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학년 9,10,11월 돌아보기

작성자
가야
작성일
2017-11-24 19:39
조회
1590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하루하루가 점점 귀하게 느껴진다. 긴 눈으로 보면 우리의 삶도 끝이 있다. 그동안 일상을 살며 잊어버린 사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만남과 헤어짐을,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다시 떠올린다. 아이들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11월 학교살이

세 모둠으로 나눠 요리를 한다. 라면 일곱 개를 끓이는 모둠, 떡꼬치를 만드는 모둠, 참치비빔밥을 하는 모둠. 시끌시끌 신나게 한다. 아이들이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다 지켜보면 그 음식 먹을 생각이 멀리 달아나기도 하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인간의 식욕이다.

학교살이 밤이었다.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자면 혹시나 추울지 몰라 아이들과 교사들 복닥복닥 1학년 교실에 눕는다. 아이들 기운은 본디 하늘로 향하기에 잘 때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리에 누울 때는 분명 각자의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갔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옆 친구와 팔다리가 얽혀 있다. 제 것은 저만큼 밀쳐버리고 남의 침낭 덮고 자는 아이도 있다. 가끔 잠에서 깨어 옆에 누운 아이들 숨소리를 듣는다. 숨소리도 그 아이를 닮았다. 마음이 고요한 아이는 숨소리가 차분하고, 활달한 아이는 숨도 우렁차다.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내면 낮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내면까지 만나는 듯해 특별하다.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깜깜한 새벽을 선사한 아이 덕분에 몇몇 친구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칠보산에 올랐다. 검은 숲이 천천히 환해진다. 산꼭대기는 안개로 꽉 차 있다. 이건 지리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너희가 6학년 되어 지리산 여행을 갈 때 만날 장면을 미리 만난 거라고 전한다. 몇몇 아이들에게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학교로 돌아왔을 때 친구들 잠을 다 깨운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다. 평온하게 자는 모습을 보니 우리들 잠 깨워놓고선 자기만 잘 자는 것 같아 살짝 약이 오르기도 했다.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깨우기로 했다. 이름을 몇 번 부르는데 안 일어나니까 누운 아이를 흔들었다. 졸린 눈 부비며 눈을 뜬 귀여운 아이에게 내가 한 말은 “잘 자~!”였다. 하하하! (아이는 그날 오전 길을 걷다가 교사에게 소리를 빽 지르고 달려갔다. 역시나 복수는 좋지 않다.)

 

10월 등산 백일장

지금까지 겪은 백일장 중에 가장 좋았다. (모든 일은 지금이 가장 좋다^^)

어느 모둠이건 특별했겠지만 8모둠 분위기가 각별했다. 뭐랄까... 시를 찾아 찬찬히 들여다보는 마음, 시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이들에게서 그대로 느껴졌다. 교사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특별히 지도한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시적 재능을 맘껏 뽐냈다. 3학년 아이들이 우리 모둠에 많았는데 그 아이들이 만든 분위기가 고맙다. 3학년 여자아이 셋이서 작은 수첩과 연필을 손에 들고 길을 걷다가, 선생님 저 시가 왔어요! 하며 잠깐 길에 앉는다. 떠오른 걸 또박또박 글로 쓴다. 나뭇잎을 갖고 놀다가 시가 또 찾아왔다고 쓴다. 그러면 곁에 있던 우리 1학년은 지금 저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하고 공책을 찾고 연필을 찾는다. 자기들도 뭐가 왔다며 시를 쓴다.

맨 앞과 맨 끝을 교사 둘이 나눠 맡는다. 줄을 맞춰 한꺼번에 올라가지 않고 삼삼오오 자유롭게 걸었다. 곤충을 보며 놀기도 하고, 내 팔보다 긴 나무막대기를 주울까 말까 고민한다. 그러다 시를 쓴다. 바위에 앉고 그루터기에 앉고 폭신폭신 나뭇잎 더미에도 앉는다. 그러다 산 중턱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만나면 시고 뭐고 다 잊고 논다.

 

91,3학년 여행

경기도 연천으로 떠난 우리의 여행. 단시간 내에 ‘주먹도끼’라는 말을 수백 번은 들은 듯하다. 길가의 돌이 예사로 보이지 않고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보이는지 돌만 나타나면 주먹도끼라 한다. 아이들이 돌을 보면 신기해하고 열심히 모으는 시기가 있다. 아이들 인생의 ‘석기시대’이다. 그 시기를 이번 여행을 통해 진하게 만났다.

삶 곳곳에 숱한 배움이 깃들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 곁에 있는 동료교사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웠다. 함께 1학년을 맡은 이슬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떠하든 평정을 잃지 않았다. 손발이 부지런한 삶이 반 아이들과 내게도 스며든다. 3학년 나무꾼 선생님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구이도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낙천성과 모험심으로 대처했다.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지내는 동료교사의 모습이 3학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도 스며들어 있었다.

여행에서 아쉬운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녹색 이끼가 낀 물에 첨벙첨벙 뛰어들어가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했던 일이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 물속에서 놀 생각을 하니 빨래며 저녁준비며 가방정리 같은 뒷감당이 까마득했다. 우리들이 좀 안 씻고 냄새를 풍긴들 어땠을까. 함께 물 튀기며 노는 시간이 멋진 추억으로 남았을 텐데.

 

평화주간

몇몇 아이들이 한 아이가 다가오면 피하는 놀이를 했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짚고, 반 전체로 돌아보았다. ‘평화’라는 말을 들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의 행동에 속상할 때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갈등이 있는 친구와 해결하려고 먼저 노력하기, 어려울 때는 교사의 도움을 청하기와 같은 방법을 나누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일주일 한다고 확 달라지겠는가. 일이 있을 때 짚고 또 짚고 그러면서 천천히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모둠수업

목요일 말과글, 수 수업을 두 모둠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열 명이 안 되는 작은 모둠으로 수업을 하면 교사와 아이들의 상호작용이 풍성해질 듯해 시도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볼 것 같았는데, 말과글 수업에서는 아이들 규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 수 수업에서는 소규모라 좋은 점이 있었다. 아이들 이해 정도를 바로 확인하여, 한 명 한 명에 맞는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 참여 기회가 많아 연습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수업교구가 부족할 때는 모든 아이들이 하나씩 받아서 할 수 있었다. 말과글이나 수 수업 모두, 같은 내용을 두 번 가르치니 교사의 수업역량이 강화되었다. 첫 수업 아이들보다 두 번째 시간 아이들을 만날 때 좀 더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보조교사

목요일 모둠수업 이외에도 여러 선생님들이 일상적으로 함께 해주셨다. 특수교사 해님, 행정교사 길섶 선생님뿐만 아니라 졸업생 노병찬 선생님까지 함께 한 2학기였다. 우리 학교 졸업생인 노병찬이 보조교사로 주기적으로 참여했다. 이제 열다섯인 노병찬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놀랍기만 했다. 어린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1학년 아이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한 번도 성내지 않았다. 아이들과 지내다 자기 성질을 가다듬지 못하고 본성이 드러날 때가 있는데 언제나 1학년의 입장을 헤아려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학교까지 어떻게 왔냐고 묻는 아이에게 ‘순간이동’ 했다고 답하고, 밭에서 캔 고구마를 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는 어른이 되어 농사지으면 더 뿌듯할 거라며 거절하는 재치까지!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읽을까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 보면 아이들과 교사는 서로에게서 이 꼴 저 꼬락서니 다 본다. 아이들을 대할 때 교사로서 내적 갈등이 심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에게서 내가 기대하지 않은 모습을 볼 때 그렇다. 어떤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교사 노릇을 하며 이래저래 명령한다. 어떤 아이는 어려움이 있는 친구의 말투를 따라한다. 어떤 아이는 옆 친구가 울든 말든 자기 할 일을 조용히 한다. 아이들의 여러 모습이 점점 명료하게 들어오고, 그 아이 타고난 바가 조금씩 드러난다. 모든 면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아이들을 바라볼 때 문제점 위주로 보는 건 아닌지 교사의 시선을 돌아보게 된다. 1학년 아이들이 마냥 괜찮게만 보여서 학습이나 태도에서 성장해야 할 때 머무르는 건 아닌지도.

선과 악은 늘 짝을 이루며 다닌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최고선과 순수악이 함께 있다.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가 틀림없다고 믿게 되는 최고선의 모습. 다듬어지지 않은 본성대로 행동하다 드러나는 순수악의 모습. 어린 아이들과 지내며 흔히 겪는 일이 있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만나는 벌레들을 관찰하느라 여기저기 살피다 죽여 버리는 것이다. 잠시 애처로워하는 표정이었다가 금세 아무렇지 않게 다른 벌레를 찾는다. 아이들이 자기의 호기심만 채울 뿐 도덕성이 모자란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생명 지닌 모든 게 소중하다고 조곤조곤 알려주고 이끌면 착한 쪽으로 행동을 바꾸어간다. 그러나 모든 건 시간이 걸리는 법. 잘잘못이 무언지 알려주고 아이들의 올바른 모습을 이끌려 하지만 교사가 뜻한 대로 아이들이 즉시 바뀌지 않는다.

말이 아니라 교사의 삶으로 나누려 하는데 언제나 어렵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서도 사람의 선한 기운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교사로서 할 일이겠다.

 

배움이 우리의 몸에 스미려면

2학기를 돌아보니 자연스레 1년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처음 만나 예상치 못했던 천진난만한 모습에 당황했던 순간순간, 아이들의 소박한 성취에 기쁨에 겨웠던 날들, 평화롭고 다정한 모습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나 감사했던 시간, 다툼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큰일이 난 것처럼 가슴 철렁했던 때... 아이들 모습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1년을 보냈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모였지만 어린 존재를 가르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자문한다. 날마다 깨닫는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이는 결국 나 자신임을.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에 앞서 교사인 우리가 먼저 그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이 공간이, 이곳의 신비한 힘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배움이 우리의 몸에 스미려면 6년의 교육으로 되겠는가.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다. 교사들의 삶을 봐도 교육받은 기간이 십 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아이들을 보며 조바심이 날 때 나를 먼저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조금 가라앉을 것이다.

 

 

[과목 이야기]

 

아침열기

함께 나눈 질문 보기 : 보고 싶은 구름은, 나와 닮은 동물은, 짧은 침묵 후 느낌은, 나의 소원, 아침에 먹은 음식, 휴일에 뭘 했는지, 오늘 무얼 하고 놀 건지, 여행을 앞둔 마음, 여행에서 하고 싶은 일, 기쁜 소식을 맞이한 친구에게 전하는 말, 평화로운 느낌, 평화주간을 어떻게 지낼지.

우리반의 소중한 문화로 자리 잡은 둥글게 앉아 이야기하기. 꼭 필요한 말을 꺼내는 시간이다. 옆 사람 이야기도 기억해야 하고 내 말도 해야 하므로 길게 말할 수가 없다. 다른 친구가 말할 때 내 이야기가 자꾸 튀어나오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귀담아 듣는 모습이 고맙다. 사람들 앞에서 말 꺼내기 쑥스러워하는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내 생각을 말할 때는 무척 기쁘다.

 

 

말과글

내용 : 텃밭살림 후 글쓰기, 씨앗의 일생(하루부터 열흘까지), 한글 모음을 만드는 3요소 ·(아래아), ㅡ, l 음가와 포함된 낱말.

텃밭에서 있었던 일을 공책에 옮긴다. 일한 직후 글을 쓰는 건 여간 고난이 아니라, 흙먼지 잔뜩 묻은 손으로 공책에 글을 옮기다가 투덜투덜하는 아이들이 있다. 땅바닥에 앉아 직사광선 그대로 받으며 글을 쓰면 눈 나빠진다고, 그늘막 아래로 들어오라고 해도 태양에서 쏟아지는 날빛을 다 받으며 흰 종이에 글을 쓰는 아이가 있다. 그늘로 들어오는 순간, 조금만 더 써보자며 붙들고 안 놓아주는 교사의 끈질김을 피하는 길은 그것뿐이기에.

백일장 이후, 무언가를 시로 표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다. 시의 완성도를 떠나서, 말로 흩어져도 좋을 감흥을 글로 드러내려 하는 마음이 어여쁘다.

그 주의 그림책을 나누며 한 주를 이어가는 교육계획은 실행하지 않았다. 하루닫기 시간에 교사들이 그림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내용 : 전교생 숫자세기, 숫자 백 칸에 색칠하기, 평면도형(삼각형 사각형 원), 입체도형(구 직육면체), 점 이어가며 땅 넓히기, 달력 날짜 익히기, 시계보기, 열씩 묶어 세기

이슬 도깨비와 아이들의 대결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이슬 도깨비를 이겼다고 무척 좋아한다. 새로운 걸 익힐 때 아이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세계의 비밀을 하나 알아낸 것처럼 기뻐한다. 어떤 아이는 비밀을 오래 기억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금세 잊는다.

아이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도 함께 배울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찾아온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즐거움, 아는 것을 다시 꺼내 보는 즐거움.

 

칠보산어린이되기

내용 : 2학기 반장단 뽑기, 반장이 하는 일, 자유의 날에 무얼 할까, 자치회의 참관(화장실 쓰는 규칙)

어느 날 어린이회장이 1학년 담임교사들에게 그랬다. “1학년들도 본격적으로 학교일에 참여하는 게 어때요?” 1학년이 없는 자치회의는 어딘가 허전한가보다. 1학년들이 자치회의에 쑥 들어가기엔 아직 어렵지만 회장단과 여러 학년의 배려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2학기 반장은 한 주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어린 시절의 지도력은 역할을 맡아 해내며 길러진다고 생각해서, 모든 아이들이 고루 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장은 아침열기와 하루닫기 때 반장이 인사를 하고 점심시간에 식판을 확인한다. 몸이 흐물거리는 아이가 반장을 맡아서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텃밭살림

내용 : 염소 돌보기, 배추 심고 가꾸기, 배추 이름 짓고 그리기, 배추 묶기, 고구마 캐기, 고구마줄기 다듬기, 마늘심기

텃밭에 오가는 일 자체가 대단한 노동이다. 텃밭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아이들의 허리는 쉬이 지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이 넘치는 활력의 아이들의 허리는 왜 일을 할 때만 아플까 아주 잠깐 고민한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자라는 생명을 귀히 여기고 우리 입으로 들어갈 먹을거리를 잘 가꾸면 좋겠지만, 아니면 아닌 대로 괜찮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농사일지도 모르겠다. 배추건 쪽파건 마늘이건 일단 심어놓고 잘 자라라고, 벌레들이 너무 들끓지 말라고 기도한다. 밭에서 기도하려면 아이들 주의를 분산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 기도도 잘 안 된다. 품은 덜 내면서 기도의 힘에 기대려는 교사의 욕심을 마주한다. 그래도 하늘은 무엇이든 넉넉하게 내어준다. 아쉬움이 있지만 올해 텃밭, 이만하면 괜찮다.

고구마줄기를 까는 야무진 손을 볼 때, 이런 손으로 다음에는 무얼 할까 기대된다. 김장하던 날 애들 손이 어찌나 재빠른지 1,2학년이 썬 쪽파로 순식간에 바구니가 꽉 찼다. 5학년 언니가 도우미가 되어 애들에게 쪽파를 나눠주고 써는 법을 알려준다. 과일칼로 쪽파를 종종 썰던 아이가 자신감이 붙으니 큰 칼로 바꿔달라고 한다. 두려움 없이 조심조심 칼을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악

함께 부른 노래 : 가을이 오면, 도라지, 아리랑, 기러기, 에헤라 친구야, 개구쟁이, 모닥불, 겨울나무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다 예쁘다. 우리반에는 노래를 잘 하는 아이들이 많아 듣기 좋다. 큰 목소리가 노래를 여러 번 부르며 곱게 가다듬어질 때, 어떻게 하라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는데 아름답게 다듬을 때 참 신기하다.

우리 민요 두 곡을 배워 한가위한마당에서 솜씨를 한껏 뽐냈다. ‘기러기’를 배울 때 노병찬 선생님이 노랫말에 맞춰 연기를 해주었다. 포복절도하느라 곡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이원수의 시에 곡을 붙인 ‘겨울나무’는 널리 알려진 노래뿐만 아니라 백창우의 곡으로도 불렀다.

 

생활미술

내용 : 생일편지 쓰기, 여행 사진첩 만들기, 학교설명회 작품 준비, 천연염색(쑥 뜯기, 밤송이 줍기, 애벌 물들이기, 두 번 물들이기)

여행 다녀온 이후 사진첩을 정성껏 만들었다. 우리가 겪은 일을 함께 떠올리며 말로 표현하고 글로 옮긴 후에 사진첩을 만든다. 여행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먼저 만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더듬고 내 느낌과 생각을 꺼낸 다음에야 사진으로 그때를 돌아보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사진첩이 더 풍성해진다.

학교설명회에 쓸 작품을 아이들 공책에서 골랐다. 한 번 그렸던 그림을 깨끗한 종이에 옮겨 또 그린다. 아이들은 이미 예술가라 쓱쓱 그린 그림과 술술 써낸 글 자체만으로도 작품이다. 이걸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깨끗한 종이나 도화지에 다시 옮기면 정성이 들어간다. 아이들의 즉흥적 표현력을 존중하면서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맞춤한 과정이다. 학교설명회나 마무리잔치 같은 날을 준비할 때 쓰면 좋을 방법이다.

천연염색의 매력은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색이 나온다는 비율이 있어 그걸 충실히 따르기도 하나, 가끔은 눈대중으로 계량하고 매염제의 양을 상황에 맞춰 조절한다. 그러면 매번 다른 색이 나온다. 이번에도 염색에 쓸 재료를 아이들이 직접 모았다. 아이들이 염색통에 손을 넣고 오래 주물주물하며 손수건을 물들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업을 참관한 윤우아버님이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공동체놀이

내용 : 돼지씨름, 닭싸움, 체력검사, 제기차기, 칠교, 피구, 진놀이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놀이에 관심이 전혀 없는 아이, 상대가 관심을 보이든 말든 끌어들이려 애쓰는 아이, 승패에 마음이 기우는 아이, 누가 같은 모둠일까 두근두근 기대하는 아이. 그런데 놀이가 되기는 된다. 다함께 어울려 노는 규칙을 천천히 익혀나간다.

아이들끼리 놀 때는 서로 배려하며 즐겁게 참여한다. 그런데 돼지씨름을 하다 교사 대 아이들의 경기가 펼쳐질 때는 아이들에게서 배려 따위는 다 사라지고 무섭게 돌진하며 교사들을 봐주지 않는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우리를 뛰어넘으며 성장하길 바라는 교육의도를 담고 싶지만, 이 아이들이 무섭게 덤벼드니 교사들도 승부욕이 타오른다. 공동체놀이와 경기(競技)가 어떤 면에서 다른지 절로 체감한다.

 

학교밖학교와 1,2학년 생태교실

내용 : 청개구리 연극 관람, 학교 둘레 논, 물향기수목원, 생생공화국, 칠보산 등산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교사는 자연임을 깨닫는다. 말수가 적은 아이의 입이 트이고, 누가 무슨 놀이를 제안해도 함께 어울려 논다. 논길 걷다 벼 냄새를 맡고 감탄하며, 구불구불 이어진 논길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늘을 바라본다.

낮은 학년 때만큼이라도, 아이들이 자연을 닮아가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다. 그 아이들을 닮아가며 교사도 조금씩 넓어지리라.
전체 1

  • 2017-12-05 15:51
    네, 가야선생님!!
    지난 일년 돌아보는 이야기가 곧, 선생님으로서 한 어른으로서 성찰이 공감됩니다.
    배움이 우리 몸에 스민다... 말로 가르치기 보다 삶으로 보여야 한다...
    저도 아이들 앞에 서면, 이런 마음이거든요. 엄마의 입장이지만..

    아이들 인생의 '석기 시대'... 빵 터집니다.
    지난 여행에서 어진이는 가방 가득 스무개도 넘는 돌들을 주워왔어요.
    이런 힘들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늘 즐겁게, 신비롭게 아이의 말과 행동에 감탄하는 엄마입니다.

    우린, 어른들인 우리는 인생에 어떤 시대를 지나고 있는 걸까요??

    가야선생님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우리 아이들과 이렇게 함께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분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