하는데, 3일 이상을 하면 몸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이미 잡혀있는 스케줄이 있어서,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하는 메일을 쓰다가 이름이 이상해서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봤다.

‘여기 좀 재미있다. 이게 뭔가?’ 라는 생각을 했다.

저는 춘천교육대학교를 나왔다. 교육에 대해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는 주로 기업에 가서 강의를 한다. 5년 동안 교사생활을 했었는데, 이런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며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들어와 기업에 들어가 컨설팅을 하고 강의도 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저는 완전히 은퇴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들을 기업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하지만, 일주일에 3일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다.

여기 칠보산.
처음 들어본다. 너무 좋다. ‘제가 늘 생각했던 교육을 여기서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가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박수)

운전을 안 한지가 꽤 오래되었다. 대중교통으로 다닌다. 어느 날 다리에서 쥐가 나서 운전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앉아서 하겠다, 괜찮으시겠죠?

오늘 이야기의 포인트는 사회적 변화이다. 4차 혁명의 본질은 교육이다. 인더스트리 4.0은 아르바이튼 4.0과 같이 취급한다. 그 이유는 교육 때문이다. 이것보다 우린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저는 독일 교육이 참 좋은 것 같다. 유럽교육이 참 좋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좋다. 지식을 넣는데 집중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습득한다. 필요치 않으면 습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그래서 대학을 가면 다 죽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문명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명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그 힘은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이성이 있긴 하다. 강아지도 집에서 주인이 오면 꼬리를 치고, 배고프면 먹이를 달라고 하는 이성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지식으로서의 이성이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생각하는 힘’으로서의 이성이다.

인류 문명의 전체의 개관해보자.
최초의 문명의 길로 들어선 이후, 오랫동안 하나의 지식, 하나의 해석, 하나의 종교만 용납하는 길을 걸어왔다. 기독교의 특징을 보면 성 어거스틴에 의해 교리가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교리는 어거스틴 자신이 신과의 교통을 통해 얻은 자기반성, 성찰의 고백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자신이 신의 은총을 받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구구절절이 고백했다. 신앙고백이 교리화된 것이다. 개인의 고백이 신앙이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유럽세계를 지배하며 하나의 진리, 하나의 해석만이 용납되는 집단으로 되었다.

(3쪽 자료집)
코뮤니타스(communitas)
조직은 가정, 국가. 하나의 진리로만 강요된 세계.
이 가운데 혁명이 일어난다. 토마스 아퀴나스.

소티에타스(societas)
하나의 신앙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 주장이 허용되는 사회로 변화. 다양성이 허용되는 사회. 이것이 오늘날 소사이어티. 한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주체가 되었다는 의미. 전에는 조직에 속해있는 부속품 같은 요소에서 독립된 주체로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개인이 탄생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산업혁명이후, 개인이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디비주얼(individual)
이 의미는 디바이드(divided)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쪼개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고 수단이 될 수 없다. 회사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 쪽에서 인적자원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나, 회사는 나를 노동력만을 위해서 고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인디비주얼(individual)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나누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그 회사는 나를 노동력으로서 고용한 것이 아니라 인격이 있는 나로서 고용한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생각, 결국 ‘인간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철학이 해결해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명쾌히 정리해준 사람이 칸트이다.

제가 경영을 전공한 사람이긴 하지만, 칸트철학을 말해야겠다.
이렇게 존엄한 인간들이 모여서 자기실현을 하게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재능을 맘껏 발휘한다.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산화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이것이 바로 자기실현인 것이다. 존엄한 인간이 자기를 실현할 때, 높은 생산성이 생긴다. 자신이 좋은 걸 하면 얼마나 생산적이고 행복할까? 이렇게 높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가진 사회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는 물리적 기술을 서양에서 카피(copy)해 써 먹고 있다. 우리가 만든 것은 거의 없다.

이렇게 문명이 발전되어 오는 동안, 서양에서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세계는 두 개의 모형이 나오게 된다.

(3쪽 도표)
앵글로색슨 모형과 게르만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앵글로색슨 모형/라틴 모형: 온순한 시장경제-신자유주의 시장경제
-게르만 모형/스칸디나비아 모형: 사민주의적 사회경제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위에 서 있으나, 사민주의젹 사회경제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다시 줄을 서야 한다.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혁명은 압제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있을 때, 당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결속, 연대하여, 압제하는 사람들을 꺾고,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피 흘릴 것을 걱정하지 말고 말이다.

잘 들어보자.

혁명을 일으키려면,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조직설계를 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직론의 관점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조직론이 없었다. 없으니 이 꼴이 되었다. 조직론을 생각하지 않은 나라는 모두 뒤떨어져있다. 조직설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인간의 높은 생산성을 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조직론의 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 이것은 공부해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세계란 무엇인가? 우리가 모여 있는 학교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생각부터 시작해야 한다. 독일 사람들은 우리보다 일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 연간 1,300시간 정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2,200시간이다, OECD 기준으로 그런 것이니 실제로는 2,300-2,500시간정도 된다. 독일 사람보다 800시간 많다. 1년에 다섯 달 더 일한다. 그런데도 독일보다 생산성이 반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한가?
철학자가 철학적 성찰을 할 시간이 없다. 일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들이 모여서 조직을 구성했다면, 여기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조직을 만들까? 그 이후는 수단과 도구를 만들게 된다. 도구를 만드는 것은 너무 쉽다. 이 틀을 여러 선생님들이 잘 보시고, 어떻게 분권화된 자율적 네트워크 조직(DANO)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사실 기술이 아니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경영 사상가인 피터 드러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오토메이션은 그 특성이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술은 일차적으로 개념 체계이고, 새로운 기술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기술은 일차적으로 개념체계이다.
기술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술자의 머릿속에 기술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다. 기술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기술에 관한 개념체계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하려면, 개념체계를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뭔가를 만들려면 먼저 이론, 개념들이 먼저 머릿속에 정립되어있어야 한다. 정해져있지 않으니 마구자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개념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혁명이 없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은 개념체계를 익히는 과정이다. 이것이 잘 맞지 않으면 고민하고 합리화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혁명이 일어난다. 촛불혁명도 마찬가지이다.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촛불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다노경영은 여섯 개의 개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움직이게 되어있다. 이 개념을 일일이 배우려면 한 학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개념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자.

(8쪽 자료집)
다노 경영에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십은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며 조건을 정비하는 행위이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산업혁명.

이 세 가지 산업혁명이 일어났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어셈블리 라인이 있고, 이 라인을 기반으로 공장이 돌아간다. 어느 공장에 가도 바뀐 것이 하나도 없으나,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자동화의 정도이다. 로봇이 와서 자동화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9쪽 자료집)
기계 설비들이 주체이고, 객체로서 원재료가 라인을 따라 변형되고, 곧 완성품이 만들어져 공장 밖으로 나간다. 이 라인은 지난 200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4차 혁명은 이렇다. 어셈블리 라인이 모두 없어진다. 운동장 같은 곳에서 이렇게 기계 설비들이 서 있다. 이 설비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하며 자기 스스로에 의해 완성되어 나간다.

사이버 피지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CPS)
이는 사이버의 세계가, 인간의 명시적인 개입이나 의도적인 명령 없이, 물리의 세계를 직접 제어하는 기술이고, 사이버의 세계가 인간의 명시적인 개입이나 의도적인 명령에 따라, 물리의 세계를 표상하는 기술이다.

샬레란, 독일어로 쟁반, 그릇이란 뜻이다.
CPS에서는 샬레가 자기들이 원하는 데로 모두 움직인다. 모두 주체로 바뀐다. 개별주문형 생산(personalized production)을 하게 된다. 개인 개인이 모두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완벽하게 존중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객체는 사라지고 모두 주체가 되었다.

CPS-based Factory
4차 혁명은 모든 것이 자율적 주체가 된다. 누구하나도 타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명령하거나 받지 않는다. 분권화되었다. 이 말은 곧 모두가 주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분권화된 자율적주체가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사회전체가 분권화된 사회가 된다. 분권화된 네트워크 사회이다.

3차 혁명까지는 대량생산이 그 특징이었지만, 4차 혁명은 개별화주문생산으로 특징지어진다.

(19쪽 자료집)
제4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4.0)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분권(Decentralization) / 자치(Autonomy) / 네트워킹(Networking)

혁명은 그동안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힘이 축적되어있어야 일어날 수 있다. 촛불혁명은 단순히 최순실을 비롯한 몇 명의 인물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이후의 실정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4차 혁명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서도 Decentralization / Autonomy / Networking라는 것이 서서히 축적되어 오다가. 21세기가 들어서면서 임계치가 넘어서서 나오게 된 현상이다.

어떤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 응축되어있는지 알게 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은 구조 내의 혁명이고, 4차 혁명은 완전히 구조를 바꾸는 혁명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 특징은 빙산과 같다. 수면 아래 가장 밑에 철학이 있고, 그 위에 이론, 그 위, 수면에는 우리가 보는 기술이 나타나있다. 이 전체를 모두 우리는 개념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 이론, 기술 모두가 개념화 된 것이다.

우리 사회를 정(情)의 문화라고 말을 한다. “정(情)이 뭐냐?”라고 하면?
전혀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다. 개념화될 수 없는 것은 구현할 수 없다. 학문은 개념화되는 기술이다. 학생들은 이 세계를 개념화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생각을 합리화하고 비판하고 추론한다.

정(情), 한(恨)… 이런 것들을 정말 개념화하기 어렵다. 그러면 포기한다. 인간이 독립된 주체로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가 없다.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개념화기술을 개발시키는 노력. 우리는 이것을 안 해왔다. 물리현상을 개념화할 수 있는 기술을 서양인들은 많이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사회정의를 개념화해왔기 때문이다. 수면 위에 올라와있는 것은 물리현상에 대한 개념화기술이고, 수면 아래 있는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개념화기술이다. 그러므로 사회현상에 대한 개념화기술을 할 수 있어야 물리현상에 대한 개념화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양(유럽인)인들은 이를 근거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왔다. 사회현상에 대한 개념화기술에 근거해서 말이다. 밑에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4차 산업기술에는 물리적 기술들이 모두 수면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보이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기술들이)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구입할 때,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그 기술에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점점 비참한 상태가 되어간다. 기술을 수입하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 철학에 딸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신은 쉽게 딸려들어 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잘 못 쓴다.

SAP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일반기업들은 SAP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에서 만들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소프트웨어는 한국의 문화와 다르다. 독일은 결제시스템이 없다. 왜? 독립된 자기 직무가 명확하게 개념적으로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제를 받을 필요도 없다. 결제 모듈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그룹웨어를 만든다.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다시 따로 만든다. 이렇게 결제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일하고 있다.

(17쪽 자료집)
지난 시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는 점, 제사, 풍수지리, 사주팔자, 궁합, 명리학에 빠져있었다. 음식에게 절하는 것은 어떤 합리성이 있는가?

이러고 있는 사이 서양은 혁명을 일으켰다.
문예혁명/종교혁명/과학혁명/시민혁명/산업혁명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관계가 힘들어서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사회현상에 대한 개념화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는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만들어주는 세 가지 기술이다.
Decentralization(분권) / Autonomy(자치권) / Networking(네트워크)

이는 사회적 현상, 관계를 합리적으로 개념화하는 기술이며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위 세 가지 기술을 발전시키면 우리 사회는 높은 생산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은 직무와 직무담당자가 구분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직무와 직무담당자가 미분화되어있다. 내가 어떤 직무를 맡으면 같은 것이 된다.

대통령은 ‘직무’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이 ‘대통령의 직무’를 맡고 있다. 문재인은 대통령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문제인은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맡고 있는 자연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직무는 왜 존재할까?
국가운영조직을 위해서 필요해서이다. 그렇다면 왜 필요할까?

조선시대도 그랬다. 1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회적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

우리 헌법은 계급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높은 직무를 맡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문재인, 박근혜는 박근혜이다. 나처럼 말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정 대신과 방백수령들은 나라의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직 자신의 재산을 모으는 데만 주력했으나 그들의 탐욕을 제어할 길이 없었다. 관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과거제도는 뇌물, 흥정, 매관매직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공직 임명을 위한 기능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대기업이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뇌물이다. 뇌물을 가지고 흥정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사회적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 사회적 기술의 불합리성을 제한한 적이 없었다. 혁명을 통하여 이러한 불합리성을 없애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독일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조직설계의 첫 번째 원리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만인제사장설
장 칼뱅: 보충의 원리, 힘이 있는 사람들은 독립된 자율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들과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조직설계의 두 번째 원리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보충해준다.

임마누엘 칸트: 합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

세 가지 생각하는 힘

-합리적 사고: 사실에 부합하는 사고이다.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인간에 부합하는 사고이다. 새를 모방하여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은 아무리 무거운 물체라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양력이 생기면 뜰 수 있도록 과학자들이 설계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자연과학적 사실. 사실에 부합한 인간관계여야 풍요로울 수 있다.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인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공감해주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 현실에 불합리한 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고치도록 하는 사고이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비판적 사고가 없으면 현실은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지 않았다. 세계는 비판의 대상이지 긍정의 대상이 아니다.

-추론적 사고: 비판적 사고에서 더 나아가서 인간은 추론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전후로 박근혜의 얼굴사진을 보았다. 사진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다. 이를 통하여 행방불명된 7시간의 행방을 추론할 수 있다. 추론적사고가 문명을 발전시켰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리차드 파인만의 양자역학. 이는 추론적 사고로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고력이 발전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인간에게는 본래부터 경험하지 않아도 경험이전의 순수한 이론이성을 통하여 종합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있다. 이는 우리 인간에게 본래부터 내재되어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따로 주입할 필요가 없다. 독일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넣어주지 않는다.

칸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적 본능을 훨씬 능가하며,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규칙과 의도를 확장시키는 능력이며, 그 기획력은 한계를 모른다.”

인간은 이성이 있기 때문에 동물본능에서 나와 초월적 세계, 미지의 세계, 이상적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자율성이란, 자기 스스로 법률을 세워서 자기 몸을 그 법률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자율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독립된 주체로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18세에 육체적, 정신적, 물리적으로 독립하여 모두 부모를 떠난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율성에서 나온다. 이 자율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존엄성을 훼손하게 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누구도 지시할 수 없도록, 사회시스템을 이렇게 만들었다. 국가운영도 가정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권력에 명시되어 있다.

독일 기본법 제1조 제1항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될 수 없다. 이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다.”

인더스트리4.0은 생산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말하고 있다.
“인더스트리4.0은 중소기업에 적합하도록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조직설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와 기업현장에서 그 전문역량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친화적인 조직설계와 직무관련 자격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게오르그 쉬테

빌리브란트는 공동결정법을 제정했다. 이는 일반법으로서 기업에도 적용된다. 공동결정이란, 어떤 결정이 타인의 존재, 노동방법,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합의의 원칙은 정반합의 변증법에 따라 대화와 토론에서 나온다. 정반합의 변증법이란, 테제가 나오면 안티 테제가 나온다. 안티 테제는 테제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생떼’이다. 그리하여 테제와 안티 테제를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테제를 만든다. 지식은 강제로 집어넣지 않는다. 이것은 폭력이다. 합집합적 합의를 창조적 합의라고 한다.

정반합의 원리, 이것은 집단지성을 일으키는 힘이다. 집단지성을 일으키는 사회시스템을, 조직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독일은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하여 제4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축적되었다.

<질문>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들어본 일이 없었다. 뉴스에서 보았을 때, “그게 뭐야?”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개념을 알게 되어서 일단 기쁘다. 자료집 그림에서 봤던 공장의 그림은 이미 있는 것인지, 단지 개념인지 궁금하다. 독일에서 시작된 것을 알았는데, 왜 하필 지금일까?

-물론이다. 아디다스, 나이키와 같은 공장들이 이런 개념으로 돌아간다. 약간씩 다르지만 근본개념은 같다. 주문형 생산방식으로 바뀌었다. 대량방식을 할 필요가 없다. 어셈블리 라인이 있어도 서로 다른 자동차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에 가면, 전 세게 6만여 고객들에게 1000여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 이 제품에 약 30억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30억 개가 이런 식으로 각자 주체적으로 찾아가서 상품을 만든다. 이럴 경우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접근한다. 누군가 중앙에서 통제할 수 없다. 너무 복잡해졌다. 경영은 복잡성을 줄이는 행위이다. 그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장 단순화시키는 방법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센서에다가 CPS기술을 탑재한다. 2045년에 인더스트리 4.0이 원숙한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독일은 완전고용상태이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메르켈 총리가 난민 100만 명을 받겠다는 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동화되어서 생기는 일자리 때문이다. 새로운 제조현상에 대하여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율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왜 지금일까?
특별히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것, 독일의 교육은 학생들의 교육을 평가는 하는데 서열화하지 않는다. 독일교육의 특징은 너 자신이 되라. 너의 독특함을 드러내라. 그러기에 개별맞춤형 생산의 문화가 만연하다. 지금은 그것을 기술로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소비자들이 점점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시장이 전환된다. 그러기에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가? 4대강, 합의한 적이 있는가? 결코 없다. 권력 있는 자가 밀어붙였다. 반면 독일인들은 합의한다고 매일 토론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효율적이다.

●합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배워서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 내에 있는 학교 중에서 이런 것을 실천하는 학교는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더 강조한다. 그러나 상당히 오래된 기업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는 일본전문가가 아니다. 저의 전공은 독일기업의 인사조직이다. 일본은 잘 모르긴 하지만,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게 집단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의 폐해는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탄생하지 못했다. 오래된 봉건제도 때문에 장인정신은 살아있다. 이런 전통에 따라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느낌이 있다. 우리는 돈이면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천박한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대학의 교수들을 보면 모두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고,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도 그 스승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중국의 식민지, 일본의 식민지, 지금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